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제네바 현지취재_ 질 조벵(Gilles Jobin) 신작 〈FORCA FORTE〉
춤과 양자역학의 실험적인 결합
김혜라_춤비평가

 스위스 컨템포러리 춤을 선도하는 질 조벵(Gilles Jobin)은 1997년 〈A+B=X〉작품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16개 작품을 매해 발표하였다.
 3년 만에 발표한 그의 신작 〈FORÇA FORTE〉(Centre des arts, 평자 4월 14일 관람)는 2015년 스위스에서 ‘가장 급진적인 무용가상’을 수상한 이후 오랜만의 작품이고 양자역학(quantum physics)의 원리를 춤과 퍼포먼스로 풀어낸 작업이기에 더욱 관심이 주목되었다. 그는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 (CERN; European Council for Nuclear Research)와 협업으로 〈Quantum〉(2013)을 발표, 물질과 반물질의 법칙을 원형램프와 댄서들의 관계로 설정하여 표현하였고, 이번 〈FORÇA FORTE〉에서도 물질을 제어하는 힘의 원리에 기초한 작업으로 전작과 그 궤를 같이 하였다.
 프랑스어로 ‘FORÇA FORTE’는 ‘강한 힘 (strong power)’이란 뜻으로 안무가는 자연에 존재하는 강한 힘, 미세하지만 직관적인 힘이 물질의 원칙을 제어하며 상호작용 한다는 것을 빛(적색, 녹색 및 청색-물리학의 중성미자의 세 가지 색깔), 미디어, 소리, 영상 그리고 움직임을 통해 존재함을 보이고자 하였다.

 

 



 무대는 대형 스크린과 곳곳에 놓인 조명들 그리고 음향기기, 각종 미디어 선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도무지 춤을 출 빈 공간이 보이질 않는다. 멕시칸 풍의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질 조벵과 무용수 수산나(Susana Panadés Diaz)는 조명 배치와 컴퓨터 조작에 분주하다. 필자가 기대한 빈공간은 다름 아닌 대형 스크린 안이다. 컴퓨터에서 송신된 작은 신호에서 출발한 선형의 두 형체가 3차원 몸의 형상으로 변모하며 점점 거대해지고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듀엣(질조벵과 수산나)의 완전한 모습을 점차적으로 스크린에서 보게 된다. 마치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은 공간에 있는 듯 두 무용수의 움직임의 반경범위는 전방위적이나 긴장관계가 배제되어 보였다.

 

 



 한참 동안을 반복되다가 다시 시작점으로 사라진 무용수들의 영상이 마무리되고 대형 스크린은 사막 배경의 영상을 투사한다. 현실공간에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듯 질 조벵은 카우보이 의상을 착용하고 상대방의 몸을 스캔하는 동작을 한다. 그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동안 다양한 사막의 영상이 빠르게 바뀌면서 마치 두 무용수가 실제 사막에서 춤추고 있다는 이미지를 관객에게 연출한다.
 이후 그들은 스크린의 방향과 조명 빛의 각도를 달리 배치하고 사막스크린 뒤로 사라져 그림자 형체로만 보이게 한다. 그리고 다시 사막 배경에서 보였던 이미지의 실체인 선인장과 조랑말 인형을 무대 앞으로 배치시킨다. 이와 같은 일련의 배치방식과 연출은 양자역학의 원리와 일면 맞닿아 있어 보인다. 양자역학은 원자레벨에서 인간이 물질을 ‘인지’하는 순간 그것이 파동(비물질)인지 입자(물질)인지 정해지는 것이고 그 전에는 알지 못하므로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존재하기 때문에 인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지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무용수가 사막인양 신나게 춤을 췄으나 무대는 실제 사막은 아니고 단지 빛과 영상으로 연출해낸 이미지일 뿐이었듯이 말이다. 안무가는 컴퓨터 가상공간(중력이 배제된 힘)과 현실 무대(긴장된 힘) 그리고 극적으로 연출된 이미지 공간(인지한 힘) 상황에서 존재하는 에너지, 즉 힘의 실체를 관객들에게 보이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후반부로 가면서 작품은 전반부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밤중 외딴 산속 분위기를 연출한 무대는 어둡고 스산한 빗소리와 늑대울음으로 무겁다. 두 무용수는 인형털옷으로 갈아입고 호랑이에게 토끼가 복종할 수밖에 없는 주종의 관계성을 연극적으로 연출하였다. 양자역학에서 논의되는 힘의 관계를 감정과 소통되는 한 차원 다른 단계와 관계로 옮겨 고민한 듯 보였으나, 전반부의 진행방식과 유기적인 연결성을 갖추지 못해서 작품의 방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비약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마무리였다.

 질 조벵의 〈FORÇA FORTE〉에서 양자역학과 춤과의 결합이 신선하고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다층적인 공간적 이미지를 빛과 움직임의 교류에서 생성되는 힘과 이미지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관객에게 ‘본다’는 것과 ‘인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존재와 실체’라는 문제까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실험적 가능성을 가진 작품이다.
 양자역학과 춤의 공통점이라면 존재를 인지하는 이유인 에너지 즉 움직임이 만들어낸 실체는 관찰자인 관객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론에 있다고 보인다. 춤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무용수, 무대, 조명…등 모든 것들은 사실은 원래의 모습을 보기보다는 관객 (관찰자)이 확률적으로 볼 수 있는 빛(광자)을 눈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 뿐이고 실제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기반한 내용인 것이다.
 실제로 물리학의 유명한 실험인 OPERA 실험에서는 제네바에 위치한 CERN연구소에서 발사한 빨간색 중성미자를 720 Km 떨어진 이탈리아 공원에서 측정하니 파란색 중성미자로 발견되었다.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양자역학은 다양한 철학적 해석 특히 빛과 물질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인류의 시각을 바꾼 대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철학적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춤과 같은 미학적 시각에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016. 05.
사진제공_www.steps.ch/de/home / www.gillesjobin.com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