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매년 열리는 ‘유스 아메리카 그랑 프리’ (Youth America Grand Prix)는 초등학생부터 대학교 저학년까지 참가하는 발레 콩쿠르다. 다른 곳에서처럼 창작무용 점수를 반영하지만 초등학생은 굳이 창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 콩쿠르 규모는 아마도 세계 최고일 것 같다. 진행 본부에 따르면, 9세부터 19세까지 참가하는 ‘세계 최대 학생 장학금 경연대회’다. 최종 심사장에서 사회자는 이번 대회 참가자가 1천2백명이 넘으며 비디오나 현지 방문으로 이뤄진 예선 참가자는 7천명에 달했다고 알렸다. 참가국 수는 30개국이 넘는다. 군무가 포함된 숫자이긴 하지만 발레 한 종목의 행사임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대단하다. 이를 입증하듯, 입상과 무관하게 자원 출연하는 마지막 갈라 공연의 <그랑 데필레>는 뉴욕시티발레 전용극장 무대가 좁아 전전긍긍할 정도였다. 콩쿠르 일정 중 6일간 11차례 따로 시간을 정해 연습한 급조된 작품이지만 이 대회의 인기를 과시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한국에서 참가한 19명의 학생들도 전원 참석했다.
이런 호화로운 발레 콩쿠르가 단기간에 정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이 ‘뉴욕’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지역 예선이 15개 도시에서 열린다니 미국인들만 동원해도 다른 나라의 콩쿠르와 이미 규모가 다르다. 이번 솔로 경연 참가자 비율은 절반 정도가 미국인이었다. 외국인의 경우는 실연 혹은 비디오 예선을 치른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일본, 벨기에는 관계자들이 방문하는 현지 예선이 진행되며, 한국 학생들은 주로 김혜식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 추천으로 예선 통과 자격을 얻어왔다. 4월 4일 시작된 콩쿠르는 4월 9일까지 뉴욕대학 스커볼 공연예술센터에서 매일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프리-주니어로 통용되는 아동 부문(9-11세)은 '경연 준비' 정도로 해석될 프리-컴페터티브(Pre-Competitive)로 불린다. 솔로 참가자가 130명, 듀엣 이상의 앙상블 참가자가 39개 팀이었다. 이 부문은 최종결선 없는 단심으로 마무리되며, 경연이 아닌 듯 한 인상을 주지만 다른 부문과 동일하게 순위를 매긴다. 4월 5일은 주니어 컨템퍼러리와 모든 파드되, 6일은 시니어 컨템퍼러리, 다음 이틀은 클래시컬 솔로와 앙상블, 마지막 9일 오전은 시니어 앙상블이 진행되었다. 아침 10시부터 밤 9시까지 거의 매일 빼곡한 경연이 진행되었고, 부문별로 심사위원이 교체되니 그 숫자만도 30명이 훨씬 넘었다. 주니어 솔로 참가자는 138명, 시니어 솔로 참가자는 196명이었다. 이에 비해 최종결선 진출자 비율은 매우 낮다. 주니어는 여자 20명과 남자 13명이, 시니어는 여자 17명과 남자 16명이 최종 결선에 올랐다. 4월 9일 밤에 열린 최종 결선은 뉴욕시티발레 전용 건물인 데이비드 코치 극장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인 중에서는 시니어 남자 부문에 출전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선우가 유일하게 참가했다. 다음 날 3시 같은 장소에서 드디어 시상식이 열렸다. 여자 부문과 남자 부문 동, 은, 금상 시상 이후 통합 1등에 해당하는 그랑 프리가 발표된다. 프리-컴페터티브 참가자 이은수가 호프 어워드(Hope Award)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 양승연과 1학년 재학생 이선우가 파드되 3등상을 받았다. 시니어 그랑 프리에 해당하는 호프 어워드 수상자 이은수 역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 학생이다.
시상식장에서는 콩쿠르 입상자 발표 못지않게 학생과 발레단의 결연을 중시했다. 미국과 유럽에 참으로 많은 발레단과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도록 하며 여러 단체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장학생을 선발했다. 물론 조건은 다양하다. 발레단 입단이 즉시 성사되는 경우부터 자비로 여비와 숙식을 해결하는 2주일짜리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각종 스칼라십이 수백 명에게 주어진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주로 스위스 로잔이나 ABT,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발레학교에서 무료 교육을 제안했다.
질과 다양성에서 볼거리 풍성했던 피날레 갈라 공연
같은 날 7시에는 ‘오늘의 스타가 내일의 스타를 만나다’(Stars of Today Meet the Stars of Tomorrow)라는 제목의 갈라가 펼쳐졌다.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다니는 어린 여학생의 바이올린 연주가 이색적이었고, 영상을 통해 YAGP 출신들이 얼마나 많은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가를 홍보하는 순서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랑 데필레>가 이어졌다. 검정 레오타드의 군무가 그야말로 떼로 몰려다니는 축제의 장은 이 콩쿠르 유일의 전통이 아닐까 싶다. 2부에서는 수상자들과 초청스타들이 등장해 수준 높은 발레를 지향하는 이 콩쿠르의 이상을 드러내는데 일조했다. 앙상블 부문에 참가했던 아동 3인무, 주니어 수상자들의 미끈하고 시원한 연기, 40여명에 달하는 힘차고 곡예적인 남성 군무, 그랑 프리 수상자의 여유로운 과시와 함께 <파드 듀크>, <오네긴> 파드되, <백조의 호수> 2막 파드되, <돈키호테> 그랑 파드되 등이 공연되었다.
특히 <빙 나타샤>(Being Natasha) 같은 초연작을 제작 발표하고, 볼쇼이 발레의 올가 스미노바와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에반 맥키를 뉴욕 데뷔시키는 등 콩쿠르 이상의 예술적 전문성도 추구해 다른 콩쿠르의 마무리 무대와는 그 격조가 달랐다. 앨빈 에일리의 유작 <파드 듀크>에는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의 알리시아 맥과 다닐 심킨이 출연해 멋진 음악해석력을 선보였다. 바바리안 스테이트 발레단의 루시아 라카라와 마론 디노가 춤춘 <백조의 호수> 아다지오는 참으로 정교했고, 베를린 스테이트 발레의 이아나 살렌코와 YAGP 출신 조셉 가티의 <돈키호테>는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의 기교와 연기로 환호를 끌어냈다.
YAGP는 그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입상한 콩쿠르 중 하나다. 때문에 양적인 혼란스러움에 더불어 질적인 면에서도 만만한 구석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번 15주년의 수상자들을 보면 이 대회에서 입상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15회 그랑 프리는 ABT 스튜디오컴퍼니 단원인 쿠바출신 세자르 코랄레스가 수상했다. 그 출중한 기량이 놀라운 수준이었고, 시니어 여자 셋은 모두 미국 출신, 시니어 남자들은 일본(금상), 중국(은상), 미국(동상), 모나코(동상) 출신이다. 파드되 부문도 금상과 은상은 모두 미국이 차지했다. 이 결과를 놓고 보니 YAGP는 미국에 발레 열기를 새롭게 불어 넣어준 대표적 행사임에 틀림없다. 갈라 후 공연장 로비에 차려진 저녁 식사까지, 모든 면에 최선을 다하는 관계자들의 열정이 엿보였다.
YAGP는 미국에 정착한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출신 부부 라리사와 제날디 사벨리에프가 운영한다. 발레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최종 목적은 발레단 입단이고, 각 발레단은 좋은 무용수 찾기에 열을 올리는, 무용사회의 이 상생원리를 활용한 발상만으로도 이 콩쿠르는 이미 성공을 보장받고 있다. 이들 부부의 실용적 결연 방식을 보면서 콩쿠르 참가자들도 자세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콩쿠르는 대부분 개인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YAGP는 막연한 경험 쌓기보다는 유명발레단 입단이라는 최종 목적을 겨냥한 준비와 도전이 보다 효과적인 콩쿠르 활용법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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