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스위스 컨템포러리 댄스 축제인 스텝스는 1998년에 시작하여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춤 축제이다. 스위스의 40여 극장과 도시를 12개의 춤 단체들이 한 달여간(4.12~5.5) 옮겨가며 공연을 하는 것이 여타 축제와의 차별점이다. 한마디로 지역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라고 할까? 이는 문화적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탄탄한 금전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축제를 뒷받침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필자가 3년간 스위스에 거주하며 지켜본 스위스의 각종 문화예술 축제는 다른 유럽에 비해 전반적으로 실험성과 진보적인 성향보다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안정적인 작품들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를 방증하듯 이번 행사에서도 각 나라를 대표할 만한, 더불어 타 축제에서 호평을 받은 안무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주목할 만한 단체로는 한국 컨템포러리 춤의 선두 안무가인 전미숙 (JeonMisook Dance Company), 박우재의 음악작업과 함께 글로벌한 연주가와 댄서들의 이국적인 다양성을 무기로 현대 문명의 이기를 거시적으로 접근하는 벨기에 시디 라비의 이스트맨(Gōteborgsoperans/Danskompani/Eastman), 레바논의 마크맷 (Maqamat Dance theatre)무용단이었다.
특히 마크맷의 〈Beytna〉는 배경이 다른 네 명의 댄서와 네 명의 연주가들이 무대에서 요리과정과 춤 진행의 궤를 같이 하며 공연하였다. 야채를 썰다 춤추고 땀을 닦으며 다시 요리하는 마치 노동과 춤, 일상과 놀이가 공존하는 춤과 삶이 구분되지 않았던 과거를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완성된 레바논식 요리와 술을 관객과 먹고 마시는 이색적이며 축제다운 작품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한국인 최문석의 수려한 움직임과 존재감도 기억할 만하다.
또한 한국을 비롯하여 각종 축제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몽환과 도취의 끝을 보여준 이스라엘의 레브(L-E-V/Sharon Eyal&Gai Behar), 자신의 뿌리에 저항하는 자전적인 얘기에 아프리카 종족적 특성의 움직임과 모던함을 접목한 아프리카 말리의 파소 댄스(Faso Danse Theatre), 현재 떠오르고 있는 한국계 안무가 왕 홍지의 (Compagnie Wang Ramirez)의 무술에 기반한 날렵하면서도 정적인 움직임의 융합이 개성 있었고, 움직임의 반경과 세트를 시각적으로 팽창시켜 다양한 정서적 스펙트럼을 묘사한 〈Everyness〉는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었다.
또한 영국의 스탑갭 댄스(Stopgap Dance Company), 네델란드 댄스시어터(Nederlands DAns Theater2), 독일의 고티에/슈트르가르트 댄스(Gauthier/Theaterhaus Stuttgart), 캐나다의 키드 피봇(Kidd Pivot) 스위스의 신디 반 에커(Cie Greffe/Cindy Can Acker)와 스위스 무용 학교 졸업생들(The swiss Bachelors of Dance)이 함께 했다. 전반적인 축제의 방향은 특별한 주제보다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랍권을 비롯하여 유럽권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춘 단체의 미적 양상을 스위스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배치시켰다는 인상이었다.
다채로운 공연물중 스위스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전미숙 무용단의 〈바우〉는 한적한 작은 도시인 몽테(Monthey)를 시작으로 취리히(Zürich)와 스텍본(Steckborn)에서 공연을 하였다. 필자는 몽테 극장(Théâtre du Crochetan, 4.22)에서 관람하였고 현지인들은 작품의 주 동작인 걸음걸이와 김재덕의 재기 발랄한 음악이 무슨 의미인지를 궁금해 하며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무용단이 미처 예상 못한 앵콜 쇄도와 취리히 극장의 매진 상황이 전미숙 작품에 대한 스위스 관객들의 관심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작품 〈바우〉에서 전미숙은 인사에 담긴 사회적 기호를 통해 인간관계를 조망하고자 한다. 예가 미덕인 우리 사회 정서를 잘 표현한 몸가짐이 바로 인사이다. 특히 윗사람을 대할 때의 공손함은 윤리적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하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안무가는 이와 같은 인사 방식의 다양한 제스처에 내포된 여러 층위의 심리적 긴장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머리에 밥그릇을 이고 종종 걷는 댄서들, 멍석위에서 술잔을 따르는 모습, 찻잔을 기울이는 모습들은 상황은 다르지만 인간관계에서 조심스럽게 예를 표현하는 상징성으로 되새겨진다. 댄서 전체가 차분하지만 일사불란 하게 움직였으며, 특히 임샛별의 안정감과 이주희의 영묘한 분위기가 눈에 띄었다. 세련된 음악, 청, 홍, 황 원색의 강렬한 조명이 오방색의 화려함으로 시각적인 생기를 주었으며, 바지저고리 의상, 멍석, 부채, 술잔 같은 소품들이 한국 고유의 춤으로 각인시키는 요소였다.
작품 〈바우〉에서 전미숙의 전작들과는 다른 안무방식이 필자의 눈에는 다소 생경하다. 안무가의 진보적이며 페미니즘적인 성향, 때론 냉소적이고 내적 서사에 강점을 두었던 안무와는 다른 점이 그러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댄서들의 몸에 대한 안무가의 시선이다. 댄서들의 몸(기호)은 현상적인 몸도 주체적인 몸도 아닌 공동체 성격의 집단적 몸성으로 무대에서 도드라졌다. 여기에 안무가는 사실적인 인사 동작의 형태적 변주에 무엇보다 주력하여 주제적 소재인 몸짓행위를 부각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인사에 내포된 여러 갈래의 내적 함의를 파헤치기보다는 사회적 텍스트로서 작품의 의미를 열어 놓았다.
다음으로 안무가는 의도적으로 한국적인 요소를 차용하였다. 의상, 소품만이 아니라 발 디딤, 구부린 몸통으로 호흡을 수렴하는 동작 그리고 허튼춤 분위기로 쉬어가는 춤사위가 한국적 몸짓을 적극 수용한 그 예이다. 물론 이 작품이 2014년 타리댄스 페스티벌에서 시작, 라반 콘서바토리와 독일의 탄츠메쎄 같은 해외에서 상연되었고 더군다나 스텝스 축제에서는 60여분으로 공연하였기에 한국적인 요소를 유념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작품의 전체적인 색채가 한국적인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좀 더 댄서들이 우리다운 몸짓을 깊이 있게 해주기를 추천한다.
또한 작품의 마지막 부분인 어깻짓으로 흥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좀 더 적극적이거나, 어떤 유기적 연결성을 명확하게 하면 60분의 시간이 다소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전미숙의 안무방식의 변화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피로한 현대춤 관객에게 편안함을 주기엔 충분하다. 이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채울 수 있는 자만이 비워낼 수 있는 자신감 있는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전미숙의 안무방향의 선회는 의미심장하다.
전미숙의 작품 〈바우〉는 간결하고 담백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한국적인 상징성을 주기에 충분한 춤이었다. 또한 댄서들의 단련된 몸에서 풍기는 유연한 절제미, 이로 증폭되는 고요한 긴장감에 스위스 관객들은 매료되었다. 일상에 담긴 우리다운 공동체적 몸짓으로 전미숙만의 문화적 감수성으로 스위스에서 국가의 대표성을 띠고 공연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 춤 공간의 형태지각(Gestalt) 분석과 해석적 지평 가능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스위스에 거주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