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말랑당 발레 비아리츠(Malandain Ballet Biarritz) 무용단이 3월 29일 베르사유 오페라 루와이얄 극장(Opéra Royal de Versailles)에서 신작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를 발표했다. 예술 감독 티에리 말랑당(Thierry Malandain)은 프랑스 출신의 발레 안무가이며, 비아리츠 국립안무센터(CCN) 예술감독이다. 1998년에 시작된 비아리츠 국립안무센터는 티에리 말랑당을 위해 설립됐으며, 지금도 2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티에리 말랑당(Thierry-Malandain) ⓒNery |
마리 앙투아네트를 주제로 다룬 장르는 만화, 책, 영화, 연극, 뮤지컬 그리고 오페라까지 다양하다. 발레로는 티에리 말랑당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살던 베르사유 궁전에서 보는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고 특별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오스트리아, 본명: Maria Antonia Anna Josepha Joanna, 1755-1793)는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4살 나이,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당시15살)의 왕비가 됐다. 이후 프랑스 혁명으로 1793년 1월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이 16세가 처형되었고, 같은 해 10월 마리 앙투아네트는 38살의 나이로 단두대에서 삶을 마감했다. “빵이 없어 배고프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잖아요.” 마리 앙투아네트를 검색해 보면 꼭 나오는 이 이야기는, 지금도 프랑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정보들을 찾아보면 그녀를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녀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지 않았으며 누명을 쓴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굶주린 아이에게 브리오슈 빵을 나누어 주라는 이야기가 과장되어 전달됐다는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진실과 거짓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더 많은 오해와 미움을 받은 것만큼은 사실이다.
베르사유 궁전, 오페라 루와이얄 극장
오페라 루와이얄 극장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완공되었다. 관광객이 없는 조용한 시간에 노을지는 베르사유 궁전은 아름다웠다. 궁전 정면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로질러 작은 입구로 들어간다. 복도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고, 그 아래 오페라 루와이얄 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티켓에는 좌석 번호가 적혀 있지만 관객석에는 번호가 표시가 없어, 직원이 관객 한 명 한 명을 자리까지 안내해 주었다. 오페라 루와이얄 극장은 작고 아담한 편이다. 천장은 높고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어 자꾸 고개를 올려보게 한다. 발코니의 금색 장식은 섬세하고 화려하다. 평소 카메라를 잘 꺼내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이지만, 오페라 루와이얄 극장만은 다르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티켓을 사면 볼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과는 달리 오페라 루와이얄 극장에서의 공연 관람은 프랑스인에게도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베르사유 궁전, 오페라 루와이얄 극장 ⓒ이선아 |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 작품은 하이든(Franz Joseph Haydn) 음악에 맞춰 〈아침〉(Le Matin), 〈오후〉(Le Midi), 〈사냥〉(La chasse), 〈저녁〉(Le Soir) 등 모두 5개의 파트로 나뉜다. 음악은 비아리츠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로 여성 지휘자인 멜라니 레비 티에보(Mélanie Levy-Thiébaut)가 맡았다. 작품은 5개의 파트 안에서 또 다시 여러 개의 파트로 나뉘며, 각 장면에 대한 설명을 자막으로 보여주었다.
공연은 왕실 잔치와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무대 미술은 과하지 않고 심플하지만, 효과적이다. 무대 전면에 세워진 커다란 액자의 금색과 초록색의 조화가 무대 바닥까지 이어져 무대 전체를 우아한 느낌으로 꽉 채워준다. 무용수들이 틀(frame) 하나를 들고 다양하고 활용한다. 이 틀은 저녁을 먹는 테이블도 되고, 결혼식 장면도 된다. 그 틀을 내려놓으면 작은 무대 공간도 되며,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신혼 첫날밤의 침대가 되기도 한다. 신혼 초야 장면은 의상도 춤도 순수하다. 얇고 하얀 원피스 차림으로 손만 잡고 자는 어린애들 같은 모습이다. 15살이었던 루이 16세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사랑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랑보다는 사냥에 관심이 더 많았고,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성관계에 어려움을 가졌다. 그들에게는 7년간 자녀가 없었다.
마리 앙투아네트 역할을 맡은 무용수 클레흐 롱샹(Claire Lonchampt)은 이전 작품 〈미녀와 야수〉에서도 미녀 역할을 맡으면서 존재감을 입증했다. 롱샹은 큰 키에 아름다운 체격 조건과 훌륭한 테크닉을 갖춘 무용수다.
Thierry Malandain 〈Marie Antoinette〉 ⓒOlivier Houeix |
작품에는 무도회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파티에 참석한 남녀 11쌍이 춤을 추면서, 일렬로 또는 원형 형태를 유지한다. 전체적으로는 바로크 춤 형태를 보이면서도 발레 테크닉도 보인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중 하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향락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화려한 금색 드레스를 입은 마리 앙투아네트 주변에 금색 부채를 든 남자 무용수들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따라다니며 그녀 주변을 둘러싼다. 금은 보석과 함께 자아도취에 빠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그리고 재치있게 표현했다.
Thierry Malandain 〈Marie Antoinette〉 ⓒOlivier Houeix |
이외에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연인 악셀 페르센(Axel von Fersen)과의 듀엣 장면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와의 듀엣 장면보다도 깊은 사랑과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걱정하며 찾아온 어머니와 오빠가 검정옷을 입고 있다. 셋이 함께 추는 춤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찾아올 불길한 예감을 암시한다. 세 사람 모두 수심 가득한 느낌으로 땅을 바라보고 걷고, 함께 마주 본다. 힘 있게 춤을 추다가도 다시 땅을 바라보고 걷기를 반복한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프랑스 혁명이다. 액자 뒤로 화려했던 그림은 내려가고 검은 벽이 보인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총소리가 들린다. 검은 옷을 입은 다섯 명의 여인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춤을 추고 나가고, 메두사 머리 두개를 든 한 여인과 한 손에 칼을 쥔 남자 무용수가 듀엣을 춘다. 검은 옷의 무용수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무용수들 머리 위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올린다. 프랑스 혁명을 보여주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분노하는 시민들의 행진, 몸짓이 느껴진다. 이 장면은 발레 보다는 현대무용에 더 가까웠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무대 위에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남겨진다. 음악이 절정에 달하고 칼날이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막이 내린다.
Thierry Malandain 〈Marie Antoinette〉 ⓒOlivier Houeix |
최근 4월 24일 프랑스 보자르 아카데미(Academie des Beaux-Arts)는 처음으로 보자르 아카데미 안에 무용 장르를 넣었다. 보자르 아카데미는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안무가 세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그 세명의 안무가는 앙쥴랭 프렐조카주(Angelin Preljocaj), 블랑카 리(Blanca Li) 그리고 티에리 말랑당(Thierry Malandain)이다.
이선아
현재 파리에서 거주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 무용단 “Compagnie Le Guetteur”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웹진>을 통해 프랑스 무용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