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뉴욕 현지취재_ 필로볼러스 댄스 씨어터 시즌공연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서정민_<춤웹진> 뉴욕 통신원

 

 

 무용을 철저하게 엔터테인먼트로 성공시켰다고 평가받는 필로볼러스 댄스 씨어터(Pilobolus Dance Theater)는 매년 뉴욕 맨하튼 조이스 극장(Joyce Theater)에서 시즌 공연을 갖는다. 올해에 7월 15일부터 8월 10일까지 총 4주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뉴욕의 많은 극장은 여름 시즌을 갖지 않는다. 뉴욕은 각종 야외 공연예술 프로그램들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름 시즌 한달 동안 장기공연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무용단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필로볼러스의 컴퍼니 이름은 이동해 다니는 균류(Fungus)에서 이름을 따왔다. 특이하게도 무용을 전공하지 않았던 4명의 학생이 현대무용 수업(다트머스 대학)에서 11분 짜리 독특한 작품을 만들면서 팀이 결성되었다고 한다.
 1971년 설립한 이후 컴퍼니는 많은 팬들을 국제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활발한 협업을 진행하고 아방가르드 단체에서 국제적인 엔터테인먼트 브랜드로 성공적으로 입지를 굳혔다. 그럼에도 필로볼러스가 추구하는 ‘커뮤니티를 통해 예술을 만든다’는 미션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한번은 유명한 한 안무가에게 필로볼러스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보고 나면 생각할 거리가 없어 관심 가지 않는 그냥 재미만을 생각하는 작품이라 관심이 없다고 했다. 생각할 거리 없이 관객들을 열광하게 하는 작품, 하지만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무용단의 공연이 어떨까 사뭇 기대되는 것은 대중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시즌 공연은 뉴욕에서 첫 선을 보이는 〈On The Nature of Things〉와 〈The Inconsistent Pedaler〉를 각각 첫 작품으로 그리고 기존의 레퍼토리를 조합하여 프로그램 A/B로 나누어 이틀씩 번갈아 가며 이루어졌다. 필로볼러스의 여름 시즌이 시작되는 7월 15일에는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가득 메워졌다. 7월 17일 역시 객석은 꽉꽉 찼다.
 극장으로 관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댄서들은 무대에서 그들끼리 무슨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란 듯이 무대에서는 댄서들이 계속 움직이고 크루들도 왔다 갔다 한다. 그들이 작업하는 동안 무대는 멈춘 듯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그대로 스크린으로 간다. 영상은 스크린을 통해 돌아간다. 무용이 아닌 다른 소재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혹은 실험하는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무용을 보러 온 그 순간도 그 필름은 그저 필로볼러스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어 관객들은 눈을 떼지 않고 필름에 반응하며 관람했다. 필름에서는 마치 “이런 실험 해 봤어?”라며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라도 하듯 시도해 보지 못할 실험들의 결과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예를 들자면 총알이 콜라 캔을 관통하면 어떻게 되는지, 와인 병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보면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등등의 실험을 기록한 필름을 보여준다. 와인 병이 전자레인지에서 넣어지고 전자레인지 와인이 화면 전체로 폭발되는 순간 관객들은 함께 놀람의 소리를 내는 등 스크린은 진기명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내내 단체의 정체성에 대해서 되새기면서 봤다. 무용단이 아니라 Dance Theater라는 것. 프로그램은 무용, 마술, 아크로바틱, 그림자극 등 다양한 변형장치를 이용한 공연들로 2시간은 지루할 틈 없이 지나갔다. ‘뉴욕타임즈’의 Siobhan Burke는 프로그램 A에 대해 ‘완전한 엔터테인먼트’라고 평했다.

 



 뉴욕에서 처음 선보이며 올 시즌을 여는 작품 〈On The Nature of Things〉는 내심 기대가 컸다. 자연의 모습처럼 세 명의 댄서는 거의 나체에 가깝다. 한 명의 여자 무용수 그리고 두 명의 남자 무용수, 남자 무용수가 여자무용수를 원기둥에 데려다 놓고 다시 다른 남자 무용수를 들어다 원기둥에 놓고는 둘이 춤을 추다가 댄서들을 원기둥으로 옮겼던 댄서마저도 무대에 올라가 세 명이서 몸에 대해 탐욕하듯 혹은 무관심하듯 근육질의 몸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춤을 춘다.
 여자 무용수가 바닥으로 내려가고 몸을 아치로 올곧게 누워있다. 남자 두 명이 춤을 추다 한 명의 남자 무용수도 바닥으로 내려가 그마저도 몸을 아치모형으로 만들며 무용수를 옮겼던 우람한 한 무용수만이 원 통 위로 남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특히 댄서들과의 협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댄서들이 작품을 만들어갈 때 특별하게 아이디어를 내기보다는 즉흥춤을 추면서 좋은 부분을 발견하고, ‘그래 그거’ 하면서 조합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유명한 안무가가 말했듯이, 필로볼러스의 작품엔 의미가 없는 게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The Transformation〉(2009)은 상당히 흥미로운 그림자극이다. 온라인 동영상 웹사이트 유투브 등을 통해 이미 봤던 작품이라서 더 친근하면서도 직접보고 있자니 더 흥미로웠다.
 샤막 뒤로 거대한 창조자(?)의 손, 그리고 가녀린 한 여인의 그림자가 비춰진다. 거대한 창조자 손이 여인의 목을 없애기도 하고 다시 목을 만들기도 하고 여인을 조물조물거리면서 개로 만들기도 하고 개에서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낸다. 거대한 창조자의 손은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며 자유자재로 조물거렸던 여인 옆에 동반자로 옆에 나란히 나타나기도 한다. 그림자의 크기와 모형이 시시각각으로 변화되어 놀람을 주는 그림자극은 상당히 환상적이었고 이에 부응하듯 관객들은 작품에 대한 신비로움을 즉각적으로 ‘환성’으로 답하였다.
 〈Esc〉(2013)는 7명의 댄서가 무대에서 의자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데, 장면 장면이 의자인형극 놀이인 듯하면서 댄서들이 의자를 갖고 움직임을 만들고 의자를 이동시키며 질서정연한 도형을 만들 때는, 마치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댄서들이 의자를 이용하여 서로 물결치듯 움직임이 이어질 때는 관중에서 환호가 절로 튀어나오기도 했는데, 마치 의자들이 음표가 되어 음악을 들려주는 듯했다. 의자를 활용한 연출이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었다.
 〈Lisks〉(2013)는 마술쇼이다. 무대에는 6명의 댄서가 한 댄서를 뒤주에 넣고 자물쇠를 잠근다. 그리고 또 다시 다른 남자 무용수를 잡고 웅크린 몸짓을 만들어 끈으로 칭칭 감고 묶어, 크지 않게 웅크린 한 남자를 빨간 천 가방에 넣고 빨간 추리닝을 넣고서는 지퍼를 채운다. 다음에는 두 남자댄서를 얇은 쇠기둥을 가운데 두고 등을 맞대게 한 채 상대방의 손목, 발 등 몸을 못 움직이도록 쇠기둥에 체인을 이용하여 결박한다.
 그리고 두 여자 무용수가 남는데, 한 명의 무용수가 한 의자에 앉는다. 남은 여자 무용수가 덕 테이프의 접착력을 관중에게 확인한 후 여자가 절대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의장 덕 테이프로 칭칭 감는다. 사람이 극한에 처했을 때의 반응을 보여주려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은 테이프를 감던 여자 댄서가 비닐봉지를 객석에게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결국 마지막에 비닐 봉지로 댄서의 머리에 씌우고 봉투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또 다시 덕 테이프로 칭칭 감는 것이었다. 보는 자체로 가혹스러웠다.
 의자에 결박되었던 댄서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움직임이 맹렬해진다. 그리고 블라우스가 찢어지고 얼굴에 덧 씌어진 봉투가 찢어진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리고 얇은 쇠기둥에 결박된 두 명의 댄스는 날아오르듯 기둥을 이용하여 서로 서로 움직임을 주고받더니 결국 계산된 움직임으로 쇠기둥 그리고 체인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빨간 가방으로 시선은 옮겨가고 가방이 슬몃슬몃 꿈틀대더니 이내 결박되었던 그 댄서는 빨간 추리닝으로 갈아입은 채 가방에서 탈출한다.
 마지막으로 뒤주로 시선을 옮겨가고 뒤주 위로 댄서 한 명이 올라가고 빨간 천으로 휙 하는 사이, 뒤주에 있던 사람이 여자 댄서의 의상을 입고 뒤주 위로 나타난다. 그리고 뒤주를 여는 순간 여자 댄서는 남자의 의상을 입고 있다. 무용단의 공연 프로그램이 아니라 댄스 씨어터 공연프로그램 A는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프로그램 B에 들어가 있는 인생을 비유하는 페달 돌리기를 보여주는 작품 〈The Inconsistent Pedaler〉는 무용보다는 연극적인 성격이 강하다. 인생을 자전거 페달 돌리기에 비유하는 것은 신선한 것이 아니지만 이스라엘 소설가와 협업을 하였다기에 기대를 갖게 되었다. 99세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기저귀를 차고 있는 갓난아기(실제로는 무용수 중 덩치가 가장 큰 무용수였기에 익살스러웠다), 그리고 99세의 생일을 맞는 할아버지, 젊은 부부가 무대에 있고 무대 한편에 자전거가 있다.
 페달을 누군가가 나와서 돌리다 멈추고 무대에서 할아버지 생일잔치가 벌여진다. 자전거로 옮겨가 남녀가 또 다시 페달을 돌린다. 페달과 생일의 해프닝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서는 할아버지가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에서 자전거 돌리기가 주는 상징적 의미보다는 여러 개의 오리인형을 갖고 음표를 만들 듯 움직여주는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지만 남녀가 자전거를 타는 가운데 여자 무용수의 긴 머리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에는 역시 필로볼러스의 ‘익살스러움’이 드러났다.
 〈All is not Lost〉(2011). 이 작품은 정말 깔끔하게 좋았다. 유명 록밴드 OK Go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그래미 어워드에 뮤직비디오 후보에 오르기도 한 작품이다.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춤을 정면에서 혹은 위에서 아래로 봐왔다. 아래에서 위로 그들의 춤을 바라본다면, 그런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유리가 공중에 그리고 유리 아래로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댄서들이 유리 위로 엎어져 있는데 우리는 그들이 그냥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유리 위에서 그들의 움직임과 춤이 아래의 카메라에 담아져 옆에 스크린으로 보여주고 혹은 즉각적으로 기하학적인 편집과 함께 보여준다.
 춤과 함께 사용된 음악 All is not love도 신이 났고 그들의 움직임을 새로운 측면에서 그리고 그 움직임들이 곧 바로 디자인되는 것을 보노라니 흥이 난다. 이 작품은 여지없이, 이 컴퍼니의 생명력 그리고 아방가르드 측면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면에서도 왜 성공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밖에 스트리트 댄스를 에로티시즘적으로 보여준 〈Megawatt〉는 등 묵직한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듯 하면서도 철저하게 관객을 절대 지루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미션으로 진행되었다.
 프로그램 B에서는 인생의 무엇을 〈The Inconsistent Pedaler〉를 통해 말하려 했고, 우리의 Ego를 Master of Ceremony와 Megawatt 등을 느끼게 했지만 그래도 역시, 컴퍼니는 정말 아방가르드적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고, ‘Dance Theater’에 방점을 찍게 했다.

 필자가 학부생일 때 ‘통속소설도 언젠가는 문학 장르에서 취급할 것이다’라고 교수님께서 소설수업 마지막 시간에 말씀하셨다. 통속소설은 문학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필로볼러스가 무용장르에서 길거리 춤을 예술 장르 혹은 우리가 예술 장르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들을 예술장르로 끓여 놓는 그런 과감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필로볼러스 설립자들이 무용을 본디 전공하지 않았기에 어쩌면은 무용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자유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림자극을 비롯하여 그들은 여러 방면에서 이슈를 만들고 있기도 한데, 미니 자동차에 가장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기네스북 기록을 갖고 있다는 것 등이 그렇다.
 단체가 특정한 어느 하나만을 고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용이 순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상업성으로 어떻게 연결 될 수 있는가 지속적으로 고민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대중과 함께하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특히 필로볼러스는 그들의 작품 제작 방식 등을 기업에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고, 동시에 워크샵, 마스터 클래스, 레지던시 그리고 어린이 프로그램 등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펼치고 있다.
 ‘순수’보다는 ‘합성’ ‘통섭’ 이런 것이 우리를 더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예술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보여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랬을 때, 주목 받는 것임을. 예술가야말로 앞서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2014.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