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북유럽의 정취, 순백의 가족발레
해외취재: 핀란드 국립발레단
장광열

 기대 이상이었다.
 2시간에 이르는 전막 발레가 초연될 경우 제대로 된 골격을 갖추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아는 터라 공연 막이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작품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12월 11일 오후 7시 헬싱키 오페라하우스. 티켓 박스에서 들은 “솔드 아웃”이란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극장 안은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었고, 삼삼오오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한 가족 관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눈의 여왕>(The Snow Queeen)이란 제목에서 느껴지듯 공연 내내 무대는 온통 눈으로 가득 찼다. 실제로 내리는 눈, 눈 덮인 풍광, 커다란 고드름, 때론 눈의 여왕이 추는 신비스런 솔로춤과 그의 수하들이 추는 순백의 군무는 관객들의 시선을 무대 위로 쉼없이 빨아들였다.
 핀란드 국립발레단 창단 90주년을 기념해 새로이 제작한 이 작품은 2012년 11월 예술감독 케네스 그레브(Kenneth Greve)의 안무로 첫 공연을 가졌다. 초연된 지 한달도 채 안되었지만 12월 들어 몇 차례의 추가 공연이 편성되더니 올 1월에는, 이미 일정이 잡힌 오페라 공연을 취소하면서까지 재공연이 잡힐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다.


 

 

 작품은 안데르센 동화를 기반으로 해 만들어졌다. 19세기 헬싱키에 살고 있는 두 아이 카이(Kai)와 게르다(Kerttu)의 스릴 넘치는 모험, 산타마을이 있는 핀란드의 북쪽 끝 라플란드 유럽 최북부 지역까지의 여행기를 그린다. 핀란드가 곧 작품의 배경이 되는 셈이다.
 북유럽의 풍광을 연상시키는 무대미술- 눈 덮힌 지붕, 눈 쌓인 광장과 채소를 담은 이동마차 등과 영상으로 오버랩 되는 고전적인 건물 양식, 특히 2막에 선보인 커다란 고드름, 얼음기둥은 오페라 공연에서나 볼 수 있는 현대적인 감각의 예술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는, 압권이었다.
 유명 영화음악 작곡가 투오마스 칸텔리넨이 맡은 음악은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때론 노딕 컨추리 고유의 정서를 몇 가지 특별한 이펙트를 포함해 녹여냈다. 실연 음악을 듣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핀란드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녹음 연주는 귀에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핀란드적인 요소는 에리카 투루넨의 의상과 무대세트와 조명을 함께 맡은 미키 쿤투의 디자인에서도 제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눈의 여왕, 요정 등 특별한 캐릭터들을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각인시킨 페카 헬리넨의 분장도 빼어났다.


 

 

 안무가 케네스 그레브는 "눈의 여왕은 핀란드 문화와 삶의 방식에 대한 나의 헌사이다"라고 말한다. 안데르센의 클래식 동화를 작품화 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 작품 속 신나는 모험들은 단지 아이들을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공연 후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봤을 때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공연의 성공 요인은 이렇듯 핀란드 고유의 정서와 문화, 여기에 두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한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그리고 현실세계가 아닌 미지의 세계에서 만나는 환상적인 요소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실과 환성을 넘나들면 풍성한 볼거리 선사

 게르다의 생일날. 친구 카이는 유리조각으로 만든 공을 선물한다. 그 공은 그들이 같이 있을 때만 빛이 난다. 어느날 게르다의 할머니가 라플란드에서 오래된 거울을 사오면서 이들의 삶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이는 눈의 여왕만이 볼 수 있는 마법의 거울이었던 것이다.
 눈의 여왕은 자신의 미모를 비추어줄 거울을 잃어버리자 거울을 되찾기 위해 못된 트롤과 심술궂은 요정들을 보낸다. 요정들은 게르다의 집에서 거울을 찾았으나 실수로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그리고 그 조각들 하나하나는 모두 눈의 여왕의 차디찬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중 세 개의 조각은 멀리 날아가 발견되지 못한다. 한 조각은 자고 있는 카이의 눈으로 들어가고,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게 된다. 두번째 파편은 게르다가 받은 유리공에 들어가고 더 이상 공은 반짝이지 않는다. 마지막 조각은 라플란드의 무녀인 라핀 세이타(Lapin seita)에게 떨어진다. 그녀는 눈의 여왕의 쌍둥이 동생이다. 눈의 여왕은 잃어버린 세 조각의 거울을 찾기위해 카이를 눈의 성으로 납치하기로 결심하고, 타이는 거울조각들을 모두 찾아오도록 협박 받는다.
 게르다는 카이를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그녀는 새로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마침내 라블랜드에 도착한 그녀는 라핀 세이타와 그녀의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게르다를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초대한다. 이들 모두 눈의 여왕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된 게르다는 이들과 합심해 카이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카이와 게르다의 길고 험한 여행은 그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차갑고 나쁜 아름다움은 관용과 열정, 사랑의 가치에 비해 절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작품 전편을 끌어가는 주인공은 게르다 타이, 그리고 눈의 여왕이다. 이날 공연에서 주인공인 게르다는 놀랍게도 우리나라 무용수 하은지가 맡았다. 그녀의 상대 역인 카이역에는 핀란드 출신의 포우타네 사무리(Poutane Samuli), 그리고 눈의 여왕은 일본인 무용수 코로리 마이(Komori Mai)가 맡았다. 하은지가 이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지는 알았지만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사실은 사전에 알지 못했었다.
 클래식 발레와 컨테포러리 발레 모두에 재능을 가진 하은지는 그녀의 명성답게 뛰어난 기량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안정되게 드라마를 이끌어 갔다. 전편에 걸쳐 적지 않은 장면에 줄곧 출연한 그녀는 중요한 배역을 통해 리드 댄서로서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바로 안무이다. 클래식 발레에서 흔히 보는 움직임 조합이 주를 이루는 주역 무용수들을 중심으로 한 춤 구성은 그런 데로 넘어간다하더라도 디베르티스망으로 처리된 미지의 세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추는 민속적인 색채의 춤은 조악했다. 이는 재공연이 추진되면 안무가가 가장 시급히 보완되어야할 점으로 보였다.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공존하고, 시각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용수들의 분장과 머리 장식, 핀란드적인 색채를 담아낸 음악과 조명, 그리고 무대미술의 조화는 안무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핀란드적인 독창성과 발레예술 자체가 갖는 보편성과의 조화를 통한 인기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주역 무용수 하은지 미니 인터뷰

- 능란한 춤과 연기, 리드 댄서로서 존재감 부각

 

 



 ‘어린이들과 어른들 모두 발레의 매력-다양한 춤과 환상의 세계에서 만나는 새로운 캐릭터들, 그리고 스토리-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가 많은 것이 성공의 요인인 것 같아요.“ <눈의 여왕>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 이유에 대한 그녀의 지적은 한국의 창작발레 작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80명의 단원들이 공연 중에도 매일 2-3개의 다른 작품을 동시에 연습해요. 많은 안무가들의 다른 작품을 춤출 수 있는 것은 무용수들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지요. 저는 이곳에서 그런 모험을 즐기고 있어요.”
 하은지는 오는 7월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때 내한, 고국에서 한국의 발레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장광열
본 협회 공동대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대표, 춤비평
2013.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