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독일 현지취재_ 모션 뱅크
움직임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곳
정다슬_<춤웹진> 유럽 통신원

 춤은 더이상 ‘춤’이라는 한 글자만으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예술이 되었다. 안무가와 무용수가 공연을 꾸려나가던 시대는 이미 역사가 되었고 음악, 연극, 시각예술 같은 다른 장르와의 협업(Collaboration)도 흔해진지 오래다. 허물어진 장르의 경계를 찾는 것도 이제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형식의 파괴가 아닌 춤의 본질에 대한 보다 다양한 접근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춤 그 자체를 어떻게 개발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찰, 공연의 순간성이라는 특성을 뛰어넘어 그것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라바노테이션과 2차원 비디오를 통한 기록과 복원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세상이 온 것이다.

 


모션뱅크(Motion Bank)- 디지털로 분석되는 춤

 2009년,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는 ‘Synchronous Objects’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그는 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자신의 작품 <One flat thing, Reproduced>의 안무 스코어(Choreographic Score)를 공유했고, 안무의 구조를 분석하여 그것을 다른 언어, 즉 ‘데이터 포인트’로 변형시키는 연구도 함께 진행하였다. 시각적으로 대조가 쉬운 그래픽 데이터를 이용하여 안무를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그것을 춤으로 재창착 해내는 것이다.
 2010년 마침내 윌리엄 포사이드는 실험 무대가 된 ‘Synchronous Objects’를 발판 삼아 4년간의 장기 프로젝트인 ‘모션 뱅크’(Motion Bank)의 문을 열었다.
 모션뱅크의 목표는 누구나 이용과 공유가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 이름 그대로 온라인 상에서 안무와 움직임에 관련된 광범위한 맥락의 자료를 제공하는 동시에 안무에 내포되어있는 아이디어들을 춤이나 언어가 아닌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접근하고 연구 개발 과정과 그 결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모션뱅크가 그 중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웹사이트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는 ‘온라인 디지털 스코어’의 개발이다. 무용의 악보 격인 무보가 이제까지는 그림이나 비디오의 단순한 비주얼 이미지로 남겨졌다면, 온라인 디지털 스코어는 실제 공간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하여 미디어의 형태로 변형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데보라 헤이, 조나단 버로우, 마테오 파기온, 베베 밀러, 토마스 호이터 등의 안무가들이 참가하였다. 비교적 분석하기 쉬운 간단한 움직임을 하는 안무가들을 선정했다고 한다. 이들의 안무는 디지털 스코어로 변형되기 위해 늘 체계적으로 촬영된다.
 무대 위에 달린 카메라가 무용수가 움직이는 방향을 쫓는다. 이후 무대 위에서 실질적으로 보여지지 않는 측면들까지 모두 반영하여 녹화된 자료들을 디지털의 형태로 재구성한다. 모든 분석과 기록의 과정을 거쳐 안무는 도표의 형태로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안무가 데보라 헤이는 작품 <No time to Fly>를 세 명의 무용수에게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게 했다. 세 무용수는 7번씩 촬영에 임했고 그렇게 21개의 비디오가 만들어졌다. 각 무용수의 7개 비디오를 하나로 중첩시킴으로 해서 무용수가 하나의 안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방대한 스펙트럼이 간단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이는 디지털 스코어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되어 안무의 작은 디테일까지도 밝히는 동시에 공연자만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읽어내기도 한다. 이 연구를 통해 안무가들 역시 자신의 아이디어가 기술의 지원을 받은 기록법으로 문서화 되는 창조적 경험을 하게 된다.
 

 

 

 무보를 디지털화하고 도표, 그래프로 변형시키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여러 학제 간의 협업이다. 모션 뱅크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그래픽 디자이너, 과학자, 무용수, 안무가, 학생, 교수 등 다양한 직업군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그래픽 아티스트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안무를 재탄생 시킨다.
 데보라 헤이의 <No time to Fly>의 작업에 참여한 아민 위버는 안무가가 만들어낸 춤을 알아차릴 수 있는 애니매이션 필름을 만들었다. 영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디지털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가 작품의 실제 공연을 보며 경험한 긴장감을 공간에서 끊임없이 얽히고 풀어지는 선들을 통해 디지털 형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이것은 마치 데보라 헤이의 디지털 안무 버전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민 위버는 “무용수들이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몸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과 내가 가진 역량을 통해 그들이 표현 하고자 하는 것을 새로운 형태로 본뜨고 재형성한다”고 말한다.
 

 


지식의 전달

 윌리엄 포사이드는 모션뱅크 프로젝트의 시작 동기 중 하나를 ‘교육’으로 꼽았다. 현재의 기술은 움직임을 기록, 보관 할 수 있는 상황에 도달했고 예술가로서 자신이 창작한 작품과 즉흥 소재들을 교육소재로 활용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모션뱅크에서는 교육에 중점을 두거나 교육기관과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빈번히 이루어졌다. 교육기관을 파트너로 삼아 함께 새로운 온라인 디지털 스코어를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안무 연습 프로그램들을 학교 수업에 도입시키고 있다.
 학생들과 학교를 이런 예술 연구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학생들은 훗날 자신이 진출하고자 하는 분야의 실제 현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체험하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팀이 되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동시에 교육기관은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학업 연구에 어떠한 보탬이 되는지 실험할 수 있다. 또한 안무가들과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워크샵도 마련된다. 안무 스코어와 디지털 표현법, 춤 공연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워크샵은 이론과 실제적 지식을 공유하고 연구하는 자리가 된다.




무용창작과 교율을 위한 소프트웨어-피스메이커 PIECEMAKER (PM2GO)

 피스메이커는 무용 창작과 교육을 위해 모션뱅크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이다. 포사이드 컴퍼니의 멤버인 데이비드 카렌이 처음 제작하였다.
 초반에는 단순히 리허설 중 필요한 영상 자료들을 손쉽게 불러오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은 모션뱅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재개발되어 ‘PM2GO’라는 이름으로 배포되고 있다.
 이 독특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안무가가 손쉽게 영상 녹화, 무보 제작, 기록 보관을 할 수 있게 돕는 프로그램이다. 녹화 모드를 설정하면 연습 장면을 빼놓지 않고 기록할 수 있고, 집합 모드를 설정하면 무용 장면, 조명, 음악 등 각기 분리된 요소를 한데 모아 총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다. 비디오에 글이나 오디오로 원하는 주석을 달고, 큐를 설정하고, 색으로 다양한 부분을 카테고리화 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개인이 온라인 디지털 스코어를 개발하고 이를 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는 독립적인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용이 아닌 강의, 인터뷰 등 어떤 종류의 비디오에도 활용이 가능하도록 개발되었다. 이 소프트 웨어 역시 모션 뱅크의 모토에 걸맞게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다운로드해 이용할 수 있고 사용법도 익힐 수 있게 하였다. 그 안에서 만들어진 비디오와 정보를 사용자 간에 주고 받을 수 있게 해 비디오 아카이브로서의 활용도를 높인 점도 눈에 띈다.




춤의 끊없는 진화와 정보의 공유


 모션 뱅크의 시도들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있고 그가 의미하는 바도 크다. 춤의 보이지 않는 측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밝혀내고 해석하는 것, 안무 스코어를 디지털의 형태로 실현하는 것은 춤을 과학 안에 끌고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매개체를 통해 춤에 접근함으로써 대중이 무용 언어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게 했다. 춤과 과학의 시너지 효과를 디지털 미디어를 포함한 다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통해 이루어낸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안무가의 아이디어와 공연의 순간을 기록, 보관하는 방식 역시 반향을 가져왔다. 이렇게 개발되고 출판된 무용 자료들이 누구나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공유가 가능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지식과 정보, 아이디어를 움켜쥐지 않고 보편화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저작권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야기되었지만 모션 뱅크는 자료 활용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 가지 자료에는 아직 추상적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제약을 둔 상태이다.
 윌리엄 포사이드는 “모션 뱅크의 가장 큰 결과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다. 디지털 아티스트들은 그들만의 매개체를 통해 안무와 춤을 창출해낼 수 있다는 영감을 주었고 안무가와 무용수에게는 춤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고 말한다.
 2010 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된 모션 뱅크는 최근 첫 단계를 마무리 하고 두번째 연구를 준비 중이다. 곧 다가올 두번째 프로젝트에는 더 많은 과학자들이 포함되어있다. 상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를 실현시키는 모션뱅크의 프로젝트가 이번에는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될지 기대해 본다.

모션뱅크 웹사이트: http://motionbank.org/en
모션뱅크 트레일러: http://motionbank.org/en/event/trailer-motion-bank

정다슬
독일 브레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아티스트로 독일 탄츠테아터 부퍼탈, 댄스컴퍼니 오스나부르크, 빌레펠트 뷰네 등에서 게스트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2014.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