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벨기에 안무가 얀 파브르(Jan Fabre)가 무용수들로부터 성폭력 의혹을 받고 있다. 2018년 9월경 얀 파브르 트루블레인(Jan Fabre Troubleyn) 무용단 전·현직 20명의 무용수들이 공개서한을 통해 무용단 내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폭로했다. 이 파문은 최근 얀 파브르가 솔로 작품 〈도르카의 관대함〉(The Generosity of Dorcas) 신작을 발표하면서 확산됐다.
얀 파브르의 성폭력 폭로: 어떻게 시작됐는가
얀 파브르는 2018년 6월 27일 벨기에의 한 방송에 출연했다(station VRT). 그날은 성희롱에 관한 주제로 인터뷰가 있었다. 설문 조사 결과로 여성 네명중 한명은 성희롱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얀 파브르는 믿을 수 없는 결과라며 “우리 무용단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발언했다. 이 방송을 들은 무용수들은 분노했다. 그 후 얀 파브르로부터 성폭력 경험이 있는 전·현직 20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문화 웹 사이트 〈Rekto Verso〉에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중 8명은 실명, 12명은 익명으로 올렸다. 성희롱, 권력 남용, 성 차별주의 등 얀 파브르의 실체를 폭로했다.
공개서한 내용 중 일부
“얀 파브르는 무용수가 성관계를 동의할 경우, 솔로역을 주거나 작품의 주역을 줬다.”
“얀 파브르는 리허설 도중 마이크에 대고 ‘너무 뚱뚱해졌다, 살을 빼야한다’고 소리질렀다. 그 후 어시스턴트가 그런 말은 무용수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면, 요즘 사람들은 너무 민감하다며 무용수 체중에 관한 언급을 계속 했다. 임신한 거 아니냐며 무용수가 울기 시작할 때까지 괴롭힘은 계속 됐다.”
“얀 파브르는 종종 한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무용단내에 긴장감을 조장했다.”
“얀 파브르는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형태의 삶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리허설 중 ‘너는 참 아름다운데, 머리 없는 닭 같다’ 고 말했다.”
“최근 6년간 6명의 무용수가 성희롱 및 심리적 학대로 무용단을 떠났다.”
“얀 파브르의 예측불가능한 태도와 불안한 행동은 많은 무용수들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쳤다. 많은 무용수들이 무용단을 떠난 후, 심리적인 도움을 필요로 했다.”
“얀 파브르는 우리를 ‘아름다움의 전사’라 불렀지만, 그는 우리를 구타당하는 개처럼 취급했다.”
“얀 파브르는 내게 테이블 밑으로 돈을 주면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것을 당부했다. 이 프로젝트는 사진 촬영이었다. 그는 내게 술을 마시게 했고, 마약을 줬다(내 인생에서 유일한 마약이었다). 성관계를 동의하면, 무용수에게 솔로역을 주거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만약 거부할 경우, 그는 리허설 중 무대위로 올라와 소리를 지르는 등 모욕감과 굴욕감을 줬다. 사진 촬영 후 나는 그에게 돈을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는 거절했다. 1 주일 후, 그가 나를 화려한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내게 솔로 작품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후, 더 많은 사진 촬영을 위해 섹시한 속옷과 하이힐이 필요하다며 사올 것을 명령했다. 이 밖에도 어려운 에피소드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계속적으로 사진 촬영을 요구했고, 나는 거절했다.”
“무용단 단원이 된다는 것은 인내의 과정이다. 오디션에서 수백명과 경쟁해 오디션에 뽑히는 것은 ‘선택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무용단을 그만 두는 일은 쉽지 않다. 실업자가 된다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경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 거라 결론 내렸다. 우리는 여러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법률 자문도 구했지만 사법 제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우리를 보호합니까? 자유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우리의 경험을 담은 이 편지를 통해 현장에서 더 많은 대화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책임은 발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그들은 들을 것입니다.”
- 얀 파브르 트루블렌(Jan Fabre Troubleyn) 무용단 전·현직 무용수 20명이 발표한 공개서한 중 일부, 문화 웹사이트 〈Rekto Verso〉.
공개서한 발표 이후, 얀 파브르의 공연을 막는 보이콧 운동이 시작됐다. 스페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연 예매 후 티켓을 취소했다.
신작 〈도르카의 관대함〉
2019년 1월 17일 파리 바스티유 극장(Théâtre de la Bastille)에서 얀 파브르의 솔로작품 〈도르카의 관대함〉(The Generosity of Dorcas) 신작 발표가 있었다. 극장 입구에 한 여성이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No Sex, No Solo”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글 이었다. 얀 파브르의 성폭력 폭로, 신작 공연에 대한 보이콧 운동 그리고 ‘예술계 성폭력에 관한 모임’에 관한 안내문이었다.
파리 바스티유 극장 앞에서 여성 무용수가 나눠준 전단지 |
이번 작품에 출연한 무용수는 남자 무용수 마테오 세다(Matteo Sedda)이다. 그러나 원래 이 작품에 참여했던 무용수는 여자 무용수인 타비타 숄렛(Tabitha Cholet)이었다. 얀 파브르는 성경 인물 타비타와 이름이 같은 무용수 타비타를 위해 이 작품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용수 타비타는 이번 성폭력 폭로 피해자 중 한명이었다. 그녀는 공개서한 이후 무용단을 떠났다.
원래 제목 〈타비타의 관대함〉에서 〈도르카의 관대함〉으로 제목이 바뀌고, 남자 무용수를 출연시켰다. 이 작품의 보이콧 운동이 시작되자, 무용수 마테오 세다는 “나는 지금까지 무용단 안에서 나쁜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글을 올렸다.
〈The generosity of Dorcas〉 ⓒMarcel Lennartz 2018 (performer: Matteo Sedda) |
1월 31일, 파리 11구에 위치한 대안 공간 〈라 제네랄〉(La Générale)에서 얀 파브르와 관련한 미투(#MeToo) 모임이 있었다. 여성 무용수들 몇명, (프랑스 지방의) 전 극장 예술 감독 그리고 변호사 등이 모여 자신이 당한 성희롱·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이번 얀 파브르 신작에 참여했다가 성폭력 폭로 후 사퇴한 타비타 숄렛의 영상 편지가 상영됐다. 이날 이 모임은 어떤 결론이 나는 자리는 아니었다.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몇명이 자신의 의견을 함께 나누는 정도의 모임이었다.
얀 파브르는 공개서한의 내용을 부인하고 있으며, 어떤 법적 처벌도 받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예정된 신작 투어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한다. 앞으로의 그의 작품 활동, 제작 지원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현재 파리에서 거주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 무용단 “Le Guetteur”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웹진>을 통해 프랑스 무용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