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과연 오늘까지의 현대무용 역사에서 지금처럼 다채로운 양상의 공연들을 볼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을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무용수가 될 수 있는 시대, 무엇을 하든 현대무용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지금이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는 오롯이 순수한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춘 공연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새로운 것, 신선한 것들을 창조하기 위해 정신없는 와중에도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는 여전히 기본에 충실한 안무가이다.
벨기에 현대무용의 어머니라 불리는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는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1982년 작 〈Fase, Four Movement to the Music of Steve Reich〉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움직임과 음악의 관계 등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Ottone, Ottone〉에서는 오페라, 〈A Love Supreme〉에서는 John Coltrane의 음악, 〈Vortex Temprus〉에서는 벨기에의 현대음악을 접목하여 작업하였다. 이 밖에도 중세 음악, 클래식, 재즈, 인디안 라가까지, 그녀의 작업에서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영감이며 주제이다. 이밖에도 그녀는 여러 작업에서 언어의 수학적 구조를 분석하곤 하는데 2015년 작 〈Golden Hours[As you like it]〉에서 다시 한 번 음악과 언어라는 주제를 물고 늘어지는 그녀의 집요함을 보여주었다.
팝뮤직과 셰익스피어의 만남, 텍스트의 움직임화
2월 5일 함부르크의 캄프나겔 극장에서 본 〈Golden Hours[As you like it]〉는 발매된 지 무려 40년이 된 팝 뮤지션 브라이언 에노의 음악 ‘Golden Hour’(1975)와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Golden Hours’는 브라이언 에노의 앨범 “Another Green World” 에 수록된 음악으로, 이외에도 같은 앨범에 수록된 곡 몇몇이 그녀의 작품에 사용되었다. 그녀는 에노의 음악에 대해 “그는 소리를 교묘하고 솜씨 있게 처리한다. 그가 쓰는 가사들은 멜랑꼴리하면서도 시적으로 표현된다. 나는 이런 표현들을 다른 음악가들에게서 본 적이 없다”라며 애정을 표한 바 있다.
그녀는 음악과 더불어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를 통해 언어의 수학적 요소 또한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는 목가적 전원을 배경으로 한 젊은 남녀의 사랑 문제를 다룬 낭만 희극이다. 작품 안에는 사랑 외에도 권력과 재산을 둘러싼 혈육 간의 분쟁이나 전통적 사회 지위에 대한 염세적이고 풍자적인 면들도 담겨있다. 이 작품은 1600년 출판 저작 등록이 신고 된 기록이 있는데, 이는 타인의 무단 출판을 막기 위한 조치로 당시 이 작품의 인기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20세기의 팝뮤직과 16세기의 희곡은 안무가 케이르스마커를 통해 21세기의 무대에서 만나게 되었다.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와 같이 총 5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은 텅 빈 무대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적막한 무대는 브라이언 에노의 음악으로 채워진다. 곧이어 마치 방금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듯한 운동복 차림의 무용수 11명이 등장하고 이들은 에노의 음악을 배경으로, 무대 중앙에서 관객의 코앞까지 천천히 걸어 나오고 돌아가길 반복한다. 무대 중앙에서 떼를 지어 앞뒤로 천천히 혹은 빠르게 걸어 다니는 것은 마치 자신들이 오늘 연극의 등장인물임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다.
작품 내내 무대 뒤쪽의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는‘1막’, ‘2막’ 등과 같이 막의 전환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나타나곤 해 극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아마도 이는 ‘말이 없는 연극’을 보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한다. 인터미션 없이 진행되는 2시간 2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용수들의 일관된 무표정과 단 한 번도 소리로 전해지지 않는 단어들, 그리고 대화들에서 연극이라는 매체와의 근접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르스마커의 〈Golden Hours[As you like it]〉는 마치 감정이 극도로 절제된 한 편의 연극 작품처럼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작품은 ‘뜻대로 하세요’ 와 같은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올란도와 그의 형의 결투, 프레데릭과 로사린의 갈등, 올란도와 로사린의 사랑 등 각 에피소드들은 솔로, 듀엣, 트리오 등의 다양한 장면 구성으로 연출되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자주 나타나는 ‘해피엔딩’ 즉 모든 연인들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결혼으로 끝나는 5막은 작품 중 가장 동적인 부분이었다. 핑크색 분필을 든 한 무용수가 각 인물들의 발의 동선을 분필로 따라 다니며 무대 위에 다양한 선을 그려내는데, 이 선들은 얽히고설킨 모든 등장인물을 연결하면서 무대 위의 동적인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Golden Hours[As you like it]〉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특별한 리듬감이 케이르스마커를 통해 움직임, 스텝, 제스처 등으로 변환되었고 이것이 곧 춤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희곡의 대사와 상황을 단순하고 직접적인 동작들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리듬과 시적인 상상들을 춤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11명의 에너제틱한 무용수들의 매혹적인 몸짓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선과 손, 발의 플롯(줄거리)’은 빈틈없이 짜여 있었고, 이렇게 촘촘히 짜인 움직임들은 각 캐릭터의 다양하고 엉뚱한 태도들을 흥미롭게 펼쳐내 주었다. 캐릭터들의 유혹, 매력, 오해, 멍청함 등 복잡한 성질과 관계들이 무용수들이 지닌 특유의 표현을 통해 추상적이지만 다채로운 움직임으로 발현되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색깔을 더하는 캐릭터인 염세적인 사색가 제이퀴즈와 발랄한 어릿광대의 춤은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두드러졌다. 제이퀴즈는 강렬하면서도 시니컬한 태도의 담백한 춤을, 어릿광대는 무대 이곳저곳을 누비며 모두에게 장난을 거는 리드미컬한 춤을 선보이며 작품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소리 없이 이야기를 하고 파트너의 춤을 듣는 것, 즉 텍스트를 움직임화 하는 작업은 아마 무용수들에게도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공연이 끝나고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무용수들은 텍스트를 열심히 공부했고, 이제 그것을 가슴으로부터 알고 있다. 각각의 무용수들은 텍스트와 용어들을 즉흥 작업을 통해 움직임으로 구현해내었다”라고 말했다.
짐작해 보건대, 어쩌면 무용수들은 자신의 대사가 나올 때 그것을 춤추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대사를 읊조리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케이르스마커는 “음악은 나의 첫 파트너”라고 말한 바 있다. 음악이 그녀의 작업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까지 그녀가 보여준 작업 속의 음악들은 아마도 대중들에게는 낯선 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Golden Hours[As you like it]〉에서 팝 뮤직을 선택하였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이를테면 작품 2막부터는 무용수 한 명이 기타를 집어 들고 연주를 하기 시작했는데, 빠르고 강렬한 사운드의 연주는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 넣음과 동시에 장면 전환이나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도구로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케이르스마커는 단지 브라이언 에노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시적인 요소들과 감정의 요소들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적절하게 대입시켰다. ‘Golden Hours’에서 ‘나의 불완전함의 온도, 어떻게 하면 순간들이 이렇게 느릴 수 있을까요. 나는 저녁이 미끄러져 지나가는 것을 보았죠. 저물어 가는 저녁은 더 커지고, 물은 와인으로 바뀌어요’와 같은 가사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감정을 대변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배경인 ‘목가적인 숲’은 음악에 대한 열망 그리고 젊음 청춘의 사랑과 열기가 가득 찬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놀랍게도 셰익스피어, 팝 뮤직 그리고 추상적인 움직임으로 채워진 2시간 20분간의 무대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은 관객들이 공연 도중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햄릿>이나 <백조의 호수>를 보고 감탄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각박한 탓이기도 하거니와 일관된 무표정과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케이르스마커 특유의 추상적 움직임들은 때때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감정이 담기지 않은 연극이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관객에게 이야기하고자 했던 언어와 움직임의 플롯은 단순한 판토마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에 굳이 읽혀질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그저 언어를 어떻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지, 어떻게 텍스트를 움직임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몰두하고 있는 듯 했다. 케이르스마커는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는 아직도 음악과 움직임, 텍스트와 움직임의 관계에 대해 실험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면 이 극장은 텅텅 비워졌겠지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