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트럼프를 만난 춤계(미국) · 생물멸종 고발한 수작(영국)

〈춤웹진〉의 메뉴 ‘프롬 어브르드’란이 강화됩니다. 지난 몇 해 동안의 부진함을 딛고 새 채비를 시작합니다. 글로벌 차원의 춤 활동이 빠르게 강화되는 추세는 관련 소식과 정보들을 전달하는 노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춤웹진〉에서는 미국, 영국, 유럽, 아시아 등 글로벌 춤 현장을 주도하거나 새로이 떠오르는 현상을 주목할 것입니다. 과거와는 아주 다르게 인터넷 시대에 춤 리뷰는 물론 보도 기사가 폭증하고 있으며, 세계의 권위있는 언론에서도 춤 관련 리뷰와 보도를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관측됩니다. 인터넷을 통한 수용이 능사는 아니겠으나 다른 대안이 어려운 실정에서 차선책으로는 유효하겠습니다. 〈춤웹진〉은 해외 기사들을 글자 그대로 옮기는 형태의 수동적인 전재 방식을 배제합니다. 이러한 전제 아래 해당 지역들의 주요 일간지 및 전문지를 인터넷으로 검색 검토하고 이를 한국 독자의 눈으로 선별 정리하여 지속적으로 소개할 계획입니다. 소중한 자료와 뉴스를 나누는 프롬 어브로드를 기대합니다. - 편집자



김채현_춤비평가



[미국]

트럼프 집권 즉시 암초에 직면한 미국 춤계·예술계

2월 중순 작가와 무용가, 시각예술가 등 미국 예술인 463명이 트럼프 정부의 행정 조치에 반발하는 편지를 미국 국립예술기금(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에 보냈다는 보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국립예술기금이 기금지원자들에게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령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 새 조치에 반대하는 예술인들이 NEA에 편지를 보냈다. 새 조치를 보면 지원자들은 DEI(다양성, 공정성, 포용성)를 증진하는 프로그램을 하지 말아야 하고 연방 기금은 젠더 이데올로기를 증진하는 데 쓰이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도 담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어 뉴욕타임스는 “트랜스젠더를 겨냥하는 트럼프에게는 남성과 여성의 두 가지 성만 인정하는 공공정책이 중대하며 이번 대통령령도 이런 방침에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NEA, Constitution Center ⓒAmerican Theatre



NEA는 60년전인 1965년에 미국의 예술을 진흥하는 목적으로 창설된 기관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NEA는 미국 버전의 문화예술진흥원이다. 한국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신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1974년에 NEA를 본따서 설립되었다고 할 만큼 미국 내에서 NEA가 한 역할은 지대하였고, 국제적으로는 국가 예술 진흥 정책의 모범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동안 미국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NEA 기금을 수혜하였고 트럼프가 집권하기 직전 2024년 기준 예산은 2억 달러로 알려진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예술인들은 편지에서 “이번 NEA 조치에 복종한다면 독재를 부양하는 꼴이 될 뿐이다. 트럼프와 그의 충신들은 백인 이외 유색인 예술인을 지원하는 것은 차별이라 할 것이고 여성과 트랜스 예술인에게 기금을 지원하면 젠더 이데올로기를 조장하는 것이라는 속임수도 쓸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항의 편지 이외에도 미국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내 보도로 더러 알려졌듯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는 즉시 워싱턴 DC(백악관이 위치한 곳!)에 소재한 케네디센터(Kennedy Center)의 이사장으로 자신을 추천하고 취임하였다. 현직 대통령이 그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전례는 없었다. 지난 10년간 재임한 센터의 이사장을 해임하고서 취한 조치이다.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이사회 의장과 이사진도 모조리 해임하고 현직 백악관 수석 스탭, 밴스부통령 부인 등 트럼프 행정부 지지자들로 다시 채웠고 임직원들까지 물갈이하였다.

케네디센터는 제2차세계대전 후 세계 질서 주도국으로서 범세계의 예술과 문화를 존중하는 미국의 선의를 표방하는 공연장으로서 오래 모색되었다. 그러다 1963년 암살당한 진보적 민주주의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센터 설립에 기여한 공로를 함께 기려 그 이름을 따서 1971년에 개관하였다. 케네디센터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공연장으로서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 그 외 중소 규모의 여러 극장을 갖춘 대형 공연 단지이며 한국 공연단들이 공연한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케네디센터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초당적 균형을 취해온 것으로 정평이 났었다.



케네디센터, 포토맥강변 ⓒWikipedia



최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케네디센터에서 이제 더 이상 반미 선전(ANTI-AMERICAN PROPAGANDA)은 보여지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어서 트럼프가 여장 남자들의 드래그 공연에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전하였다. 트럼프의 조치에 반발하여 예술인들이 센터에서의 공연을 취소한다는 소식이며 케네디센터 스스로 DEI 정책에 부응하고 있어 벌써부터 올해 센터의 매출액이 반토막이 날 것이라는 전망도 무성하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예술의 후퇴를 불러올 속물주의가 우려된다”는 반응을 전하였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2월 17일 34명의 무용인들이 항의의 표시로 케네디센터를 에워싸고서 피나 바우쉬의 춤을 30분 동안 추었다 한다.


에어리얼댄스로 더 멀리 솟는 춤

2월에 뉴욕타임스는 에어리얼댄스(aerial dance)를 전문으로 하는 이색 단체 밴덜루프(Bandaloop)를 소개하였다. 밴덜루프는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를 거점으로 활동한다. 이 단체의 에어리얼댄스는 서커스와 유사하게 공중을 날되 높은 절벽과 산악지대를 날아다니는 춤으로서 일단 고공(高空)춤으로 풀이된다. 고공춤 전문 단체 밴덜루프 무용단은 올해 2월 중순 ~ 7월 초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레드우드〉(Redwood)의 제작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레드우드〉는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성인 아들이 죽은 어느 여인이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기 회복을 위해 시골을 여행하던 중 어느 숲에서 수목재배가, 레드우드나무(미국삼나무)와 관계하며 자신을 구하는 뮤지컬이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RmQ4u9LUivA

밴덜루프는 1991년 아멜리아 루돌프(Amelia Rudolph)가 창단하였다. 뉴욕타임스는 “아멜리아는 원래 스트릿댄스를 수련하며 대학 재학중 춤과 제의(祭儀; ritual)를 주제로 논문을 썼고 등반가가 되었다. 이런 경험들은 아멜리아가 산꼭대기에서 받은 계시로 이어졌는데, 체육관 벽에 매달리면서 행하는 춤을 만들도록 영감을 받았다. 그후 6년 동안 접촉즉흥과 암벽타기를 결합하여 컨템퍼러리댄스의 한 장르로 에어리얼댄스를 개발하였다”고 소개하였다. 뉴욕타임스는 “밴덜루프의 에어리얼댄스는 1970년 빌딩 벽타기를 선보인 트리샤 브라운, 200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의 조안나 헤이굿, 조 크레이터의 에어리얼댄스에서 그 선구가 찾아진다. 다만 규모와 예술적 수완 면에서 단연 빼어나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에어리얼댄스, Bandaloop ⓒRockridge, CA



하늘로 치솟은 고르지 않은 벽면을 타는 밴덜루프의 고공춤에서 기본 도구는 멜빵, 로프, 자일이며, 뉴욕타임스의 소개에 따르면 “그 춤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로프트(loft)인데, 무중력 성격의 체공 상태를 달성하는 일이다. 춤을 진행하는 표면(벽면)이 높을수록 로프트도 증가한다”. 보도를 보면, 밴덜루프의 고공춤은 아직 춤 기획자들에게서는 잘 수용되지 않으며 기업이나 지자체로부터의 호응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밴덜루프의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밴덜루프 단체는 초창기에는 무용수와 암벽등반가가 절반씩으로 구성되었으나, 지금은 단원 전원이 전문 춤 경력 소지자들이다. 뉴욕타임스는 몇 해 전부터 밴덜루프를 지휘하는 에스트렐라(Melecio Estrella)가 오래 전부터 환경운동에 참여해왔고 사회 행동주의와 춤을 결합하여 밴덜루프는 환경지킴이 커뮤니티 행사, 그린피스 등의 기후 위기 행동 단체 등과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한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cBY6OIpGHq0


마사그레이엄무용단 100주년

2026년은 마사 그레이엄(1894~1991)이 무용가로서 뉴욕에서 자신의 첫 발표회를 가진 100주년이 된다. 그 발표회 이후 모던댄스가 개척되기 시작하였으므로, 그것은 모던댄스 역사를 열은 최초의 발표회라는 의의가 깊다. 마사 그레이엄은 모던댄스의 개척자였고 이후 그가 춤 현장에서 발휘한 영향력이 미국 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 지대했으므로 모던댄스의 대모였다고 말해진다. 그가 죽은 후에도 무용단은 상당한 잡음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이어왔으며 현재 미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무용단이라는 상징성도 갖는다.

2월에 뉴욕타임스는 마사그레이엄무용단이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서 빌딩의 한 층을 스튜디오로 확보하여 이전할 계획이라고 보도하였다. 지금은 맨해튼의 부도심인 웨스트빌리지에 있다. 건물 조감도를 보면 이전할 빌딩 맨 위층이 3개 층으로 개조되어 전체 3000평 규모에 6개의 스튜디오가 들어서서 춤 교육 프로그램이 확충될 예정이다. 공간 개조에 600만달러(85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진다. 마사그레이엄무용단은 무용단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그레이엄100’(GRAHAM 100) 시즌을 그레이엄의 유작 공연과 다큐 제작으로 진행하고 있고, 아카이브 사진집 출간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피나바우쉬재단의 고충


2월에 런던 새들러스웰스극장에서는 피나 바우쉬의 유작 〈Vollmond〉(보름달)가 공연되었다. 사랑, 구애, 제의, 남녀 유희를 묘사하는 〈보름달〉을 가디언은 약간의 코미디를 곁들인 아름다운 작품이라 리뷰하였다. 이 공연을 계기로 피나 바우쉬의 외아들 살로몬 바우쉬의 인터뷰 기사를 더 가디언은 게재하였다. 살로몬은 칠레대학의 문예학 교수 로널드 케이와 바우쉬 사이에 태어났으며, 바우쉬 사후 피나바우쉬재단을 창설하고 현재 이사장으로서 재단을 지휘하고 있다. 원래 법학을 전공하며 인권 변호사를 꿈꾸던 살로몬은 “어머니 피나 바우쉬가 세상을 뜬 지 보름도 안 되어 법학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바우쉬의 작업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피나바우쉬재단을 세웠다”.

바우쉬 사후 지금 컨템퍼러리 안무가 보리스 샤르마츠가 제6대 감독으로 있다. 인터뷰에서 살로몬은 “감독이 바뀌는 등 탄츠테아터부퍼탈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변화로 인해 오히려 재단의 작업은 더 중요해졌다. 신작들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서 재단 활동에서 바우쉬의 작품 비중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자면 바우쉬의 작품에 요구되는 무용수들의 양성도 필수 과업일 것이므로 재단 운영은 말보다 쉽진 않은 일이다. 그런 때문에, 무용가 사후의 재단으로서 피나바우쉬재단의 활동은 아주 활발한 편에 속하며 그 활동은 주목을 끌기 마련이다. 근래에도 바우쉬의 유작들을 주제로 한 연구서들이 출간되었고 재단과 간접적으로 연결된 성과였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바우쉬의 아성을 유지하며 시대 흐름을 선도하는 작업도 고려해야 하는 재단의 고충이 감지되는데, 이는 전세계 어느 무용단이나 직면할 법한 고충이기도 할 것이다.


니진스키의 끊임없는 호명

영국 언론 매체들의 춤 리뷰나 기사들에서는 영국 국내뿐 아니라 호주와 캐나다의 춤 활동을 대상으로 한 것들을 접하게 된다. 여기서 영국과 영연방을 함께 묶는 인식이 감지된다. 뉴욕타임스가 대체로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국내에 국한해서 춤 리뷰나 기사를 게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번 2월에도 가디언은 호주발레단(The Australian Ballet, 멜버른 소재)이 호주에서 올린 〈니진스키〉 리뷰를 게재하였다. 존 뉴마이어(1939~ )의 2000년도 안무작으로서, 멜버른에서 2월 하순에 공연되고 4월에 시드니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니진스키〉는 니진스키가 스위스 생모리츠의 요양원에 입원한 후 제공한 그의 마지막 공연 현장에서 막을 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공연에 대해 가디언의 리뷰는 한 예술가의 광기를 멋부리지 않고 그려낸 초상으로서, 자기를 불태우면서도 열정적이며 대담하게 퀴어적인 발레라 평한다. 이처럼 유럽 춤계에서 니진스키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봄의 제전, Dewey Dell ⓒSouthbank Centre



그러한 열정은 니진스키와 스트라빈스키를 수시로 호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니진스키는 살아 있다. 지난 1월 가디언 지면에서는 런던 사우스뱅크센터에서 공연된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이 리뷰되었다. 이탈리아의 비보이 단체 듀이델(Dewey Dell)이 새 버전의 〈봄의 제전〉을 제시하여 별점 4개의 주목을 받았다. 듀이델의 공연에서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이 나오기 전에 오프닝 서주로 새 작곡 음악이 삽입되었다. 생명의 열림에서 시작하여 〈봄의 제전〉 원작에 내포된 성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가운데 듀이델의 버전은 거기서 더 나아갔다. “〈봄의 제전〉 원작의 희생 제물 이야기는 이 버전에서 자기 목적을 위해 자연을 희생시키는 호모 사피엔스로 끝난다. 우리가 살피고 약탈하고 화학물질을 공중에 뿌려대듯이. 인간들은 일어서고 리더들을 타도하며 권력 투쟁에 열중한다. 동족근성과 반란의 끊임없는 순환. 듀이델의 공연이 고압적이며 솜씨 없는 공연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혀 아니다. 가물대는 음악과 합이 맞는 공연은 아련 몽롱하고 불가사의하며 상상력이 놀랍도록 풍부하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WcpbZJD7v0


생물 멸종의 기후 위기를 성찰한 대단한 공연

NDT(Nederlands Dance Theater)가 2월에 영국 맨체스터에서 올린 〈Figures in Extinction〉(멸종하는 군상들)이 주목을 끌었다. 영국 권위 일간 가디언에 2개의 리뷰가 연달아 실리고 이번 공연작이 받은 5개 만점의 별점을 평균하면 4.5개이다. 가디언은 또한 공연 전부터 공동안무자들을 인터뷰하여 장문의 기사로 소개하였다. 상당히 이례적일 만큼의 주목. NDT에서 객원 안무한 크리스털 파이트(Crystal Pite)와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의 공동 안무작으로서 기후 위기가 주제이다. 맨체스터(맨유로 알려진 그곳)에서 전체 공연은 3부작으로 전개되었다. 4년 전에 파이트의 안무로 1막이 시작되어 그후 2막이 맥버니의 안무로 올려지고, 이번에 두 사람 공동안무의 3막이 1, 2막과 함께 올려지는 3부작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음은 가디언의 리뷰, 기사들에 담긴 〈멸종하는 군상들〉이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2Pa50yqzM5Q

〈멸종하는 군상들〉의 제1막은 20세기에 멸종하기 시작한 종들을 부각시킨다. 동물뿐 아니라 빙하와 강들까지. 휘파람새로부터 마코앵무새 등 멸종한 생물들을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해설 음성을 따라 유령처럼 출몰하고 마치 백과사전을 보는 듯하다. 치타의 해골, 움직이지 못하는 개구리, 미국인 15%가 멸종하는 게 없으므로 기후 위기를 부인한다는 수치도 등장한다. 이제는 실종한 동물들을 인간의 몸에서 유추해서 공감을 일으킨다. 여기서 NDT 단원들은 길게 휩쓸거나 탄탄하게 펼치는 특정 움직임, 무수한 동물 형상 등 움직임의 조직과 질감을 무엇이든 능란하게 수용해서 인상적인 기량을 과시하였다. 제1막은 상실한 자연을 위한 슬픈 기도로 다가온다.



멸종하는 군상들, NDT(factory international)



제2막에서는 인간이 그려지며, 제2막은 근대 이후 호모 사피엔스의 관찰록이다. 정장 차림의 인간들이 의자에 앉았고 긴급한 일들이 벌어지며 전화기를 들고 얼어붙은 모습들이다. 해설 음성으로 펼쳐지는 치밀한 주장들이 움직임으로 구현된다. 동물원에서 생기 없는 무리들을 보는 사람처럼 어느 소녀가 ‘여자가 움직이네’라고 소리치자 무대 장면은 뇌에 대한 정신신경과학 강론으로 바뀐다. 문화, 철학, 생태학의 물음들이 뇌의 작용과 결부된다. 좌뇌와 우뇌의 비교, 기술적 세세 사항과 폭넓은 감정이입의 비교 그리고 상상력과 속임수 능력을 담당하는 대뇌 전두엽, 인간이 사회를 창설해온 방식들이 거론될 동안 디스토피아의 분위기가 스며든다. 그리고 물음이 던져진다. 우리 인간성에서 타고나는 것은 무엇인가? 타고난 자연 본능을 따르면 인간은 몰락할 것인가? 제2막의 듀엣 부분은 공감, 다정함, 지지, 한결같은 마음이 있는 한 우리 모두의 불행한 운명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제3막의 주제는 레퀴엠으로서 죽음을 더 깊숙이 파고든다. 죽은이의 병상을 둘러싸고 친족들이 립싱크로 애도한다. 재즈 풍의 왈츠 반주가 울리고 인간 해체의 단계를 말하는 해설 음성에 따라 작별을 고하는 친족들의 모습은 불쾌감을 안기고 당황스럽다. 제3막은 죽음과 시간 관념, 산자와 죽은자의 관계 그리고 양자의 연속성에서 연유하는 어렴풋한 희망을 그려낸다. 모차르트, 포레, 쉬니트케, 아이스 스파이스의 음악이 폭넓게 사용되는 가운데 우리 인간 역시 치타나 독화살개구리 같은 모든 산것들처럼 물질이라는 것을 일깨우며 인식 체계를 동요시킨다. 1막에 등장한 치타 해골, 개구리도 다시 등장한다. 자연계의 몸들은 수풀 땅속의 균체들처럼 서로 엮인 덩어리로서 하나 되어 숨쉬고 연결되어 있다. 〈멸종하는 군상들〉은 고생대 이래 조상대대로 연결된 것들, 또 커뮤니티 공동체에 대한 깊은 믿음을 그려내며 희망을 본다.(공연 이전 인터뷰에서 공동안무자들은 제3막에서 ‘죽음이 일종의 실패인가’ ‘우리가 삶에서 신비를 배제한다면, 또 죽은이를 하찮게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의 물음이 던져진다고 밝혔다.)

〈멸종하는 군상들〉은 인간과 지구 행성 차원에서 멸종 개념을 철학적으로 접근하였다. 인간이 조장한 기후 변화, 그것이 지구 행성에 불러온 결과를 매우 풍부한 춤을 기반으로 절박한 간절함과 아울러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로 제시하였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극한으로 밀어붙여지고, 집단의 움직임은 갑자기 솔로나 쓰라린 듀엣으로 바뀌다가 멈춤으로 분해되며, 전체적으로 엮인 짜임새가 뚜렷하고 다양하게 변주되며 매우 아름답다. 또한 무대에서 군상들은 비통함과 유머, 공포, 침묵, 안도를 오가는 모습들이고, 19세기 화가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나 의학 다큐의 한 순간을 그림으로 만들면서 몸들은 표현적이며 감동을 부른다.

파이트(1970~ )는 캐나다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의 프랑크푸르트발레단 단원을 거쳐 캐나다와 독일, 영국에서 많은 안무작들을 발표하였다. 현대 관료제의 서투른 양상, 글로벌 차원의 외교, 집단 이주 등 현대 사회를 포착, 형상화하는 데 적극적이다. 맥버니(1957~ )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힘을 강조하는 영국 배우로서 극단 콩플리시테의 예술감독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5. 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