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시애틀 현지취재_ 팻 그레이니(Pat Graney)의 교도소 프로젝트
예술교육 통한 여성수감자들의 사회재기
장수혜_<춤웹진> 미국통신원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도 춤으로는 표현가능하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안무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는 팻 그레이니(Pat Graney)는 그런 미묘한 여성의 감정을 끌어내는 안무가이다. 특히 그녀의는 여성교도소 내의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무용을 통해 자아를 찾도록 도와주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올해 21주년을 맞이한다.
 미국 내의 여성교도소에서는 특별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행동이 금지되어 있다. 팻 그레이니는 이 사실을 발견하고 본인의 컴퍼니 무용수들과 함께 투어를 하던 중, 1991년 처음으로 보스턴에 있는 여성교도소를 방문하여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열기 시작했다.


 



 당시 보스턴에서 공연한 〈Faith〉라는 작품은 현대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고정관점을 표현한 작품이었고, ‘여성’이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해야 했던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같은 주제를 연계하여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당시 플로리다 댄스 페스티벌의 감독이었던 레베카 테렐(Rebecca Terrell)이 팻 그레이니의 프로그램을 플로리다의 연방교도소에 연결시켜주며 원래 진행되고 있었던 드라마 프로그램에 무용까지 연계하여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팻 그레이니는 인터뷰에서 “당시 35도가 넘는 날씨였어요.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주어진 어두칙칙한 원피스 외에는 다른 옷을 입는 것이 금지되어있었죠. 때문에 ‘파자마’를 입은 여성들이라는 제재를 사용해 워크숍을 한 뒤, 공연을 했었죠.” 라며 옛 기억을 회상했다.
 “그 때, 워크숍을 한 뒤, 무용수들이 동그란 짐볼을 이용한 공연을 선보였는데 한 수감자가 울음을 터트렸어요. 교도소에 오기 전 출산을 했는데 뱃속의 아이를 품고 있던 기억이 난다고 하더군요. 그들의 특별한 트라우마는 제 예술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어요. 그 때 이후로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이 교도소프로젝트는 그 이후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메사추세츠, 텍사스, 워싱턴 등 미국 내 약 열세 곳의 여성교도소를 대상으로 지속되었고, 미국 뿐 아니라 도쿄, 싱가폴, 브라질, 독일 등 전 세계에서 〈Keeping the Faith〉라는 제목으로 약 20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교도소예술프로그램으로서 가장 길게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이렇게 긴 시간동안 유지하는데 어려움도 많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매년 프로그램의 지속을 위해 지원금을 받는 일이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 내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교도소를 왔다갔다 하는 교통비, 아티스트 및 스태프들에 대한 비용, 공연제작비 등 일 년에 약 5만 불의 예산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재단 및 정부에서는 프로그램을 원래대로 유지하는 것보다 프로젝트의 통계적인 결과, 명성 및 성취도에 더욱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지원금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그나마 사설재단 및 개인기부금, 또는 온라인 펀드레이징 등으로 프로젝트진행을 유지하고 있다.
 팻 그레이니는 “어느 교도소에 가던 첫 시작이 가장 힘들어요. 한번은 문 앞을 걸어가는데 교도소 철창 안 수감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무언가를 던지는 바람에 다시 나온 적도 있어요. 또 무용에 경험이 없는 수감자들에게 동작을 가르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몸으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어요. 에어로빅, 음악, 미술, 글쓰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마음을 연 뒤에야 무용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또 열심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독방에 가둬진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학생 수를 지속하기도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렇게 꾸준히 해오다보니 수감자 학생들과 특별한 인연도 많이 생겼어요”라고 설명했다.

 

 



 2005년에 수감자로서 교도소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세바스찬 레인(Sebastian Raine)은 2007년에 교도소에서 풀려난 뒤 교도소프로젝트 코디네이터가 되었다. 누구보다 수감자여성들에 대해 잘 이해했던 세바스찬은 팻그레이니컴퍼니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어 힘든 경험을 겪은 여성을 위해 일하는 전문적인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과거 때문에 교도소담당자들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녀의 스토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재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세바스찬 뿐 아니라 팻그레이니컴퍼니 출신 무용수, 인턴들이 다른 도시에 가서 청소년보호소, 직업전문학교 등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며 그녀의 바람을 이어갔다.
 교도소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여성 수감수 중 한명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은 제 생애 가장 큰 성공중 하나에요. 교도소에 산다는 건 작은 상자 안에 갇혀 사는 것 같아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모두 포기해야하죠. 이렇게 평생 범죄자의 꼬리를 달고 살아야하는 저에게 이 프로그램은 처음으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나아가 자신감과 희망을 주었어요”라고 말했다.
 미국조사에 따르면 남성수감자들과는 달리 아직도 여성수감자들은 사회에 재기할 때 큰 어려움을 겪는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약 300명의 외부인들에게 쇼케이스를 하는데, 그들에게는 이 공연이 수감된 후 거의 처음으로 범죄자가 아닌 인간이자 무용수로서 나설 수 있는 기회이다.
 이번 6월 24일부터 25일에 워싱턴주 미션크릭교도소에서 열리는 쇼케이스는 무용뿐 아니라 수감자들의 글, 시각예술 등도 발표하는 자리다. 이번 공연에서는 특별히 수감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수화를 통한 움직임으로 풀어낸다.

 

 



 시티 아츠(City Arts) 매거진 짐 드미트르(Jim Demetre)는 “팻 그레이니는 인간의 트라우마를 유머있는 톤으로 표현해내는 천재적인 안무가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11년 동안이나 미연방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펠로우쉽을 받은 그녀는 이 감옥프로젝트를 통한 다양한 경험으로 도리스듀크(Doris Duke) 공연예술가상, 아티스트트러스트(Artist Trust) 예술혁신상 등을 수상했으며 그녀의 무용단, 팻그레이컴퍼니의 공연을 통해 계속해서 여성의 내면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일본 및 싱가폴에 이은 한국투어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팻 그레이니는 이 프로그램을 통한 그녀의 소망을 고백했다. “물론 성취감보다는 어려운 일이 더 많아요. 하지만 저희 컴퍼니는 아티스트뿐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의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여성수감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길 바랍니다. 또한 더 나아가 아직도 많은 곳에서 상품화되고 있는 ‘여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예술로 표현되어 여성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6.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