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독일 에센에 위치한 안무센터 팍트 (Performing Arts Chreographiesches zentrum nrw Tanzlandschaft / Pact)는 일년에 두 번 상하반기에 <아틀리에> 공연을 기획한다. 보통 이 공연은 단순히 안무가나 무용수 뿐 아니라 음악가, 그래픽 디자이너, 행위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초대되어 무대를 꾸민다. 팍트는 <아틀리에>를 통해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예술형식과 실험적 무대의 시도를 촉구하며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팍트는 2013년 상반기 <아틀리에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탄츠테아터 부퍼탈 피나 바우쉬의 무용수들을 초대하였고 이들은 자신들이 늘 공연하던 오페라 하우스를 떠나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공연(5월 16-17일, 안무센터 팍트)을 가졌다.
아틀리에는 춤을 비롯 여러 분야 아티스트들이 지원을 하고 선정된 작품은 이틀 정도 관객에게 선보여진다.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무대 공연은 물론 각종 설치미술과 행위예술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한다. 통상적인 안무자나 작품의 수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우수작을 뽑는 관행도 없다. 아틀리에의 취지는 새롭고 실험적인 예술을 촉진하고 그것을 선보이는 장소를 신진 아티스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선정된 작품과 아티스트들에 별도의 지원은 없고, 작품을 선보일 기회와 장소, 기타 기술적 지원들을 제공받는다.
이번 "아틀리에 스페셜"은 팍트에서 피나 바우쉬 무용수들을 초청하고 그들이 직접 안무하는 작품을 선보였기에 "스페셜"이라는 말을 붙여서 규모가 다른 "아틀리에"보다 크다고 느껴졌다. 피나의 무용수들이 자신들이 안무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공연의 관심도는 매우 컸고 2일 공연의 티켓은 조기 매진되었다.
<탄츠테아터 부퍼탈 피나 바우쉬의 무용수들-아틀리에 스페셜> 이라 소개 된 이 공연은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전례에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공연이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만 춤을 추던 무용수들이 각자가 직접 안무한 작품으로 관객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일곱 명의 무용수가 각각 솔로와 듀엣의 형태로 – 몇몇 듀엣은 게스트와 함께 이루어졌다- 여섯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 중 세 작품은 “피나를 위하여” 라는 부제를 달았고 이 특별한 형식의 공연은 실제 현장에서도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여느 공연과는 색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부퍼탈 무용수들의 정체성에서 피나가 남기고 발전시켜왔던 상징적 의미와 무용 형식으로서의 ‘탄츠테아터’의 개념, 또 그녀가 줄곧 사용해 왔던 안무적 장치와 기법들을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몇 십 년 동안 피나 바우쉬와 작업을 해왔던 무용수들이 아닌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용수들이 직접 안무한 작품이니만큼 개인의 성향과 취향이 반영된 색다른 작품으로 스스로를 표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궁금증이 들었다.
춤을 마칠 때 마다 다피니스는 아주 일상적인 에피소드 - 자신의 형제, 어머니, 발레 선생님, 이웃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를 텍스트화 하여 이야기로 풀어내고, 무대 위에 불러내어진 관객은 에피소드에서 일어났던 행위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게 된다. 안무가는 일상적 에피소드를 색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평범한 것의 특별함을 관객에게 경험하게 시키는데 이런 기법 역시 무대 위에 일반인을 세우고, 관객석으로 뛰어들어감을 서슴지 않았던 피나를 꼭 닮아 있었다.
작품 안에서 전개 역할을 하는 에피소드는 결국 다피니스에게 또 하나의 일상이었을 피나와의 에피소드로 귀결된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피나 바우쉬의 성대모사를 하며 그녀가 그에게 “너는 더 열심히 춤을 춰야 해.”라고 타박했던 일을 회상한다. 그리고 인도에서 인력거를 타고 서서히 멀어지는 피나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그녀가 길 끝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작품이 막을 내린다.
다피니스의 <안녕 안녕 내 사랑> 의 경우, 피나가 즐겨 사용했던 특징들은 그대로 가져왔다. 일련의 손, 팔의 움직임, 자연의 영상, 좁혀진 관객과의 거리, 독특한 방식의 소품과 의상 활용, 실제 에피소드의 활용 등 볼거리가 넘쳐나는 무대였다. 그러나 이 작품을 제외한 대다수의 작품에서 다른 무용수들은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피나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그녀의 작품과 흡사해 보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조악한 방법으로 이용하는데 그쳤다. 아이다 베니에리, 나사렛 파나데로가 올린 각각의 작품들은 무리하게 시도된 듯한 춤과 매끄럽지 않게 연결된 연기로 작품의 흐름이 끊기기 일쑤였다. 레지나 아드벤토는 솔로여도 무방했을 만한 듀엣을 선보였다. 단 한 동작도 다르지 않은 안무를 무용수 두 명이 동시에 선보였고 함께 무대를 꾸민 브레이크 댄서의 연기는 어색하기만 했다. 반면, 알레쉬는 그 어떤 효과나 소품 없이 오로지 몸과 춤으로 승부했다. 천천히 시작되어 극단적으로 빨라지고 다시 느려지는 작품의 전개와 함께 몸의 관절을 이용한 춤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자신만의 캐릭터가 뚜렷이 보였다.
독일의 평론가 마리에루이스 예이트쉬코는 ‘탄츠임텍스트’를 통해 “부퍼탈의 무용수들은 자신들의 몸에 꼭 맞는 정교한 안무의 실험을 선보였다. 특히 알레쉬의 솔로 <느린 이별의 단락들>은 간결하고 완벽한 솔로였다.”고 적으며 특히 무용수들이 사용한 음악들과 무대 장치에서 피나의 영향을 찾을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번 <아틀리에 스페셜>은 피나 바우쉬 무용수들이 피나의 안무를 벗어나 그들만의 안무적 성향과 색깔을 보여주는 것에 그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피나 바우쉬라는 거장에게서 받은 영향을 떨쳐내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그녀의 안무적 특징을 차용한 방식은 충분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녹아있는 안무가로서 또 친구로서의 피나 바우쉬를 자연스럽게 풀어내어 무용수들 스스로와 관객이 동시에 다시 한번 피나를 회상하게 한 것은 이 공연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본지 독일 통신원, 독일 부퍼탈 저주, 부퍼탈탄츠테아터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