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탄츠 플랫폼이 지난 2월 27일 부터 3월 2일 까지 독일 북쪽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그 문을 열었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탄츠 플랫폼은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무용 축제 중 하나로 해마다 새로운 도시와 공연장으로 옮겨 가며 개최되고 있다. 1994년 시작된 이래, 일반 관객은 물론 세계 각국의 페스티벌 프로그래머들과 평론가들에게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무용단들을 선보임으로써 이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국제 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탄츠 플랫폼에는 지난 2년 간 독일에서 공연된 작품들 중 7명의 심사위원들이 엄선한 12개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소개된 작품들 모두 제각기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 공통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덕분에 관객들은 단시간 내에 현재 독일 무용계의 흐름과 급변하는 트렌드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올해에는 윌리엄 포사이드, 티노 세갈, 맥 스튜어트, 로렌 샤투앙, 세바스티앙 마티아스, 라이문드 호게, 쥬핏 지몬, 바 뵐플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탄츠 플랫폼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방대한 양의 프로그램 편성이다. 이는 관객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인다는 특성을 바탕으로 계획된 것이지만 사실은 플랫폼이 열린 공연장 캄프나겔(Kampnagel)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함부르크의 캄프나겔은 과거에 공장으로 쓰이던 공간을 개조한 것으로, 현재는 로비와 인포메이션 센터를 비롯하여 5개의 공연장, 3곳의 세미나실과 연습실 등 규모가 큰 편이다. 이러한 캄프나겔의 특성을 백분 활용하여 탄츠 플랫폼에서는 오전에는 주로 강의와 토론 모임이, 오후부터는 공연이 이어졌다. 특히 4일 간의 페스티벌 중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프로그램이 빼곡하게 짜여 있었다. 한 쪽 무대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다른 무대가 준비를 마치고, 관람이 끝난 관객들은 바로 옆 공연장으로 이동하여 다음 공연을 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여러 공연장에서 각기 다른 작품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관객들은 아마도 행복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다만 너무 빈틈없이 꽉 짜여진 스케줄 탓에 관객들은 공연장을 이동하는 2, 3분을 제외하면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시간도 없이 5-6시간 동안 내리 공연을 보기도 했고, 이전 공연이 끝나지 않으면 다음 공연의 시작도 늦춰지는 등의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편, 언뜻 보아도 많은 공을 들인 듯한 탄츠 플랫폼의 카달로그는 관객들로 하여금 단시간 안에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카달로그가 단순히 페스티벌 안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만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탄츠 플랫폼의 심사위원들이 페스티벌에 초대된12개의 작품을 포함한 총 60명의 안무가 및 무용단을 선정하여 실었는데, 이들은 현재 독일 무용계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안무가들과 주목할 만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는 신진 예술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카달로그의 편집부가 직접 이들 안무가들과 접촉을 하였고 안무가들 스스로가 자신의 작업과 철학을 소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기존에 흔히 볼 수 없었던 카달로그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소개된 안무가 중 독일의 젊은 여성 안무가 알렉산드라 바이어스탈은 “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숙련된 방식 중 하나일 뿐”, 중견 안무가인 콘스탄자 마크라스는 “나에게 춤은 아름다워야 하는 미적 도구가 아니다. 나는 춤을 사회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정치적 도구로 바라본다.” 라고 자신의 예술관과 작업 방향을 압축된 문장으로 밝혔다. 따라잡을 수도 없이 새로운 예술가들이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요즘, 하나의 카달로그를 통해 여러 예술가들을 접함과 동시에 간단명료한 방식으로 그들의 작업관까지 파악할 수 있게 한 것은 춤 관련 직업군이 한데 모인 페스티벌의 성격을 감안해 볼 때 매우 돋보이는 프로모션이었다고 생각된다.
탄츠 플랫폼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인 작가 에스터 볼트는 “과거에는 움직임 연구가 안무자 개인의 특징적인 언어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었던 반면 현재는 춤이 사회 안에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으로서 보다 직접적이고 광범위하게 발전되고 있다.” 고 하였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2012/13 년에 초연되고 올해 탄츠 플랫폼에 초대된 작품들은 솔로나 듀엣보다는 군무 형식이 주를 이루고, 다수의 작품들이 집단의 협력과 공통체적 생활에 대한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또 언어와 노래, 몸의 의존 관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음악과 움직임의 친밀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눈과 귀에서 받아 들여지는 일차적인 효과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징적으로 기억되고 분석될 수 있는 이차적 효과를 노리는 성향을 띠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 출신의 로렌 샤투앙은 <15 Variationene über das Offene>(무방비에 관한15 가지 바리에이션) 에서 별자리에 나타나는 위치의 가변성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방대한 갈망을 4명의 무용수들이 서로 집합하거나 분산되는 형태의 안무로 발전시켰다. 동시에 3명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연주가를 배치하고 음악을 무용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출연자’로 부각시켰다. 안무가는 비움의 미학을 이야기하듯 춤이 없는 빈 무대에 음악만 흐르게 함으로서 관객이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머리와 몸통을 분리한 채 주로 팔과 다리를 이용한 직선적인 움직임들은 클래식 음악과 어우러져 미니멀하지만 힘이 있는 연출을 만들어냈다.
안무가 맥 스튜어트와 음악가 알랑 프랑코와 함께 작업한 <Built to last>에서도 연신 클래식 음악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Built to last>는 클래식 음악이 주는 페이소스에 맞선 무대였다. 로렌 샤투앙이 비교적 단조로운 움직임과 클래식 음악의 조합이 이루어내는 자연스러운 힘을 보여준 데 반해, 맥 스튜어트는 클래식 음악의 웅장함과 같은 으리으리한 무대를 선보였다. <Built to last>는 골판지로 만든 거대한 공룡과 천정에서 돌아가는 행성계로 관객의 눈을 사로 잡았다.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이와 같은 무대 장치는 베토벤, 드보르자크,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고, 과거 애니매이션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관절 마디마디가 분리된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들은 클래식 음악과 이질적면서도 묘하게 어우러졌다. 한편, 이 무대에는 무용수보다 많은 연극 배우들이 올랐다. 이들은 드라마틱한 표정과 과장된 표현들로 긴장감을 이끌어냈고,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선보인 유머러스한 연기는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음악 안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 것으로 생각된다. 맥 스튜어트는 춤 언어의 경계를 탐색하는 안무가인 듯 하다. 그는 전작들에서도 연극, 음악, 비디오 등과 무용 사이의 접점을 찾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Built to last>에서도 음악가와 무대 연출가와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무용 작품의 맥락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신진 안무가 주핏 지몬의 <I LIKE TO MOVE IT>은 움직임과 음악을 보다 더 가까이 엮어냈다. 작품의 출연자는 세 명의 클러버와 ‘8개의 스피커’였다. 무용수들은 옷을 문지르고 마이크를 돌려대며 리듬을 만들어 냈고, 신발 바닥에 스피커를 달고 움직임으로서 그들 스스로 일관된 전자음을 각색하고 연주하는 느낌을 전달했다.
이번 탄츠 플랫폼의 마지막은 <Cantatas>가 장식했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 10년 간 피나 바우쉬의 트라마트루기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자신만의 탄츠 테아터를 이끌고 있는 독일인 안무가 라이문트 호게의 작품이다. 안무와 춤을 병행하는 그가 무대에 오를 때면 그를 처음 본 관객들은 눈을 비비곤 한다. 오른쪽으로 휘어진 상반신, 툭 불거져 나온 가슴과 곱사등을 지닌 그의 몸 때문이다. 통념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는 그의 육체가 무대 위에 등장하면 미학의 유효성은 부질없게 느껴지고 그의 몸은 오히려 선형적인 디자인 오브제로서 작품의 모티브로 활용된다. 라이문트 호게는 <Cantatas>에 여성 소프라노와 9명의 무용수를 배치하고 그들이 자신의 어깨와 등을 이용해 만들어 내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그는 절뚝이는 다리로 빨간 하이힐을 신은 채 무대를 걷고, 검은 드레스를 입는가 하면 다시 우비를 걸치고 나타난다. 또한 그가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들 – 스스로에 대한 믿음 갖기, 부지런한 자기 수양, 오로지 일만 하기 등- 을 나열하고 마지막 규칙은 “모든 규칙을 부수기” 라고 말할 때는 그만의 유머가 슬쩍 묻어났다. 이러한 시각적, 연극적 요소들은 피나 바우쉬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그는 지속적인 원 대형의 사용을 통해 각기 다른 캐릭터를 어색함 없이 연결하고 작품 전반에 걸쳐 ‘다름’(being difference)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이 난해한 안무가는 오직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몸이라는 악기를 가지고 춤과 음악, 공간의 관계를 시적으로 표현해 내는데 성공해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이미 잘 알려진 안무가들의 작품 이외에도 주목을 끄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지난 해 탄츠 플랫폼으로부터 시작된 프로그램 “피칭” (Pitching)이 그러했다. 사실 “피칭”은 영화 산업 분야에서 이용되는 형식으로, 짧은 시간 안에 관계자들에게 작업을 소개하는 것이다. 탄츠 플랫폼에서는 10명의 신진 안무가를 “피칭”에 초대했고 각 안무가들은 20분 동안 자신의 작품을 국제적인 무용 관계자들 앞에서 선보이는 기회를 가졌다. 비교적 작은 공연장에서 진행되었지만 일반 관객들은 로비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넘쳐나는 신진 예술가들을 서포트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예산과 장소의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잠재적 관객에게 선보임으로써 ‘기회’를 부여해주는 자리였다.
이외에3-4명의 무용 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이끄는 프로그램도 구성되었다. “춤의 미래”로 명명된 토론에서는 현대 무용과 사회에서 공연이 가질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현장에서 뛰고 있는 패널들을 통해 현재의 무용 작품 제작 환경과 경향에 대한 발전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다음 날 이루어진 “미래의 춤” 에서는 탄츠 플랫폼에서 공연을 하는 안무가 및 무용수들과 함께 예술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춤과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순회하는 심미학과 예술 담론을 걸러낸 이 프로그램은 경영자, 제작자와 예술가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여전히 재정적, 구조적으로 취약한 예술 장르인 무용을 위한 공동 피난처를 찾고자 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탄츠 플랫폼은 축제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무용 축제였다. 독일 현대 무용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무용계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고, 독일 무용계의 상황은 어떠한가 라는 화두와 함께 이런 것들이 실제적 경계를 넘어 다른 나라의 무용계에서는 어떻게 적용되고 발전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무용 관계자들이 주를 이루었던 만큼 경제적 문제에 대한 실질적 논의들이 주로 언급되었지만 예측불허의 경계를 허문 듯한 작품들을 통해 관객의 눈과 귀를 충족시키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또한 점점 실험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공연 형식을 소개함으로써 안무가란 누구인가, 관객이 공연에서 보길 기대하는 것과 그 공연에서 무엇을 보게 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이런 작품들이 사고 팔리는 시장의 역할을 하여 이번 축제에서 제기된 질문들이 더욱 멀리 번져나갈 수 있게 하는 장이 되었다. 안무가 크루트 쥬락이 “안무를 우리의 뒤에 내버려 두는 것은 안무의 미래를 순수하게 유지시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안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듯 함부르크 탄츠 플랫폼은 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게 해주었고 방대한 정보들을 공유하는 교류의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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