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국제적인 무용축제가 매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공연예술을 기반으로 한 축제일수록 프로그래밍을 조금만 소홀히 하면, 어김없이 질적 저하와 심하면 정체성의 상실까지도 초래한다.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된, 올해로 8회 째를 맞은 ‘ODORU AKITA’(춤추는 아키타) 국제 무용축제는 매해 주목할 만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여타 국제 무용축제와의 차별성을 살리고, 아시아 춤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AKITA는 일본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Baku Ishii, 부토의 창시자인 Tatsumi Hijikata가 태어난 곳이다. 2016년 ‘ODORU AKITA’ 축제가 처음 시작할 당시에도 유명 무용가 태어난 고장에서 국제 무용축제를 갖는 의미가 크게 부각되었었다. 두 아티스트 모두 국제적인 활동을 통해 일본의 무용을 알린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도 공연작품 안무가 중에서 Tatsumi Hijikata Memorial Award 수상자를 선정해 그 연계성을 살려가고 있었다.
후지사토 가미와카(Fusisato-Town Kamiwaka) 향토예능보존회가 공연한 〈말춤〉 |
일본과 인도네시아 국제 협업공연 Reisa Shimojima와 Moh Hariyanto의 〈Jap/Vanese〉 |
후지사토 가미와카(Fusisato-Town Kamiwaka) 향토예능보존회와의 워크숍 후 |
올해 ‘ODORU AKITA’는 3일 동안에 걸쳐 쇼케이스 공연에 해당하는 International Dance Selection과 특별 기획 공연으로 편성되었다. 초청 안무가들의 작품을 유통시키는 쇼케이스 공연이 플랫폼 성격을 띠는 국제 축제에서 필수적으로 편성되는 프로그램이라면, 특별 공연은 축제의 예술감독이나 프로그래머가 가장 야심차게 공들여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ODORU AKITA’는 춤 작품의 유통과 함께 네트워킹 등 국제교류를 위한 프로그램을 편성한 점에서는 여타 국제 무용축제와 크게 다를 바 없으나 개최 지역에서 전승되는 전통춤을 토대로 한 국제 협업 컨템포러리댄스 작업은 이 축제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10월 28일 아키타시 니가와이 교류관 AU 다목적홀에서 공연된 Reisa Shimojima와 Moh Hariyanto의 〈Jap/Vanese〉와 후지사토 가미와카(Fusisato-Town Kamiwaka) 향토예능보존회의 공연은 ‘특별 기획공연’이란 타이틀에 걸 맞는 매우 인상적인 무대였다.
1부에는 아카타 지역 후지사토 마을에서 전승되고 있는 수확의 춤인 Shishi Odori(사자춤)와 Komo Odori(말춤)가 20여명의 마을 주민들에 의해 추어졌다. 이어 2부에는 이 두 종류의 춤의 요소들을 차용한 일본과 인도네시아 두 무용수의 협업 작품인 〈Jap/Vanese〉 가 25분 동안 펼쳐졌다.
마을 주민들에 의해 연희된 두 개의 춤은 전체적으로 두 다리와 두 팔을 활용한 움직임이 빠른 템포로 일정한 패턴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일본 마츠리에서 보여 지는 화려한 장식의 의상이 빚어낸 시각적인 강렬함과 연주자들의 라이브 타악기 연주와 남성 연희자들이 간간히 지르는 기합 소리 등이 어우러진 이 공연은 그 자체로 보고 듣는 감상의 즐거움을 한껏 선사했다.
〈Jap/Vanese〉에서는 1부에 공연된 〈사자춤〉과 〈말춤〉에서 보여 진 춤과 음악의 요소들이 두 무용수에 의해 작품 곳곳에 투영되었다. 무대 바닥에 몸 전체를 눕히고 구르거나 발바닥과 두 다리를 활용한 Shimojima의 다채로운 하체의 움직임과 캐스터네츠와 같은 악기를 사용한 소리내기와 Hariyanto의 덤블링 동작과 골반을 활용한 현란한 움직임 구성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이밖에 두 무용수의 발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 한 아래로 갈수록 통이 넓어지는 푸른색 치마, 발바닥과 두 다리를 다채롭게 변주한 동작, 타악음과 맞물리는 장면에서 여성 무용수가 두 손으로 가슴팍을 마구 가격 하는 동작, 고개를 좌우, 위 아래로 심하게 흔드는 동작, 남녀 무용수가 보이스를 주고받은 후 말춤에 사용된 음악을 오버랩 시키는 구성 등 의상, 움직임, 음악 등에서 후지사토 마을에서 전승되는 연희와의 연계성은 작품 전편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사자춤과 말춤 등에서 보여 지는 연희자들의 놀이성과 흥이 두 무용수의 공연작품 속에서 개개의 춤이 아닌, 2인무의 앙상블로 더욱 살아난다면 아시아의 전통과 연계된 컨템포러리댄스로서의 경쟁력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Shimojima의 댄서로서의 동물적인 감각의 몸놀림과 무대 장악력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했고, Hariyanto의 유연한 움직임 구현도 〈Jap/Vanese〉가 앞으로 재공연 될 경우 춤의 확장성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이 두 아티스트의 작업은 ‘ODORU AKITA’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싱가폴의 ‘cont.act Contemporary Dance Festival’과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2017년 ‘ODORU AKITA’의 초청 아티스트였던 Reisa Shimozima가 2022년 싱가폴 축제에서 Moh Hariyanto와 자바의 토속문화를 중심으로 협업을 했고, 이들의 작업을 눈여겨 본 야마카와 감독이 올해 ‘ODORU AKITA’에서 협업을 제안한 것.
공연 작품 제목인 〈Jap/Vanese〉는 ‘japanese’(일본인)와 ‘javanese’(자바인)에서 따온 것이다. 두 무용수는 후지사토 마을의 Shishi Odoro의 Komo Odori를 직접 배우는 등 아키타에서 협업을 위한 과정을 거쳤고 이후 2주일 동안의 작업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
Ayako Takahashi 〈Political Spaghetti〉 |
조현도 〈From rock to gravel〉 |
김요셉 〈Gom-bang-yi-teot-da〉 |
Megan Doheny & llya Nikurov 〈Palace〉 |
서정빈 〈There is no room for food〉. Tatsumi Hijikata Memorial Award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예술감독이 최종 선정한 International Dance Selection에는 전쟁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 이스라엘 안무가의 작품을 제외한 10개 작품이 이틀에 걸쳐 공연되었다. 참가 안무가들은 자동으로 Tatsumi Hijikata 상의 수상 대상자가 되었다. International Dance Selection 참여 작품 중 Megan Doheny(미국) & IIya Nikurov(러시아)의 〈Palace〉와 Mizuki Taka(일본)의 〈Doldrums〉, 김요셉(한국)의 〈곰뱅이 텄다〉가 다른 나라의 국제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음식을 위한 방이 없다〉를 안무한 서정빈(한국)이 Tatsumi Hijikata Memorial Award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올해 축제 포스터 앞에 선 예술감독 Santa Yamakawa ⓒ장광열 |
올해 새롭게 조성한 레지던시 예술가들을 위한 스튜디오 |
이 축제를 탄생시킨 주인공인 Santa Yamakawa는 그동안 ‘페스티벌 디렉터’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올해부터는 ‘예술감독’이란 직함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축제에 참가하는 작품의 질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예술감독이란 직함이 더 맞을 것 같았다. 실제로 한국에서 직접 공연을 본 한 안무가의 작품은 후반부가 약해보였으나 축제에 초청하면서 작품에 대한 조언을 했고 후에 작품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다.”
이 축제는 올해 또 다른 면에서 변화를 보였다. 바로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위한 레지던시 공간과 댄스 스튜디오를 자체적으로 마련한 것. 실제로 Shimojima와 Hariyanto의 협업 작업도 후지사토 마을에서의 리서치 후 2주일 동안 아키타에 새로 마련된 AIR(Artist in Residence)와 댄스 스튜디오를 통해 진행되었다.
야마카와 예술감독의 ‘ODORU AKITA’에 대한 열정은 그가 오래 동안 살았던 Tokyo를 떠나 고향인 Akita로 이사 후 온전하게 정착을 결심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개최하는 축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은 열망도 있지만 유명 무용가들이 태어난 고장의 지역 주민들이 무용을 더욱 자주 접하고 이 고장을 무용이 중심이 되는 지역으로 만들고 싶어 어렵게 결정했다.” 그는 레지던시 공간과 스튜디오 마련 비용도 모두 개인 돈으로 충당했다고.
필자가 산타 야마카와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2월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페스티벌’에서였다. 그해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있었던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때 다시 만났고 그는 이후 매년 내한해 직접 한국 춤 단체들의 공연을 보면서 축제에 초청할 작품을 고르곤 했다. 1953년 아키타 시에서 출생한 야마카와 감독은 극단을 운영하며 극작가, 연출가, 배우로서 활약하다 부토 평론가가 되었고, 「백조의 호수 전설 ~코마키 마사히데와 발레의 시대~」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ODORU AKITA’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그는 “아키타는 무용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20여개의 발레 학원이 있지만 전문 무용단은 단 한곳도 없다. 그러나 일본 무용계에 큰 족적을 남긴 두 명의 아티스트가 태어난 곳이다. 축제는 이들의 무용적인 업적을 기리고 이를 통해 다음 세대의 무용가들이 배출되도록 하고 싶다. 곧 축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을 통한 지역 활성화이다”라고 답했다.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ODORU AKITA’는 규모가 큰 다른 축제와 개최 시기가 겹쳐 다수의 해외 게스트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25년부터는 개최 일정을 2월로 바꿀 예정이다.
그는 올해 축제 예산 1억 2천만원 중 3분의 2는 일본 문화청으로부터 지원 받았고 모자라는 4천만원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수입으로 충당했다“고 귀띔했다.
올해 축제에 초청된 International Guest |
축제의 마지막 프로그램에는 공연 출연자와 안무가, International Guest들이 함께 했다. |
축제 시작 전 아키타 지역신문에 게재된 무용가 남정호의 기고문 |
올해 ‘ODORU AKITA’ 시작 전에 두 개의 기사가 아키타 지역신문에 게재되었다. 축제의 사전 홍보를 위한 계획된 작업일 수 있으나 게재된 기사의 내용이 축제의 시작과 발전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의 경쟁력을 더욱 살려낼 수 있는 내용이라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2023년 10월15일자 신문에 실린 남정호(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의 기고문은 이 축제가 지역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16년 여름에 야마카와 감독으로 부터 후지사토조 가미카와 향토예능보존회 멤버와 나의 제자들로 구성된 KNUA Choreography Troop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아주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이 작업은 한국-일본, 프로-아마추어, 현대무용-민속무용 등의 섞이기 힘든 요소들을 한데 모아 녹여내어 작품을 만들어 공연형식으로 발표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순발력 있고 창의적인 4명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무용수들의 헌신적인 기여도 물론이지만 동시에 시청직원, 우체국직원, 그리고 목수 등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이 마을 춤꾼들의 성실하고 진지하고 그리고 열정적인 참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남정호는 2017년 제1회 히지카타 타츠미를 기리는 상의 수상자를 정하는 경연의 해외게스트로 참가, 그때 발견한 레이사 시모지마에 관해서도 적었다.
“어린 아이의 기저귀를 걸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다가 돌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넘어지거나 구르는 동작을 하는 그녀를 보며 감탄했었다. 어린 아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성인보다 덜 다치는 이유는 아이는 성인이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긴장을 갖지 않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시모지마는 아이가 갖는 무방비적인 신체능력마저 획득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오래된 라디오 방송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차용하는 저돌성도 있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또래의 무용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용기와 함께 기발하고 독특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2022년 국립현대무용단 단장으로 있을 때 나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싱가포르의 안무가에게 "가족"이라는 주제로 안무 작업을 맡겼고, 그때 시모지마는 탁월한 기교와 표현력을 갖춘 두 명의 한국무용수들과 함께 아주 멋진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것을 계기로 시모지마는 한국의 광주아시아전당과의 다른 프로젝트도 연결되었고 앞으로 안무가로서 힌국에서의 행보도 더욱 활발해 질것으로 기대된다”고 적었다.
야마카와 감독은 “이 축제를 처음 시작할 때 컨템포러리댄스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한국의 국립현대무용단 공연을 보러 갔었고 이때 만난 남정호로부터 컨템포러리댄스에 대한 흐름과 한국의 국제 무용축제, 영향력 있는 중요 인물 등에 대한 정보 등을 들을 수 있었다”라며 축제의 성장에 한국 무용가의 협력이 큰 도움이 되었고 이후 국제 축제에서의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ODORU AKITA’는 2017년 인연을 맺은 Reisa Shimozima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지속적인 지원을 통한 안무가의 성장을 돕는 것 역시 국제 축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ODORU AKITA’는 그 만만치 않은 작업을 성공적으로 행하고 있다.
2017년 제2회 아키타 축제에서 공연한 〈Monkey in a daiper〉는 시모지마의 특유의 동물적인 감각의 움직임이, 그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KEDAGORO 컴퍼니의 2018년 요코하마댄스콜렉션 최고의 화제작 〈Sky〉는 11명 무용수들의 강한 임팩트의 움직임과 오브제로 사용한 얼음과 기저귀, 테러를 향한 선명한 메시지가 압권이었다. 2021년 국립현대무용단의 지원으로 안무한 〈닥쳐 자궁〉(Shut up womb)은 함께 공연한 이경구 배요섭 무용수와의 빼어난 앙상블과 음악과 어우러진 움직임 조합이 일품이었다.
일본과 대한민국의 무용 환경은 많이 다르다. 공공 지원기관에 의한 지원제도의 운용과 지원 규모, 국제 무용축제의 개최 숫자 등등 대한민국의 무용 생태계는 일본에 비해 훨씬 풍요롭다. 이런 여건에서 비록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개최되는 몇 개 안되는 국제무용축제인 ‘ODORU AKITA’의 행보는 바로 차별적인 프로그램 운용으로 인해 계속 주목받게 될 것이다.
장광열
춤비평가.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1995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를 위해 설립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서울과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