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제18회 리옹 비엔날레 드 라 당스(BIENNALE DE LA DANSE)
이선아_재불 안무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리옹(Lyon)에서는 매 2년마다 ‘비엔날레 드 라 당스(BIENNALE DE LA DANSE)’가 열린다. 올해로 제 18회를 맞은 비엔날레 드 라 당스는 9월 11일부터 30일까지 약 3주간 열렸다. 참가한 안무가로는 앙쥴랭 프렐죠카쥬(Angelin Preljocaj), 무라드 메르조끼(Mourad Merzouki), 죠셉 나쥬(Josef Nadj), 라시드 우람단(Rachid Ouramdane), 마기 마랭(Maguy Marin), 알렉산드로 시아로니(Alessandro Sciarroni), 제롬 벨(Jerôme Bel), 사부로 테시가와라(Saburo Teshigawara)등이 있었고 모두 19개 작품의 세계 초연과 8개의 작품이 프랑스 초연으로 올려졌다.

 


무용으로 약 5천명이 하나 되게 하는 힘 ‘데필레(Défilé)’

다른 축제에는 없고, 오직 ‘비엔날레 드 라 당스’에만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데필레(Défilé: 행렬, 행진)’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데필레는, 1996년 전 예술감독 기 다르메(Guy Darmet)에 의해 만들어졌다. 1년의 반은 브라질에서 지낼 정도로 브라질을 사랑하는 기 다르메는 브라질의 카니발 같은 축제를 프랑스에도 만들고 싶었고, 그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리옹 외곽지역에 있는 이민자들이 데필레로 인해 도시로 나와 함께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 후 데필레는 리옹 시민들을 무용으로 하나 되게 하는 큰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매 회마다 유명 안무가들과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그룹을 만들어 특별한 의상을 입고 거리 행진을 한다. 올해 데필레 주제는 ‘평화(Peace)’다. 약 4천5백 명의 리옹 시민들이 1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올해도 거리에서 행진을 이어나갔다.

 





앙쥴랭 프렐조카쥬(Angelin Preljocaj) 신작 〈중력(Gravité)〉

앙쥴랭 프렐조카쥬는 프랑스 국민 안무가라 불릴 만큼 그의 명성과 인기는 대단하다. 관객석에서 프렐조카쥬의 작품이 시작되기를 기다릴 때나 공연 후 커튼콜이 쏟아질 때의 관객 반응을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고정팬을 포함해 그의 신작을 믿고 보는 관객들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프렐조카쥬의 작품은 무용수들의 테크닉은 물론 의상, 음악, 조명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의 참여로 제작되기 때문에 눈과 귀과 즐겁고 볼거리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작품 〈백설공주(Blanche neige)〉는 프랑스 의상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Paul Gautier)가 참여한 적이 있으며, 이번 신작은 모나코에서 유명한 이고르 샤프란(Igor Chapurin)이 의상을 맡았다. 그는 볼쇼이 발레단과의 작업 경험이 많고, 다양한 수상 경력이 있는 실력 있는 의상 디자이너다.
 앙쥴랭 프렐조카쥬의 작업 스타일은 이야기가 있는 작업(로미오와 줄리엣, 백설공주 등)과 리서치 작업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이번 신작 〈중력(Gravité)〉은 프렐조카쥬가 오랜만에 발표하는 리서치 작업이다. 몸과 무게에 관한 주제로, 다양한 행성을 여행하는 상상을 하면서 몸이 무거워지고 가벼워지는 움직임들을 무용수들과 함께 연구한 작품이다.

 

 

 작품은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Dimitri Chostakovitch) 음악으로 시작된다. 13명의 무용수들은 땅속으로 스며들 것 같은 무게감으로 누워있다. 몸의 한 부분 부분들이 조금씩 살아 움직이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작품은 여러 개의 짤막한 파트로 나뉜다. 움직임의 질감과 구성, 의상 그리고 음악이 자주 바뀐다. 검정색 레오타드를 입은 무용수가 아라베스크 동작 위주의 솔로를 하고, 무용수들이 흑백 주름치마를 입고 나와 바흐의 바로크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주름치마 밑단에 비밀스레 준비한 벨크로를 떼어 목에 걸고 허리에 걸치니 다른 느낌의 의상이 된다. 음악이 타악기 음악(그리스 현대 음악가: Iannis Xenakis)으로 바뀌면서 분위기가 전환된다. 남녀가 한 쌍을 이뤄 여자 무용수들은 서서 춤을 추고, 남자 무용수들은 엎드린 채 여자의 발등에 뺨을 대고 발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잔잔한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피아노 연주에 남녀 두 쌍이 나와 춤을 춘다. 발레 듀엣을 감상하듯 아름답다. 무용수들이 모두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고 음악도 움직임도 절제된 스타카토의 느낌이다. 그리고는 전자음악이 나오기도 하고, 테크노 음악(Daft Punk)이 나오기도 하고, 남자 무용수들이 전투적인 느낌의 춤을 추기도 한다.
 무용수들의 의상이 자주 바뀌고 사이드로 들어왔다 나왔다 또는 정면을 향해 걸어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마치 패션 워크를 연상시킨다. 의상이 독특하고 세련되어 더 그런 느낌을 받은 듯하다. 지루할 틈 없이 작품이 빠르게 전환되다가 갑자기 볼레로 음악이 나온다. 무용수들은 어깨가 서로 닿을 듯 작은 원형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서 볼레로 음악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볼레로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자 ‘왜 갑자기 볼레로지?’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음악을 끝까지 사용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이 갑자기 천천히 흘러가는 듯했다. 무용수들은 작은 원형 안에서 서로의 무릎 위에 걸 터 앉기도 하고, 서로 서로가 연결고리가 된 듯 조화를 맞춘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원형의 형태도 점차 확장되어간다. 프렐조카쥬는 볼레로 음악을 끝까지 다 사용했다. 작품은 처음 시작 때처럼 무용수들이 한 명씩 무대에 눕고, 마지막에 남은 무용수가 춤을 추다가 자리에 누우면서 마무리 된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볼레로 파트 없이 끝났어도 충분히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나의 아쉬움은 공연 후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 공연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의 기립박수가 있었다. 나는 잠시 박수를 멈추고 관객 주변을 돌아봤다. ‘그래, 이것이 앙쥴랭 프렐조카쥬의 파워구나.’ 하면서 말이다.




 이번 리옹 비엔날레 기간 동안 죠셉 나쥬의 신작을 볼 수 있어 기뻤고, 무라드 메르조키의 신작 〈Vertikal〉은 작품을 보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질 조뱅 무용단의 VR 경험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리옹에 막 다녀와 원고를 준비하느라 이번 호에는 앙쥴랭 프렐조카쥬 밖에 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호에 리옹 비엔날레 드 라 당스 소식 2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8.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