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 스완>(Black Swan)에 출연했던 나탈리 포트만은 당시 영화를 위해 안무했던 뉴욕시티발레단 수석 무용수 벵자멩 밀피예(Benjamin Millepied)와 결혼했다. 2012년 L.A. 댄스프로젝트를 창단한 벵자멩은 올 10월부터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새 예술감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1월 13-14일 LG아트센터에서 내한공연을 갖는 L.A. 댄스프로젝트의 뉴욕 공연 현지 반응과 함께 벵자멩 밀피예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1)뉴욕 현지취재_ L.A. Dance Project in Next Wave Festival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독특한 댄서들
영화 <블랙 스완> 이후 벵자멩 밀피예(37세)는 뉴욕시티발레단 수석무용수보다는 나탈리 포트만의 남편으로 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2012년 L.A. Dance Project를 창단했을 때는 나탈리 포트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는 뒷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프랑스 출신인 벵자멩은 2014년 10월부터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어 더욱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L.A. Dance Project는 Next Wave Festival에서 세 개의 작품 〈Reflections〉(반사), 〈Murder Ballades〉(살인 발라드), 〈Quintett〉(5중주)를 선보였다. 이 중 〈Murder Ballades〉을 제외한 두 개 작품은 이번 내한공연에서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컴퍼니는 창단 당시부터 든든한 후원자를 확보하며, 유럽 등에서 성공적인 무대를 선보여 왔으며 이번 공연은 이들의 뉴욕 입성무대이기도 했다. 뉴욕에서의 공연은 으레 5분 정도 늦게 시작하는 것이 다반사인데 무대 커튼이 올라가기 전, 쿵, 쿵 하는 굉음이 두어 번 들리기에 이제 공연이 시작되는구나 생각했으나 갑자기 무대 스태프가 나타나 기술상의 문제로 인해 개막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과 멘트를 했다. 순간 객석에서 누군가 “Fee drink for Audience"라고 말했고 이내 극장 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공연은 예정시간 보다 30분이나 늦게 시작되었다.
새빨간 무대벽 디자인에 새하얗고 커다란 글씨로 'Stay' (벽 플래쉬 카드)가 세워졌고, 무대바닥 또한 새빨갛고 그 위에 새하얀 글씨로 "Think of Me Thinking Of You"가 쓰여져 있다. 빨강처럼 강렬하고 심플한 무대세트 위에서의 춤은 듀엣으로 시작했다. 상당히 깔끔하면서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주는 〈Reflections〉, 공연 중간에 'Stay'는 'Go'로 바뀌었다 다시 ‘Stay'로 돌아왔다. 남녀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감정들을 이야기 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내게 머물러 줘, 그러다 때로는 화도 나고 싫어지기도 하니, 떠나라고 하는 것이지만 다시금 머물러 줘, 읍소하는 남녀의 심리라고나 할까? 솔로, 듀엣, 군무, 솔로, 듀엣 등으로 바뀌는 춤은 두 여자 무용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성애자임에도 동성애자를 옹호해주는 안무가의 목소리로 읽혀지는데, 춤 중간에는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유머러스함도 있다. 나랑 눈이 맞은 듯한데, 다른 무용수와 눈이 맞아 무대에서 사라지는 장면 등이 그렇다. 튀지도 않으면서, 무거운 음과 낮은 음이 조화되는 라이브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무용평론가 로즐린 설카스(Roslyn Sulcas)는 ‘뉴욕타임즈’에 "〈Reflections〉은 이 날의 가장 멋진 공연이었다"며 벵자멩의 안무를 칭찬했다.
두 번째 작품 〈Murder Ballades〉는 뉴욕시티발레단에서 솔로이스트이자 상주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스틴 팩(Justin Peck)의 안무작이다. 27세의 젊은 나이지만 최근에 발레를 비롯하여 현대무용 안무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역동적이고 대칭을 이루는 구조가 발레를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뉴욕에서는 댄서들이 ‘포인트’를 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움직임을 잘 해도 ‘실력있는 댄서’로 대우받지 못한다며 포인트를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아쉬워하던, 뛰어난 테크닉을 가진, 춤 잘 추던 한 무용수를 생각하게 했다. 발레는 저렇게 현대무용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은 30%가 현대, 70% 정도가 발레가 아니었던가 싶다. 라이브로 연주된 피아노 음악도 상당히 멋졌으며, 작품의 느낌에 따라 관객들의 박수 색깔도 달랐다. 무용수들의 알록달록한 의상, 무대도 불타는 가을 배경처럼 관객들의 박수도 형형색색을 입고 있는 듯 했다.
마지막 작품은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가 안무한 〈Quintett〉였다. 포사이드는 미국 출신이지만 독일에서 활동하다 컴퍼니에서 은퇴를 하고 2015년부터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무용교수로 안무법과 작곡을 가르칠 예정이다. 무대 한 켠의 오래된 축음기에서는 금관악기의 연주와 다소 얼큰하게 취한 듯한, 낙심함을 애써 초연하는 듯한 목소리의 음악이 나오는데 미니멀리즘 작곡가 개빈 브라이어(Gavin Bryar)의 “Jesus' blood never failed me yet”(주님의 보혈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네)이다. 무슨 새로운 가사가 나올까 싶은데 그렇지 않다. “Jesus' blood never failed me yet / Never failed me yet / Jesus' blood never failed me yet / There's one thing I know / For he loves me so”가 25분 동안 반복된다. 그리고 여기에 음악에 맞춰 밀렸다 당겼다하는 듯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있다. 지루할 듯 하면서도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 마치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듯한 음악의 목소리와 댄서들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라는 여운을 주면서 모든 긴장을 놓아버리게 한다. 잠시나마, 살랑살랑 움직이는 파도소리 물결을 듣고 보는 듯했다.
안무도 안무이지만 좋은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기 위해서는 역시 실력 있는 댄서들이 뒷받침 되어야 작품이 살아날 수 있음을 이 컴퍼니는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안무는 좋은데 댄서들의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실패할 수도 있고, 댄서들의 실력은 우수하나 안무가 좋지 않아 작품이 빈약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L.A. Dance Project 댄서들의 춤을 보노라면, 춤은 저렇게 춰야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는 듯 했다. 손끝 하나만 봐도 춤 정말 잘 추는구나 싶을 정도로 댄서들의 움직임 속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힘이 있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소화하고 그리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을 때 나오는 움직임이 그들의 움직임이 아닐까 싶었다. ‘뉴욕 타임즈’는 이들의 공연에 대해 “매력적이고, 개성있고, 독특한 댄서들” 그리고 “흠잡을 데 없는 무대와 움직임”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BAM의 관객뿐만 아니라 한국의 관객(LG아트센터, 11월 13-14일 공연)도 곧 이 L.A Dance Project의 공연을 보며 ‘브라보’를 연호하게 될 텐데, 춤의 질은 결국 재원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보는 내내 안무는 둘째 치고 댄서들이 안정적으로 춤을 잘 춘다는 게 너무나 확연하게 보였다. 그만큼 보상이 있으니 실력있는 댄서들이 모이고 또 그들은 춤에만 몰입할 수 있으니 당연히 그 춤이 출중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서 이제는 댄서들이 춤의 메카인 뉴욕이 아닌 L.A로 날아가서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들 한단다. 이번 공연에서 유럽의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의 〈Quintett〉를 함께 공연한 것이 필자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안무가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외부로 안무를 의뢰하고, 다른 컴퍼니의 좋은 레퍼토리를 과감히 수용하는 결단, 그리고 훌륭한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환경, 라이브 연주 등 이러한 시스템이 ‘벵자멩 밀피예’의 브랜드와 함께 매칭되었으니 비록 프로젝트 무용단이간 하지만 컴퍼니의 파괴력 또한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
(2)인터뷰_ 벵자멩 밀피예
무용수들에게 매일 새로운 도전을 던져줄 것이다
원래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고전 발레를 공부했는데 뉴욕으로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밀피예 그 때 저는 어렸었고 뭔가 모험을 찾고 있었어요. 1992년 아메리칸 발레 스쿨(SAB)의 여름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 뉴욕에 왔는데 마치 자석처럼 끌리게 되었어요. 무용도 그렇지만 뉴욕의 다른 많은 것들 그리고 빠른 속도감에 말이에요. 결국 이듬해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곳의 에너지가 스스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리라는 걸 아티스트로서 느꼈던 게 아닐까요. 고전 발레 트레이닝을 받은 무용수로서 뉴욕시티발레단(NYCB)에 입단해서 조지 발란신과 제롬 로빈스의 예술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도 축복이라 할 수 있었어요. 꿈이 이루어진 거죠.
예술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롬 로빈스는 춤에 있어서나, 인생에 있어서나 제게 지대한 영향을 주신 분이에요. 무엇보다 그분을 통해서 저는 무용계 밖에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음악, 오페라, 전시회, 브로드웨이 쇼나 영화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해 저는 쉽게 채워지지 않을 만큼 많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지요.
L.A. 댄스프로젝트(이하 LADP)는 어떻게 해서 탄생되었나요? 뉴욕시티발레단에서 은퇴한 후 저는 가족과 함께 LA로 이사했어요. 제 삶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게 된 거죠. 발레단 공연으로 처음 찾았을 때부터 LA란 도시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 시기가 찾아왔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어요. 나만의 프로젝트를 창조해내야 할 시기 말이에요. 뉴욕과 달리 LA는 이렇다 할 무용의 역사가 없는 곳이었어요. 그 점에서 아직은 어린 도시였지요. 비주얼 아트나 음악은 굉장히 발전되어 있으니까 저는 그곳에다 뭔가 새롭고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춤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무용수들을 발탁하기 전에 먼저 각기 다른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을 모아 큐레이터 그룹을 먼저 만들었어요. 그리고 다 함께 우리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겠다는 꿈으로 뭉쳤지요.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낸 작품과 20세기의 걸작들이 조합된 프로그램으로 LA 뮤직센터에 처음 섰고, 이것이 곧 LADP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다른 무용단과는 다른 LADP 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LADP는 아티스트들의 집합체로서 새롭게 창작된 작품이나 과거의 전설적인 작품들을 되살려 공연하는 한편 댄스 필름을 작업하기도 하고 장소 특정적인 공연(Site-specific Performance)도 선보이고 있어요. 특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 우리는 각기 다른 분야에 걸쳐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발탁해 작업해요. 세트는 컨템포러리 비주얼 아티스트가 제작하고, 의상은 패션 디자이너가 맡고, 음악은 현대 작곡가들에게 의뢰하고, 춤을 위해서는 오늘날 가장 신선하고 흥미로운 움직임을 선보이는 안무가들을 끌어들이는 식으로요. 이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기존의 무용 공연과는 다른 새롭고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안무한 작품 <리플렉션>(Reflection)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리플렉션>은 제가 최근에 안무한 것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인데 보석을 테마로 제작될 총3개의 시리즈 중에서 첫 번째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감각적이고도 로맨틱해요. 또한 LA에 살고 있는 세계적인 비주얼 아티스트 바바라 크루거의 세트와 데이비드 랭의 음악에 힘입어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이 납니다. <리플렉션>은 듀엣, 트리오, 앙상블 등 몇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섹션마다 무용수들의 기량이 최고로 드러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영화 <블랙 스완>의 안무를 맡았고 출연을 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블랙 스완>은 제 커리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 늘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막상 기회가 다가왔을 때 그걸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거든요. 이 영화는 본능적으로 야심을 갖고 있지만 망상에 시달리기도 하는 무용수에 관한 이야기에요. 저는 이 영화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오가기도 하면서 뭔가 필름 느와르 같이 보이기도 했던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용수의 일상 속에는 그런 느낌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2014년 가을부터 세계적인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전에도 파리오페라발레단을 위해 몇 차례 작품을 안무한 적이 있었지요. 앞으로 어떤 포부와 계획을 갖고 있나요? 처음에는 무용수로서 파리오페라발레단과 만났습니다. 그래서 발레단이 굉장히 친숙해요. 저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이 발레단에 속해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선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이 발레단이 저를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요. 저는 뉴욕시티발레단(NYCB) 시절에 얻었던 긍정적인 깨달음을 토대로 무용수들을 고무하는 한편 그들의 일상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을 그들에게 던져주려고 합니다. 고전적인 레퍼토리를 유지해 나가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안무가, 음악가,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면서 새롭고 짜릿한 기회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인터뷰 진행_LG아트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