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작년에 올라갔어야 할 잘츠부르크페스티벌(Salzburg Festival) 행사가 코로나로 인해 올해로 연기되었다.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코로나 확진 상황에 올해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폐막을 앞둔 지금까지 한 달 동안 무사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오페라 페스티벌의 하나로 세계 거장 지휘자들과 안무자들이 작업을 함께 콜라보로 만들어나간다.
올해 역시 Romeo Castelluci, Jan Lauwers 등이 작업을 만들어 나갔으며 본인이 속해 있는 Needcompany 의 디렉터 Jan Lauwers가 맡은 작품 루이지 노노(Luigi Nono)의 〈Intolleranza(편협) 1960〉의 작품에 나는 솔로이스트로 참여하게 되었다. 솔직히 판데믹 동안 적당히 몸을 풀거나 작업을 만들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없었기에 근 1년 반 만에 다시 유럽 무대에 다시 선다는, 그것도 무대 너비 40m에 다하는 무대에 선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프로덕션이었다. 그러나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가족들의 마지막 공연 장소였던 아름다운 무대 Felsenreitschule 무대에 발을 디디며 이번 축제에 초대된 것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 다시 한번 느껴졌다.
〈Intolleranza 1960〉 공연 장소, Felsenreitschule |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은 무용인보다는 음악인들에게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는 페스티벌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의 끔찍한 경험에 이어,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은 100년 전 고난과 쓰라린 빈곤의 시기에 창설되었으며, 국적, 정체성, 종교, 민족 등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공통된 유대관계를 조성하고 인류애와 인간의 창의적인 힘에 초점을 맞추어 시작하였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인 잘츠부르크에서 음악에 대한 그리고 예술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가득 느껴지는 도시였다.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무용학교 SEAD(Salzburg Experimental Academy of Dance)에서 선발된 14명의 무용 학생들과 SEAD 학교 졸업자 과정에서 프로페셔널 프로젝트 그룹으로 만들어진 BODHI Project 무용단원 6명 그리고 벨기에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서 무용과 연극, 음악을 함께 올리며 다장르 작업으로 활발한 Needcompany 단원 3명, 이렇게 총 23명의 무용수와 1명의 연극인, 65명의 Vienna State Opera Chorus 35명의 Vienna Philhamonic이 모두 무대에 올라가는 대작이었다.
Luigi Nono 〈Intolleranza 1960〉 ⓒSF/Maarten vanden Abeele |
올해 잘츠부르크페스티벌에는 31개의 오페라와 44개의 연극공연 89개의 콘서트가 24개의 극장에서 쉴새 없이 올라갔다. 201,000장에 달하는 극장 좌석권이 팔렸고 티켓은 70만원에서부터 만원까지 고를 수 있었다. 작년은 코로나의 여파로 훨씬 작은 규모로 페스티벌이 진행됐으며 이때에도 티켓 판매액만 33억에 달했다 하니 정말 쉽게 계산할 수 없는 큰 규모였다.
이번 페스티벌의 진행은 처음 시작부터 인상적이었다. 영국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와야 하는 나에게는 특별히 오스트리아 문화부에서 자가 격리 면제를 신청하여 10일간의 자가 격리 없이 바로 리허설에 투입될 수 있었다. 물론 도착하자 바로 페스티벌에서 따로 운행하는 코로나선별 진료소에서 PCR 검사를 했고 4시간 이후 결과가 음성임을 확인 후 다음 날부터 리허설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백신도 따로 비치하여 모든 출연자 밑 테크니션, 행사 관계자들이 모두 백신을 공연 최소 한 달 전에 맡도록 했을 뿐 아니라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에 한해 일 주 일에 한번씩 PCR 테스트를 진행하도록 했다. 생각해 보면 잘츠부르크 도시 자체가 대단했다. 도시 곳곳에 선별 진료소가 마련되어 관광객들은 3일에 한 번씩 이곳에 들러 코로나 테스트를 무료로 진행하며 시내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 어느 곳을 들어가려면 백신 접종 확인서나 코로나 음성 테스트 결과를 제시해야 들어갈 수 있다.
이탈리아 작곡가 루이지 노노는 2차 대전 이후 시대의 암울한 날을 기억하기 위해 1960년 이 작품을 만들었으며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역겨워하며 극장을 나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사회주의자였던 노노는 1960년 베니스에서 첫 〈편협 1960〉을 올렸고 목소리, 동시성, 사운드의 공간적 사용을 하나로 통괄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극을 모색했다. 말처럼이나 어려운 노노의 음악은 성악가들에게 아주 어려운 작품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공연을 위해 코러스들만 따로 1년 동안 150번의 준비가 필요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탈레반, 대홍수와 지진으로 인해 거처할 곳을 잃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렇게 세계 난민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이 작업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길지 않은 1시간 30분의 오페라이지만 무대 위에는 90명의 땀과 눈물이 그리고 무대에서 사용되는 피가 범벅이 된다. 무대 위에서 우리는 모두 무용수로, 행위자로, 표현자로 그리고 액티비스트로, 난민으로의 역할을 오가며 온몸과 소리를 통해 루이지 노노가 1960년에 또 다시 이런 대학살을 저지르지 말자던 말을 전한다. 조금의 희망을 남기며...
Luigi Nono 〈Intolleranza 1960〉 ⓒSF/Maarten vanden Abeele |
물론 6주간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인종 차별 문제로 인해 출연자들 사이에 불화가 있기도 했고 첫 공연 전날 어느 무용수가 코로나 양성 결과를 받아 공연 취소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다행히 출연자 전원, 양성자와 함께 사는 여자 친구까지 모두 음성결과를 받아 지금까지 다른 전파 없이 순조롭게 진행해 오고 있다. 물론 15일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PCR 테스트를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오페라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백신접종 확인서나 48시간 이내의 PCR 테스트 결과를 증명해야 극장으로 들어올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정부의 도움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라의 자부심이라 불리는 행사이니만큼 국가적으로 이번 행사를 올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으며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팬믹 시대에도 불구하고 1500명의 관객이 매번 극장을 가득 채웠으며 철저하게 진행되는 국제 행사에 관객들과 출연자들은 서로 믿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행사를 즐길 수 있었다. 코로나로 움츠러들은 공연계가 국가와 도시의 철저한 노력과 도움으로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에 남을 페스티벌이다.
허성임
벨기에 P.A.R.T.S 안무자 과정을 이수했으며 얀 파브르(Jan Fabre), 레 발레 세 드라 비(Les ballets C de la B), 니드컴퍼니(Needcompany), 아바토와 페르메(Abattoir Ferme)와 작업해왔다. 현재는 니드컴퍼니 객원단원으로 활동 중이며 개인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