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오스트리아 2024 임펄스탄츠(Impuls Tanz) 참관기
손인영_안무가.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오스트리아 빈의 여름은 축제로 온통 들떠 있다. 춤, 음악, 영화 등 저녁이 되면 공연장은 호기심 가득한 관객들로 객석은 매진된다. 여름에 작은 도시 빈은 전 세계 구경꾼들의 도시로 변한다. 이곳에서 열리는 임펄스탄츠(Impuls Tanz)는 1984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매년 여름에 열리고 있다.

임펄츠탄츠는 무용 교육자며 안무가인 이스마일 이보(Ismael Ivo)에 의해 창립되었다. 처음에는 무용 워크숍으로 시작했으나 1988년부터 공연 프로그램이 포함된 댄스 페스티벌로 거듭났다. 이어 레지던시와 장학금 프로그램, 그리고 젊은 안무가를 위한 세션이 새로 들어갔고, 3년 전부터 대중을 위한 워크숍 프로그램까지 추가되면서 한 달 동안 벌어지는 거대한 페스티벌로 발전했다.

세계의 많은 페스티벌들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왕성하게 발전하던 페스티벌도 어느 날 자금 문제로 문을 닫기도 하는데 40년간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임펄스탄츠는 이례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 발전의 근간에는 빈시의 전폭적인 지지와 페스티벌에 대한 시민들의 긍지와 애착이 있다. 이 같은 시민들의 열정은 워크숍 참여 숫자와 공연티켓 판매 액수에서도 드러난다. 2024년 축제에 참여한 관객과 커뮤니티 댄스를 즐긴 대중은 18만 명이었다. 빈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창시자인 이스마엘 이보와 그의 매니저이며 이스마엘 작고 후에 현재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칼 레겐스부르거(Karl Regensburger)의 빛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24년 임펄스탄츠는 7월 11일부터 8월 11일까지 정확히 한 달간 열렸다. 낮에는 실내 워크숍과 리서치, 대중을 위한 야외 워크숍이 열리고, 저녁에는 매일 크고 작은 2~3 작품이 공연된다. 워크숍과 리서치는 아스날(Arsenal) 스튜디오 콤플렉스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곳은 거대한 창고로 임펄스탄츠가 열릴 때만 빌려서 센터로 만들고 페스티벌이 끝나는 동시에 모든 시설이 창고로 되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공연은 빈 시내 곳곳에서 열리며, 실험적인 공연은 조명 없이 낮 시간에 현대미술관인 무목(Mumok)에서 시리즈로 열리고, 젊은 안무자를 위한 공연은 창고 극장에서 밤 11시에 주로 열렸으며, 영상은 필름 뮤지엄에 올려졌다.

페스티벌의 오프닝은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의 설치미술로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도록 계산된 설치 미술에 일반인들이 참여하여 신기함과 생경함으로 기웃거렸다. 어떤 방향으로 걸으라는 지시가 있고 사람들은 지시에 따랐으나 어떤 몸짓으로 걷는지는 본인의 몫이다. 거대한 거울 앞을 걸으면 거울에 걷는 사람의 모습이 왜곡되어 재미있게 보인다든지, 수많은 추가 내려온 공간 사이를 걷는다든지. 몸과 설치미술이 만나 만들어내는 신기한 행위예술이었다.



Deva Schubert 〈Glitch Choir〉



임펄스탄츠의 첫 공연은 젊은 안무가 시리즈([8:tension] Young Choreographers’ Series)였다. 7월 12일 7시 무목에서 베를린 기반의 무용수며 연주자로 활동하는 데바 슈베르트(Deva Schubert)의 작품 〈글리치 합창단〉(Glitch Choir)이었다. 글리치는 왜곡된 이미지나 흔들리는 비디오와 같은 정보의 교란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현상을 아날로그 공간으로 이동했다. 첫 이미지는 두 무용수가 앉아서 미스틱 한 노래를 부르며 시작했다. 공간이 울리는 곳이라 노래가 잘 들렸다. 듀엣이 이루어지다 한 무용수만 움직임을 했는데 무용수의 캐릭터가 아주 독특했다. 거의 즉흥인 듯 온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춤에서 사람의 캐릭터가 잘 드러날 때 그 춤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다시 소리는 이어졌고 두 여자는 거의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다른 입이 막자 소리가 눌려서 들렸다. 호흡과 함께 힘을 주고 후후 불자 소리는 불협화음이 되기도 했다. 입을 맞붙이고 천천히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몸들이 바닥에서 뒹굴었다. 서로 맞붙은 입이 소리를 막아 공간으로 퍼지지 못하고 오히려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노래를 부르자 관객 중 누가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객석 여기저기서 젊은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바로 옆에서 열심히 보던 관객이 갑자기 내 귀 옆에서, 벽 사이에서, 출입구에서, 스텝들 중에서 나와 한 사람씩 노래에 합류했다. 노래는 아련하고 슬픔이 서려있었다. 역사적으로 공공 애도는 주로 여성들이 하는데, 슬픔을 집단적으로 노래하니 공감이 여성들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소리는 울려퍼졌고, 미술관의 벽을 타고 차가운 바닥을 따라 관객들 사이로 흘렀다. 열린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는 프로시니엄 극장 공간과는 다르게 들렸다.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듯, 또는 바로 뒤에서 집단적 슬픔의 소리가 윙윙거렸다. 춤이라기보다 합창에 가까운 공연이었으나 소리의 힘이 관객의 감성을 자극했으며 캐릭터 있는 젊은 무용수의 활약은 기억에 남을 만한 아우라를 만들었다.

12일 8시 30분 필름 뮤지엄에서는 에스테르 살라몬(Eszter Salamon)이 만든 영화인 〈재등장과 좀머스필〉(Reappearance & Sommerspiele)이 상영되었다. 나치에 희생된 무용가와 관련된 역사적인 다큐작품이었다. 독일, 프랑스와 헝가리에서 활동하는 에스테르 살라몬은 필름뿐 아니라 뮤지엄 시리즈로 2개의 듀엣과 솔로 작품을 올렸는데, 나이가 지긋한 무용가지만 필름 뿐 아니라 작품들도 의미가 있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그 외 몇몇 감독들의 영상을 봤는데,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무용으로 한 시간짜리 필름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Clara Furey & Bent Hollow 〈UNARMOURED〉



13일 11시 오덴극장(Odeon)에서 클라라 퓨리와 벤트 홀로우(Clara Furey/Bent Hollow)의 작품 〈무장하지 않는〉(UNARMOURED)을 봤다. 캐나다 출신의 안무자로 프로그램에서 일상적인 사회적 습관과 성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욕망과 마주하며 광대한 내면의 바다로 들어가고자 한다고 했다. 극장으로 들어가니 연기로 가득했다. 안개에 쌓인 무대에서 4명의 남녀 무용수들의 2인무 3인무가 이루어졌는데 주로 허리 움직임이 많으며 한 동작을 긴 시간 반복하는 형태로 동작이 몇 개 없었다. 이어 한 여자 무용수를 두 남자 무용수들이 연체동물을 가지고 놀 듯, 부드럽고 유연하게 3인무를 췄다.





오덴극장(Odeon)



음악은 마치 인도음악과 비슷했으나 전통 인도음악은 아니었다. 무용수들이 무대 앞에서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다 뒤로 몸을 흔들면 들어가거나, 두 여자가 머리를 맞대고 움직이고 남자는 어깨를 맞대고 움직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한 남자 무용수가 중앙에서 요가를 했는데 굉장한 테크닉을 가졌으며 몸이 아주 좋았다.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 나왔으며, 굽힌 한쪽 다리 사이로 머리가 들어갈 정도로 유연성도 좋았다. 세계의 유명한 강사들을 초청하여 워크숍을 하는 임펄스탄츠라 아마도 뛰어난 테크닉을 가진 요가를 보여준 무용수의 강의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봤다. 특별히 안무랄 게 없었던 작품이었으나 마지막에 보인 요가 실력은 과히 평가할 만 했다.



오프닝 렉쳐 〈impressions’24〉



14일 3시에는 워크숍 강사들의 오프닝 렉쳐인 〈impressions’24〉가 아스날에서 있었다. 넓은 스튜디오에 일반인과 무용가들로 객석은 빈틈이 없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은 관객들은 아이들 남편까지 대동하고 나왔다. 강사들은 짧게 본인들의 움직임 스타일을 보여주며 자기소개를 간단히 했는데, 특이한 점은 거의 대부분의 강사가 흑인들이 많았고 스타일도 아프리카 춤이었다. 발레를 위주로 하던 빈에서 어쩌다 흑인 강사들에 열광하게 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강사들은 이미 여러 번 참여한 듯 관객들의 호응이 좋은 경우도 있었다. 자신감과 자기 춤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굉장한 강사들이었다. 움직임 또한 독특하고 흥겨운 춤들이 많았다. 대중을 위한 워크숍 위주로 보여주는 듯 했다. 빈 시민들의 춤에 대한 애정과 호응이 부러웠다.

14일 6시 오덴극장에서 안네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와 로사스(Anne Teresa De Keersmaeker/Rosas)의 렉쳐 퍼포먼스공연이 있었다. 안무가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연처럼 진행했는데 극장은 관객들로 꽉 찼다. 한 예술가의 일생을 작품 의상의 변천사를 통해 조망하는 독특한 공연이었다. 돌아간 분을 기리는 행사를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있는데, 안무가가 직접 나와 자기 춤의 역사를 다큐식으로 의상이라는 하나의 초점에 맞춰 얘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했다.

무대 양쪽과 뒤쪽의 옷걸이 행거에는 옷이 잔뜩 걸려있고 그 뒤쪽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테레사는 첫 공연 때 입었던 작품의상을 들고 당시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아직도 그 의상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했다. 공연에서 슈즈의 중요함도 얘기했다. 연이어 연도순으로 올렸던 작품의 의상과 작품 내용, 그리고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작업할 때 어떤 식으로 움직임을 만들었는지도 설명했다. 동물의 움직임을 보고 만들거나 스토리를 가지고 움직임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작품에서는 발 움직임을 만든 후에 그걸 손 움직임으로 변이시켰다고. 어떤 식으로 구성했는지 움직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어떤 작품은 당시 움직임이 로사스 무용수에 의해 영상으로 나왔고, 테레사는 그걸 똑같이 무대에서 추면서 자기가 느리다는 거 안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관객들 모두가 웃었다. 인간적이었다. 예술가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행사며 관객에게도 삶과 춤의 역사를 본인의 언어로 들으니 역사적인 자리였다. 그러나 공연의 한 형식으로 차용했음에도 자기애가 강한 예술가이어서 인지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4년간의 역사를 얘기하려다 보니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인지 공연이 길어졌다. 지나치게 세세하게 설명을 하다 보니 가져온 의상과 역사는 많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관객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으나 대다수의 관객은 한 길을 살아온 예술가의 삶과 춤에 찬사를 보내며 달변인 테레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Eszter Salamon 〈MONUMENT 0.7: M/OTHERS〉



15일 6시 에스테르 살라몬(Eszter Salamon)의 작품 〈기념물 0.7: 엄마와 딸〉(MONUMENT 0.7: M/OTHERS)이 무목에서 있었다. 에스테르는 베를린과 부다페스트를 오가며 작업하는 안무가로, 영화 제작자며, 음악, 텍스트, 바디움직임 및 액션과 같은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함께 하고 있었다. 에스테르는 기념물 시리즈를 오래전부터 만들고 있는데 그 중 7번째인 이 작품은 모녀관계를 탐구했다. 무목의 싸늘한 바닥에 하얀 댄스플로어가 조그맣게 깔려있고 그 위에 나이가 지긋한 두 분이 검은 옷을 입고 연결된 몸짓으로 누워있었다. 에스테르와 그녀의 어머니였다. 그들은 양손을 잡고 무게 이동을 했다. 서서히 두 사람은 접촉 즉흥을 했는데 아주 천천히 몸을 변화시켰다. 멈춤 없이 유동적이며 지속적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에스테르가 어머니를 보호하면서 형태를 변화해 갔는데, 거기에는 배려와 염려와 보살핌이 있었다. 서로를 향해 움직이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두 사람의 즉흥접촉은 쉬운 형태도 아니고 기억하기도 어려웠을 듯한 움직임이었다. 에스테르의 이끌림에 어머니는 잘 따라주었다. 서로 손과 손이 또는 손과 몸이 연결되었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시간을 지나 미래로 나아가듯. 간혹 어머니의 몸이 불편할 수 있는 장면에서는 에스테르가 어머니의 허리나 다리를 꽉 붙잡았다. 두 여성이 서로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았다, 비슷한 발이 서로 맞물렸고, 머리카락의 질감까지 같았다. 아주 느리게 변화되는 상황을 보면서 마치 우리 자신의 매일매일 일상을 보는 듯했다. 사람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인연은 상황에 따라 서로 변화한다. 마치 음양처럼. 에스테르는 공연 끝에 말하기를 어머니와 나는 매순간 관계가 달랐고, 매 상황에서 서로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작품의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몸을 통해 삶을 봤고, 삶의 역사는 매번 찰나와 인연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의미 있는 작업이었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Soa Ratsifandrhana/Ama Brussels 〈Groove〉



​15일 7시 반에 뮤지엄의 G홀에서 소아 라치판드리하나/아마 브뤼셀(회사)의 작품(Soa Ratsifandrhana/ Ama Brussels)인 〈그로브〉(Groove)가 올려졌다. 벨기에와 마다가스카르를 오가며 작업하는 아프리카 여성의 솔로였다. 솔로 움직임은 마다가스카르의 붉은 섬에서 유래한 19세기 춤인 ‘가시(Afindrafindrao)’라는 춤과 팝핀 댄스와 결합하여 대중적이면서 컨템포러리 한 춤을 추었다. 묶고 풀고의 끊임없는 게임처럼 몸의 유연성과 박력이 관객들을 즐거움의 도가니로 몰았다. 음악 또한 힙합과 일렉트로닉 음악과의 콜라보로 힘이 있으면서도 흥이 넘쳤다. 유럽의 무용계는 점점 현대춤이 대중춤과의 결합을 넓혀가고 있다. 소아의 춤은 장르를 언급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춤이었다.

소품도 무대장치도 없는 박스극장에서 바글거리는 머리가 얼굴을 뒤덮은 한 흑인여성이 앉아 있었다. 앉아서 천천히 독특한 몸짓으로 움직이더니 점점 춤은 박력이 넘쳤다. 일어나자 검은 상의의 어깨부분이 위로 튀어 올라 있는 우스꽝스러운 디자인의 옷을 입고 검은 슈즈를 신은 소아는 관객이 본인을 주시하고 있고 그들의 시선을 받을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툭툭 흔들고, 허리를 튀기며 춤을 추었고, 관객들은 열광했다. 유럽 무용계는 춤이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에 대한 우려도 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무용가들은 개념이나 치밀한 작품보다 감각에 호소하거나 재미있는 춤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무용계는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난감하다. 이 작품은 유럽 40여 곳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런 춤을 관객이 기대한다는 의미이다.



Eszter Salamon 〈dance for nothing〉



​16일 5시 에스테르 살라몬의 솔로 작품 〈dance for nothing〉이 무목에서 있었다. 에스테르의 필름과 작품을 2개째 본다. 에스테르는 존 케이지(John Cage)의 '무에 대한 강의‘(Lecture on Nothing)(1949)의 텍스트를 반복적으로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서 의자에 앉아 움직였다. 존 케이지의 사상을 그대로 투영한 작품으로 마이크에서 들리는 말은 일부러 잘 들리지 않게 에코를 많이 넣었다. 춤과 말과 의미가 전혀 연결이 안 되었으나 관객은 열린 감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스스로 찾기를 원하는 작품이었다.

무슨 말을 반복적으로 거의 1시간가량 쉬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로는 충분히 내용을 알고 말을 했으나 관객은 그 말을 어느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원숭이처럼 두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앉아 가끔 손가락으로 눈 주위에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팔꿈치를 날개처럼 아래위로 흔들기도 하고 양손가락을 양 옆으로 벌려 뒤틀기도 했다. 말을 하면서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 그 상황이 지루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공연자는 공연을 하고 관객은 공연자의 의도를 알 길이 없으나 관객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공연을 본다. 만약 그 공연이 재미가 있었다면, 공연자가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충분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럼 된 거 아닌가?



I’ve Dimchev 〈Metch〉



16일 밤 23시에 빈 외곽의 창고극장에서는 불가리아 출신의 이보 딤체크(I’ve Dimchev)의 공연 〈메치〉(Metch)가 있었다. ‘메치’는 그가 하는 장르의 첫 자를 따서 만든 것이란다. 이보는 시각예술, 춤, 연극, 음악을 총망라하는 토탈 아트형식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공연하고 있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그의 예술은 ‘라이브 예술’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는 명확한 성별이 없고 고정된 정체성이 없는 존재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을 창조로서 풀어낸다고 인터뷰했다. 그는 상품으로서의 신체, 즉 대중 속에서 소비되는 신체를 추구하며 이름이 장르인 독특한 예술가다. 그는 울타리 치기를 거부하며 음악계에서도 성공적인 인물로 콘서트도 자주 여는 싱어송라이터다.

긴 머리의 금발 가발을 쓴 이보는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처럼 등에 이젤을 무겁게 지고 무대에 나타났다. 다리가 아프다며 푸념을 하고, 무대 위에 설치된 영상에서 보이는 글을 관객들이 함께 읽도록 했다. 그 내용은 공연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너는 그걸 왜 하니?”,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니?“ 등으로 관객이 이보에게 질문하고 그는 여기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이보의 답이 너무 우스워 다들 박장대소를 했다. 그는 대단한 탈렌트를 가진 인물이었다. 질문과 대답이 벌어질 때, 빈 화판을 올려 그림을 그리며 작게 노래를 불렀다. 이어 관객들에게 표시가 되어 있는 마이크 3개를 주며 1은 자기가 그리는 그림에 대해 악평하고, 2는 호평을 또 3은 솔직한 자기 생각을 말하라 했다.

마이크의 말소리는 중첩이 되다가 가끔 소리가 명확히 들렸는데, 혹평이 웃겼다. 그는 그럴 때 마다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다 객석을 봤는데, 그 자체가 웃음을 자아냈다. 흥얼거림은 하이 소프라노로 부르기도 하고, 낮은 바리톤이기도 했다. 그는 프로그램에서 자기는 여성이면서 남성이라고 하며 규정되지 않은 정체성을 가졌다 했는데, 그의 몸짓과 노래에서 그런 모습이 드러났다. 노래는 음정 보다 단선율의 말을 하듯 했는데 소리 자체는 아주 좋았다. 그림을 2개 그리는 동안 마이크는 객석을 다 돌았다.

그림을 다 그린 후, 관객의 도움을 받아 자기가 그린 소장 그림들을 하나씩 무대 뒤 구조물에 설치했다. 모두 밝게 채색되었고, 조잡한 인간 형상의 다양한 성적인 표현들의 그림이었다. 무대 장치로서도 너무 좋은 설치미술이었다. 이보는 앞에 앉아 있는 관객에게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 달라며 자기 카메라를 맡기고 막춤을 췄는데 춤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는 작품을 하나씩 이젤에 올려놓고 관객들이 심판하게 했다. ‘예스’라고 하면 오른쪽에 놓고 ‘노’라고 하면 왼쪽에 놓았다. 관객이 선별하는 동안 계속 노래를 불렀다. 목소리가 아주 특이했다. 그는 관객이 좋다고 말한 그림 두 점을 관객에게 옥션 했다. 꼭 살 사람만 손을 들라고 하더니 영상을 찍게 하고 그림의 시작 가를 100유로로 해서 그림 값을 점점 올렸다.

200유로 이상 올라가지 않으니 그림으로는 특별히 뛰어나진 않은 듯 했다. 이어 가발을 벗은 딤체크는 상체와 머리, 얼굴을 흰색 페인트로 칠했다. 페인트가 얼굴을 타고 줄줄 흘렀는데 마치 무당처럼 보였다. 그는 그의 전자 피아노를 이젤에 놓고 우는 듯이 줄줄 흐르는 페인트 범벅의 상태로 노래하며 공연을 끝냈다.​객석은 환호성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박수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춤이 거의 없는 춤 공연, 그러나 너무 재미있고 창의적이라 놀라웠다. 어느 하나 뛰어난 장르가 없었던 토탈아트였으나 어느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었던 보기 드문 장르의 예술이었다. 춤이 없었다고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2025. 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