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멀고도 가까운, 유사하지만 확연히 다른....
일본의 비교무용학회 제23회 대회 참가 후기
김채원_춤비평

 한국과 일본, 멀고도 가까운 나라. 외모는 비슷하지만 사고방식이나 일처리 방식은 많이 다르다. 명치유신 이후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일본과는 달리 우리는 일제 강점하에 일본을 경유한 서구문물을 받아들였다. 이미 출발부터 왜곡된 형태로 시작되었고, 이를 바로 잡을 새도 없이 역사는 유유히 진행되었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중국대륙과의 긴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섬나라인 일본과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교육 역시 일본을 통해 받아들이고, 일본식 체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의 교류의 장을 보면 매우 다른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번에 참가한 23회 비교무용학회에서도 양국의 다른 모습은 여실히 경험할 수 있었다.
 23회 비교무용학회 학술대회의 테마는 [무용은 말한다, 신체는 말한다]이었다. 행사장은 와세다대학 도꼬로자와 캠퍼스였고,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되었다. 상세히는 10시부터 12시 5분까지 일반연구발표 1과 2 강좌, 12시 25분까지 15분간은 학회총회가 진행되고, 이후 30분간의 점심휴식. 1시 5분부터 2시 5분까지 동양대학의 이시이 다카노리 씨가 <버마의 전통스포츠 ‘치론’의 인류학적 조사>에 대한 특별강연을 하고, 다시 2시 15분부터 4시 35분까지 일반연구발표 3과 4, 5 강좌가 있었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4시 45분부터 5시 50분까지 오키나와와 한국춤에 대한 연구발표와 워크샵이 특별기획으로 진행되었다.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연구자는 총 18명. 발제자에게 주어진 발표 시간은 각각 15분이며, 특별기획으로 발표되는 우리연구팀의 논문발표 역시 각각 15분씩에, 웍샵도 15분씩 주어졌다.

 

 

 

 한국 무용인들의 일반적인 견해에서는 15분의 워크샵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는 공연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더욱이 학회는 이론연구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연구와 관련된 공연이나 실기의 일부만을 발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논문의 연구대상 작품의 일부를 체험해보는 웍샵 시간도 매우 한정되었었지만 양국의 춤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짧지만 유익한 시간이었다.
 일본의 비교무용학회는 공인된 학회로 매년 1회의 학술대회와 1회의 논문집을 출간하고 있다. 올해로 23회를 맞는 학회는 최근 들어 류큐무용의 연구에 힘을 보태고 있었기 때문에 류큐무용과 한국춤의 비교연구를 발표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류큐무용과 한국춤의 웍샵은 양국의 춤을 체험함으로써 비교해볼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고, 다음 기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체험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약속했다.
 일본의 학회는 시간에 엄격하다. 주어진 시간 외에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발표자의 수가 적을 때는 어느 정도 여유를 갖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18명이 발표할 경우는 단 1초도 용납하지 않는다. 일본인의 정확성은 이런 데서도 잘 나타난다. 학회 진행방식에서 우리와 많이 달랐던 점은 한국의 경우 발표자와 토론자가 정해져 있으며, 사전에 협의하여 발표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러나 일본은 토론자를 사전에 정하지 않는다. 학회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토론자가 되고 질문자가 된다. 때문에 혹평과 곤란한 질문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그것은 외국학자의 발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하여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한국의 경우 학회참관자는 발표하는 교수가 학생을 동원하여 자리를 채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자리 채우는 풍토는 찾아보기 어렵다. 적은 인원이라도 발표논문에 관심 있는 연구자나 학생들이 참여하여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양보다 질을 우선시 하는 일본의 학습풍토는 배울 점이며, 학회장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신경 쓰는 한국의 무용관련 학회는 앞으로의 학문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심각하게 자기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비교무용학회의 전 회장이자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수를 역임한 모리시다 하루미 선생은 “한국춤에 관해 역사와 유래 등을 발표한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팔의 움직임 분석에 초점을 맞춰 양국의 문화에 접근하는 비교연구는 그동안 없었기 때문에 매우 의미 있는 자리였다. 앞으로 연구를 계속 하여 몸체, 하반신의 움직임 등도 비교분석하고 웍샵도 몇 차례 기획하여 발표해주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필자 역시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부분이지만, 한국의 경우 무용연구에 있어 역사적 발전과정에 초점을 맞추거나 사상적, 개념적 논의를 중시하여 연구를 펼치는 이론적ㆍ문헌학적 방법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의 무용연구는 작품이나 동작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를 진행하는 구조적, 동작학적 분석방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우선시되는 연구방법론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바이겠으나, 양국이 상호간에 부족한 점을 채워나간다면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연구, 동양예술의 연구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의 기초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무용연구 동향은 오늘의 한국 무용학계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학문적 융합, 통섭의 문제, 전통문화유산의 아카이브화, 다양한 매체활용의 문제, 예술적 철학성 문제 등등이 오늘의 관심사로 자리하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찍부터 다민족의 문화가 수용되고 있어 무용연구에서도 자국의 무용예술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동남아시아 등의 춤문화를 대상으로 한 인류학적ㆍ 민족지학적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 이미 고인이 된 무용가를 연구대상으로 하기보다는 현재 세계 무용흐름을 선도하며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는 유명 안무가의 작품세계를 연구한다는 점, 그리고 신체론ㆍ교육론ㆍ 젠더론 등 연구대상의 다양성이 일반화 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며, 연구방법에서도 이론적ㆍ 문헌학적 고찰은 기본으로 하면서 동작ㆍ구조적 측면의 분석적ㆍ실천적 접근법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신체론’은 무용에서 신체표현이 의미하는 것, 그 소통방법 등을 분석하여 논하는데 집중된 분야로, 일찍부터 일본인은 신체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부토 역시 그러한 관심을 배경으로 탄생한 무용문화의 하나이다.


 

 

 10년 전 필자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대학원 석ㆍ박사 과정생에 대한 처우였다. 일본에서 석ㆍ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연구실에는 한국과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도교수는 물론이고 일본인 학생들도 국내ㆍ외인을 가리지 않는 동등한 학습체계를 준수했다. 더욱이 박사과정생은 연구자로 입문한 초년생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연구와 관련해서는 지독할 정도로 엄격했으며, 지도교수는 존재하지만 상하의 수직관계가 아니라 좌우의 수평관계에서 상호간에 평가와 분석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한국은 학부시기부터 수직관계를 엄준하게 유지하고 지켜오고 있다. 물론 이공과 계열은 매우 드물지만 예체능계열의 수직관계는 절대불면의 법칙처럼 고수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직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 즉 노력보다는 요령을, 진심보다는 가식을, 자신의 연구에 시간을 투자하기 보다는 눈치와 로비(?)와 얼굴도장 찍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데 문제가 있고, 또 그러한 관례를 당연시 하는 풍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와세다대학 강의를 보면, 출석체크를 위해 입실하는 학생은 별로 없다. 강의시간을 지키는 학생 수가 별로 없어 좀 썰렁하기까지 할 정도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자기스스로 찾고 학습하고 체험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전공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세미나와 연구발표회, 공연 등을 통해 결과물들을 발표한다. 그만큼의 학습성과를 내놓고 있기 때문에 강의출석에 큰 제제를 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국민성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일본인은 매우 개인적이며 상호간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간섭도 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그리고 각자의 학습, 지식, 연구의 성과에 대한 비판도 우회적인 방법으로 하기 때문에 상호간에 덜 상처받고 적대적인 관계도 피해가게 된다. 이에 반해 한국인은 집단적이고 상호간에 간섭하고 부딪치며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익숙하며 연구 성과에 대한 비판도 직접적이어서 상호간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끝내는 적대적인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양국의 문화적 차이를 볼 때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 무용학계의 연구비전과 발전, 심도 깊은 학문적 성과와 실력있는 후진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폐단을 고치면서 수용할 점은 수용해 나가야 한다.
 올해 일본의 정계는 우경화 경향이 강한 보수권이 권력의 실세를 잡았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옛 고구려 영토를 자국영토라 주장하고, 일본이 독도와 동해를 자기들 것이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때 역사적으로 원수라고 해서 피하고 외면만 해서는 안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기초를 중시하는 학문적 체계와 학회 운영체계 등은 본받아 해로울 것은 없으리라.

2013.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