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죽었다’(Ballet is dead)라는 소문이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혀 왔다. 마치 성가신 모기 한 마리가 귓가를 맴돌듯 터무니없는 헛소문이 계속해서 주위를 맴돌았다. 이 같은 허위 사망보고는 1950년대 정도부터 우리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대로 수 천 명의 무용수들이 높은 수준의 무용작품을 선보이며 기존 사람들의 기준을 바꾸어 놓았다. 몇 십 년 동안 관객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목격해온 발레컴퍼니 감독들에게는 발레의 시대가 끝났다는 소문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무용컴퍼니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듯 했다.
제니퍼 호만스(Jennifer Homans)는 2010년 발간된 그녀의 저서, 「아폴로의 천사」(Apollo’s Angels)에서 발레가 죽어가는 예술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녀조차도 이 내용을 재고하고 있다. 제니퍼가 창설한 미국 뉴욕대학교, 발레와 예술센터(The Center for Ballet and the Arts)에서 올해 가을 발표된 내용을 보면, 발레를 다시 예술의 형태로 부활시키기 위한 생존가능성에 대해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명백히 해두자. 신체의 기술과, 미적인 감각, 움직임과 제스처를 결합하는 발레는 인간의 진화가 계속되는 한,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형태로서 발레의 죽음은? 아직은 더 논의해야 할 문제다.
간단히 말해, 발레는 언어이며 우리의 신체가 소통하는 한 발레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발레는 다른 언어처럼 더 이상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멸종되거나 하지 않는다. 아직도 대중의 일부는 발레가 신체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정교한 언어와 딱딱한 규칙으로 미화시킨다는 잘못된 오해를 논한다. 발레가 17세기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 시대 때 급격히 발전하여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만연하다.
하지만, 현재는 17세기가 아니다. 그리고 결국 문제는 발레라는 단어자체가 부여하는 의미 때문이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은 미국의 저드슨 댄스시어터(Judson Dance Theater)가 발레의 부자연스러움과 진부함을 발견한 이후부터였다. 그럼에도 발레는 인간의 진화에 가장 예민한 무용의 형태라는 보편적인 원칙을 지켜왔다. 현재 공연되고 있는 발레공연을 보아도, 전통발레가 계속하여 뒤틀리고, 구부러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모더니즘의 형태를 띤다.
필자는 지난 30년간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주민으로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예술단장, 헬기 토마슨(Helgi Tomasson)이 전통주의를 고수함으로서 빛을 발하는 계기를 볼 기회가 많았다. 2013년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Wayne McFregor)의 <보더랜드>(Borderlands)를 보면 알겠지만 무용이 반발레(Anti-Ballet)의 영역에 다 닿았을 지라도, 적어도 안무가들은 발레가 으뜸이었던 그 전통주의 시절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인 해석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다. 지난 시즌에서는 젊은 영국인 리암 스칼렛(Liam Scarlett)이 <허밍버드>(Hummingbird)라는 작품에서 19세기의 안무가 프레데릭 에쉬튼(Frederick Ashton)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만한 과감한 동작을 선보였다.
이렇게 발레는 국가주의적인 전통스타일에서부터 러시아 안무가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의 네오전통주의까지 이어져왔다. 그러나 항상 최고의 상태는 아니었다. 발레는 언제나 변화의 흐름 속에 있었고, 발란신 같은 최고의 안무가들은 지속적으로 그 변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안무가들은 단순하게 ‘발레’라는 형태에 냉소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냉소적인 발레의 형태는 백조가 날아다니는 지루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만일 그들에게 묻는다면, 어린 시절 배웠던 발레가 결국은 현재 그들의 위치에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거리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들이 발레컴퍼니 단장 자리에 오퍼를 받는다면, 두 말 않고 계약서에 서명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도 하다.
현재 이 시대에 무용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젊은 무용수들이 창작에 대해 자유로운 견해를 지녔기 때문이다. 중견안무가 아담 휴글란드(Adam Houglan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는 발레의 정의에 대해 조금 더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안무가들이 다양한 배경을 바탕으로 성장해왔지만, 결국은 모두 무용입니다. 분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프리랜서 안무가 에이미 시워트(Amy Seiwert)는 오늘날의 발레가 위기의 시대를 봉착했었다고 말한다. “제니퍼 호만스의 저서, 「아폴로의 천사」 이후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다른 예술도 이와 관련이 있는 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어떤 예술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 논하는 것은 저에게는 신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가를 논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형태입니다. 발레는 제가 창조하는 예술일 뿐입니다. 토슈즈를 신건, 이상한 발레이건, 제가 하고 있는 건 발레입니다.”
제니퍼 호만스의 나무랄 데 없는 연구저서는 무용연구에 있어서 큰 공헌으로서 시작되었으나 마치 심문을 하는 것처럼 끝이 난다. 슬프고, 신랄한 이 연구의 에필로그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1983년 발란신의 사망 이후로 그와 같은 위상을 떨친 안무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위대한 안무가가 없었기 때문에 이로서 발레가 도덕적인 목적으로 가득한 불멸의 예술로서의 형태를 잃었다.”
제니퍼가 언급했듯이, 훌륭한 주요 발레작품들의 목록이 괴로울 정도로 반복되었고 평범해 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돈키호테> 같은 작품이 계속해서 공연되어왔다고 하여 이 작품이 고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제니퍼도 다른 수많은 무용평론가들처럼 무용을 다른 공연예술과 완전히 다른 형태라고 전제를 두지는 않았을까? 모든 예술은 조용한 휴식기도 있기 마련이며, 그 기간 동안 다른 영감을 얻어 활기를 되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국의 클래식음악의 선도자,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이 1695년에 사망했고 그때부터 20세기 초기까지 클래식음악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이후 영국에서는 클래식음악이 부활했고 지금까지 계속 발전해왔다.
발란신 같은 영향력 있는 안무가가 오늘날에도 밤낮으로 댄스컴퍼니를 훈련시키며 수면위로 떠오를지 누가 알겠는가? 최근 쇼스타비치 3부작으로 모습을 드러낸 러시아 안무가, 알렉시 랫만스키(Alexei Ratmansky)가 바로 이런 인물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필자가 봐온 바로는 그 어떤 안무가도 알렉시처럼 추상적인 관념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부드럽게 풀어낸 적이 없는 듯 하다. 그처럼 이미 우리에게 친근한 음악을 그토록 미스터리하고 궁금하게 만들 수 있을까? 누구도 알렉시 만큼 과거의 전통발레를 현대에 맞추어 해석하고 미래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분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젊은 무용수들이 더욱 희망을 보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무용단원, 24세 마일리스 테쳐(Myles Thatcher)는 내년 2월에 바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마일리스는 매우 재능이 많으며 롤렉스 예술지원프로그램(Rolex Arts Initiative)의 우승자이다. 그는 1년간 알렉시 랏만스키의 멘토링을 받고 있다. 무용에 대한 그의 생각은 삶의 활기를 띤다. “참 재미있어요. 발레가 가장 구조적이고 제한된 무용의 형태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발레가 가장 자유롭고 표현이 풍부하고 여겨집니다. 발레는 순수합니다. 움직임의 완벽한 형태이지요.”
그러니, 아직은 발레를 위한 애도는 하지 말자.
● 원문_“Ballet’s Not Dead”
US 〈Pointe Magazine〉 2014년 12월/2015년 1월 기사
● 번역_장수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