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8월 21일 일본 니가타시의 류토피아니가타시민예술문화회관에서 대구시립무용단의 공연이 있었다. 이날 공연은 2014년 요코하마에 이어, 올해 ‘2015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니가타가 한·중·일의 각종 문화교류 행사의 하나로 시작한 ‘니가타 인터내셔널 무용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한국에서는 홍승엽 예술감독이 이끄는 대구시립무용단(8월 21일), 중국에서는 챠오(Willy Tsao) 예술감독이 이끄는 CCDC(City Contemporary Dance Company)(8월 28일), 일본에서는 주최자인 노이즘(Noism) 예술감독인 가나모리 조(金森 穣)의 무용단(9월 4일)이 참가했다.
이 행사에 내가 코디네이터로 참가한 것은 작년 여름에 걸려온 가나모리 씨의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NDT를 비롯한 유럽 무용단에서 활약하다가 귀국한 그가 약관의 나이인 29세에 류토피아니가타시민예술문화회관 전속 무용단 노이즘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당시 일본 무용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경제대국 일본은 무용에 있어서는 국립발레단도 시급제로 운영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유럽 시스템을 접목시킨 무용단 운영과 활발한 국내외 활동으로, 현재도 일본 무용계의 황태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입장에 있는 안무가와 이 행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마침 대구시립무용단으로 거취를 옮긴 홍승엽 씨를 떠올렸다. 1993년 당시 무용계의 학벌제도 속에서 민간 전문 무용단인 Dance Theatre On을 설립한 그는2000년 리옹댄스비엔날레 공연의 성공을 계기로 자신의 무용 세계를 확고히 했다. 그런 그의 활동은 젊은 무용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독립세대’라는 무용층을 생성,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도적 역할로 한국 현대무용사에 한 획을 그었다.
무용에 있어서 발레 메소드를 중시한다는 점, 현재 유일한 시립현대무용단의 예술 감독이라는 점, 댄서·안무가로서 자국 무용계에 촉매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홍승엽과 윌리 챠오, 가나모리 조 등 세 명 아티스트들, 곧 한·중·일을 대표하는 안무가들이 모두 참여한다는 점에서 내 스스로도 이번 행사가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한·일 무용교류에 관한 일이라면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양국의 지방자치단체 소속이었던 두 무용단의 문화적 차이로 초기에는 부담감이 앞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양측의 배려와 조정으로 계약서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합의를 보게 되었다.
8월 21일, 이윽고 홍승엽의 대표작인 <달 보는 개(Moon-Looking Dog)>(1999)와 신작 <코끼리를 보았다(I Saw the Elephant)> 중 2부 파트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나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본 가나모리 씨의 환한 미소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에서 성공적인 공연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연 후 이어진 토크 시간은 홍승엽 씨의 단원들을 훈련시키는 방법, 창작시의 동작과 음악 선택 등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화기애애하게 이루어졌다.
공연을 지켜본 니가타 시장, 주한국니가타총영사는 “현재의 한·중·일의 어려운 과제를 문화 교류로 개선하자는 취지를 가진 이 행사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로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축사를 했고 이어 리셉션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서는 <달 보는 개>에서 단원들의 잘 갖춰진 신체가 보여주는 매끈한 기량, 그리고 스타일리쉬한 동작과 조명이 화제가 됐다. 특히 신작 <코끼리를 보았다>는 복잡한 동작들과 그 베리에이션을 어떻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에 다들 감탄했다. 사람들은 일본말로 전자는 각고이이(格好いい 멋있는) 작품, 후자는 가와이(かわいい 귀여운)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무용평론가 이시이 다츠로(石井 達朗) 씨는 <코끼리를 보았다>에 대해 언급하면서 안무가의 전공이 수학과 관련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치 수학에 기반을 둔 듯한 수많은 동작을 기하학적인 구성의 연속으로 풀어나갈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8월 23일에 있은 ‘세 안무가의 대담’에서는 자국의 무용계 현황, 행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무용단의 운영과 사회적 역할 등이 주된 테마로 등장했다. 주최측인 류토피아니가타시민예술문화회관에 소속된 컴퍼니 Noism(2004)은 니가타의 예술성을 국내외의 공연으로 알리는 Noism1(11명)과 연수생으로 구성되어 니가타 지역을 위한 공연을 하는 Noism2로 이루어져 있으며, Noism1의 단원들만 월급제로 페이를 받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 소속의 대구시립무용단(1981년)은 35명의 단원으로 전원 월급을 받고 있다. 홍콩의 CCDC(1979년)는 운영 자금의 50%는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하며, 연습실과 극장 등은 창설자이며 예술감독인 윌리 씨의 빌딩에 소재한다. 안무가와 14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계약제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 대담은 상호간의 시스템과 지역 사회에의 공헌 방법 등을 비교·참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중·일 3개국이 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는 지금 그 갈등만큼이나 어려운 과정 속에서 시작한 2015 니카타 국제무용축제는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무용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작은 다리 역할을 했다. 그것은 공연을 본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환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생활하는 나에게 니카타국제무용축제는 단순한 무용 축제를 넘어 하나의 잔잔한 삶의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2016년 중국, 2017년 대구, 2018년 다시 니가타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