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놀라웠다.
3년 전 평자가 중국 광저우(廣東)댄스페스티벌에서 확인한 중국 컨템포러리댄스의 약진은 다른 형태로 더 빠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7월 16일부터 28일까지 열린 2019 베이징댄스페스티벌(Beijing Dance Festival)은 중국의 컨템포러리댄스가 단순한 장르를 넘어 하나의 무용 거점을 형성하면서, 탄탄한 네트워킹을 구축해 가고 있음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히 조직적이고, 어느 일면 전략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크게 댄서들의 테크닉 향상을 위한 실기 클래스와 공연으로 나뉘어져 2주일 동안 펼쳐진 올해 베이징댄스페스티벌에는 중국 전역에서 300명의 프로페셔널 댄서와 200명의 무용 전공학생들, 그리고 150여 명의 외국 무용수와 축제감독 등이 참여했다. 축제 측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공연 관람객은 5,000여 명이었다.
첫 일주일은 댄스 캠프(Dance Camp)를 겸한 교육 프로그램이, 후반 일주일은 플랫폼 성격을 띤 3개의 공연들이 Youth Maraton, Spring Board, Focus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신진 안무가들과 단체들의 공연,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단체와 젊은 안무가들의 경연, 그리고 규모가 있는 전문 무용단체의 공연이 3개의 섹션을 통해 소개되었다.
전체적으로 외국의 축제 감독이나 극장 관계자, 저널리스트, 기획자 등 델리게이트들을 겨냥한 플랫폼 성격의 프로그래밍이었지만, 축제의 예술감독(Willy TSAO)과 프로그래밍 감독(Karen CHEUNG), 프로젝트 감독(Lulu TSAO) 등은 이와 함께 각 지역마다 컨템포러리댄스의 편차가 큰 중국의 현 상황을 감안, 자국의 무용가들과 단체들이 상호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 마련에 더 포커스를 맞춘 듯 보였다.
실제로 베이징댄스페스티벌은 3개의 섹션을 통해 하루에 15개 내외의 공연이 5일 동안 계속해 이어졌고, 평자가 보기에는 작품의 예술성은 차치하더라도 중국의 무용가들을 결속하는데 있어서 더 없이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었다.
Spring Board 공연 |
베이징댄스페스티벌은 2017년 중국 무용계의 네트워킹 구축을 위해 비정부 컨템포러리댄스 조직체로 차이나댄스스테이션(China Dance Station)을 결성했다. 그리고 이번 축제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가 39개 도시를 베이스로 한 이들 차이나댄스스테이션 멤버들의 네트워킹을 위한 것이었다.
축제 조직위원회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각 지역 맴버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편성, 모든 멤버들이 현황을 공유하였고, 이 프로그램을 외국에서 온 델리게이트들에게도 개방, 실질적인 교류가 이어질 수 있는 가교 역할로 활용했다. 그리고 스프링 보드와 포커스 섹션을 통해 이들 탄츠스테이션 멤버들의 작품을 20여 개나 소개했다. 곧 외국의 델리게이트로 하여금 공연 후 탄츠스테이션 멤버들의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채널을 염두에 둔 프로그램 운용이었다.
베이징댄스페스티벌은 수도인 베이징에 베이스를 둔 Beijing Dance/LDTX와 홍콩에 베이스를 둔 시티컨템포러리댄스컴퍼니(CCDC)가 주축이 되어 연례적으로 열고 있는 축제이다. 두 단체 모두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무용단에 해당하는 국립 단체들이다. 그리고 올해는 베이징의 대표적인 복합 공공 극장인 Tainqiao Performing Arts Center와 공동으로 주최했다. 축제는 중국의 단체들이 중심이 되면서 여기에 홍콩, 타이완, 마카오의 안무가와 컴퍼니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 등 동남아시아 컴퍼니와 안무가들의 작품도 소수 포함되어 있었다.
올해는 우리나라 안무가 최명현과 일본의 두 명 댄서가 협업, 올 2월 요코하마댄스콜렉션에 입선한 〈The Ignited Body〉가 Youth Maraton(공연장 Lab Theater)에, 고블린파티의 이경구와 이연주가 안무한 〈Do You Copy Houston〉이 Spring Board(공연장 Studio Theater)를 통해 소개되었다. 〈The Ignited Body〉는 당초 Spring Board를 통해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검열 당국이 여성 무용수들의 과다한 신체 노출에 대한 문제를 제기, 갑자기 공연 섹션이 뒤바뀌게 되었다.
Beijing Dance/LDTX |
전문 컴퍼니의 작품들이 소개되는 메인 공연 성격의 Focus 섹션(공연장 Grand Theater and Lyric Theater)에는 개막 공연을 한 Beijing Dance/LDTX 외에도 중국 Changsa에 베이스를 둔 Mid-Mountain Dancers, 홍콩의 CCDC, 난징을 베이스로 하는 Retrograde Dance Theater와 Nanjing Dance Theater의 협업작품, 그리고 외국 초청 무용단으로 이스라엘 Kibbutz Contemporary Dance와 벨기에의 INSIEMI IRREALI Company의 작품들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평자가 본 50여 편의 공연은 전체적으로 편차가 컸다. 10분 이내의 쇼케이스 형태로 치러진 Youth Maraton의 경우는 출연자들의 숫자나 작품의 질 등에서 특별한 기준이 없는 듯 보였고, Spring Board에 출품된 몇몇 작품은 국제적인 춤 시장에서의 컨템포러리댄스의 수준과 비교했을 때 평균점을 유지하고 있었다.
Mid-Mountain Dancers |
Focus 섹션에서는 Mid-Mountain Dancers의 〈生(SHENG)〉(안무 HAI Xiang, PAN Yu)과 시티컨템포러리댄스컴퍼니(CCDC)의 〈봄의 제전〉이 가장 돋보였다(이스라엘과 벨기에 무용단의 공연은 일정상 관람을 하지 못했다).
〈生(SHENG)〉은 70분 동안 장편으로 이어지면서 군데군데 군더더기가 아쉬웠지만 완급을 조절하는 타이밍과 무엇보다 새로운 움직임의 조합이 일품이었다. 중국 컨템포러리댄스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댄서들의 기량이나 안무가들의 구성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HK City Contemporary Dance Company |
홍콩 시티컨템포러리댄스컴퍼니의 〈봄의 제전〉(안무 HelenLAI)는 1984년에 초연한 오래된 작품이었으나 무대 위에서의 공연과 실제 공연장의 객석에서 바라보는 정면에 그 공연을 보는 객석과 관객들을 퍼포머로 설정하는 발상부터가 파격적이었다. 제의적인 이미지로 음악과 움직임의 조합을 시도하는 여타 안무가들의 작업과는 접근부터가 달랐던 점도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 낸 요인이었다.
평자는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중국 무용계에 정통한 전문가의 추천으로 work progress in 형태로 몇몇 외국의 델리게이트들에게 공개된 중국 독립 안무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수십 개의 박스와 이를 여러 개의 줄을 이용해 이동 시키며 공간을 분할시키는 콘셉트도 콘셉트이지만 무엇보다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오브제를 매칭시키는 안무가의 감각이 범상치가 않았다.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작업 과정에서부터 대단한 공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비록 페스티벌의 공식 프로그램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에서의 독립 안무가들의 탄생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과 달리 정부의 허가 없이는 외국 공연이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독립 안무가와 프로젝트 무용단이 생겨나는 중국 무용계의 새로운 변화는 향후 동아시아 무용의 국제교류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Retrograde Dance Theater × Nanjing Dance Theater |
문화예술에 대한 중국 정부의 투자가 국가적으로, 전 도시에 걸쳐 매우 빠른 속도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었다. 물론 무용예술 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10년 전에 이미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곳곳에 현대적인 시설의 전문 공연장들이 속속 생겼고,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성격을 표방한 무용축제들이 시작되었다. 또한 무용을 포함한 공연예술의 주요 마켓에도 중국은 대단히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고 전략적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동아시아 중심의 무용 네트워킹 형성을 스스로 주도적으로 끌어가고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올해 베이징댄스페스티벌이 끝난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라이벌 도시인 상하이에서는 상하이댄스비엔날레가 시작되었다.
수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베이징국립발레단이 영국의 코벤트가든에서 일주일 이상의 공연을 하면서 전회 티켓을 매진시키고, 국제적인 발레 갈라 공연을 개최하는 것이나 베이징국립발레단이 존 크랑코 재단으로부터 발레 〈오네긴〉의 공연권을 사는 것이나, 외국의 무용축제에 중국 무용단을 적극적으로 파견하면서 항공료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나, 국제 무용 콩쿠르에 중국 무용수들을 출전시키면서 1명의 댄서에게 1명의 지도교사 외에 별도의 트레이너를 대동시키는 것 등도 중국 정부의 무용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즈음 들어 무용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해외에서 열리는 무용 마켓이나 댄스 플랫폼, 페스티벌 등에 중국의 참여 폭이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나고 있고 중국과의 춤 공동제작이나 공동 프로젝트 등을 시행했거나 하고자하는 외국의 파트너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 내에서의 춤 인프라가 강하게 구축되면서 춤 시장으로서의 매력이 높아진데 따른 댄스 컴퍼니들과 기획자들의 발 빠른 행보에 의한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베이징댄스페스티벌은 그 같은 변화의 흐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평자를 놀라게 한 것은 어느 지역은 안무가를 중심으로, 어느 지역은 무용단체를 중심으로, 어느 지역은 무용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거점을 댄스센터 형태로 구축하는 China Dance Station의 네트워킹 구축 과정과 이를 페스티벌을 통해 국제교류와 연결시키는 부가가치 높은 프로그래밍 운용이었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