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네덜란드 헤이그 현지취재_ CaDance Festival
젊은 안무가들의 새로운 생각과 도전을 지지한다
곽아람_SIDance 국제교류팀장

 

 네덜란드의 현대무용은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NDT)라는 걸출한 브랜드로 상징되지만, 실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바로 코르조 프로덕션(Korzo Productions)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행정수도 헤이그(The Hague) 구 시가지에 위치한 코르조는 세 개의 공연장과 네 개의 스튜디오 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프로덕션 하우스로 네덜란드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가장 규모 있고 활동적인 단체들 중 하나이다.
 코르조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매년 봄 코르조 프로덕션이 지원하는 신진 안무가들과 몇몇 해외 유망 안무가를 소개하는 ‘Voorjaarsontwaken’(Spring Awakening), NDT 출신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Here we live and now’ 그리고 비엔날레로 개최되는 카댄스 페스티벌(CaDance Festival)이 있다.

 



 코르조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협력관계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지만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이다. 2013년 이종호 시댄스 예술감독과 레오 스프렉셀 코르조 예술감독의 봄/가을 상호 교차방문을 계기로 양측은 두 나라 젊은 안무가들의 국제무대 진출 지원에 뜻을 같이했고, 이에 따라 2014년 5월 아트프로젝트 보라(김보라), 모던테이블(김재덕) 그리고 고블린 파티(임진호, 지경민)가 Voorjaarsontwaken 무대에 섰다. 그리고 올해 안수영컴퍼니가 카댄스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뒤를 이었다. 시댄스는 네덜란드 안무가들의 아시아 지역 진출을 돕기 위해 일단 올 가을 시댄스 무대에 유망 안무가 몇 사람을 초청할 계획이다.
 한 겨울을 다소 비껴갔다고 하지만 2월의 유럽은 여전히 차다. 잿빛 어느 유럽의 소도시를 연상하며 도착한 2월의 헤이그는 여전히 긴 겨울을 지나고 있었으나 그 분위기는 상당히 컬러풀하고 생기가 넘쳤다.
 카댄스 페스티벌은 올해 1월 30일부터 2월 15일까지 코르조 극장과 스파위극장(Theater aan het Spui) 그리고 100년 이상의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호텔 데 쟁드(Hotel des Indes)와 왕립극장(Koninklijke Schouwbrug), 메르마노 뮤지엄(The Mermanno Museum) 등 헤이그 곳곳에서 열렸다.

 



 코르조가 자체 제작한 7개 프로그램(대부분 Samir Calixto, Joeri Dubbe, Shailesh Bahoran 등 신진 안무가들의 작품)과 NDT 등 다른 무용단과 공동제작한 5개 프로그램 그리고 NDT1, 클럽 가이&로니(Club Guy & Roni), 에미오 그레코(Emio Greco) 등 네덜란드 중견/중진급 초청작 5편을 비롯하여 그리스 Rootless Root, 세네갈 Compagnie Diagn’Art, 그리고 한국의 안수영컴퍼니 등 외국 초청작 3편, 호텔과 극장, 스튜디오 등에서 도시 순회형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4개 작품, 워크숍과 안무가와의 대화 그리고 솔로 무용 콘테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소개되었다.
 축제의 엔트리는 네덜란드 신진 안무가들의 젊고 과감하고 도전적인 작품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이들 작품에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만큼 완성된 작품의 프로모션에서도 매우 적극적이다. 플랫폼이라는 타이틀은 걸지 않았지만 축제는 이들의 작품을 전략적으로 배치,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인접 지역 프리젠터들을 초청해 보여주고 이들과 예술가들이 만나는 기회도 만들어준다.
 올해도 영국의 더 플레이스를 비롯한 몇몇 극장 관계자와 축제 프로그래머들이 참가했다. 더불어 안수영컴퍼니의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는 날에는 이들 외에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의 관계자들이 찾아와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 축제에서는 코르조가 제작한 스페인 출신 안무가 마리나 마스까렐의 신작 〈it is like a large animal deep in sleep〉이 공통적으로 높은 호응을 얻었다. 마리나 마스까렐은 댄스포럼 타이페이와 지속적인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데, 2013년에는 마리나 마스까렐의 안무에 대만 무용수들이 출연한 〈The Unreality of Time〉(비현실적 시간)이 시댄스에 초청된 바 있다.
 매혹적인 이미지와 시적 은유, 강력한 뉘앙스를 남긴 〈The Unreality of Time〉의 큰 성공 덕분인지 마리나의 신작은 발표되기도 전에 이미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 주요 극장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현재 시댄스와도 초청 여부를 논의 중이다. 자유를 향한 우리 사회의 세밀한 각성을 주장하는 다소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은 50개의 종이상자를 활용한 무대연출과 일상적이나 본질적 움직임을 찾아가는 몸의 유희로 주목을 끌었다.
 안수영컴퍼니는 2월 7일과 8일 스파위극장에서 두 번의 공연을 가졌다. 첫 날 공연은 네덜란드의 컨템포러리 힙합 공연팀 155 i.s.m과의 더블빌로 진행되었는데 공연이 끝난 후 관객보다 더 흥분한 현지 무용수들이 달려와 클래식 음악과 힙합 움직임의 접합점에 대해 이름조차 생소한 힙합 전문 용어를 써가며 들뜬 상태로 자신의 감상을 전해주기도 했다. 별도의 셋업 기간 없이 매우 타이트하게 진행된 공연일정은 지치고 힘들다. 그러나 역시 진심 어린 두툼한 질감의 기립박수가 그 모든 피로와 수고를 가져간다.

 



 두 번째 공연은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특별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초반 20분은 NDT 출신 포르투갈 안무가의 춤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적 구성의 모놀로그였다. 중1, 중2 정도로 보이는 차분한 분위기의 여학생들은 빈틈없이 빼곡하게 앉아 초반부터 매우 높은 집중력을 보여줬고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렸다.
 공연 후 이어진 질문과 응답 시간에는 안무가와 위트 있는 대화도 나누는 매우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인터미션 때 들이닥친 이제 막 변성기를 지난 듯한 학생들 300여명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빈번한 함성과 박수 소리는 우리의 예측을 빗나갔고 공연이 진행되는 20분은 기대 이상으로 매우 흥겹고 또 요란스러웠다. 아마도 우리 무용수들에게는 초 집중을 요구한 상당히 어려운 무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공연이 끝나고 카댄스 관계자는 이번 학생들이 유독 극성스럽고 활달한 아이들이었다며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공연이 끝나고 따로 인사를 해오는 싱싱한 표정의 어린 관객들로부터 ‘All thumbs up’ 축하를 받고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날의 피로를 잊는다.
 카댄스 축제에서는 매번 한 작품을 선정해 학생들을 위한 특별 공연으로 마련하고 있으며, 우리가 공연한 스파위극장은 1년에 서너 번 정기적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이 날의 요란스러웠으나 성공적인 공연 덕분인지 안수영 안무가는 암스테르담 예술고등학교로부터 무용과 학생들을 위한 워크숍과 안무를 해줄 것을 제안 받았다. 의미 있는 공연에 이은 기분 좋은 다음 출발이었다.


 코르조는 3개의 극장과 4개의 스튜디오 그리고 사무공간과 주방, 로비와 바 등을 갖추고 있어 프로덕션과 프로모션, 공연과 워크숍 등 모든 것이 한 공간 안에서 가능하다. 축제에 참가한 공연팀들에게는 매일 저녁식사가 제공되는데 공연자들은 극장 주방에 모여 소박하게 식사를 하며 서로를 소개하고 담소를 나눈다. 새로운 네트워킹의 현장이다. 물론 제공되는 음식은 일반식과 채식으로 매우 소박하고 간결하다.
 코르조의 감독인 레오 스프렉셀(Leo Spreksel)과도 역시 이 식당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자신과 작업하는 안무가들에 대한 큰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한국 안무가들을 향한 호기심 그리고 좋은 작품 앞에서 언제든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는 냉철함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어떠한 배경과 스타일을 가진 안무가를 선별하는지는 물론 레오를 중심으로 한 코르조 프로듀서들의 몫이겠지만, 그는 기존 트렌드와 방식에 얽매이지 않은, 그러나 명확한 몸의 언어와 방향성을 가진 안무가들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말은 거창하게 하지 않지만 코르조는 네덜란드 및 유럽 권역 그리고 아시아 지역까지 그 프로모션을 확대하고 안무가의 특징과 역량에 따라 단순 초청부터 안무 위촉, 공동작업 등 다양한 방식의 협력을 추구하며 네덜란드 현대무용의 하나의 큰 중심축으로서 특히 젊은 생각과 방향을 지지하는 젊은 극장, 그러나 축적된 노하우로 승부하는 노련한 프로덕션이었다.

2015.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