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표지_ 세계 최대 자부하는 거리춤 프로그램
뉴욕 지하철, 공공의 춤 대안 공간을 촉발하다
김채현_춤비평가

국내의 지자체들이 주민 중심 시책을 강조하면서 문화예술에서도 지각 변동의 조짐이 보인다. 20여년 전 시작한 지방자치제 초창기에 부실한 대형 축제를 모방하던 관행을 벗어나 이제는 주민 참여형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공공 문화예술 활동이 문화예술계 내부에서보다는 지자체라는 외부로부터 촉진되고 있다. 주로 미술 분야를 연상하게 되는 공공 예술 활동은 이제 예술의 각종 장르를 망라하는 쪽으로 넓혀지는 중이다.
 국내 춤에서도 커뮤니티댄스, 힐링 댄스, 거리춤 등 공공 예술에 눈을 뜨는 무용인이 늘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공공 예술 활동이 생각보다는 훨씬 활발한 뉴욕을 이번 겨울에 답사하였다. 거리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하철 안의 춤이 성행하는 현상을 뉴욕에서 확인하였다. 지하철 안의 춤이 공공 예술 활동은 아니며, 그 춤을 거리춤 같은 보다 체계를 갖춘 공공 예술로 탈바꿈시키는 창의적 발상이 돋보인다는 판단에서 이제 그 현장을 공유하려고 한다.
 지난 2월 17일 오후 3시 무렵의 뉴욕 지하철. 맨해튼 중심부 타임스퀘어 부근에 이르러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빠른 사운드가 들리면서 신경을 집중시킨다. 겨울인데 여름철 짧은 티를 걸친 소년 둘이 부산스레 움직이며 춤판을 벌인다. 꾀죄죄한 행색에 몸만은 날랬던 둘 가운데 한 명은 폴댄스를 하다가 몇 가지 철봉 춤도 해보인다. 스마트폰으로 선곡하고 바닥에 놓인 카세트를 틀어 판을 진행한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지하철 쇼타임이 어쩌다 내 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아이들은 앳됀 느낌의 10대 초반 나이로, 기량이 초보적이어서 지하철 춤판에 입문한 경력은 좀 짧아 보인다. 검은 피부의 그들이 하는 행동은 귀엽다. 지하철이 다음 역에 정차하면 열차 안팎을 두리번대어서 춤판 흐름은 끊겼고 다음 역에 도착하기까지 무엇엔가 쫓기듯 하며 판이 이어지다가 승객들에게 팁을 받을 생각도 없었는지 그들은 다음 역에서 황급히 지하철 승강장으로 빠져나갔다.
 뉴욕 지하철 안에서 간혹 만나는 춤꾼들은 수백 명으로 추산되며 대개는 생계를 위해 춤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춤은 일반적으로 힙합에 발놀림과 곡예를 섞어 순발력 있게 펼쳐진다. 뉴욕 경찰은 운행중인 지하철 안에서 춤추는 행위가 지난 10년 사이 빠른 상승세를 탔다고 밝힌 바 있으며, 유튜브에서도 흔한 그들의 춤 영상이 이를 말해줄 듯하다. 지하철 내 춤에 대해 승객들의 의견은 찬반이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정황 속에서 2013년 당선된 새 뉴욕 시장이 시민 불편의 해소를 앞세우자 뉴욕 경찰은 전부터 있은 지하철 내 춤 단속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경범죄로 체포되면 그들은 구류에 처해진다. 2014년 단속 건수가 400건 가까이 급증하고 여론이 악화되면서 뉴욕시는 지하철 내 춤 문제를 다른 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마침내 2015년 뉴욕시 문화 부서, 뉴욕 지하철공사와 경찰은 합동으로 뉴욕 시내 일정 옥외 장소를 힙합 공간으로 제공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지하철 내의 불법 춤 행위를 그곳으로 흡수한다는 취지를 담은 이 대책은 그 즉시 ‘It’s Showtime NYC’(IST)라는 공연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실행되어 왔다. 이 대책 이후에도 지하철 내 춤 단속은 이어지고 있지만 경범 체포보다는 현장에서 IST에 합류할 것을 권고하는 방향으로 순화되었으며, 그 이후 단속 건수는 줄어들었다.
 IST는 겨울철에는 열리지 않고 연중 나머지 시기 주말에 여러 시간씩 진행된다. IST에 참가할 단체나 개인을 상시적으로 모집하는 한편으로 IST의 주축을 이루는 공연단도 있다. 이 모든 작업을 뉴욕시는 춤 관련 비영리기구인 댄싱인더스트릿(Dancing in the Streets)에 일임한다. 올해로 결성 35년째인 댄싱인더스트릿은 거리춤만 전문으로 해온 단체다. 

 


 댄싱인더스트릿은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브롱스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이 지역에 소재하고 있다. 뉴욕의 다섯 구역(보로) 가운데 가장 빈곤하고 미국 전역에서도 열악한 지역으로 손꼽힌다는 이 지역에서 댄싱인더스트릿은 35년 동안 500회 넘는 거리춤 공연을 축으로 지역 정체성과 자부심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현해왔다. 브롱스의 지역 실정이 30년 전에 비해 많이 호전되는 데 있어 댄싱인더스트릿의 활동이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브롱스는 힙합의 발상지이자 살사가 성행하던 곳이다. 여기서 거리춤 전문 단체가 자리잡을 소지가 엿보인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지역민들과 춤을 함께 함으로써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댄싱인더스트릿의 의지는 오히려 지역의 낙후성 때문에 강화되었을 것 같다. 아무튼 힙합의 발상지에 오래 소재한 단체로서 지하철 안의 힙합 춤과 가장 가까운 댄싱인더스트릿이 IST의 주관 단체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IST의 구성원은 30명이고 발족할 때의 초기 멤버가 열명 남짓이라 한다. IST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힙합 춤꾼들을 무작정 출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6개월 정도 주 1회 강습에 출석한 후 공연에 참여하도록 하며, 출석과 공연에 대해서는 25달러의 수당을 제공한다. 그 가운데 전문 춤꾼이나 안무 지망생을 위해 무용 현장의 인턴쉽과 뉴욕 안팎의 레지던시 기회를 알선하는 사업도 추진해왔다. 지하철 안의 춤꾼을 흡수해서 뉴욕의 여러 지역을 옮겨가며 그들을 시민과 함께 거듭나게 하려는 IST의 활동은 향후 더 조밀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월 14일 오후 뉴욕 브루클린의 마크 모리스 댄스 센터를 방문하였다. 매주 여기서 열리는 IST의 강습 가운데 그날은 리허설을 참관하였다. 그날 IST의 조안무가 준비한 레퍼토리를 IST의 단원들이 다듬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내고 조정하면서 안무해 나가는 모습에서 열린 집단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브루클린의 마크 모리스 댄스 센터는 5층 건물이다. 무용가가 브루클린 요지에 이만한 대형 빌딩을 소유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센터 안은 춤 강습을 받으려는 온갖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날만 해도 모던, 발레, 필라테스, 요가, 가가 등 10개 가량 유료 클래스가 아침 10시부터 밤 9시까지 열리고 있었다. 일요일 휴무를 제외한 6일 내내 센터는 풀가동된다. 이처럼 대형 춤 학원 구실도 겸하는 이 빌딩에서 IST의 강습에도 공간을 내놓는 마크 모리스라는 안무가는 멋져 보인다. 더러 알려졌듯이, 마크 모리스 댄스 센터는 파킨슨병 치유 춤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전세계로 배포해오고 있다. 이와 함께 지역 커뮤니티의 남녀노소 및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해오고 있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지하철 안에서 (불법으로) 춤추는 춤꾼들의 수입은 하루 많게는 200달러를 넘는다. 이 수입으로 가족 생계를 해결하거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는 춤꾼도 있다. 전적으로 승객들의 팁에 의존하는 그들의 수입은 눈물겨운 바가 크다. IST의 어느 단원은 자기도 불법 지하철 춤꾼이었고 이젠 수입이 적어도 안정적인 데에다 꿈을 다듬을 수 있지만, 가족 생계를 해결하기엔 어렵다 한다. 이로 미루어 단속과 IST라는 대안에도 불구하고 뉴욕 지하철 안의 춤이 근절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흑백간의 뿌리깊은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고 생계 유지 수단을 몸으로라도 때워야 하는 나름 절박한 상황이 그들을 지하철 춤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IST는 내부적으로 세계 최대 거리춤 행사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에 맞춰 내실을 기할 장치를 위의 소개처럼 마련하고 있다. 또 하나, 힙합의 파급력이 사실상 대단함에도 주류 예술계가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점에 대해 IST는 비판을 내놓는다. 백인 위주 문화 현장에서 힙합의 (흑인) 문화가 공간 확보 및 교육 측면에서 적지 않은 인종 차별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IST는 행보를 넓혀갈 것이다.
 근 40년 전 클럽에서의 ‘비보이’라는 외침에서 발단한 힙합은 거리로 퍼져나갔다. 그러다 지하철에서 하는 생계 수단이 되었다. 이제 다시 그것을 거리의 공공 예술로 재정립하는 작업이 IST로 진행되고 있다. 지하철 안의 (불법) 활동이 IST라는 합법 프로그램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지하철이 기묘하게도 공공의 춤 대안 공간과 그 춤 양식을 촉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적 사실로서, 문명은 문명마다 시대는 시대마다 새 공연 양식을 낳는다. 그것이 인간의 적응력이자 창조력 아니겠는가. 공공 예술이 장려되는 시대 추세 속에서 우리 무용인들도 창의력을 발휘할 틈새가 주변에 적지 않을 것 같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8. 03.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