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덴마크를 시작으로 스웨덴, 독일, 영국으로 이어지는 노르딕의 춤 중심극장들에서 한국의 컨템퍼러리 댄스가 발걸음(Kore-A-Moves)을 떼고 있다.
단스할레르네(덴마크 코펜하겐), 단센스후스(스웨덴 스톡홀름), 헬라우 (독일 드레스덴), 펀팬하우스(독일 뮌스터), 탄츠하우스(독일 뒤셀도르프), 컬터베트리브(독일 아헨), 댄스이스트(영국 입스위치) 등 EDN(유럽 춤전용극장 연합회)소속 7개의 춤중심 극장과 3년째 이어진 교류와 협력의 결과로 올해 2~3월에 걸쳐 두 번째의 <2013 Kore-A-Moves in Europe>(주최 IPAP, Korea Foundation 협력 EDN)이 진행되고 있다.
첫 번째 Kore-A-Moves는 2010년 11월 독일의 탄츠하우스를 중심으로 한국의 11개 컨템퍼러리 무용단이 유럽 8개국, 14개의 극장에서 23회의 공연을 통해 한국 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올해는 약간의 규모를 줄여 5개의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 작품이 'Double Bill'(하루 저녁공연이 두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 안성수, 안수영- 과 'Young Choreographers Night' -임진호, 정석순, 이인수- 공연으로 구성된 총 19회의 공연을 계획하고 진행 중이다.
나는 덴마크부터 드레스덴까지 이 무브스의 반 정도 동행을 통해 한국춤에 대한 반응을 바라보면서, 어느 정도는 예의와 교류의 초기에서 비롯되는 환대로 해석하더라도 나머지의 반은 한국춤에 대한 유럽의 뜨거운 관심과 그것을 충족시키는 한국춤의 어떤 힘을 발견하였다. 한국의 올 겨울 추위가 맹렬하고 지루한 가운데, 더 추운 곳인 북유럽으로 투어 공연을 떠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지의 추위는 물론 나라마다 상황이 너무 다르고 점차 봄으로 다가서는 시간이긴 했지만(잠시도 맨손을 내놓고 있기가 무서운 스톡홀름의 싸한 추위, 몇 시간 기차를 타고 드레스덴으로 오는 순간 봄의 기운으로 장갑도 필요 없을 만큼의 온화함), 우리의 젊은 무용가들에겐 그리 문제가 되 보이지 않았다.
두 팀으로 구성되어 공연 일정에 따라 각각의 조명감독과 무대감독을 동반하여 로드매니저의 인솔아래 15명 정도가 일사분란하게 이동하고, 공연을 준비하고,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행은 차분하고 꼼꼼하되, 공연을 열어보면 뜨겁고 다양한 맛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무리 내부적인 시각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보더라도 가슴이 뿌듯해지는 지점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 공연을 볼 때와 달리 우리 무용단의 해외공연을 볼 때면 관객과 극장의 변화 때문인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공연이 되는 것을 보곤 한다. 수용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공연의 성격상 순서가 짜이고 정해진 대로 진행되는 공연이라 하더라도 무대와 객석은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공연의 순간을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공연의 반은 관객이 만든다는 말은 옳다.
그와 동시에 비평가로서의 시각 역시 이런 특수한 상황 속에서 공연을 읽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각도의 시각이 교차되는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균형적인 판단을 요구 받기도 한다. 특히 이렇게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수출하는 경우 비평가 역시도 원초적으로 팔이 안으로 굽는 애국심이 자극되어 감성적으로 된다. 하지만 현지 관객의 분위기와 호흡을 객석을 느끼면서 그들의 느낌과 시각에 동감해야 하는 현지인 동일시 시각도 가져야 하고, 우리의 공연 팀과 현지의 관객이 공존하는 그 상황자체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하는 관찰자의 시각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여러 가지의 감정과 시각을 발동시키고 자제시키는 역동적인 과정에 처하게 된다. 국내에서 보아 온 공연과 안무자들, 댄서들에게서 생긴 익숙함을 벗어 던지고 그들의 공연을 낯선 극장과 새로운 관객의 사이에서 새로운 공연의 현장으로 바라보는 것은 흥미로우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반응에는 예의로 무장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찬사, 일회적인 흥분 그리고 어디나 있게 마련인 주최 측의 열정에서 나온 홍보 전략 등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감안하거나 제거하면서 한 꺼풀씩 아래로 내려가 순수하게 객관적이면서 비평적인 시선을 갖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어쩌면 성공하기 어려운 모험에 가깝다.
이번 순회공연은 나라마다 극장의 규모와 상황은 달랐지만 덴마크의 단스할레르네(약 120석)나 스웨덴의 단센스후스(약 750석), 드레스덴의 헬라우(약 504석)의 객석은 유료관객(평균 3~4만 원 선)으로 만석인 경우가 많았고, 공연 관객의 호응도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였다. 관객들은 나이 지긋한 관객이 중심을 잡고 원래 형성되어 있는 춤애호가들, 거기에 현지의 젊은 무용인들이 눈에 많이 띠었다. 객석은 어느 나라보다도 공연을 100% 흡수하려는 듯 스펀지처럼 강력한 흡수력으로 무대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했고, 그 강한 집중력이 팽팽한 긴장감이 되어 공연자와 객석을 강하게 유대 시키는, 차분하면서도 뜨거운 묘한 힘의 이중주로 공연은 진행되었다. 그러다가도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장면에서는 아주 편안하게 웃음이나 탄식으로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모습에서 공연을 함께 만들어 가는 관객의 훌륭한 균형점 역할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안성수 픽업 그룹은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로 코리아 무브스에 참여하고 있는 무용단이다. 작품도 역시 지난 코리아무브스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로즈>와 스웨덴 관객의 앙코르 요청으로 스웨덴 무대에서만 새롭게 추가된 <몸의 협주곡>을 포함해 두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안수영 댄스프로젝트의 <백조의 호수>는 2011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 ‘힙합의 진화’를 통해 발표된 작품으로 고전 중의 고전인 차이콥스키의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를 발췌해 사용하여 클래식 음악과 힙합중심의 현대무용이라는 이질적 요소를 섞어 놓은 작품으로 안성수의 작품과 더블빌 공연으로 하룻밤 공연을 구성하였다. 더블빌 공연의 특징은 유럽이 본산지인 차이콥스키와 스트라빈스키 음악이 중심이 된 공연이라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그러나 확인해보고 나니 의외의 지점은), 그들이 자신의 고전음악의 코드에 역시 익숙하며 그것으로 작품에 대한 낯설음을 많은 부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음악에 전혀 다른 안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상당한 흥미와 자극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낯섦 이전에 친숙함으로 시작할 수 있게 만든 큰 변수로 클래식 음악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성수의 <로즈>는 여전히 음악에 대한 섬세한 동작화와 간간히 배어 있는 남녀 간의 성적 관계에 대한 은유와 본능을 중심으로 인간을 다뤄 야만성을 절제한 채로 살짝 들추는 기법들이 스트라빈스키 음악과 더불어 꼼꼼하게 짜여 있었고, 5명의 무용수가 전체장면을 끝없이 동작으로 메우며 바쁘게 짜 맞추는 뜨거움과 정교함을 교차시켜 색다른 '봄의 제전'을 선사했다. 안성수가 춤에서는 고전이 되어버린 텍스트를 현대화시키는 정석의 코스를 걷고 있다면, 안수영 댄스프로젝트의 <백조의 호수>(안수영 안무)는 고전음악을 맥락과 상관없이 조각내어 사용하면서 힙합의 동작으로 시작하여 점차 현대무용의 언어로 풀어가며 익숙한 고전음악의 텍스트와 그 안에 포함된 여성, 순백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골목, 소년, 욕정의 이미지를 소탈하게 드러난다. 네 마리 백조 음악에서 그런 이미지 충돌은 극에 달해 소년 4명의 장난과 놀이가 백조의 ‘파드 브레’나 ‘포르 드 브라’가 아니라 로봇의 기계적 잔걸음이나 장난스런 광대적인 팔 동작으로 변해 병정놀이가 되고 그 놀이 속에서 한 녀석이 여자에 대한 욕망을 드러낼 때쯤이면 상황과 캐릭터의 구축을 통해 이야기성에 도달하여 ‘백조에 호수’ 근처에서 노니는 전혀 다른 소년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확장을 시도한다. 관객은 이런 시도와 장난에 가볍게 웃게 되고 동작과 하모니의 단정함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그 웃음이 가벼워지지만은 않았다.
젊은 안무가 그룹은 이번에 새롭게 참가한 고블린 파티의 <아이고>(임진호 안무)와 프로젝트 S의 〈for 2.0 whom〉(정석순 안무), 지난번에도 참여한 EDx2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인수 안무)으로 더블빌 공연과는 상당히 다른 공연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들의 작품은 젊은 안무자들에 어울리게 매끄럽진 않으나 자기의 세계와 컬러를 보여주거나 혈기가 가득함을 보여주었다.
이생과 저승, 삶과 죽음의 경계, 떠남과 떠나보냄의 과정을 사체를 ‘염’하는 것으로 압축적이지만 과정적인 섬세함으로 풀어낸 <아이고>는 전인권 콘서트 실황 음악을 사용하여 짙은 감성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무표정하고, 담담한 표정의 무용수들이 이생-염장이, 저승-죽은 자로 끝없이 대조와 공존을 반복하면서, 깔 맞춤 타이밍과 시선의 어긋남으로 시공을 조각내고, 그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져 마침내 여자가 죽음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손길을 털어내고 스스로 칠성판 위에 몸을 눕혀 염을 청하는 장면에 가서야 죽음과 떠나보냄이 완성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관객은 그 사건 전체를 보고야 앞의 일들의 의미를 알게 되는 추리의 차가움과 감성을 때리는 음악의 결합으로 죽음은 담담한 놀이가 되고 관객은 그 놀이를 지켜보면서 묘하게 차가움과 뜨거움 이질적인 두 층 모두를 자극받는다.
정석순의 〈for 2.0 whom〉은 손혜정과의 듀엣이다. 정석순의 격한 감정의 동작들이 듀엣으로 증폭되고 묘한 남녀의 갈등과 교차가 공기 속에서 한 번도 얼굴을 제대로 들어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여자의 몸을 통해 낙화된다.
이인수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주제를 향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설정된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설명을 차근차근하게 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것은 무용수들의 마임을 통해 작고 빨라 보이기도 하고, 무거워 들 수 없을 정도가 되기도 하며, 그래서 소중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허망해져 너털웃음을 웃게 만드는 그런 어이없는 것이다. 그렇게 어이없는 짓거리를 말도 안 되는 불편한 동작을 하고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하는 세태 등 우리들의 자화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가 그것에 대한 안무가의 감성이 강한 비트의 음악과 군무로 터져 나오고, 마지막에는 이완과 초월의 감성으로 가볍게 스윙하며 무대 뒤로 퇴장 하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을 털어낸다.
‘젊은 안무가의 밤’은 20분 정도의 세 작품이 연이어 공연되는 프로그램으로 관객은 전혀 다른 작품에 대해 낯설음과 신선함 동시에 이 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춤동작의 연속과 강렬한 음악의 사용에서 오는 어떤 에너지에 강하게 자극받게 된다. 나 역시 이들의 작품을 각각 다른 공연으로 분리해서 본 적이 있으나 이렇게 3개를 모아 놓고 보니 작품들 안에서 우리의 젊은 안무가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공통적인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 작품 안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이 전체적인 통일성 보다는 낱개의 대중가요, 성악곡, 강한 비트의 댄스음악을 편집하거나 7-8분 정도로 길게 온전히 사용하여 한 공연 안에 몇 개의 질 다른 음악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젊은 안무가들의 요즘 음악과 춤을 결합하는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음악을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그런 2-3개의 음악을 중심으로 감성을 이어가는 동시에 춤은 그것과는 별개로 전개되는 방식, 즉 음악을 배경음악 정도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연히도 이런 경향의 작품을 연달아 3개를 본다는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9개 이상의 조각난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청각적 부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은 일관성과 통일성을 향해가기 보다는 분리되고, 끊어지기 쉽다. 그 결과 각 작품은 개성 있게 부각되기 보다는 짧은 장면들의 연속처럼 음악을 중심으로 분절된다. 20분 내외의 짧은 길이의 작품에서는 스토리든, 춤의 논리전개든, 주제의식이든 일관성을 유지하고 개성적으로 보일만한 틀이 우선되어야 한다. 춤작품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이 일관성을 방해할 경우 작품의 완결성은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번 Kore-A-Moves는 안 수영을 포함하여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이 중심이 되어 그 가능성과 폭발적 에너지가 중심이 되어 있고 안성수의 작품이 안정적으로 전체를 지지하고 있다. 유럽의 관객들은 춤의 다양함을 맛볼 줄 아는 포용력으로 우리의 춤을 제대로 음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굳이 자신의 미각을 중심으로 평가하려는 낮은 고집도 없으며 예술이 주는 힘과 의미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스스로 즐기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충실해 보였다. 한국의 컨템퍼러리 춤은 몸의 성실함에 뒷받침 된 춤으로 성의 있고 강렬하며, 그 몸들이 모여 모으고 흩어지기가 도열하는 군인처럼 일사분란하고 정교하며, 추리의 차가움으로 정교한 퍼즐도 만들 줄 알지만 그저 가슴만 있는 듯한 뜨거움과 카오스로 버무려진 원시적 에너지도 갖고 있는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유럽의 무대에서 확인되었다. 대다수의 유럽 관객은 특히 우리 춤의 강렬한 몸성과 에너지, 그리고 고도의 기술과 군무의 일사 분란함과 에너지 분출에 혀를 내둘렀다.
유럽의 오늘은 경제 위기와 맞물려 춤계의 상황이나 일반적인 상황 모두 그리 밝지 못하다. 그들이 이미 축적해 온 고전은 안정을 선사하긴 하나 새로움과 창의를 앞에선 너무 무겁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활황일 때는 다양한 변주로 재탄생되기 쉬우나 경제적인 불황속에서 그것은 새로움이 들어 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버릴 수 없는, 오래된 가구와 같다. 새가구를 살 돈도 없고, 그렇다고 용도가 있는 가구를 버릴 수 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춤의 유럽 진출과 교류는 과거 유럽이 의심할 바 없는 중심이었을 때와는 다른 상황을 감안하여 기획되고 평가 되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은 유럽의 무대에서 인정받는 것이 상대적으로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흐름 속에 있다. 과거까지의 우리의 해외공연은 현지의 평가와 인정 속에서 우리의 예술적 입지를 다지는데 의의가 있었다면 ‘Post-Kangnam Style’(강남스타일 이후)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의 문화력이 지금의 세계 곳곳에 결핍된 것을 충족시켜주는 필수 영양소처럼 없으면 안 될, 갈급한 상황에서의 절대적 필요의 폭발력으로 사람들의 욕구와 부합하고 있다. 거기서 상상할 수 없는 전파력과 열기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 ‘Post-Kangnam Style’의 상황이다.
나는 이번 유럽의 공연에서 춤공연 예술에서도 우리의 것이 그들이 전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들이 많이 가진 것을 우리가 잘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그들은 이미 잃어버린 것, 이제는 도저히 할 수 없이 굳어 버렸거나 놓쳐버린 것, 그러나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우리의 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춤에 관련된 우리의 인프라는 악조건이 아니며 거기서 탄생된 우리 예술가들의 자산도 아직까지는 미약하기는 해도 가능성은 충만하다. 그런 두 가지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우리 춤의 조건들이 지금 유럽의 춤에 결핍된 것들을 채워줄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가 결핍된 것은 아직은 나보다 먼저 간 문화의 저력을 알아채기에는 경륜과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과 앞으로의 세계의 춤에 대한 폭넓은 공존에 대한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Kore-A-Moves에 필요한 것은 교류, 진출, 마케팅 등의 키워드를 넘어선 세계 문화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서 우리춤의 힘을 ‘공존’과 인류를 위한 ‘창의력’과 연결시키는 ‘비전’을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 춤의 뿌리가 그러 하듯이 춤과 몸의 기호로 하늘과 소통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여 소우주에 충실하며, 인간세계의 허위를 걷어내는 삶의 에너지로 충만한 춤을 추면서 ‘그 춤을 함께 나누는 Move’를 할 때가 된 것이다.
- 전체 19회 공연과 2회의 워크숍, 2회의 Dance Screen & Dance Forum(한국춤비평가협회 주관)
본 협회 회원, 춤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