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우연한 계기, 요코하마댄스컬렉션
우리는 지난 1월 17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의 좋은공연센터 다목적홀에서 한국춤 비평가협회 주최로 열린 2019 한국춤비평가상 시상식과 2020 신년 대화모임에 도우미로 참여했다. 이날은 본 시상식에 앞서 춤 단체의 주요 행사와 올해의 사업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다. 기획자, 무용수, 비평가, 학생, 국립기관 관계자 등 100명 남짓한 무용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왔고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라 쭈뼛쭈뼛한 상태로 착석해 있었는데, 그날 김채현 · 김혜라 선생님이 제1부 사회를 맡아 유머 감각으로 다소 조용하고 딱딱하던 행사장을 스르르 녹인 때문인지 우리는 곧 유쾌한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들어갔었다.
그렇게 점차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이종호 CIDance 예술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일본 ‘요코하마댄스컬렉션’ 소식도 전해 듣게 되었다. 이 기간에는 HOTPOT이라는 행사도 개최되어 한·중·일 간의 춤 교류와 세 개국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관심이 당겨졌다.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행사 기간에 HOTPOT과 TPAM이 동시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관람하면 좋겠다 싶었다.
또 요코하마댄스컬렉션에서 주목받는 프로그램은 ’컴피티션‘이라 들었지만 이는 HOTPOT보다 3일 정도 일찍 개최되었기에 요코하마댄스컬렉션 자체에만 초점을 두기보다는 여러 행사를 관람하는 것으로 족하다면 충분히 답사를 가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동료들과 상의해 2월 11-15일 일본 요코하마에 다녀오기로 정했다.
이 기회에 여러 국가의 작품과 현대춤의 생태계를 비교해보고 세계화된 무대 아래 동아시아 춤의 흐름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경험을 통해 한국의 춤현장을 객관적으로 돌이켜볼 수 있었다. 일본의 요코하마와 각 공연에 대한 감상을 언급하기 이전에, 행사의 기본 소개에서 답사기를 시작한다.
동시에 열린 요코하마댄스컬렉션ㆍHOTPOTㆍTPAM
이 행사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주최되지만, 함께 연계하여 동시에 열린다는 점에서 약간의 혼돈이 있을 수 있다.
1. TPAM
TPAM은 공연예술 작품과 쇼케이스,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통해 동시대 공연예술의 흐름을 소개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통 교류하는 장(場)이다. 이 행사는 1995년 TPAM(Tokyo Performance Arts Market 도쿄 퍼포먼스 아트 마켓)으로 시작하여, 2011년 요코하마로 근거지를 옮겨 이름 또한 TPAM(Performing Arts Meeting in Yokohama)으로 바뀌었다. market을 meeting으로 이름을 바꿔 프로그램 역시 작품을 사고파는 것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과 교류’의 플랫폼으로 초점을 맞춰 새롭게 개최하기 위해서였다. TPAM의 프로그램은 TPAM Direction, TPAM Exchange, TPAM Fringe 이렇게 3개 카테고리로 나눠서 진행된다.
- TPAM Direction: TPAM의 기획자들이 선정한 작품들로, 아시아와 세계의 현재 퍼포밍 아트를 빠르게 반영하고 있는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 TPAM Exchange: 다양한 네트워킹과 세미나와 같은 전문가들의 교류 프로그램이다.
- TPAM Fringe: 오픈콜 프로그램으로, 작가들에게는 새로운 관객을 찾는 기회가, 기획자들에게는 새로운 작업을 발견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TPAM의 디렉터 Hiromi Maruoka는 2020 TPAM 인사말에서, 최근의 TPAM Direction은 동남아시아에 주목하여,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시각예술과 같은 다양한 예술 형태를 소개해왔으나, 2020 TPAM은 HOTPOT과의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면서 무용과 신체 표현에 더 집중하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공연예술 중에서도 춤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고, 그중에도 신체를 직접적인 주제로 하는 작품들이 상당 부분 차지했다.
이렇게 TPAM과 함께, 요코하마댄스컬렉션은 한국 시댄스(Seoul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SIDance)와 홍콩 시티 댄스 페스티벌(City Contemporary Dance Festival, CCDF), 그리고 일본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Yokohama Dance Collection) 공동주최로 2월 11-16일 일본 아카렌가 창고와 조노하나 테라스에서 열렸다. 이와 더불어 ‘제3회 HOTPOT(동아시아무용플랫폼)’도 동시에 열렸다.
2. HOTPOT
한·중·일간 춤 교류 및 신진 안무가를 발굴하기 위해 창설되어 2017년에 ‘CCDF’, 2018년 ‘SIDance’, 이어서 올해는 ‘요코하마댄스 컬렉션’ 기간에 개최되었다. 2월 11일 중국이 두 작품, 2월 13일 한국과 2월 14일~16일 일본은 각각 다섯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은 2018-19년, 지난 2년간 SIDance의 ’후즈 넥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HOTPOT’ 한국 대표 단체 선발전을 치렀고 시나브로가슴에 권혁 안무의 〈WHILE〉, 댑댄스프로젝트의 김호연과 임정하의 〈최초의 풍요사회〉, 리케이댄스 이경은의 〈TWO〉, 단단스 아트그룹 김선영의 〈보따리: Movement 3〉, 윤푸름의 〈보다〉가 최종 선발됐다.
정리하면, 요코하마댄스컬렉션에 컴피티션과 HOTPOT이 포함되며 공연예술 마켓을 표방한 TPAM은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별개의 행사이다.
나름 분주했던 관람 활동
우리가 본 공연은 다음과 같다.
메인 행사인 TPAM Direction에서 Heine Avdal & Yukiko Shinozak의〈unannounced〉, Ayaka Nakama의 〈Freeway Dance〉 총 2편을, TPAM Fringe에서는 Teita Iwabuchi의 ‘Gold Experience’, WONG Pik Kei의 〈BirdWatching〉, Dorian Nuskind-Oder와 Simon Grenier-Poirier의 〈Speed Glue〉, Andrea Peña & Artists의 〈Untitled I〉, FujiyamaAnnette의 〈invisibleThings〉등 총 5편을 관람했다.
동아시아무용플랫폼(HOTPOT: East Asia Dance Platform)에서 중국 작품 2편과 한국 작품 5편을 관람했다. 일본 작품을 보려고 했으나, 2월 14일에는 앞서 예매했던 Giuseppe Chico & Barbara Matijević의 〈FORECASTING〉, Tamura Koichiro의 〈MUTT〉와 공연 시간이 겹쳤고, 2월 15일은 일본을 떠나는 날이라 아쉽게도 일본 작품은 관람하지 못했다.
우리는 거의 모든 공연장을 섭렵하겠다는 의지로 돌아다녔다. 덕분에 하루 절반이상을 공연을 보는 데 시간을 쏟았음에도 춤 감상 면에서 의식을 확장시키는 일종의 각성 체험을 한 것 같아 뿌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일본의 공연장에 대해 언급하자면, 요코하마는 일본의 수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도시에 여러 형태의 극장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국내 공연장과 다른 점이라면, 우선 티켓 박스가 정확하게 공연 시작 15분 전에 오픈한다는 것인데, 처음엔 다들 적응을 못 하다가 나중에 갈수록, 우리도 거의 때에 맞춰 신속하게 도착했다. 한국은 대체로 한 시간 전에 오픈을 하기 때문에 일본의 다른 규칙에 적응해야만 했다. 또 국내 공연장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출입구에 열감지 카메라를 구비하고 이를 통과해야만 출입을 허가한다. 뿐만 아니라 마스크 착용을 적극 권장한다. 그러나 일본 공연장의 경우 마스크 착용에 관대할 뿐더러(대부분 착용하지 않았다) 출입이 자유로워 이슈에 대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 점 또한 우리가 알아서 스스로 대비를 해야 했다.
일본 요코하마를 향한 복잡미묘함
우리는 요코하마로 떠나는 날 6시 30분까지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모이기로 했다. 가는 길 리무진 안에서는 보슬비가 내리는 탓에 미끄러지는 찻길의 소리가 고요하게 들려왔다. 창문 너머 벌써부터 일상과 멀어지는 풍경 때문인지 겉으론 차분하지만 설렘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들 이를 입증하려는 듯이 도착하니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와있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증으로 사회 전반 경종이 울리고 있었지만, 심각한 상황이 구체적으로 대두한 때는 아니어서 마스크를 끼고 손을 자주 씻는 등 청결습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가 출발한 2월 11일 당시, 28명의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고 ‘지역감염유행’단계까지는 퍼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서 마스크와 안경을 착용하고 휴대용 손소독제를 몸에 지닌 채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의 시민들은 서로를 조심하면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체크인하기 위해 M카운터로 갔을 때도 승무원은 장갑과 마스크를 낀 상태였고, 공항은 감염 예방을 위해 여객 주의 사항을 안내하는 방송을 전파했다. 우리는 무사히 보완 검색대를 통과했다. 공항에는 열감지 카메라가 따로 구비되어 있진 않았지만, 최대한 사람과의 대면을 피하고자 면세점 구경은 물론 편의시설 이용조차 하지 않았고, 승객들 모두 우리와 같은 마음인지 최소한의 행동을 보였다. 때문에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손소독제를 바르는 일이었다. 일본 체류 당시 갑자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하루에 거의 10번은 넘게 손소독을 한 것 같다.
또 불편했던 점은, LCC 전용 소규모 터미널인 제3터미널에는 사람이 붐비지 않아 입국 수속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지만, 편의시설이나 교통편이 적고 열차를 이용하려면 제2터미널로 이동해야 했다. 무리 없이 공항 셔틀 버스를 탄 후 제2터미널에 도착했고, 요코하마행 나리타 익스프레스 왕복권을 구매했다. 일본의 철도는 대부분 민영 회사가 운영해서 타 회사 노선을 탈 때마다 표를 계속 끊어야 한다.
일본의 교통편을 하나 더 소개하면, 한국과 달리 버스를 탑승할 때 정기권을 뽑고, 내릴 때 버스 앞 편 표시판의 금액을 확인한 뒤 그에 맞춰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덜고자 사쿠라기초역에서 보증금 500엔과 충전금 1500엔을 내고, ‘스이카(Suica)라는 교통카드를 구입했다. 스이카는 대중교통뿐 아니라 편의점과 자동판매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는 걸어서 공연장에 충분히 걸어갈 수 있었기에, 일본 분위기를 더욱 맛볼 겸하여 교통카드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주로 편의점에서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스이카의 장점은 220엔의 수수료를 제외한 남은 금액과 보증금을 반환해주는 것인데, 220엔 이하의 잔액이 남았을 경우 별도로 수수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 날까지 거의 전액을 사용하고 반납했다.)
이런 불편함과 함께 코로나19의 확산과 감염자가 탑승한 일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요코하마항에 정박된 탓에 행사가 취소되진 않을까 내심 걱정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감염병이 ‘심각’단계가 되기 이전에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우리 모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한 달을 넘겼어도 아무 증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요코하마에서 감지한 이국적인 것들
공항에서 우리는 열차에 발을 실었다. 열차 안에서 바라본 일본은 공항이나 편의시설 심지어 자판기에서 어렴풋 느꼈던 감수성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곧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자로 잰 듯 정갈한 건물과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거리는 서로 입 모아 찬탄한 것으로서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화창한 날씨, 맑은 공기, 새파란 하늘, 낮은 건물, 집집마다 개방된 베란다와 늘어진 빨랫감 등등 청량한 기운을 마구 뿜어내는 듯했다.
나리타 익스프레스 안에서 바라본 풍경 │ 공항에서 발견한 음료 자판기 |
그렇게 한참을 달려 요코하마역에 도착했고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환승하여 사쿠라기초역으로 갔다. 내려서 본 풍경은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건물엔 V자 모양으로 건물 지지대의 틀이 자주 보였고 대체로 높이가 낮았다. 신호등도 작고 아기자기 했으며 일본사람들은 저마다 이국적 패션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랑 무언지 모를, 유사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외모였다.
일본을 표현할 때 사람들은 “같은 듯 다르다”라고 말하는데, 공감이 되었다. 확실한 대비보다 묘한 이질감 덕분에 더욱 이국땅을 밟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일상과 편한 곳을 벗어나니 이런 생경함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걱정은 뒷전으로 신나는 기분을 선사했다.
사쿠라기초역 근처 거리 │ 요코하마에서 처음 먹은 돈가스 |
숙소는 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리는 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 짧은 순간에 우리의 시각은 더 넓어지는 와중이었다. 바로 숙소로 가려했으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캐리어와 짐을 진 채 가까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은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문기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어로 번역이 가능해서 편리하게 주문한 후 천천히 식당을 둘러보았는데, 신기하게도 노인이 눈에 띄게 많았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상황을 직접 마주하니 절로 실감이 되는 것 같았다. 또 한국에 혼밥, 욜로족, 딩크족, N포세대 등 용어가 성행하기 한참 이전 일본에서 그랬듯, 단체 식탁보다는 1인 식탁이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일본인의 “삶 측면”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알아차린 특징이다.
이런 관찰 후, 우리는 거의 8시간의 공복 끝에 돈가스를 먹었다. 익숙한 맛이면서도 간이 짜서 오묘했다. 또 일본인은 소식한다는 건 옛말인지 밥 양이 매우 많았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니 오후 3시였다. 체크인이 4시인지라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 미리 짐을 맡기고 편안하게 요코하마를 둘러볼 참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숙소는 정확히 4시에 오픈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2박 3일간 묵은 게스트하우스 ‘후타레노’는 일본의 일반적인 목조주택이었다. 일본 만화나 애니에 자주 등장하는 고다쯔(こたつ)와 더불어 세계 여행을 즐기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관심사에 따라 각지의 기념품, 화폐, 지도, 엽서 등속으로 숙소 곳곳이 꾸며져 있었다. 목조라는 점 때문에 할머니집 같으면서도 좁고 낮은 천장, 어두운 조명, 12시만 되면 자야 하는 ‘후타레노’만의 규칙 등 때문에 낯선 체험이었다.
첫날 관람한 HOTPOT(중국)
우리는 2층 침대 3개가 놓여있는 6인실 공간을 배정받은 후 짐을 풀었고, 공연 HOTPOT(중국)을 보기 위해 아카렌가 창고(横浜赤レンガ倉庫, Yokohama Red Brick Warehouse)로 걸어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에는 단연 요코하마의 항구가 눈에 띄었다. 터미널이 바다와 도시의 경계가 교차하는 곳인 만큼, 이곳은 지역 주민들과 외부인들이 교차하는 공간답게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공연을 보는 동안 딸기 축제가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등 다양함이 공존했다.
아카렌가 창고 외관 |
아카렌가 창고 입구 |
공연을 보고 난 후 우리는 짐짓 실망한 표정으로 숙소로 향했다. 너무 큰 기대는 실망을 부르는 법이라고, 다들 생각했던 공연이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동시에 첫 술부터 배부를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을 보냈다.
우선 중국은 4편의 공연을 선보이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두 팀의 입국이 불가해짐에 따라 중국팀과 마카오팀, 단 두 편의 작품만 선보일 수 있었다.
• Wayson Poon 〈Vortex〉
이 작품은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 듯했다. 공연 내내 동작의 속도감이라든지, 조명, 분위기, 두 무용수 간 끈질긴 시선 밀착 등 여러 요소들이 말 그대로 꾸준하고 연속적이었다. 무언가 반전이 있을까 기대도 해보았지만 작품 중반을 넘어서는, 이 ‘느림의 미학’에 완전히 수긍해버리고 말았다. 의도를 이해함과 별개로 즐기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선 이국적인 특색을 느끼게 하는 것도 같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석을 위한 해석일 뿐 이 작품만의 독특한 특징을 묘사하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 Er Gao 〈Virtual Lotus〉
이 작품에 대해 우리는 말이 많았다. 이 작품은 여러 특징이 산발적으로 꽤 독특하게 드러났다. 작품에 여자 무용수 3명이 등장하여 형형색색의 형광 튜브를 도넛처럼 몸에 끼우고 던지고 굴리며 오브제 사용에 주력한다. 이 때문에 나는 주성치 감독의 영화 〈미인어〉가 떠올랐다. 무용수 중 한 명이 튜브들 속으로 들어가 총총 걷는 모습이 인어가 바지를 입고 지느러미로 걷는 모습과 유사해보였기 때문이다. 〈미인어〉에는 판타지적인 요소와 B급 감성이 담겨있는데, 이런 요소들이 〈Virtual Lotus〉에도 드러났다. 중국에서 인어는 “인어아저씨 저인(氐人)”을 포함한 신화 속에서도 종종 엿볼 수 있다. 특히 중국신화에서 인신우수의 형체는 신의 형상을 기원하거나 자연을 표상한다. 또 서양과 달리 일반적 관례에서의 ‘남성’을 표방하며, 혼종성을 기이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숭배하기도 한다. 왜 예술적 감성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질까 하는, 짚을 수 없는 미묘함이 자리했는데 이러한 배경 때문인 것 같다. 동시에 이러한 시각이 서구적 환경, 토양으로부터 기인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치우친 통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 작품은 소재보다도 전개방식이나 의상, 스토리 묘사, 안무기법, 표정 등의 연출이 B급 감성, 즉 촌스럽게 보이도록 한몫 했다고 본다. 특히 안무적으로 손바닥을 바짝 펴는 손짓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캄보디아,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권의 민속무용에서 쉽게 살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안무적 요소를 컨템퍼러리로 재해석하는 지점까진 도달하지 못 한 것 같다. 마이너리티한 감수성을 앞세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보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루이비통’ 명품 쇼핑백이 등장한다. 여성들의 속물근성을 비판하고자 한 것인가. 이 의도가 맞다면 페미니즘 시각으로 미루어 보건대 자칫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명품을 사는 여자를 ‘된장녀’라 부르는 작태를 수정하자는 목소리가 대중들의 인식변화로 201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페미니즘 감수성과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 하나로 중국의 페미니즘까지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쉬운 점만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중국의 두 작품 간 간극이 짙은 것으로 보아 중국도 여타 나라처럼 예술춤에 있어서만큼은 굉장히 개인적이고 독자적이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도 관심을 지속하고 싶다.
공연이 끝난 후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자 꼬치집 Kaerunosuke로 갔다. 문을 열자마자 “어서오세요! (いらっしゃいませ!)”라는 힘찬 말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밝고 활기찬 직원들을 보며 ‘이번엔 어떤 맛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메뉴가 너무 많아 무엇을 주문할지 한참 고민했고 결국 구글 번역기를 동원해 닭고기, 닭날개, 양념 돼지고기 수육, 샐러드, 시원한 맥주를 시켰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11시를 향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는 12시가 통금이어서 서둘러 숙소로 이동했다.
완벽했던 둘째날, 큰 만족감
우리는 다음날 일어나서 중국식 라멘을 먹었다. 음식은 대부분 한 사람이 도맡아 해결했는데, 어딜 가든 다행히 맛있었다. 라멘을 먹으며 일본 사람들이 소식한다는 것은 역시나 틀린 말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또 요코하마에 차이나타운이 있어서인지 중국음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중국식 라멘이 그렇듯 맛은 좋았는데 한국보다 더 기름져서 끝까지 먹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 먹은 사람도 있었다. 입맛이 제각각이었다.
12일부터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음에도 날씨는 화창했다. 우리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교통카드를 구입하였고, 공연을 보기 전 요코하마의 특색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그 쪽에서 유명한 ‘산케이엔’ 정원에 들리기로 했다. 가는 버스 안, 바깥의 풍경은 그야말로 신나는 일이었다. 우리는 공연을 보던 때보다 더 들뜬 마음으로 소소한 것부터 큰 특징까지 새로움을 발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일본은 특유의 빛, 색채가 공기를 투과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약간 노란 끼가 섞인 것 같다고 표현하는 이도 있었고, 건물의 외벽이 한국과 달라서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음식을 맛볼 때처럼 순간을 만끽하는 방식도 다양했다.
산케이엔 입구 |
• 산케이엔(Sankei-en , 三溪園 · 삼계원)
산케이엔을 가는 길은 산들바람과 먼지 하나 없는 거리(사람도 많이 없었다), 고급 외제차, 도시보다 더 낮아 앙증맞은 건물 등등의 요소 때문에 우리는 더없이 색다른 환경에 심취했다. 우리끼리 ‘여긴 한국으로 따지자면 여유로운 사람들이 놀러오는 곳인가?’ 하고 막연히 유추해보기도 했다.
매표소에 다다르면 주로 지폐를 받는 다른 요코하마 가게들과 다르게 카드결제를 통해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정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거나한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QR코드를 통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산케이엔은 1906년(메이지 39년) 실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로 유명한 하라 산케이(도미타로)가 자택 정원을 일반에 공개하게 되는 것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공개한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은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는 생각한 때문이다. 간사이 지방이나 가마쿠라에서 오래되고 유서 있는 건물을 이축해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지도록 배치한 것이 이 정원의 특징이다. (산케이엔 QR코드 안내링크: http://qrtranslator.com/0000001658/000001)
산케이엔의 전반적인 느낌은 유서 깊은 건물과 미술품이 한 개인의 것이라는 데서 오는 장관이다. 하지만 계절꽃과 초목, 잘 정돈된 정원의 환경 때문에 인위적이지 않고 일반인이 즐기기에 편안했다. 산케이엔에 오기 전에, 급박하지만 유명한 도쿄에 다녀올지 아니면 미술관, 박물관에 가볼지 등등을 고민했는데 모두 입을 모아 산케이엔에 오길 잘 했다고 만족감을 내비쳤다. 특히 우리의 시선을 오래토록 붙잡아둔 한 오래된 목조 건물이 있었는데, 산케이엔에 있는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들어가 볼 수 있는 큰 민가였다. 이 민가는 우리가 이전에 머문 게스트하우스의 원형 버전 같았다. 나무 바닥은 좀 더 짙은 고동색에 가까웠고, -추운 지방 탓에- 쌀떡으로 만든 벚꽃나무, 불을 지피는 아궁이, 일본식 한지 창문, 여러 농업 도구가 즐비한 다락방까지 과거로 잠시 여행하는 기분을 느꼈다. 한 번에 많은 공연을 보게 될 우리에게 산케이엔은 얼마간 휴식을 제공해 주었다.
산케이엔의 민가 │ 연못가 |
• 일본의 어느 카페
충분히 정원을 만끽한 후 그 동네의 한적한 카페에 들렀다. 카페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들이 많았는데, 우리나라 카페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 같았다. 한국에 유모차를 끌고 갈만한 다른 카페가 있는지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인지, 한 명도 아니고 2~3명이 번갈아 나타나니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무쪼록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는 일본의 마마들이 보기에 좋았다. 빵과 커피를 즐기며 우리는 춤과 예술, 그리고 미래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열심히 공연을 볼 것을 약속했다.
그렇게 휴식을 끝낸 후 우리는 다시 이동했다. 가는 길은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었고, 때에 맞춰 여는 티켓 창구에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주변 편의점에서 간식거리와 물을 사고, 미리 놀만한 젊은 펍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 Wong Pik Kei 〈BirdWatching〉, Wakabacho Wharf
우선 Wakabacho Wharf 공연장은 작고 낮은 천장의 입구가 돋보였다. 인디 공연장 같았는데, 실제 공연장에 들어서니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WAKABACHO WHARF 입구 |
〈BirdWatching〉에는 한 여자의 나체가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여자의 야한 몸매보단 비대한 머리와 작고 초라한 몸이다. 천장에 고정된 원통형 빨간 천이 끝으로 갈수록 두상 전체를 좁게 감싸 안아, 매달린 기형적 몸이 관객을 노려본다. 신체와 의상을 통해 형체를 만드는 것은 과거 알빈 니콜라이의 〈가면, 버팀목 그리고 이동체〉(1953)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누메논〉부분에서 신체 전체가 팽팽하게 뻗은 자루 속에 갇히는 것을 말하는데, 때문인지 원통형 천 그 자체만으로 깊은 의미를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명의 전환과 동시에 천이 낙하하며 ‘비대한 머리’에서 ‘비대한 몸’으로 이동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품은 담론을 갖춘다. (머리와 몸의 이분법적 세계가 형성된다.)
홍콩의 페미니즘 예술은 최근 한국에서도 이슈가 된 ‘홍콩사태’의 처참함과 더불어 납득할만한 현상 같다. 예를 들어 아시아 최대 미술시장인 ‘아트바젤 홍콩2019’ 대형 기획전에서는 국제무대에서 활약 중인 한국작가 이불의 〈취약해질 의향-금속 풍선(Willing To Be Vulnerable_Metalized Balloon〉이 전시됐는데, 이는 미투(Me Too) 운동으로 촉발된 젠더이슈 아래 연약하지만 당당히 미래에 맞설 도전적인 여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오래토록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원작과 함께 홍콩 영화관에 상영되고 있어 홍콩의 대중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대 위, 노골적으로 나체를 드러내는 여성무용수의 모습에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릴 수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왜 아직 ‘나체’가 음란하고 폭력적인 소재로써 건재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여성의 몸을 특별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여기는데, 존중이 배제된 상태라면 이것은 강요에 불과하다. 무용수는 그러한 남성권력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기하듯, 마음껏 살결을 떨고 흔들며 과감하게 제스처를 취한다. 아마도 가부장제나 남성권력을 당연시 여길 경우, 감히 예술춤 무대에 저질스런 행태가 벌어졌다며 노발대발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 운동의 필요성이 왜 그토록 자극적으로 연출되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용수의 부담스러운 몸짓 아래 낭만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판단하기보다 의미에 중점을 싣고 싶다.
마지막 원통형 천 안, 단 한 명의 관객만이 포위당한다.(감싸진 관객은 무용수의 둥둥 떠다니는 머리를 지켜보거나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았을 것이다.) 즉 의미상 무용수의 몸과 관객의 몸이 뒤바뀐다. 여성의 몸은 이전에 보여 지는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능동적으로 소통할 대상을 찾아간다. 포위당한 관객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체로 변이되고, 그 과정은 다소 직설적이고 격정적이다. 무용수는 천을 흔들고 잡아당기며 관객의 혼을 빼놓는 데 열성을 다한다. 이것으로 무용수는 자신의 입장과 처지, 시각을 관객과 공유한다.
나머지 관객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영원히 알 수 없다. 때문에 관객은 여성의 입장을 이해해볼 기회를 얻지 못한 것으로, 그 순간만큼 무지에 머문다. 이 작품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음을 말하는 어떤 이의 참담한 심정을 표현적으로 드러낸다. 내 일이 아니라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일종의 무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행동하는 것이다. 무용수는 여성의 편에서 같이 문제를 바라볼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물론 일행 중 거북함을 느낀 이도 있어 공연에 대한 감상이 다 같을 수는 없었다. 유쾌한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날 약간의 상실감에 비하면 고무되는 경험이었다. 타국의 페미니즘과 예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체험해볼 수 있었고, 그 방식이 꽤 적나라하고 과격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담론이 전 세계적으로 불가피하다는 것을 되새겼다.
• 꼬치집 Kaerunosuke
우리는 물색한 가게들을 포기하고 결국 Kaerunosuke에 다시 갔다. 알고 보니 스모 선수 등 유명인들이 들리는 가게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맛나게 느껴졌다. 하지만 첫 날 운 좋게 줄을 서지 않은 것과 달리 이 날은 순번을 기다려야 했다. 이번엔 몇 년 전 일본의 오사카 지방을 어학연수한 동기의 도움으로 손쉽게 주문할 수 있었다. 역시나 맛은 좋았는데 그 중 츄하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츄하이는 소주에 약간의 탄산과 과즙을 넣어 만든 일본 주류로 도수가 높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츄하이와 사케가 “인생술”이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맛도 좋고 탈도 없어 자주 찾고 싶은 술이다. 또 레몬과 자몽을 직접 갈아 넣는 것은 한국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였다. 가격이 한국 돈으로 만원 정도로 소주보다 싸진 않았지만, 양과 맛에 비하면 괜찮았다.
맛난 츄하이 |
일본 술집의 특이한 점으로 담배를 아무렇게나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환기가 잘 되긴 하지만, 외부는 깨끗한 것에 비해 내부는 덜 신경 쓴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또 한번 한국과의 차이를 느꼈다. 하지만 담배를 태우는 젊은 남녀들을 지켜보면서 그만의 감성을 발견할 수 있어 싫지 않았다. 음식은 치킨윙이 요코하마에서 유명하다 하여 기대를 걸었건만 생각만큼 대단한 음식은 아니었나 보다. 한국의 치킨이 아주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다른 안주들은 정말이지 맛있었다.)
셋째날, 한국 참가작들의 완성도
숙소 옆에는 줄을 기다려서 먹는 ‘스리랑카 풍’ 카레 맛집이 있었다. 숙소를 드나들 때마다 보니 끊임없이 사람들로 가득했고, 떠나기 전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터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지막 날 오픈 시간에 맞춰 갔다. (운이 좋게도 체크아웃 시간과 잘 맞아떨어졌다.) 치킨 카레, 돼지고기 카레, 야채 카레, 스튜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밥의 양과 맵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운 돼지고기 카레 두 개와 맵지 않은 야채 카레를 주문했다. 카레에 돼지고기가 덩어리로 있어서 느끼하거나 기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담백하면서 깔끔했고 얼큰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우리는 어제 마신 술의 숙취를 뜻밖의 방식으로 풀 수 있었다. (사케의 숙취는 약해서 좋았다.)
스리랑카 풍 카레, 식당 Kikuya Curry |
여기서 한국보다 2배 정도 비싼 택시이지만, 가까운 숙소로 이동한다는 핑계로 이용했다. 요코하마 택시의 기본요금은 650엔으로 매우 비싸다. ‘호텔 마이스테이스 요코하마 간나이’(간나이역 위치)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좁지 않았다. 저렴했지만 생각보다 넓었고 청결도도 좋았다. 우리는 짐을 맡기고 다음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 Heine Avdal & Yukiko Shinozaki 〈unannounced〉, KAATKanagawa Arts Theatre.
〈unannounced〉는 관객이 자꾸만 무언가를 수행하도록 유도한다. 대기 공간 라운지에서부터 관객은 퍼포머들이 그림카드를 이곳저곳 공간에 대입해보는 것을 지켜보며, 하나의 이벤트를 만끽한다. 후에 3팀으로 나뉘어 퍼포머를 따라 무대 뒤편을 견학하게 되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누릴 게 많으니 이득인 것처럼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런 연출이 마냥 새로운 것은 아니라도 여전히 관객의 감각(경험) 확장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드디어 무대에 도착하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암전과 빛의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퍼포머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관객은 오로지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피부에 닿는 전자음악도 사물의 두근거림처럼 느껴져 마치 공연장의 혁신 중앙에 위치한 듯 생생한 흥분감이 전해졌다. 또 날 것 그대로의 무대장치와 무대장치를 누비는 무용수들은 관객 시선의 방향을 위아래로 확장시켜 거대한 퍼포먼스를 목격하도록 한다. 흔히 무대의 배경이라고 생각되던 것들(무대 뒤편, 관객석, 천막, 단순한 부품들, 바깥의 장치)이 무대의 주된 소재로 사용돼 아주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했다. 확실히 컨템퍼러리라고 할 만하였고, 신선한 감각으로 관객 모두를 놀라게 했다는 것에 우리 3명 모두 크게 공감하였다. 여태 본 공연들 가운데 출연진이 다인종적이었고, 구성과 방식 면에서 규모가 큰 축에 속하였다.
KAATKanagawa Arts Theatre |
• HOTPOT(한국), 아카렌가 창고
- ‘시나브로 가슴에’ 〈WHILE〉
가장 먼저 5개의 흰색 판이 눈길을 잡는다. 다섯 참가작 중 첫 작품으로 배치된 이유가 ‘한국의 기와 같은 곡선미를 가장 잘 드러냈기 때문인가’하는 착각을 할 정도로 조형적이고 도형적인 판자가 굽어지고 펴지는 물성의 반복을 통해 시각적 유려함을 잘 보여주었다. 외국에서 한국무용수들의 춤사위를 판별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요소로 ‘부드러움’을 말하는데, 유독 이번 컬렉션이 다른 나라 작품과 비교해볼 기회를 제공해서인지 그 점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작품의 중반부 오브제는 무대 상수에 내쳐지고, 몸통과 팔을 강하게 하강시키는 동작이 반복된다. 켜켜이 쌓여 고조되는 움직임과 그 속에서 응축돼 퍼지는 힘이 관객석으로 전해졌다. 오브제를 끝까지 책임지고 몰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있었다.
- 리케이댄스의 〈TWO〉
이 작품도 클라이맥스를 향해 고조된다. 출연진 전원이 신명 나는 춤판을 벌인다. 대부분 한국 작품들은 움직임 자체에 굉장히 성실히 접근하는 듯했다. ‘성실한 접근’, 이는 확실히 한국 작품들의 큰 특질이었다. 보통은 한국에서 매너리즘으로 지적되기도 하는데(예를 들어 기승전결식의 반복되는 구조) 외부 관찰자 시점으로 보아서인지, 이번만큼은 그 점이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를 한 것 같다.
- 댑댄스프로젝트 〈최초의 풍요사회〉
이 작품은 HOTPOT(한국) 공연 중 유일하게 유머가 존재하는 작품이었다. 데칼코마니처럼 서로 몸을 조합하는가 하면 장난스럽게 몸에 낙서하는 등 특유의 재치를 잘 녹여냈다. 후반부엔 감상적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동작도 가파른 언덕을 내달리듯 빨라지고 커진다. 우리는 흔히 한국의 영화에서만 살펴볼 수 있는 감동적 포인트가 있다고들 하지 않나. 댑댄스프로젝트는 그런 점에서 이런 맥락과 닮아있다. 재치 속에서 나름의 울림을 전하려 한 애니메이션 같고 모션적인, 따뜻한 작품이었다. 맨 앞줄에 앉아 있었는데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레몬과 파프리카를 먹는 장면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봤다. 요즘은 시각을 제외한 관객의 감각을 일깨우는 방법에 많은 창작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 돌아가서 레몬과 파프리카를 보면 생각이 날까. 후반부에 더 언급해보고 싶다.
댑댄스프로젝트 〈최초의 풍요사회〉 |
- 김선영 〈보따리; 이 세상의 천국 꽃밭〉
창작무용으로서 보따리와 먹물, 한복, 버선, 바닥을 메우는 종이가 등장한다. 특징은 버선에 먹물을 묻혀 태극문양을 그린 것인데, 이것으로 나름의 현대적 감각을 얻으려는 것 같았다. 일본과 국제 무대에 선보이니 뭔가 모르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 작품은 후반부에 더 언급해보고 싶다.
- 윤푸름 〈보다〉
프로그램에 의하면 착시현상을 이용한 옵티컬 아트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품으로, 감각을 통해 느낀 것을 신뢰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한정된 무대라는 공간에서 옵티컬 아트를 어떻게 춤과 결합할 것인지 궁금증을 끌었다. 〈보다〉에는 규칙이 있다. 사각형으로 마스킹테이프를 바닥에 붙이고 2개의 바비인형을 사각형 모서리에 앉히고 나서 퍼포머끼리 알아들을 대화를 주고받은 뒤 가위바위보를 한다. 그리곤 패배한 퍼포머를 사각형 안에 가둔 뒤 피구 공으로 가격한다. 이 이벤트는 몇 차례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는데, 윤푸름은 사건을 조금씩 다르게 구성 연출하면서 결국 관객이 자신의 기억에 따라 시간과 상황을 조직하도록 유도했다. 마스킹테이프를 사용해서 착시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은데, 앞쪽에 앉은 탓인지 확연히 보이진 않았다. 안무가가 의도한 대로 잘 구현되었는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넷째날, 다양한 맥락의 공연들과 일본 젊은층의 발견!
이제 요코하마가 꽤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도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때가 늘어났고,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적어졌으며 지폐만 가능한 상점과 가게를 마주해도 편의점에서 돈을 인출하는 등 나름 적응을 시도해가는 중이었다.
• ‘퀘벡 포커스’와 ‘요코하마컬렉션’
간단히 설명부터 하자면, ‘퀘벡 포커스’ 일환으로 Dorian Nuskind-Oder & Simon Grenier-Poirier의 〈Speed Glue〉와 Andrea Peña & Artists의 〈Untitled I〉 그리고 ‘요코하마 컬렌션’ 일환으로 Giuseppe Chico & Barbara Matijević의 〈FORECASTING〉과 Tamura Koichiro의 〈MUTT〉가 더블빌로 공연되었다.
이 두 공연의 공통적 특징은 매우 상반된 맥락에 놓인 작품이 병렬됐다는 점이다. 기획 측의 의도로 보이진 않지만, 극적으로 대조되는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해야 하니, 공존하는 맥락을 저절로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THE HALL YOKOHAMA 외관 |
〈Speed Glue〉는 춤을 춰보지도 않은 테니스트 2명이 등장해 테니스의 규칙을 바꾸어 즉흥적인 재미를 포착했다. 관객들 중 다수가 슬금슬금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반면, 〈Untitled I〉은 땀흘리는 춤과 춤추는 순간 자체에 깊이 심취해있었다. 또 대조되는 특징을 말해보면, 〈FORECASTING〉은 애플 노트북에 갇힌 손을 노트북 바깥의 팔과 연결하여 기발한 미디어공간을 창출했으며, 〈Mutt〉는 노란 테이프로 눈을 가린 채 유리병에 든 노란 가루를 여기저기 분사하며 강한 표현주의적 음침함을 내비친다. 이처럼 대비되는 맥락은 감상자로 하여금 빠른 태도전환을 요구했다.
퀘벡 포커스 Dorian Nuskind-Oder & Simon Grenier-Poirier 〈Speed Glue〉 |
특히 이번 행사들은 춤과 플랫폼을 공유하고 국가 간 교류를 도모한다는 목적 때문에 세계적이거나 다인종적인 여러 취향을 제공했고 관객 또한 교차되는 흐름으로 맥락을 오고가야 했다. 때문에 ‘어떻게 작품을 수용하고 감상할 것인가’하는 수용자 입장의 미적 태도를 재고하게 했다. 죽어라 동작하는 공연이 있는가 하면 ‘이게 춤인가’하는 낡은 담론을 더 낡게 만드는 실험성 짙은 공연이 한데 뒤섞였다. 크게 운동신체적 / 매체혼합적으로 나눌 수 있는 이들의 작품은 다종다양한 맥락이 공존하는 총체적 양식들 사이에서 어떤 감상적 창의를 발휘할 것인지 선택하게 한다. 기획의 의도와 별개로 참신한 경험이었다.
Giuseppe Chico Barbara & Matijević 〈FORECASTING〉 |
• 장어덮밥
우리 돈으로 1인분에 4만원 정도 하는 장어덮밥을 먹었다. 역시나 밥 양이 많아서 다들 깜짝 놀랐다. 장어가 입에 넣자마자 스르륵 녹아 사라질 정도로 부드럽고 맛있었다. 일본은 카드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이제 익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약간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계산해주는 아주머니께서 영수증처리를 잘못하여 시간을 질질 끌었고, 고집불통이어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덮밥이 맛있었으니 다행이었다.)
장어덮밥, 식당 Wakana │ 차이나타운 |
또 역시나 젊은 남녀커플을 제외하고 모두 노인 분들이 많이 계셨다. 요코하마가 고령사회인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때쯤, 관광 명소인 차이나타운을 거쳐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중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코하마에서는 가는 곳마다 젊은층들을 만나기 쉽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대체 뭘 하며 즐기는지 의문을 갖던 중이었다. 하지만 오후 1시 차이나타운을 지나갈 때 코로나19의 여파로 거리가 한산할 거란 예상과 달리 기모노를 입은 학생, 교복을 입고 몰려다니는 무리, 젊은 커플들로 붐비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한 무리의 남학생은 기모노를 입은 여성에게 소위 작업을 걸기도 했는데 이 거리는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했다.
• Fujiyama Annette 〈invisibleThings〉, Steep Slope Studio
〈invisibleThings〉가 큰 타이틀이고 그 안에서 해수문제, 마술을 통한 세상을 보는 방식, 수화춤, 총 3개의 테마로 나뉜다.
Steep Slope Studio 외관 |
- 해수문제를 다룬 관객참여형 / 관객몰입형 공연
이는 현대에 만연한 환경적 질병 ‘해수 문제’에 대한 관객참여형(몰입형) 공연이다. 관객은 물컵과 작은 공을 가지고 3팀 중 하나에 흡수된다. 환경과 물 부족, 오염에 관한 각각의 3개 입장에 관객은 찬성과 반대를 거듭하며, 그 속에서 우연적으로 생성된 커뮤니티와, 이들의 주장에 전착한다. 마지막에 남은 한 팀만이 다수로 점철된 하나의 성공적인 국가로 해체될 위기를 넘긴다.
최근 일본 정부가 만 톤 규모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를 예고했는데, 작품은 우리의 몸 95%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졌다고 알리는 정보전달 차원의 메시지처럼 해양생태계-몸의 순환적 구조를 은유적으로 설파한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지 일본 예술인에 의해 환경문제가 거론된 작품이 제작된 것에 대해 새삼 놀랍지 않았던 것 같다. 여하튼 작품은 이처럼 이슈 전달과 사회운동, 예술 간의 유사한 역할을 이행하는 것을 통해 관객을 참여시킨다. 관객이 동참해야 하는 이 공연은 사회적 메시지와 구성적 예술형식의 합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같은 형식을 관객들이 조금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 관객들은 생각보다 매우 적극적으로 동참해 우리 모두는 놀라워했다.
- 청각장애인과 수화춤
수화춤이 등장하여 관객 입장에서 열심히 해석도록 만들었다. 왠지 ‘내 언어를 알아 맞춰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의미를 맞추는 데 성공하지 못 했다. 다음, 같은 장면이 연이어 2번 등장하는데 이 때엔 자막이 나왔다. ‘역시 예상이 맞았군’ 하는 기쁨은 잠시고 하나도 수화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약간의 좌절감을 맛본다. 청각장애인으로서 다름을 수용 받지 못한 역사와 불필요한 연민을 감내해야만 했던 분노가 지나간다.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권력자이고 어떤 면에서 소수자, 약자라는 걸 안다. 갈수록 심화되는 소수자 차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생각해보게 했다.
앞서 언급한 작품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소수자 담론’을 상기시킨 것으로 의미적 해석을 품었다.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에 안무가가 청소년기에만 들을 수 있다는 음역대를 들려주며 “당신도 결국 나와 다르지 않다”라는 메시지를 건넨 순간, 의미를 넘어 생생한 체험의 순간으로 그녀와 공존했다. 세계의 보편적 인권 감수성이란 이처럼 소수에 대한 이해와 공존, 존중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심오한 사실을 예술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춤, 그리고 미(美)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예술적 진보뿐만 아니라 휴머니티로부터 발달될 수 있음을 상기했다.
- 마술 퍼포먼스와 춤
이 작품은 마술에 의해 자기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언급하고, 속이기까지 하는 미술은 어느 것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또 무엇을 믿을 것인지 관객에게 물음을 던진다. 하지만 번역가가 한 명이고 그마저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어 아쉽게도 정확한 뜻을 전달받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춤과 춤이 아닌 것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TPAM_ Fujiyama Annette 〈invisibleThings〉, invisibleThings에서 제공한 투표권 |
• Teita Iwabuchi ‘Gold Experience’ 3부작
테이타 이와부치는 부토를 연구하는 안무가이다. 그는 친인척 중 한국인이 있어 한국의 전통예술에도 관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3부작 중 2부는 사물놀이를 이용해 오묘한 자극 지점을 연출하였다. 또한 사람의 깊은 성대울림을 이용하여, 현대적인 부토를 공연하였다. 이 작품도 후반부에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고 싶다.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긴 공연이다.
TPAM_ Teita Iwabuchi ‘Gold Experience’ |
‘Gold Experience’ 3부작 워크숍 |
마지막날, 시원섭섭함을 위로하는 축제같은 공연
우리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후련하기도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작품을 보지 못 해 아쉬움이 가장 컸다. 담배 냄새 풍기는 일본의 가게와 묘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요코하마 거리, 항구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바다 냄새가 나지 않는 이질감과 햇빛의 독특한 색채, 우리가 한국에서 보이는 일상적 표정을 일본인이 짓고 있는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생경함, 여기저기 들려오는 일본말과 히라가나의 간판들. 이 모든 것들이 벌써부터 향수처럼 느껴질 참이었다.
• Ayaka Nakama 〈Freeway Dance〉
이 작품은 한국의 홍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편집숍’이나 정원을 옮겨놓은 듯 했다. 피상적이거나 난해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생산체계의 권력구조와 미래춤을 고민한 안무가의 저의를 고려하면 꽤 진보적이다. 필름 카메라를 집어 들어 광경을 찍고, 그네를 타고, 책꽂이에서 읽을거리를 찾고, 식물에 물을 주고, 관객과 뛰노는 무용수의 일률적이고도 생경한 모습은 현상과 현상 사이(사실과 현장의 모호한 괴리), 꿈같은 체험을 동시다발적으로 생산해내며 관객의 기억을 재조직한다. 예를 들어 돗자리를 가지고 온 관객과 멀찍이 팔짱을 끼고 남의 일이라는 듯 구경하는 관객은 서로가 서로에게 데자뷰 같다. 하지만 차원과 차원 사이를 연결하는 기지의 무용수(안무가)를 보며 그런 관조는 또 다른 재미를 맛보게 한다.
덧붙여, Ayaka는 공간 자체를 무대이자 객석이자 혼합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기존 공연 방식이 순차적이라면 이 공연은 안무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을 한 공간에 쏟아내서 파편적으로 관객에게 전한다. 특히 관객 모두에게 제공된 점심 식사는 이런 안무가의 저돌적인 시도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끼리 일본 무용가들은 직접 사비를 털어 공연을 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게 사실인가 하는 우스갯소리도 나누었다.
각 행사의 큰 특징
TPAM 참가작에서 퍼포먼스 경향이 강하게 드러났다. 관람한 7작품 가운데 3작품은 객석과 무대의 구분을 과감히 무너뜨린 것이었다. 관객은 안무가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 참여할 수 있었고, 때론 관객이 주도적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주요 역할을 수행했다. 보편적인 공연 감상을 이끄는 프로시니엄무대를 탈피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단순히 일방적인 시선보단 체험에 가까웠다. 반면, HOTPOT은 기존의 감상 위주의 공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HOTPOT 공연이 진행된 아카렌가 창고는 항구와 ‘차이나타운’이 그 부근에 있고 건물도 붉은 벽돌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인천아트플랫폼’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아카렌가창고가 복도가 매우 길다는 것을 빼면 한국의 극장과 모습이 유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게 된 것 같다. 쉽게 말해 익숙했다.
‘HOTPOT’ 한국 특집에도 기대를 품었다. HOTPOT의 무대 특징으로는 프로시니엄 형태가 가장 많았다. 이는 동전의 양면같이 극단적 감상 체험을 하게 했다. 쉽게 말해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을 통해 성실하게 작품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그러하지 못했을 경우 다른 공연과 비교해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성실하게 안무와 의미를 구성한 한국작품 덕분에, 우리는 다양함을 즐길 수 있었다.
인상에 남는 공연, 그리고 타지에서 진행된 한국 공연의 한계
• 김선영의 〈보따리〉와 테이타 이와부치의 〈Gold Experience〉 3부작을 비교해보고 싶다. 전자는 한국 창작무용을 외부에 선보였다는 점에서 매우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공연이 된 국가(일본)와는 전통무용을 대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고, 그 점을 비롯해 한국의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현지와 비교해 어떤 한계가 있진 않았는지 돌이켜보고 싶다.
전통적 색채가 짙은 두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두 작품은 각각 전통과 현대의 결합으로 이국적인 아우라를 전한다. 공통점이라면 원폭(原爆) 이후 오노 부자(父子)가 창작한 부토와 한성준으로부터 이어지는 ‘고전무용’의 인용, 즉 과거의 원형을 유지하며 재해석했다는 점이고, 차이라면 공연장을 메우는 일본인 무용수 3명의 충격적인 소음이 내장부터 움직이기 위한 방법론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일본 안무가의 독특하고 현대적인 감수성이 느껴졌다.
〈보따리〉에서 현대성을 마냥 얻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일본 안무가가 세계무대에 적응하는 뻔뻔함 내지 똑똑함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싶다. 일본이 동양 중 가장 먼저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18세기 후반 ‘회전무대’를 제작한 당시의 적응력과, 하나미치를 서구 무대에 이식한 권력의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듯하다. 원폭 피해를 입은 인간상(부토)과 현대의 안무법이 잘 뒤섞여 원래 존재하는 것을 새로운 것처럼 잘 포장한 것 같았기에. 예를 들어 한국에도 ‘단전에 힘을 주고 추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코어의 강조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분명 한국만의 독자적 감수성이 있는데 그것을 언어로 표기/표현하는 데 있어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현대적 ‘창작’안무법이 빠졌다. ‘노젓기’로부터 어법을 답습하는 게 더 이상 현대적 개념의 창작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김선영 안무가의 작품에는 얼마간 익숙함이 느껴지는데 〈태평무〉나 〈춘앵무〉에서 사용하는 돗자리 역할을 종이가 대신하기도 하고, 작년 서울에서 벨기에의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가 선보인 〈바이올린 페이즈〉(16)분에서 발 동작으로 큰 화폭에 그림을 그렸던 것과 유사점을 공유하기 때문인 것 같다. 때문에 다시 한번 창작 한국무용이 ‘현대예술’로 편입될 수 있는 요소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됐다. 현대적 어법의 재발견이 정말이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테이타 이와부치의 부토에서 좀 더 현대적 개념의 창작과 ‘개인’이 드러난 듯하다. 개인적 해석. 또 그의 두 번째 작품은 사물놀이를 재해석했는데, 조잡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일본 전통무용의 특성을 한국 전통음악에 잘 스며들게 했다. 여러모로 편견이 깨졌다.
테이타의 부토에 대해 더 언급하면 전반부는 조금 지루하다. 역시나 부토도 한계를 맞닥뜨리고 있는 것인가 싶을 때쯤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울부짖음의 기괴함이 귀를 찢고 흘러온다. 그 순간 ‘이것이 왜 현대적인 부토인가’라는 의문을 잠식해간다. 안무가까지 총 4명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성 그룹은 3~4년간 내장부터 움직이며, 소리로부터 기인한 춤을 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훈련했다고 한다. 부토는 분명 아직까지 죽지 않은, 가능성 다분한 현대적 장르임이 명확해졌다.
• 댑댄스프로젝트 〈최초의 풍요사회〉를 보면 작품에 균형감을 확보하는 하수 중반의 나무화분이 잘 드러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조명이 조금 앞쪽으로 당겨져 왔어야 했다고 판단된다.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았고 최초의 풍요사회라는 제목처럼 일종의 원시적인 비유가 있음을 관객이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처럼 어떤 수렵채집 생활이나, 원시적인 부족민들의 생활/ 생태에 대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나무가 뒤로 밀려나, 두 무용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흐려진 것 같았다. 한국에서 미리 공연을 본 탓에, 이미 스토리보드가 머릿속에 그려진 채로 감상을 했지만, 외국인이 보았을 땐 어땠을지 모르겠다.
• 한국 참가작들을 보며 공통적으로 든 생각은 이러하다. 작품을 모아 일련의 구성을 계획하는 기획도 좋지만, 각각의 작품이 환경적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최 측이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싶었다. 확실히 한국에서만큼 작품이 적확하게 와 닿지 못 한 것 같다. 또 고대 벽화에 그림을 그리듯, 자신의 몸에 낙서하는 두 무용수들은 한국 춤공연에서 획득할 수 있는 특유의 재치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늘 심각하게만 있지 않고 관객과 놀 듯 추는 두 무용수를 지켜보며 즐거웠다.
또 제한된 시간 안에 작품을 선보여야 하니 시간상 맥락을 끊어내야만 하는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 작품들의 원래 성격과 구조를 모두 드러내지 못한 이런 상황은 이해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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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의 일정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일본은 또 가볼만한 나라임에 틀림없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사회적인 이유로, 일본을 한번도 가보지 않고서도 절대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사람도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한다. 그 사이엔 예술과 예술춤이 당당하게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 있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 우리가 겪은 경험들은 놀이처럼, 축제처럼, 특히 국가적 결속력과 마땅한 인간의 권리로서 행복을 전해 주었다.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처럼 늘 새롭게, 생생한 기분으로 춤과 공연을 사랑하리라 마음먹었다. 또 음식과 술까지! 먹고 사랑하고 즐기리라, 마음가짐은 더 돈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