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3년마다 열리는 독일무용회의의 올해 주제는 ‘동시대성’이었다. 200여명의 전문가와 예술가들이 70여 개의 이벤트를 이끌었고, 700여명의 방문자가 하노버를 찾았다. 무용에서의 증인과 현대의 오리엔탈리즘 등 이슈가 된 내용들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편집자 주)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독일의 하노버에서 ‘탄츠 콩그레스(Tanz Kongress 2016)’가 열렸다. 3년에 한 번씩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탄츠 콩그레스는 2006년 베를린에서 그 첫 발걸음을 내디딘 후 2009년 함부르크, 2013년 뒤셀도르프에 이어 2016년 하노버에서 그 네 번째 문을 열었다. 탄츠 콩그레스는 매번 그 규모와 범위를 확장해가고 있는데 올해는 약 200여명의 전문가와 예술가들이 70여 개의 이벤트를 이끌었고 700여명의 방문자가 하노버를 찾았다.
탄츠 콩그레스는 ‘무용 회의’를 뜻하는 그 의미 그대로 일반적인 무용공연 페스티벌과는 포맷 자체가 다르다. 보통의 무용공연 페스티벌은 매회 주제를 정하고 주제로부터 비롯되는 아이디어와 질문, 담론들을 공연부터 세미나, 렉쳐 퍼포먼스, 워크샵, 케이스 스터디, 실험까지 다양한 방식을 통해 토론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반면 탄츠 콩그레스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직업군부터 다양하다. 예술가, 이론가, 학생들은 물론 독일의 무용 프로젝트를 진행 및 관장하는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공연예술기관 또는 극장 등에서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들이 모인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에서 파생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넓어진다.
2016년 탄츠 콩그레스의 주제는 ‘동시대성(Being Contemporary/ZeitGenoss*in sein)’ 이었다. 이는 20세기가 시작된 이래로 늘 무용과 관련한 화두 중 하나이다. 이번 탄츠 콩그레스 기간 동안 그 주제에 걸맞게 곳곳에서 ‘현대에서 시간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지금 무용 세계를 창조하고, 내포하고, 분리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질문들이 던져졌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간의 가파른 변화, 그리고 현재 컨템포러리 댄스의 가장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요소인 현 시대의 변화, 이동, 해석 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무용에서의 증인에 대하여 ‘Contemporary Witnesses in Dance’
여러 강연과 토론 중에서도 눈에 띄었던 것은 무용의 증인이라는 주제로 열린 ‘Contemporary Witness in Dance’이다. 현대와 과거의 무용을 잇는 고리 등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실질적 문제들에 대하여 토론하고, 실제 살아있는 증인들을 만나볼 수 있는 독특한 강연이었다.
역사에 남아있는 무용 작품들의 아카이빙과 복원하는 방식들에 대해 많은 연구가들이 힘을 기울이고 있는 현재, 현대의 증인들이 이런 작업들에서 어떤 역할을 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루어졌다.
과거에 특정 작품을 춤추었던 무용수의 경우 전체 작품을 기억하기보다는 작품 일부분만의 국한된 이미지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전체작품을 기억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혹은 단순히 신체적인 이유로 과거의 안무를 다시 춤추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때문에 강연은, ‘기억’의 개념에 대해 무엇을 남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잊는 것’ 혹은 ‘완벽한 복원의 불가능성’으로 그 성격을 정의하고, 사진이나 비디오, 스케치 같은 도큐멘트들이 기억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또한 예술적, 과학적 측면에 기초하여 과거의 인물들이 제시할 수 있는 구술적이거나 신체적인 사료들이 현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복원작업에서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만들어졌다.
강연은 일전에 〈춤웹진〉에서도 소개되었던 독일의 ‘탄츠폰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던 안무가들을 비롯해 총 6명에 의해 진행되었다. 특히 ‘탄츠폰드’ 프로젝트를 통해 유대인 안무가 게르투르드 보덴비져가 남긴 유산들을 디지털 아카이브 방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했었던 안무가 요헨 롤러는 자신의 작업 경험을 참여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자신이 만난 ‘증인’들과의 인터뷰를 예시로 들며 “기억은 선택적인 것이며 각자가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현대의 증인들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대의 오리엔탈리즘
(Contemporientalism: contesting the orientalism in contemporary curation)
컨템포러리와 오리엔탈리즘을 합성해 ‘Contemporientalism’이라고 명명한 토론에서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인 안무가 임지애의 참가가 눈에 띄었다. 그와 함께 자카르타 출신의 무용학자이자 큐레이터인 헬리 미나르티, 무용 큐레이터 안나 바그너, 무용역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에이크 윗록이 토론을 이끌었다.
이들은 20세기 초반 유럽 공연계에 나타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현대무용 내 아시아의 인식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예술과 민속춤, 극장과 종교의례, 현대와 전통을 나누고 유럽과 ‘그 외’ 부분의 경계를 나누는 시선들을 훑어나가며 상호배타성을 기반으로 한 유럽의 모더니즘 모델이 현재의 공연예술계에서–특히 국제 페스티벌의 프로그래밍에서-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를 독일과 한국, 중국의 페스티벌 등 다양한 예시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강연 중 임지애는 한국춤을 주제로 한 인상적인 렉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녀는 몸을 개인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움직이는 아카이브’로 설정하고, 그녀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습득한 움직임들을 통해 한국무용의 간략한 역사–서양무용의 영향과 더불어-를 소개했다. 종이로 만들어진 족두리와 한복을 연상시키는 가슴을 에워싼 천 조각을 소품으로 하여 전통무용부터 최승희의 신무용, 포스트모던댄스가 한국에 유입되는 이야기 등을 위트 있게 풀어냈다.
또한 임지애는 과거의 움직임들이 자신의 몸에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 그것들이 현대에서는 어떻게 재발견될 수 있을지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한국무용을 현대무용에 억지로 우겨넣는 것이 아닌 순수한 한국무용의 움직임과 소리를 그대로 전달한 그녀의 작품은 외국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에 대한 시각을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선택의 윤리학 - Ethics of Decision Making
‘선택의 윤리학’은 콩그레스 중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실질적인 담론이 오가는 토론의 장이었다. 독일 연방 문화재단의 대표, 국제 투명성 기구의 CEO, 독일 함부르크의 공연장 K3의 디렉터, 무용프로젝트기관 Tanzlabor 21 디텍터 등과 더불어 안무가와, 공연 큐레이터 등이 모여 예술가와 마켓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교육기관과 예술가, 공연 구조는 물론 현대 무용지원기관이 가지고 있는 구조를 공유하고 거기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현대 무용의 펀딩 구조에 있어서 누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이유를 근거로 결정을 내리는가? 예술가들에게는 어떤 생존 방식이 존재하는가? 일련의 과정에서 무시되고 은폐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결정을 내리는 데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 공범자가 아닌가? 이런 결정들이 현대 무용의 발전에 기여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와 같이 현대 공연예술계의 구조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들이 던져졌다. 특히 관람자들에게도 무기명으로 의견을 제시하게 했는데, 토론자들이 나누어 준 종이에는 “외부 요인으로 인하여 그것이 옳지 않은 것임을 인지하면서도 좋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했던 경험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질문에 대한 답은 토론 중반쯤 취합되어 공유되었는데 압도적인 의견으로는 예술가 혹은 안무가, 무용수로서 정당한 조건이 아님을 알면서도 일을 거부하지 않고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관람자 중 베를린을 베이스로 일을 하고 있다는 한 젊은 안무가는 “도대체 예술가가 힘을 차지하게 되는 장소와 시점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결정을 내리는 기관의 구조와 시스템에서 예술가들은 철저히 배제되어있고, 이런 구조의 문제는 예술가들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토로했다. 또한 “우리가 지금 여기에 모여 있게 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예술가들이다. 예술가가 없다면 이런 자리 또한 만들어지지 않는다” 라며 예술가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업의 가치에 대해 피력하기도 했다.
4일 간 이루어진 2016 탄츠 콩그레스는 하노버 오페라하우스와 씨어터하우스, 오랑주리 하우스 등 총 8개의 건물, 15여 곳의 장소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아침에는 요가와 웜업 등의 간단한 실기수업이 있었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매 시간 4-5개의 토론과 강연, 실기 워크샵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저녁 시간 프로그램이었던 공연에는 첫 날 오프닝을 맞은 보리스 샤마츠의 〈Musée De La Danse: Common Choreographies〉와 〈Manger (Dispersed)〉를 시작으로 스위스의 알리아스 컴퍼니의 〈Antes〉, 하노버 오페라 발레단의 〈Der Besuch〉, 마우라 모랄레스의 〈Stadt der Blind (City of Blind)〉 등의 10여개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탄츠 콩그레스는 페스티벌에 참가한 다양한 직업군만큼이나 현재 컨템포러리 댄스가 서있는 지점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와 고민들을 논의하고 또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특히 주목할 만 한 점은 예술가와 이론가, 정치가, 기업가가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동등한 자격으로 현시대의 고민을 나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페스티벌에서 논의된 주제들을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야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중요한 부분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토론이 이루어진 점도 높이 살만 하다.
물론 이런 토론과 강연을 통하여 전 세계의 무용분야와 무용사업구조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바꿀 수 있는 명쾌한 대안이나 정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츠 콩그레스의 모든 참여자들은 수동적인 구조와 작업 환경의 변화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어떤 방식의 변화,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지 끊임없이 모색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쉽게 해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탄츠 콩그레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런 포맷을 적용해 각국의 상황에 맞는 논의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머지않아 최선의 해결책이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