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풍부함과 구름처럼 펼쳐지는 옷감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얼굴에 가득한 미소’.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언론사인 ‘바트랑’(Vårt Land)은 노르웨이 국립발레단(The Norwegian National Opera & Ballet)의 <호두까기인형>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발레 <호두까기인형>의 인기는 이곳 북유럽 오슬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연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매진되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공연이 바로 ‘호두까기인형’ 이다. 거의 크리스마스가 <호두까기인형> 없이는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전통이 깊은 공연이다.”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프레스 담당자 레나 제이곱슨의 이 말이 실감날 정도로 12월 13일 오후 오슬로 국립 오페라하우스는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객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20주년을 맞이한 연륜답게 꽤 잘 정돈되어 있었다. 노르웨이 국립발레단 단원들과 어린이 무용수들, 노르웨이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차이코스프스키 음악 연주(지휘 Terja Boye Hansen)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앙상블은 별다른 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다.
Dinna Bjorn이 안무한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마리우르 프티파가 안무한 원작보다 더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주역이건 조역이건 상관없이 어린 클라라, 성인 클라라, 눈의 여왕, 꽃의 요정, 설탕 요정, 그리고 호두까기 왕자까지 모두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다가왔다.
어린 클라라가 꿈속에서 춤을 추고, 호두까기인형 병정과 쥐들을 만나고, 사탕수수 인형과 눈꽃, 그리고 꽃을 만나 겪게 되는 모험 이야기에 더욱 초점을 맞춘 탓인지 무대는 출연 무용수들로 가득 찼고 의상(Nadine Baylis)과 무대미술(John B. Read) 등은 더욱 화려했다.
노르웨이 국립발레 스쿨에 소속된 100여명의 어린이 무용수들이 출연했고, 호두까기인형 병정들과 쥐들은 그 숫자에서나 군무에서나 모두 여타 발레단의 작품에서 보는 비중을 넘어섰고 호두까기인형과 쥐의 왕 역시 그 분장이나 의상 등이 크고 화려했다. 드로셀마이어는 거실의 가구를 순식간에 이동시키는 등 여러 차례의 마술로 파티에 참석한 어린이들과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살린 파티 장면에서는 성인들과 어린이들 모두 화려한 군무로 무대를 점했고, 크리스마스 트리는 천장에서부터 무대바닥까지 가득 차지하며 조지 발란신이 안무한 뉴욕시티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에 등장하는 초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핀란드 국립발레단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공연하는 핀란드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눈의 여왕>(The Snow Queeen) 무대가 눈 덮인 풍광, 커다란 고드름, 눈의 여왕이 추는 신비스런 솔로춤과 순백의 군무로 핀란드의 분위기를 한껏 담아내었 듯이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1막 파티장면에서 거실 분위기, 하녀들과 손님들의 복식 등에서 노르웨이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한껏 살려 제작한 듯 보였다.
이날 공연에서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주요 배역은 거의 동양인 무용수- 왕자는 Gakuro Matsui, 설탕요정은 Leyna Magbutay- 들이 맡았다. 2막에서 권세현은 꽃의 요정 역(왼쪽 사진)으로 출연, 탄탄한 춤 기량과 수려한 외모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화려한 클래식 튀튀를 입고 등장한 권세현은 아름다운 하체 라인과 부드러운 뽀르 드 브라와 함께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지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격조있는 춤으로 댄서로서의 존재감을 한껏 뽐냈다.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은 오페라하우스 대극장 바로 옆 갤러리에 발레 <호두까기인형>의 의상과 소품, 그리고 스토리와 제작 배경 등을 전시, 공연 전과 인터미션 때에 어린이들에게 관람토록 하고 있었다. 공연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발레 작품으로서 <호두까기인형>을 실제로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이 같은 교육적인 프로그램의 시행은 미래의 관객들을 육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술 작품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시도로, 공공 예술단체가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문화 컨텐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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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첫 입단 한국인 단원 권세현
클래식과 모던 모두에서 인정받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권세현은 최초로 이 발레단에 입단한 유일한 한국인 단원이다. 공연 후 로비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녀를 알아보고 함께 사진을 찍기를 요청하는 어린이 관객들 때문에 제대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느새 그녀는 인기있는 무용수가 되어 있었다.
장광열 오늘 공연에서 여러 명의 솔리스트 중에서도 단연 춤으로 빛이 났다. 커튼콜 때도 주인공 못지않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오늘 관객들의 환호를 받은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권세현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중있는 배역에 캐스팅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리허설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연습 일정이 꼭 차 있어서 충분히 리허설을 갖지 못한 채 무대에 섰고 첫 공연이라 조금은 긴장을 했었는데 다행히 잘 마친 것 같다. 어제 발레단의 클래스를 참관했다. 분위기가 무척 자유스러웠고 댄서들의 표정도 무척 밝아 보였다. 언제부터 이 발레단에서 활동했는가? 올해 9월부터 시작했다. 2년 동안 몸담았던 네덜란드 국립발레단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 처음에는 나도 무척 놀랐다. 무용수들끼리의 치열한 경쟁이 피부적으로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원들 사이의 분위기가 좋다. 모두 자신들에게만 집중하고 다른 무용수들에게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신들의 춤에 몰두하고 알아서 스스로 열심히 하는---, 예술적인 분위기라고 할까? 무용수들끼리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그 때문인지 발레단에서의 생활이 무척 편안하다. 전에 몸담고 있던 발레단이 서유럽의 중심에 있는 발레단이었다면 지금 몸담고 있는 발레단은 북유럽의 발레단으로 어떻게 보면 규모면에서는 이전 발레단보다 더 작은 곳이다. 발레단을 옮기기로 결심한 다른 이유가 있었는가?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서 2년간의 활동을 통해 나에게 더 적합한 레퍼토리가 어떤 것들인지 깨닫게 되었고 조금 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 보기 위해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에 입단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은 전통이 깊고 색다른 모던발레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는 단체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경험해 보지 못한 특유의 레퍼토리를 통해 더욱 도전감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컴퍼니라고 생각했다.
입단 후 3개월이 지났다. 어떤 점이 네덜란드 국립발레단과 다른지 궁금하다. 입단 후 처음 만난 작품의 안무가가 지리 킬리안(Jiri Kylian)이었다. 킬리안이 작품을 지도해 주었다. 거장 안무가가 직접 리허설을 지도하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다. 킬리안은 나에게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전에는 그저 동작을 외우고 그것을 잘해 내는 것만 신경썼는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훨씬 더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킬리안과 함께 작업한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 〈Bella Figura〉였다. 네쌍의 커플들의 춤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커플들마다 의미가 있는데 오래 동안 같이 살았던 커플이 죽음을 맞는 내용이다. 킬리안은 “눈빛 하나에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하는 것을 담아내려하고 서로를 걱정하는 그런 의미를 생각하라”고 말했다. 킬리안은 아주 오래 전에 자신이 안무한 작품의 순서를 너무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많은 작품들을 모두.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한 안무가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춤추고 싶은가? 발레단에 입단한 후 킬리안의 〈Bella Figura〉와 Michel Corder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했다. 예전에는 <마농>과 같은 드라마 발레를 하고 싶었는데 킬리안이나 나초 두아토의 모던 작품들을 춤추고 싶다. 클래식과 모던 모두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발레단 연습실과 여러 시설을 둘러보고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모든 발레 연습실에서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복도 곳곳에 체력단련을 할 수 있는 헬스 기구가 놓여있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시설을 갖춘 발레단은 없을 것 같다. 단원들도 모두 최고의 시설임을 인정한다. 2주마다 발레 클래스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바뀐다. 발레단의 재정이 비교적 탄탄해 복지 면에서도 아주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발레단 운영은 빡빡한 편이다 아침 9시30분부터 클래스가 시작된다. 전날 공연이 늦게 끝나더라도 클래스 시간은 변하지 않는다. 끝나면 바로 리허설이 시작되고 공식적인 점심시간은 40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오후 5시까지 발레단에서 근무해야 한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는 1주일에 3번만 클래스에 참여해도 되었으나 이곳에서는 모든 무용수들이 매일매일 클래스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무용수로서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현재 나에게 주어진 작품에 몰두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훗날에는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예술가로 성장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몸과 마음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그분들의 영혼을 깨워줄 수 있는 그런 발레리나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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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예술감독 INGRID LORENTZEN
새 <백조의 호수>와 킬리안 작품들로 아시아 투어 갖고 싶다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인 잉그리드 로렌젠(Ingrid Lorentzen)은 한국인 무용수의 입단으로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이 한국에 알려지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평자의 말에 “그녀가 우리 발레단을 알리는 대사 역할을 했다. 다음에는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공연을 갖게 되길 희망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잉그리드 로렌젠은 "14년 동안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무용수로, 2000년부터는 솔로이스트로 활동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백조의호수>에서 오데뜨 역을 맡았으며, Jiří Kylián, Jo Strømgren, Sol León, Paul Lightfoot 등 컨템포러리 안무가들과도 작업을 했다.
장광열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오래 동안 공연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든 객석이 매진되고 있다. 잉그리드 우리 발레단의 작품은 Dinna Bjorn이 안무했다.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우리는 2016년에 새로운 <호두까기인형>을 준비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 예정이며, 음악 등에서도 노르웨이의 색깔이 많이 들어갈 것이다. 부임 후 예술감독으로서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어서 발레단을 운영하는가? 2012년 8월부터 노르웨이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부임후 주로 국내 공연에만 치중하던 발레단 운영에서 탈피해 해외 투어를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파리 떼아트르 드 라빌에서 지리 킬리안의 작품들을 공연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상트페테르부르와 독일의 바덴바덴,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도 공연했다. 2013년부터는 연간 시즌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오페라하우스 메인 극장과 세컨드 극장 그리고 해외 투어 등을 합해 연간 100회 정도의 공연을 예상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무용수들이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어떻게 단원들을 평가하는가? 60여명의 댄서들이 있다. 이중 20명은 노르웨이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무용수들이다. 일본과 한국 필린핀 중국 등 아시아에서 온 무용수들도 많다. 그리고 매년 오디션을 통해 단원들을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특별히 주역 무용수와 군무 무용수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단원들에게는 안무가들로부터의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으로 캐스팅될 가능성이 언제든 열려있다.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에는 한국인 무용수 권세현이 올해 새로 입단했다. 당신이 보기에 무용수로서 권세현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몇 년 전에 권세현에게 입단 제의를 했으나 거절당했다(웃음). 그녀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을 택했는데 그녀가 다시 우리 발레단에서 일하게 된 것을 보니 나와는 좋은 인연인 것 같다. 그녀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무용수이다.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특별한 무용수이다.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이 다른 노딕 국가의 발레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가? 노르웨이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스웨덴이나 덴마크 보다 역사가 짧다. 클래식 발레 외에도 유명 안무가들의 컨템포러리 작품을 함께 보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술감독으로서 단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용수들이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원으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하고, 춤추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발레 클래스 등 발레단의 기본적인 운영 시스템에 잘 적응하도록 강조한다. 내년에는 어떤 작품들을 공연할 예정인가? 국가에서 자꾸 발레단에 많은 돈을 주고 있다(웃음). 새로운 레퍼토리를 많이 확충해 나갈 생각이다. 내년 시즌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카르멘> <신데렐라> 등을 공연할 예정이다. 특히 3막으로 새로 초연되는 Liam Scarlett 이 안무한 <카르멘>이 가장 기대된다. 아시아 투어 계획은 있는가? 만약 한국에서 공연을 갖는다면 어떤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가? 마카오에서 초청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아시아에서 공연을 갖고 싶으며, <백조의 호수>와 지리 킬리안의 작품들로 하고 싶다. 헨릭 입센의 작품을 소재로 한 컨템포러리 댄스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백조의 호수>는 알렉산더 에크만(Alexander Ekman)의 안무로 올 4월에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2막에서 무용수들은 물위에서 춤을 춘다. 파격적이면서도 예술적이 완성도가 높아 한국의 관객들도 좋아할 것이다.
잉그리드 로렌젠은 노르웨이 국립오페라단에서 안무가, 무용수, 배우로서도 활약했으며 Trøndelag Teater에서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안무를 맡았고, 영화 〈Little Miss Norway〉에서 주인공을 연기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문화부 무용위원, 공연예술학교의 문화부 장학금 사업의 심사위원, 노르웨이 국립오페라와 국립발레단이 운영하는 발레연구소의 예술위원이기도 하다. 서글서글한 외모에 인터뷰 내내 활달한 성격을 여지없이 드러낸 그녀는 자신이 몸담았던 발레단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특유의 친화력으로 세계적인 안무가들의 애장품들을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확보할 가능성이 농후에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