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UK<Dancing Times>
진실된 반영? - 무용수와 거울, 거울 앞에 선 무용수
도미닉 앤토누치(Dominic Antonucci)

 

무대 위에 선 무용수 앞에는 관객이 있다. 하지만 공연하는 몇 시간을 제외하고 무용수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곳은 바로 거울 앞이다. 무용수가 훈련하고 연습하는데 있어 필수조건인 거울, 과연 우리는 혹은 그들은 그 존재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무용수가 마주하는 거울은 백설공주 이야기의 왕비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거울처럼 진실할까? 영국의 무용 전문지 ‘댄싱 타임즈’를 통해 버밍엄 로얄 발레단의 지도위원 Dominic Antonucci가 무용수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울’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무용수들 혹은 무용 지도자를 위해 <춤웹진>을 통해 그의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대부분의 프로 무용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거울 앞에서 실로 놀라운 양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전 세계의 춤이 훈련되는 곳 어디서든 거울이 춤 연습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연습실 안의 무용수들은 매일 많은 시간 동안 거울에 비춰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춤을 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공연에 앞서 분장을 하고 의상을 갖춰 입는 동안 마주 하는 것 역시 거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발레와 견줄 수 있는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쉽게 떠오르는 것은 피겨 스케이팅, 체조, 보디빌딩 등이 발레와 비슷한 방식으로 거울을 연습 도구로 삼는 운동과 직업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외의 직업군들과 비교해 볼 때 발레 무용수들은 전 세계의 어떤 사람들보다도 많은 시간을 스스로의 반영을 비평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무용 연습실 안에 설치 된 거울의 목적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 장시간 거울을 이용하여 훈련하는 무용수에게 거울이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 특히 정신과 감정 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런 조사와 연구들이 행해질 때는 반드시 연습실 안에서의 훈련 시간 동안 벌어지는 잠재적 가변 요인들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그 경우의 수는 실로 다양하여 모든 데이터를 취합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 심리학을 비롯하여 실질적 지식과 개인적 경험까지 모든 것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이 모든 정보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데이터를 도출해내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거울은 누구나 이용하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 대다수는 거울이 실제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실제적 이미지는 어쩌면 당신을 기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수들은 거울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가 좋든 나쁘든 간에 그것을 믿고 마음 깊숙한 곳에 각인시키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용수들의 행동과 습관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다양하다. 무용수들이 거울 앞에서의 삶에 대응하기 위해 이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은 흥미롭기도 하고 때로는 우습기도 하다.
 어떤 무용수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매혹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도망치기도 한다. 누군가는 화요일에 너저분한 연습복을 주렁주렁 걸치고 나타났다가도 수요일에는 갑자기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연습복을 차려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매일 바(Barre)에 서는 자리를 바꾸지만 다른 누군가는 몇 년간 똑같은 자리를 고수하며 연습실 바닥에 발자취를 남긴다.
 우리가 매일 아침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며 받는 첫 느낌은 남은 하루 일과를 어떤 기분으로 보내는 지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용수들은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작은 변화를 주며 춤을 추는 동안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버밍엄 발레단의 몇몇 동료들과 함께 거울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그들이 거울에 접근하는 방법 등의 쟁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각 무용수들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자신만의 연습 방식과 태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대화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무용수 스스로의 반영이 자신감과 자부심을 부여하는 데에 큰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신의 실제 몸 크기와 비교했을 때 거울에 비춰지는 이미지의 크기는 어떻습니까?” 라는 질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몸보다 더 크게 보인다”, “같은 크기이다”, “내가 어떤 기분인가에 따라 변화 한다” 같은 답변이 나왔다. 나를 포함하여 어떤 무용수도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 과학적 사실에 의거하면 우리가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볼 때 투사되는 이미지의 크기는 실제의 5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유리나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얼굴이 비춰지는 부분만 닦아내 보면 그 표면의 범위는 실제 얼굴보다 작으며, 반 정도의 크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무용수들은 자신이 지닌 감정 상태에 따라 거울 속 자신의 반영이 변화하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곤 한다. 분명 매일 같이 거울을 바라보며 직접 스스로의 결함을 짚어내고 불완전한 부분들을 수정하는 것은 정신적, 감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비판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이끌어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대로 자신의 반영을 ‘과대평가’ 하는 오류도 발생할 수 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가 스텝을 잘해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지도자를 포함한 다른 관찰자들은 그 무용수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단점들을 볼 수 있기도 한데 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각도와 시각적 관점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쉬운 예로 아라베스크를 할 때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Fishing(낚는, 발끝이 하늘을 향하는 모양)’ 발끝이다. ‘Fishing’은 무용수의 관점에서 보면 아라베스크 라인을 더 길게 만들고 턴 아웃이 더 많이 된 다리 모양으로 비추어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무용수가 자신의 ‘완벽한’ 포즈를 바라보는 동안 같은 연습실 안의 여러 각도에서 이를 바라보는 관찰자들은 오직 포인트가 되지 않은 불완전한 발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무용수들은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에는 이골이 나있는 반면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보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대개 영상 안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기 일쑤이다. 나 역시 내가 과거에 자신 있게 춤추었던 공연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에 전혀 가깝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거울이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나를 교란 시킨 것이다.
 궁극적으로 발레는 무대에서 공연되는 예술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는 거울이라는 버팀목이 존재하기 않기에 연습실에서 무대로 작품을 옮겨 올 때는 늘 적응과 수정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기 마련이다. 무대 위로 올라간 무용수 스스로의 모습은 물론 공간과 타이밍 등을 체크할 수 있는 도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종종 혼란에 빠지곤 한다. 나 역시 지도위원으로서 무대 리허설 첫째 날이면 늘 벌어지는 혼란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했다. 하지만 무용수들이 얼마나 빠르게 무대에 적응하는 지를 바라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며 그들의 재빠른 적응력은 나의 두려움을 잠식시켜주곤 한다.
 무대 리허설은 거울이 비로소 ‘처형’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무용수들은 거울 없이도 자신감 있게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스텝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조화롭게 춤춰내야 한다. 이 때 무용수들이 흔하게 고투하는 동작이 바로 ‘푸에테’ 이다. 연습실에서 푸에테 동작을 할 때면 거울을 시각적 기준으로 삼아 다리와 팔의 위치를 체크하고 한 바퀴, 한 바퀴마다 정확도를 확인 할 수 있다. 거울이 없는 곳에서 발생되는 혼란을 막고 공연을 더욱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버밍엄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연습실에서도 거울 멀리서, 혹은 커튼으로 거울을 가린 채 푸에테를 연습하곤 한다.
 이와 반대로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스튜디오로 돌아올 때 역시 같은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나는 늘 흑조 파드되의 코다 부분에 들어있는 아라베스크로 연결되는 더블 씨손느를 걱정하곤 했다. 사실 나는 거울이 내 시선 안에 있을 때 단 한 번도 이 스텝을 완벽히 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가끔 혼자 슬그머니 무대로 올라가 끊임없이 스텝을 반복하며 공연에서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곤 했다.
 거울 앞에서 이 스텝을 할 때면 특정 부분들을 체크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내 머리의 위치가 바뀌었고 이것은 내가 도저히 극복해 낼 수 없는 버릇 같은 것 이었다. 머리의 위치는 중심을 잡기 위한 결정적 요소로서 머리의 어떤 미세한 변화도 스텝의 결과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그래서 내 스텝의 완성도는 거울 앞에서와 거울이 없는 무대 위에서 매우 다르게 나타나곤 했다.

 



 여기 거울 앞으로 용의주도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찾아낸 몇몇의 성공적인 무용수들이 있다. 버밍엄 발레단의 남성 주역 무용수 Iain Mackay는 스스로에게 거울의 사용을 한정시킨다. 그는 “나는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보다는 주어진 역할을 춤추는 동안 나 스스로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예술성을 끌어올릴지에 더 집중한다.”고 말한다. 부 예술감독 Marion Tait는 “무용수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체크할 때 목표로 삼은 포즈에서 눈과 머리의 위치를 변화시키지 않는 대신에 주변 시야를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그것은 무대에서 다른 무용수들과의 거리를 체크할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무용수들이 거울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은 기술적이고 과학적이며 때론 심리적이고 현실적이기도 한 도전이다. 우리가 한 장의 유리를 통해 스스로를 바라볼 때 관여되는 모든 요인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거울의 ‘부정직’한 성격을 인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환상에서 탈출하고 그것을 깨부술 준비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 발레를 지도하는 정경미씨는 Dominic Antonucci의 글을 접하고, “이 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무용수들이 거울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내면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에너지는 사라지고 시선의 바깥에 머물게 된다. 때문에 동작의 연유와 흐름은 초점을 잃고, 끊어짐과 비틀림 등 부자연스러운 동작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무용수가 내면에 집중하여 동작을 구사할 때 비로소 구슬이 실에 꿰어지듯 자연스럽게 완성된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거울을 통한 무용수가 아닌 무용수 자신을 통한 무용수가 아닐까” 라고 말한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동안 거울은 사실 우리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었다. ‘진실의 거울’처럼 정직한 거울은 우리 앞에 서 있지 않지만 그 존재와 성격에 대한 환기만으로도 우리는 좀 더 질 높은 무용을 만들고 춤추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단지 거울뿐만이 아닌 우리에게 익숙하고 당연했던 주위의 모든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인식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어떨까 한다.


글_ Dominic Antonucci (Birmingham Royal Ballet)
번역_ 정다슬 <춤웹진> 유럽 통신원

원문_영국 무용잡지 <Dancing Times>4월   

2014. 07.
사진제공_Birmingham Royal Ballet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