From Abroad

표지_ 함부르크 피나 바우쉬 컨퍼런스 〈무용의 미래-동시대성을 주장하다〉
무용의 미래 - 항해하는 시간에 대하여
정다슬_<춤웹진> 유럽통신원

 피나 바우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20세기 현대 무용사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안무가라고 딱 잘라 말하기에는 생전에 그녀가 다른 예술장르나 예술가들에게 미친 영향이 너무나도 크다. 특히 그녀의 모국인 독일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빼놓고는 무용을 논하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대단한 예술가는 또 다시 며칠 간 많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1월 26일부터 29일까지 독일 함부르크의 캄프나겔에서는 <댄스 퓨처 ll - 동시대성을 주장하다(Dance future ll - Claiming Contemporaneity)〉 라는 제목 아래 피나 바우쉬와 그녀의 작업을 중심으로 한 컨퍼런스가 이루어졌다. 컨퍼런스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공연장인 캄프나겔에서 열리는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공연을 중심으로 다른 프로그램들이 부가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케이스이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미국, 일본에서 속속 컨퍼런스의 강연자들이 모여 들었다. 컨퍼런스는 ‘동시대성 (Contemporaneity)’ 의 개념과 그것이 문화 및 예술의 정치에 미치는 영향, 또한 동시대성과 무용의 역사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대하여 포커스가 맞추어졌다. 또한 댄스 씨어터와 컨템포러리 댄스라는 장르의 미학과 문화가 현 시대에서 어떻게 ‘해석(Translating)’ 되는지도 주요 이슈였다. 컨퍼런스는 4일간 5개의 테마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매일 저녁마다 공연이 이어졌다.

 

 




 〈역사의 해석(History in Translation)〉

 컨퍼런스의 첫날은 캄프나겔의 디렉터인 아멜리에 도이퍼트(Amelie Deuflhald)와 무용학자이자 함부르크 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 가브리엘 클라인(Gabriel Klein)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역사의 해석(History in Translation)〉을 주제로 한 3개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특히 현대무용(Modern Dance) 역사학자이자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영어, 연극, 공연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수잔 매닝(Susan Manning)은 〈무용극과 현대무용에서의 국가와 세계(Nation and World in Tanztheater and Modern Dance)〉 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해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피나 바우쉬를 무용의 세계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았다.
 그리고 과거에는 나라를 중심으로 모던 댄스의 분류가 나누어졌지만 현대에 오면서 많은 무용단과 작품, 무용학자들의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더 이상 모던 댄스를 국가별로 분류할 수 없으므로 여러 국가에 걸쳐 중복해서 일어나는 춤 현상에 주목해 모던 댄스의 연대표를 현 시대에 맞도록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모던 댄스의 역사에 대해 논할 때, 각각의 장르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와 경향을 더 섬세하게 드러내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문화의 번역(Cultural Translation)〉 & 〈미학의 번역(Translating the Aesthetic)〉

 둘째 날에는 〈문화의 번역(Cultural Translation)〉과 〈미학의 번역(Translating the Aesthetic)〉을 주제로 강연이 이어졌다. 〈문화의 번역〉에서는 일본의 시게토 누키 (Sigeto Nuki), 이탈리아의 레오네타 벤티보글리오(Leonetta Bentivoglio), 미국의 로이드 클리멘하가(Royd Climenhaga), 인도의 사다난드 메논(Sadanand Menen)이 피나 바우쉬가 각 도시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했던 도시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시를 주제로 하여 각 문화의 특징을 반영한 작품들이 해당 나라에서 어떻게 읽히고, 관객과 예술가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학의 번역〉에서는 2016년 4월 뮌헨의 바바리안 주립발레단 (Bavarian State Ballet)이 공연한 피나 바우쉬의 작품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아이들을 위하여(For the children of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2002)〉와 그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러 강연들 중 실질적인 작업의 뒷이야기를 담고 있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강연이었다. 이 공연 이전에는 다른 무용단이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춤 춘 경우가 거의 없었고 특히 클래식 발레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무용단과는 장르상의 거리가 있는 무용극을 공연했기 때문에 공연 당시에도 큰 이슈가 되었던 작업이기도 했다.
 강연을 맡은 베티나 바르너(Bettina Wagner-Bergelt)는 1990년부터 바바리안 주립발레단에서 컨템포러리 발레와 컨템포러리 댄스 분야의 드라마트루그를 맡고 있고, 카야 슈나이더(Katja Schneider)는 뮌헨의 루드비히 막시밀리언 대학에서 연극학의 강연을 맡고 있다. 카야 슈나이더의 경우에는 그녀의 학생들과 함께 작업의 전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남기는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베티나 바르너는 〈우리는 매우 아름다운 무언가를 한다. “아이들…”과 바바리안 주립 발레단(We do something beautiful. “Kinder…” and the Bayrisches Staatsballet)〉라는 제목으로 피나 바우쉬의 작업에서 가장 중점이 되는 요소 중 하나인 ‘진정성’(authenticity)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진정성’이 미학의 테두리 안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피나 바우쉬의 작업이 안무가가 없는 상태로 재공연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더불어 무용작품을 복원하는데 있어서 그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재공연이 지니는 이론과 담론보다는 작업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려움과 에피소드로 흘러가기도 했다. 특히 클래식 발레로 단련된 무용수들이 춤을 추어야 했던 장르의 이질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피나 바우쉬의 작업은 주로 무용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와 움직임들, 그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리허설은 그 역할을 만들어 낸 무용수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역할을 전달받아 현재 그 역할 춤추고 있는 부퍼탈의 무용수들이 직접 바바리안 주립 발레단을 찾아, 움직임을 포함한 모든 요소들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토슈즈에서 하이힐로, 고개와 턱을 들고 관객을 바라보는 것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으로, 포즈에서 흐름으로 - 움직임은 물론 무대 위에서의 태도까지 바꾸어야 했다며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인터뷰 비디오에서 자신들이 마주했던 새로운 미적 요소들에 대한 놀라움을 토로했다.
 베티나 바르너는 “우리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완벽한 테크닉을 연마하는지에 대해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피나 바우쉬의 작업을 배우며 그들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죠. 그들은 새로운 춤에 눈을 떴고 심지어 프리랜서 무용수로 활동하기 위해 무용단을 떠난 무용수들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강연 중간에는 이 작업에 참여했던 부퍼탈의 무용수 타프니스 코키니스가 잠시 무대 위로 올라와 자신의 경험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를 했다.
 “발레단의 무용수들을 처음 만났을 때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들은 마치 토슈즈를 벗고 걷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움직임은 물론, 그 움직임이 만들어진 뒷이야기, 움직임을 만들 당시의 감정, 피나가 이야기해준 디렉션들까지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전달해주었죠. 그러나 그들이 움직임의 형태를 배운 이후에, 그것은 그들의 것이 됩니다. 움직임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게 하여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이죠”라며 리허설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매체를 통한 해석(Translating via Media)〉

 컨퍼런스의 마지막 날 〈매체를 통한 해석(Translating via Media)〉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 슈테판 브링크만(Sthephan Brinkmann)의 〈몸에서 몸으로. 안무의 해석 (From Body to Body. Translating Choreography)〉에서는 안무의 전달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간이 있었다. 슈테판 브링크만은 독일 에센의 폴크방 예술대학의 교수이자 1993부터 2010년까지 탄츠 테아터 부퍼탈의 무용수로 활동한 바 있다.
 브링크만에 따르면 탄츠 테아터 부퍼탈에서는 하나의 역할이 기존 무용수로부터 새로운 무용수에게 전달되는 작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피나 바우쉬의 타계 이후에는 그 과정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무용단에 새로 입단한 무용수들의 경우 피나를 만나보거나 함께 작업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피나 바우쉬와 작업을 해왔던 기존 무용수들에게는 ‘피나의 작업을 미래로 전달하는’ 어떠한 과제와도 같다고 말했다.
 피나 바우쉬의 〈Only You(1996)〉에서 슈테판 브링크만은 작품 창작단계에 참여했으며 작품 속에는 그의 짧은 솔로가 포함되어있다. 그가 무용단을 떠날 당시 이 역할을 새로운 무용수에게 전해주었고, 그는 또 다른 무용수에게 전했다. 하지만 그 무용수가 또다시 무용단을 떠나게 되면서 슈테판 브링크만이 직접 전달과정에 참여하게 되었고, 특별히 강연 도중에 이 작업을 4번째로 브링크만의 솔로를 춤추게 된 무용수와 함께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작업의 시연과 동시에 그는 특정한 역할을 이해하고 춤추기 위해서 어떠한 지식과 테크닉 그리고 경험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던졌고, 역할이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이론과 담론에 대해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지던 시간에서 벗어나 안무의 전달과 해석을 직접 목격하게 된 관객들의 호응을 많이 받기도 했다.
 이어 스위스 베른에서 무용학 교수로 재직 중인 크리스티나 써너(Christina Thurner)는 〈언어를 통해 다시 보는 법. 해석으로서의 무용 비평(How to re-view things with words. Dance criticism as translation)〉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그녀는 피나 바우쉬의 작업은 간단한 범주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비평가들이 공통적으로 이용하는 분류와 기준을 약화시킨다고 하면서, 비평가들이 춤을 언어로 번역할 때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가? 춤이 어떻게 분류가 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동시에 피나 바우쉬의 작업이 ‘현대무용(contemporary dance)’인지 혹은 ‘유산(heritage)’인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며 “나는 피나 바우쉬의 작업을 ‘과거’로 분류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재’로 분류되고 있다. 비평 역시 마찬가지이다. 피나 바우쉬의 작업도, 그와 관련된 비평들 역시 시간의 프레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여러 의미의 시간 안에서 항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라는 의견을 밝혔다.

 

 



 〈과도기: 무용극과 동시대 (In transit: Dance Theater & Contemporaneity)〉

 컨퍼런스의 마지막 주제인 〈과도기: 무용극과 동시대(In transit: Dance Theater & Contemporaneity)〉에서도 춤에서의 미적, 시간적, 의미적 분류에 대한 이야기가 날카롭게 오고 갔다. 컨퍼런스 기간 동안 저녁에 있었던 공연의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모두 모여 각자에게 무용극이란 무엇인지, 무용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동시대성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시간은 이론가와 학자들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동시대성(Contemporaneity)’ 이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특히 남아프리카에서 온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마멜라 니암자(Mamela Nyamza)와 독일의 안무가 요헨 롤러(Jochen Roller)는 ‘동시대성(Contemporaneity)’과 ‘컨템포러리 댄스’, ‘댄스씨어터’ 라는 개념은 무용 마켓에서 필요한 분류이자 범주의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며 입을 모아 “나는 작업을 할 때 ‘컨템포러리 댄스 만들어야지 라던가 댄스씨어터 해야지’ 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을 만들고 보니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불리고 있었을 뿐이죠.”라고 말했다. 특히 마멜라는 “이번 컨퍼런스에 초대된 〈Hatched 2015〉는 나에게 현대적인 작품은 아니예요. 저는 이 작품을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만들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초대되었다고 했을 때 왜 많은 작업들 중 옛날 작품을 초대하는지 궁금했죠. 그렇기 때문에 〈Hatched〉를 초대한 프로그래머에게 왜 이 작품이 ‘동시대성’을 띈다고 생각했는지 되묻고 싶네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컨퍼런스의 매 저녁에는 피나 바우쉬의 도시 시리즈 작품 중 로마를 주제로 한 〈빅토르(Viktor)〉와 요헨 롤러의 〈피나 리부트(Pina. Reboot)〉, 마멜라 니암자의 〈부화(Hatched 2015)〉와 닐 매들린의 〈I ♡ Pina〉 가 공연되었다.
 요헨 롤러는 〈피나 리부트(Pina. Reboot)〉를 통해 ‘피나가 없었다면?’ 이라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대표하는 특정 장면들이 그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읽혔을 것인지 물음을 던지는 설치공연을 선보였다. 뉴욕 출신의 안무가인 닐 매들린은 피나가 아닌 피나 바우쉬를 사랑하는 사람들, SNS 페이지에 피나 바우쉬를 이상형으로 밝힌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피나의 팬덤’에 대해 공연을 풀어나갔다. 컨퍼런스가 전반적으로 피나 바우쉬의 업적을 기리는데 반해, 젊은 안무가들은 공연을 통해 그녀의 작품과 존재를 비틀어 보여주는 재미난 상황이 연출되었다.
 피나 바우쉬를 중심으로 하여 가지를 뻗은 컨퍼런스 〈댄스 퓨처 ll - 동시대성을 주장하다(Dance future ll-Claiming Contemporaneity)〉에서 벌어진 담론들의 폭은 생각보다 그리 넓지 않았다. 그녀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미적 요소들과 그것들의 번역과 해석의 방식, 그것이 읽히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피나 바우쉬는 과거에도 그러하였듯 현재에도 무용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의 시간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나 바우쉬를 예로 들어 던져진 질문들은 명확했고 여전히 답해져야 할 질문들이었다. 어쩌면 예술가에게는 불필요할 수도 있는 시간과 장르의 구분, 개념과 용어의 정리는 사실 예술가들의 작업을 더 잘 읽고, 그것을 더 가깝게 설명하고, 더 잘 사고팔기 위해서 그리고 예술가와 이론가가 상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 무용계에 잘 대입될 수 있는 쟁점일 듯하다. 현대무용이나 창작무용이라는 큰 냄비 안에 들어가 비벼져 버린 장르와 개념의 혼재는 무용 비평을 비롯해 무용계 전체에 혼란과 표현의 제한까지 가져오고 있지 않은가. 더 세분화된 장르 연구와 개념 정리는 물론 외래어로 통용, 대체되고 있는 표현과 그 개념까지 적립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위 글에서는 현대무용을 모던 댄스와 컨템포러리 댄스로 나누어 강연의 내용과 글의 맥락에 따라 번갈아 사용하였으며 필요한 경우에 영문 표기를 첨부하였습니다.

2017.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