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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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13년 3월 4일 월요일 오후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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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단장실
그에게 춤으로 무엇에 도달하고 싶은지를 묻자, 음악처럼 인간의 심연으로 가장 깊숙이 스며들고 싶다고 답했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놀라운 집중으로 <카멜리아 레이디(Lady of the Camellias)>의‘아르망'으로 분했던 그는 단 한 음도 의미 없이 존재하지 않는 음표들처럼, 몸짓 하나 하나마다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면서 그의 인생인 춤과 그가 동경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쩌면 그의 춤은 이미 음악이 된 걸지도 모른다.
지난 3일 열린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Bolero)>를 보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기대 이하여서 집중에 다소 방해가 될 정도였습니다. 주역 무용수로서 이런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하나요?
(이날 무대는 ‘Mixed Repertory Evening’이란 타이틀로 에드워드 클루그의 <Ssss…>와 요르마 엘로의 <Slice to Sharp>, 모리스 베자르의 <Bolero>가 선보였다- 편집자 주)
음악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 춤을 춰야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완벽하다면 이상적이겠지만 늘 100퍼센트의 환경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떨어지거나 그들과 리허설 할 충분한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연습할 때에는 단지 녹음된 음반이 있는데, 실제 연주는 늘 음반과는 다르니까요. 오케스트라도 소화해야 할 스케줄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음악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춤을 완벽하게 해내서 공연을 완성시켜야 하는 게 무용수의 몫이니까요.
조금씩 더 나아지고 싶다, 더 좋은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계속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사실 처음(1999년)부터 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입단하지 않았어요. 그냥 춤을 추고 싶었고,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또 좋아하는 일이니까 춤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지금까지 코르 드 발레에 오래 있었더라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을 거예요. 다만 드미 솔리스트와 솔리스트로 승급하면서 점점 역할을 맡게 되고, 아까 말한 대로 진하고 깊은 감정을 나만의 색깔을 입혀서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서 더 좋은 무용수로 거듭나고 싶어졌어요. 입단하고 나서야 내가 턴 아웃이 잘되지 않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동안 잘못된 테크닉을 써서 춤을 춰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잘못된 테크닉으로 춤을 춰왔기 때문에 무릎에도 무리가 갔고, 결국 오른쪽 3번, 왼쪽 2번 도합 5번의 무릎 수술을 받았어요. 지난한 재활과 모든 테크닉을 처음부터 다시 쌓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어요. 그렇지만 춤을 정말 사랑해요. 춤에는 모든 것이 다 있거든요. 몸을 움직이고, 원하는 박자대로 멈추거나 속도를 조절하고, 이야기를 전달하고, 연기를 통해 감정을 전하고, 매일같이 최선을 다해야 하며, 우리의 삶의 일부를 거의 헌신하다시피 해야 매일 더 나아질 수 있고 테크닉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 불만은 없거든요. 내 몸과 움직임을 통해 원하는 만큼 감정을 자유롭게 전달하려면 기술적인 완벽함이 필요하니까요.
지금도 여전히 턴 아웃이 쉽게 되지 않기 때문에 늘 노력하고 있는걸요. 너무 긴 팔과 남들보다 커다란 손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분명한 선을 만들어 내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에 늘 주의를 해야 하죠.
특별히 좋아하는 작곡가와 애착이 가는 작품, 역할이 있다면요?
좋아하는 작곡가는 쇼팽,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차이콥스키예요. 드라마틱한 감정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런 감정들을 내 춤을 통해 무대로 불러내고 거기에 저만의 색을 덧입힐 수 있거든요. 기본 스텝과 안무 동작을 익혔다고 해서, 모든 무용수들이 같은 춤을 추는 것이 아니에요. 우선 무용수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움직임과 박자감각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무용수에게 디테일한 부분을 알아서 재량껏 채워가도록 맡기는 안무가도 있고, 아주 꼼꼼하게 디테일까지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안무가도 있어요. <카멜리아 레이디>의 존 노이마이어 역시 디테일한 부분까지 완벽히 그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등장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안무가에요. 그와의 작업은 무용수로서 잊을 수 없는 몰입과 성장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2006년 <카멜리아 레이디>를 통해 강수진과 같이 춤을 추었고, 저는 수석무용수로 승급했죠. 경험 많은 강수진이 처음 주역을 맡았던 저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독보적인 집중력이 있어요. 그녀가 아주 강렬하게 스스로의 세계로 들어가 비올레타로 완벽히 화하는 것은 파트너까지도 등장인물이 되어‘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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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올레타가 떠나고, 아르망은 뒤늦게 모든 것을 알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깊고 진한 감정이 해일처럼 몰려오고, 나는 춤으로 그 감정의 바다를 건너갑니다. 무용수로서도 황홀하고 특별한 경험이에요. 그건 뭐랄까,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한 부분을 ‘살아 내는 것’과도 같습니다.
음악에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당신에게 음악이란 춤을 위한 필수요소인가요?
음악을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고, 지금도 계속하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음계 연습보다는 내키는 대로 즉흥연주를 하는 걸 좋아했어요. 손끝에서 음악이 흘러나온 다는 건 정말 근사한 경험이었죠.
춤에는 음악이 있어야 하지만 필수적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도 내면에는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요. 같은 맥락으로 축구를 좋아합니다. 공을 몰고 빠르게 뛰고 멈추고, 마크해오는 상대방을 움직임으로 제압해서 전진하는 과정이 매력적이에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명제에요. 그러니까 내가 무용수일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음악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예를 들어, 휴가를 간 상태에서 바 동작을 연습하는 건 꾸준히 할 수 있지만, 쇼팽의 음악이 필요한 파드되나 작품을 연습하고 싶지는 않아요. 음악이 환기시키는 감정이 춤을 완성시키는 요소니까요. 나는 내 춤이 음악에 가까워진다면 좋겠어요. 춤은 춤이고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이 될 수는 없을 거예요. 이런 움직임이 주는 느낌을 연결하면 하나의 멜로디가 될 수 있잖아요. (손동작을 해 보인다) 무용수의 동작이 음표 하나하나로 치환된 다기 보다는 사람들은 이런 동작을 보면서 소리를 듣는 청각적 경험을 할 수는 없지만 음악을 들었을 때 받는 느낌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면서 춤 동작을 상상할 수 있고, 누군가는 춤 동작을 보면서 음악을 떠올릴 수 있어요.
시즌 중 당신의 일상은 어떤가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워밍업 동작으로 몸의 근육을 일깨우고 발레단에 출근합니다. 오전시간은 클래스로 보내고 오후에는 밤늦게까지 리허설이 이어지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잠을 자는 단순한 일상이에요. 책을 읽는다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작품과 관련된 것들만 위주로 읽습니다. 뒤마의 <카멜리아 레이디>는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로 된 작품을 여러 번 정독했고, 감정 표현이 중요한 장면에서는 설령 원작 소설 속에 나와 있지 않더라도, 아르망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늘 염두에 두면서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 전체를 아르망의 시점에서 재구성하면서 읽었습니다.
작품 분석을 위한 독서이므로 재미를 위한 독서와는 다분히 다른데요. 사실 시즌 중에는 여유 있게 앉아서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휴가 중에는 많이 읽지만 작품을 준비하면서는, 작품 이외의 것은 제 일상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창작발레 <Krabat>(발레단의 무용수이자 신예안무가 데미스 볼피가 만든 이 작품은 지난 3월 22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하우스에서 세계 초연됐다. 마레인의 상대역에는 강수진이 나섰다 -편집자 주) 의 초연을 앞두고 요즘에는 이 텍스트를 읽고 있어요. 우리에게 발레는 단순한 직업이나 일이 아니라 정말이지 삶의 일부에요. 무대에서는 겨우 몇 분의 시간이 지나가지만, 그 무대에서의 순간을 위해 우리의 삶을 온전히 헌신하니까요. 당연히 지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의 그 몇 분이 가져오는 희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나머지의 삶을 발레에 쏟아 부을 수 있는 거예요. <볼레로>가 끝나면 관객들이 함성을 지르고 박수가 끝없이 이어지고, 2000명이 넘는 관객들의 열광이 피부로 전해져요. 그 순간의 희열은 무대만이 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것이에요. 리허설과 무대가 결코 같을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이후의 삶에 대한 미래 계획이 있다면요?
은퇴를 한다고 하더라도 발레와 멀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발레 마스터의 길을 가지 않을까요. 은퇴 이후의 삶도 역시 발레와 맞닿아 있겠죠. 종종 재능 있는 후배들에게 안무를 전수해주고, 가르침을 주고 그들이 흡수하는 걸 지켜봅니다. 이번 프로그램이 있는 <Ssss…>
다시 태어나도 발레를 할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지금처럼 발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당연히 또 발레를 하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적지 않은 내한공연을 했는데,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관객들이 발레에 대한 애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한국 관객들은 공연에서 받은 에너지와 영감들을 공연장 바깥까지 가지고 가서 그들의 일상에서도 지속시키는 것 같아요. 슈투트가르트나 네덜란드의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고 나면 무대에서 받은 감동과 에너지를 실컷 누린 뒤, 재빠르게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지만요. 발레란 예술이 아무래도 유럽과 서양에서는 더 오래된 역사가 있으니까 대중들이 누리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가 무용수인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작년에는 휴가 중에 한국과 도쿄, 칠레에서 공연을 했는데 춤으로 먼 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주는 흥분이 있었어요. 앞으로는 제 춤을 가지고 또 어디를 가게 될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홈페이지: http://www.marijnrademaker.de/ , 트위터: @RademakerMarijn
에디터_손혜정 본지기자
김나희
월간 <객석> 파리통신원. 파리 제3대학 누벨 소르본에서 언어학을 전공했고, 파리고등사범음악원에서 프랑수아즈 티나(피아노)를 사사하며 음악이론과 음악사 디플롬 학위를 받았다. 파리국립음악원 바로크 음악학부에서 쳄발로와 바소 콘티뉴오 과정을 마쳤고 현재 파리 2대학 팡테옹 아사스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