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춤 국제교류가 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끼리의 교류에서 벗어나 유럽과 중남미 등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고, 축제간 교류도 늘어나고 있으며, 스튜디오와 레지던시 공간을 확보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춤 전용극장을 설립, 더욱 공격적인 국제교류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평자가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참가한 5개의 춤 관련 축제와 플랫폼은 이 같은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는 요충지였다. 타이페이에서 열린 Stray Birds Dance Platform(SBDP), 요코하마에서 열린 동아시아댄스플랫폼(HOTPOT)과 요코하마공연예술미팅(YPAM), 아키타국제무용제 ‘ODORU AKITA’에서 확인한 아시아 춤 국제교류의 흐름을 진단해 본다.
2025 제9회 ‘ODORU AKITA’
아키타국제무용제 ‘ODORU AKITA’가 열린 소극장 Art Box Oroshimachi 극장 모습, 예술감독 Santa Yamakawa |
99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극장 내부) |
첫날 공연 로비 풍경 |
축제가 끝난 후 참가 아티스트들을 위한 파티 |
2026년에 10주년을 맞는 ‘ODORU AKITA(춤추는 아키타)’는 2월 7일~ 9일 눈이 수북이 쌓인 아키타시에서 개최되었다. 2023년에는 가을 시즌에 열렸으나 규모가 큰 다른 축제와 개최 시기가 겹쳐 다수의 해외 게스트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25년부터는 개최 일정을 2월로 바꾸었다.
올해 공연은 새로 오픈한 소극장 Art Box Oroshimachi에서 열렸다. 99석의 객석과 분장실, 사무실, 로비 공간을 갖춘 이 극장은 ’ODORU AKITA‘의 예술감독인 Santa Yamakawa가 주인이다. 그는 ‘ODORU AKITA’를 개최하면서 2년 전에 레지던시 예술가들을 위한 스튜디오와 게스트룸을 따로 마련한데 이어 올해는 전용극장까지 오픈했다.
‘ODORU AKITA’는 매해 주목할 만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여타 국제 무용축제와의 차별성을 살리고, 아시아 춤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올해 새로운 극장 개관으로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실제로 2023년 스튜디오와 게스트룸을 오픈하면서 일본 안무가 Shimojima와 인도네시아안무가 Hariyanto의 협업으로 〈Jap/Vanese〉를 제작해 축제에서 초연했고, 이 작품은 아키타에서 전승되는 사자춤과 말춤,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토속문화가 밑바탕이 된, 다문화적 요소가 스며든 컨템퍼러리댄스로서의 차별성이 돋보였었다.
여기에 새 극장이 더해지면서 ‘ODORU AKITA’는 올해 5월에는 한국의 SIDance와 일본의 SAI 댄스 페스티벌을 연계한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을 시도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국제교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제9회 ‘ODORU AKITA’는 타이완, 이탈리아, 라오스, 한국을 포함한 4개국 안무가들의 7개 작품이 이틀 동안에 걸쳐 선보였다. 그러나 일본에서 개최되는 국제 축제인 데도 일본 안무가들의 작품은 한 편도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절반이 넘는 4개 작품이 초청되었다.
지난해에는 축제 예산 1억2천만원 중 3분의 2는 일본 문화청으로부터 지원받았고 모자라는 4천만원은 Yamakawa 예술감독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수입으로 충당했으나 올해는 문화청으로부터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카와 예술감독은 홍콩, 싱가포르, 마카오, 한국, 일본에서 7명의 international 게스트를 초청했다.
내년이면 10주년을 맞는 지역의 국제무용축제라고 해도 안정된 공공 지원금 없이 축제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AKITA는 일본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Baku Ishii, 부토의 창시자인 Tatsumi Hijikata가 태어난 곳이다. 2016년 ‘ODORU AKITA’가 처음 시작할 당시에도 유명 무용가 태어난 고장에서 국제 무용축제를 갖는 의미가 크게 부각되었었다. 두 아티스트 모두 국제적인 활동을 통해 일본의 무용을 알린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공연작품 안무가 중에서 Tatsumi Hijikata Memorial Award 수상자를 선정해 그 연계성을 살려가고 있었다. 올해 이 상의 수상자는 한국의 안무가 서정빈. 그녀는 지난해 이 축제에서 공연했던 작품 〈There was no room for food〉로 수상했다.
서정빈 〈Postponed〉 |
Fanglao Dance Company(라오스)의 Noutnapha Soydala 안무 〈Phuying〉 |
Choomna Company의 김요셉 안무 〈Chang-gwi-da!〉 |
Hung Dance (타이완)의 LAI Hung-chung 안무 〈Push and Pull〉 |
아키타시에서 춤전용극장의 개관은 축제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 특히 문화예술 관계자나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극장의 개관과 이곳에서 열리는 국제 무용축제 현장은 TV 방송국의 현지 취재를 곁들인 30분 길이의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어 소개되었다. 해외에서 초청된 레지던시 안무가들, 관객들, 축제 관계자들의 인터뷰도 함께 방송되었다.
야마카와 예술감독의 ‘ODORU AKITA’에 대한 열정은 그가 오랫동안 살았던 도쿄를 떠나 고향인 Akita로 이사 후 온전하게 정착을 결심하고, 축제 시작과 함께 스튜디오, 게스트룸, 극장을 하나씩 만들어 가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개최하는 축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은 열망도 있지만, 유명 무용가들이 태어난 고장의 지역 주민들이 무용예술을 더욱 자주 접하고 이 고장을 무용이 중심이 되는 지역으로 만들고 싶어 어렵게 결정했다.”
‘ODORU AKITA’는 2026년 10주년을 기념하는 일정을 일찌감치 발표했다. Yamakawa 감독은 내년 2월 5일부터 7일까지, 부토와 한국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비롯해 3개 섹션으로 나누어진 15개의 공연 프로그램을 편성해 놓고 있었다.
1953년 아키타시에서 출생한 야마카와 감독은 극단을 운영하며 극작가, 연출가, 배우로서 활약하다 부토 평론가가 되었고, 「백조의 호수 전설 ~코마키 마사히데와 발레의 시대~」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ODORU AKITA’를 통해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그는 “아키타는 무용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20여개의 발레 학원이 있지만 전문 무용단은 단 한 곳도 없다. 그러나 일본 무용계에 큰 족적을 남긴 두 명의 예술가가 태어난 곳이다. 축제는 이들의 무용적인 업적을 기리고 이를 통해 다음 세대의 무용가들이 배출되도록 하고 싶다. 곧 축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을 통한 지역 활성화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소극장과 스튜디오, 게스트룸 시설 비용을 모두 개인 사비로 충당했다.
Yokohama Dance Collection, HOTPOT, Yokohama 공연예술미팅
요코하마댄스콜렉션 메인 공연장인 Red Brick Werehouse 입구에 설치된 축제 홍보물 |
HOTPOT에 참가한 홍콩 안무가들과의 대화 광경 |
요코하마댄스콜렉션(Yokohama Dance Collection, YDC)은 2024년 30회째를 맞았다. YDC는 30주년을 기념해 홍콩과 일본, 한국의 컨템퍼러리댄스를 모아 소개하는 동아시아댄스플랫폼(HOTPOT)을 함께 개최했다.
2024년 YDC는 11월 28일부터 시작된 2개의 안무 경연대회(19세 미만 일본 안무가들의 작품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가 끝난 후 12월 8일까지, 이전 수상자들의 작품과 협업작업 공연들을 이어갔고, 12월 12일부터 15일까지 HOTPOT 선정 작품들을 공연했다.
또한 이 기간 중에 일본의 공연예술 마켓인 요코하마공연예술미팅(YPAM, 11월 29일-12월 15일)을 연계시켜 그 어느 해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HOTPOT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홍콩의 시티컨템퍼러리댄스페스티벌(CCDF), 일본의 요코하마댄스컬렉션(Yokohama Dance Collection)이 매년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동아시아 3국의 무용 교류 플랫폼으로 올해는 한국의 SIDance가 9월에 부산에서 열리는 부산공연예술마켓과 연계해 개최할 예정이다.
YDC는 1996년 안무 경연대회로 시작해 일본의 안무가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컨템퍼러리댄스를 위한 국제적인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안무경연대회를 통해 지금까지 약 500명의 결선 진출자를 배출했으며, 이들 안무가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작품을 발전시켜왔다.
올해 YDC 안무경연대회에는 13개국 및 일본 각 지역에서 총 153개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영상 및 서류 심사를 거쳐 18개 그룹(Competition I: 8개 그룹, Competition II: 10명의 아티스트)이 선정되었고 대상 격인 심사위원상은 한국의 김나의, 조현도가 공동 안무한 〈Nonfiction〉이 받았다.
YDC의 안무경연대회는 지난 30년 동안 안무가, 무용수 및 여타 예술가들이 춤의 구성, 연출 및 기술을 탐구하고, 새로운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에 도전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으며, 예술적 대화와 교류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인큐베이팅과 함께 유통 기회를 동시에 부여해 레퍼토리 작업과 안무가로서의 경쟁력을 차근차근 축적하도록 하고 있는, 곧 경연을 통해 예술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안무가들에게 직접적으로 창작 지원금을 쥐어주는 대신 작업할 공간과 극장, 홍보를 포함한 제작 전반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운영시스템은 분명 우리나라 축제가 본받을 만하다.
Takeuchi Azusa 〈kara-da-kara〉 |
〈교토 상상・왈츠〉에서 Matsumoto Nanako의 춤 |
올해 HOTPOT 쇼케이스에는 홍콩 4개 작품, 한국 3개 작품, 일본 4개 작품이 선보였다.
Takeuchi Azusa 안무한 〈kara-da-kara〉는 안무가가 2019년에 프랑스에서 초연한 솔로 작품으로 극장 천장에 매달린 불 켜진 수 십 개의 대형 전구를 활용한 조명의 변화를 연결한 안무가의 움직임 매칭을 지켜보는 공연이었다.
Team Chiipro의 마츠모토 나나코와 니시모토 켄고가 공동 리서치한 솔로 작품 〈교토 상상・왈츠〉는 19세기 말 근대화를 위해 일본에 이입된 서양 문화인 왈츠의 수용과 교토라는 장소를 연계한 작품으로 Matsumoto Nanako의 감각적인 춤이 눈길을 끌었다.
Pijin Neji가 안무 출연한 〈Stream〉은 춤보다는 퍼포먼스에 가까울 정도로 다채로웠고 리얼했다. 코로나로 인해 무인화된 거리, 생계를 위한 쓰레기 줍기, 음악, 오브제의 사용 등 무대 위에서는 60분 동안 파격적인 시도가 이어졌다.
Yokoyama Ayanork가 안무 연출 출연까지 한 〈幽憬〉은 록 밴드 SuiseiNoboAz의 라이브 연주와 5명 댄서들의 춤이 맞물린 공연으로 음악에서는 일본의 전통적인 정서가 춤에서는 스트리트 댄스까지 포함 된 현대적인 움직임들이 흥미롭게 혼합되어 있었다.
Justyne Li 〈Does My Body Represent My Whole Self〉 |
KT Yau Ka-hei 〈The moment 刻〉 |
4명 일본 안무가들의 작품 모두가 50분 이상의 장편으로 선보인데 반해 홍콩과 한국은 소품 위주의 작품으로 하루 공연을 편성되었다. 특히 홍콩은 출품작 4편 중 세 편이 솔로 작품이었고 다른 한 편의 출연자도 단 두 명으로, 한 편의 솔로 작품을 빼고 두 편 모두 많은 무용수들이 출연한 한국과 대조를 이루었다.
안무를 맡은 Chan Wai Lok과 안무・멀티미디어&사운드 아트를 맡은 Larry Shuen이 직접 출연까지 한 〈Stolen Ears; Muffled Bell〉은 춤과 음악의 관계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탐구한 작품이었다. 소리와 시각이 연결되고, 무브먼트를 통해 음악을 지각하는,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였다.
Justyne Li가 안무하고 남성 무용수 Sam Yuen가 춤춘 〈Does My Body Represent My Whole Self〉는 제목인 '내 몸은 나의 모든 것을 나타내고 있는가'에서 연상되듯 기교적인 테크닉을 기반으로 한 움직임 조합이 볼 만했다. 남성 무용수의 기교적인 동작을 다양하게 변주시켜 춤추는 댄서의 감성을 끄집어낸 감각적인 안무도 빼어났다. 발레와 모던 댄스를 베이스로 한 Sam Yuen의 춤은 안무가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데 일조했다.
Woo Yat Hei가 안무, 출연한 솔로 작품 〈Traffik Is-Land〉는 주행하는 차량을 제어하거나 보행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교통로에 설치되는 구역인 교통섬을 생활을 위한 실질적인 공간과 가상의 공간으로 상징화시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KT Yau Ka-hei 안무의 〈The moment 刻〉은 자신의 누드를 보여주면서 무대 위의 수동적인 개체에 머무르지 않는 신체의 존재를 탐구했다. 컨템퍼러리댄스에 있어서의 퍼포머와 관객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구성이 주목을 끌었다.
금배섭 〈Worn out〉 |
서연수 〈집 속의 집〉 |
전미숙 〈Bow〉 |
독일 Richard Siegal과 일본체육과학대학 소속 학생 70명이 출연한 〈Collective Action〉 |
Reisa Shimojima 〈닥쳐 자궁〉 |
한국팀의 첫 공연 작품은 춤판야무의 금배섭 안무 〈Worn out〉이었다. 〈Worn out〉은 춤판야무가 한국 사회에서 고독하게 사는 인간을 테마로 만든 5개 연작 작품 중 하나이다. 공허한 공간에서 전개하는, 저렴한 일회용 비닐 봉투 오브제와 남자의 듀오는 따뜻한 감성으로 관객들을 저격,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Mujer무용단 서연수 안무(강요찬 연출)의 〈집 속의 집〉은 완급을 조절해 가며 조율해 낸 댄서들의 움직임 조합이 무대를 압도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가 어우러진 춤과 댄서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융합된 군무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전미숙 무용단의 〈Bow〉는 한국의 전통적인 생활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부채와 멍석을 활용하면서 머리를 낮추고 상반신을 기울이는 인사 동작에서 추출한 움직임을 세밀하게 결합시킨 작품. 조명과 오브제와 춤이 결합해 만드는 시각적 비주얼도 강렬했다.
평자는 2017년 홍콩, 2018년 서울, 2020년 요코하마와 서울, 2023년 홍콩까지 연속으로 HOTPOT 현장을 지켜본 후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간 휴지기가 있었지만 HOTPOT이 동아시아의 춤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네트워킹 확대와 함께 레퍼토리 구축이라는 성과를 얻은 반면에, 세계 춤 시장에서의 경쟁력이란 측면에서는 그 한계가 있음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의 무용 강국들이 2년마다 댄스 플랫폼을 개최하는 데 비해 매해 개최되는 HOTPOT은 질 높은 작품의 선정에 분명히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라며 “모든 출품작들이 다 좋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수의 작품들은 평균점 이상을 훨씬 뛰어넘어야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이번 2023년 플랫폼에서도 참가 작품들은 그 편차가 매우 컸다. 지금과 같은 편차가 계속 이어진다면 정말 HOTPOT은 이제 격년제 개최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될지도 모른다”라며 우려를 표시했었다.
2024년 HOTPOT에서 만난 3개국 11편의 작품들은 평균점 이상을 상회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 보면 분명히 아쉬움은 있었지만, 무엇보다 작품의 소재와 콘셉트의 다양성 면에서는 컨템퍼러리댄스가 갖는 매력을 한껏 음미할 수 있었다.
YDC 기간과 맞물려 열린 YPAM에서 공연된 독일의 Richard Siegal과 일본체육과학대학 소속 학생 70명이 출연한 〈Collective Action〉은 새로운 공연의 유형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 공연은 크리스 솔티가 개발한 안무 알고리즘과 카스텐 니콜라이의 음악과 높은 천장에 설치된 레이저 조명을 결합해 만든 융복합 작업으로 테크놀로지와 움직임이 결합된 집단무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
한국의 국립현대무용단과 일본의 KEDAGORO 컴퍼니, 가나카와극장이 공동 제작한 〈닥쳐 자궁〉(안무_Reisa Shimojima)은 가나카와 스튜디오 극장에서 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4회 공연되었다.
〈닥쳐 자궁〉은 2021년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우리가족출입금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30분 길이로 초연된 작품. 어머니의 자궁과 생명의 탄생, 그리고 가족이란 연결고리가 갖는 선명한 주제와 춤과 음악, 연기의 절묘한 접합과 댄서들의 집중력으로 호평을 받았었다.
안무자와 국립현대무용단이 60분으로 늘린 이번 작업은 공연 시간이 배로 늘어나면서 군무 외에도 북, 긴 장대와 백색 천, 대형 깃발 등 시각적 오브제가 추가되면서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어냈지만, 작품의 밀도나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는 초연 작품에 미치지 못했다.
2024 타이완 Stray Birds Dance Platform
다른 나라의 춤 계 흐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축제나 마켓, 댄스플랫폼, 정부의 지원을 받는 무용 전용극장이나 유명 안무가들이 포진한 컴퍼니의 단독 공연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 중 댄스 플랫폼(Dance Platform)은 자국의 무용 작품과 안무가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무용 관계자들의 네트워킹을 확장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축제나 마켓의 역할이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춤 경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6년 전에 출범한 타이완의 Stray Birds Dance Platform(SBDP)은 Taiwan Dance Platform 과 달리 타이완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나라의 무용 작품들이 많이 소개된다는 점에서, 특히 아시아권이 아닌 유럽 여러 나라의 작품들이 더 많이 선별된다는 점에서 여타 댄스 플랫 폼과 분명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초청된 국제 게스트들에 의한 셀렉션 결과 발표 광경 |
SBDP는 초청된 국제 게스트들이 초청작품을 발표하는 순서로 마무리된다 |
TOB GROUP(한국)의 김민 안무 〈Are You Guilty?〉 |
homas Noone 〈After the Party〉 |
Pablo Girolami 〈T.R.I.P.O.F.O.B.I.A.〉 |
Laura Daelemans 〈Tales to Disturb〉 |
Kwame ASAFO-ADJEI 〈Family Honour〉 |
2024년 12월 6일부터 8일까지 타이완 Traditional Theater Center에서 열린 제6회 SBDP는 2023년 때보다 훨씬 많은 유럽 안무가들의 작품과 높아진 수준으로 초청된 International 게스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Showcase 섹션에 6개, Selection A B C D섹션에 12개 등 모두 18개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이들 중 타이완 안무가들의 작품은 6개에 불과했다. 타이완을 제외한 아시아의 출품작들은 대한민국 안무가들의 작품 세 편과 일본 안무가의 작품 한 편이었다. 나머지 8개는 유럽 6개국(스페인·이탈리아·네덜란드·프랑스·영국·벨기에) 안무가들의 작품이었다.
스페인 안무가 Thomas Noone 의 〈After the Party〉는 댄서가 들고 함께 추는 고무 인형을 활용한 기발한 상상력이 압권이었다. 때론 또 다른 한 명의 무용수가 되고 때론 움직임을 확장하는 오브제로 활용되는 인형의 창조적인 활용은 그 자체로 공연을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두 명의 무용수가 출연한 벨기에 안무가 Laura Daelemans의 〈Tales to Disturb〉는 키 큰 남성 무용수와 유난히 키가 작은 여성 무용수의 체격적인 대비와 연기력을 동반한 강렬한 표현력, 특이한 움직임 조합과 파트너십이 특히 돋보였다.
이탈리아 안무가 Pablo Girolami가 안무한 〈T.R.I.P.O.F.O.B.I.A.〉는 두 명 남성 무용수의 노출이 심한 몸과 적극적인 젠더 감수성의 수용으로 여타 작품과 확연한 차별성을 보였다.
TOB GROUP(한국) 김민 안무의 〈Are You Guilty?〉는 흰색 테이블을 이용한 3명 무용수들의 완급을 조절하는 움직임 구성과 에너지 배분, 몸을 이용한 접촉에서 발생하는 사운드를 음악의 확장으로까지 이어간 안무가의 뛰어난 감각과 세밀한 구성력이 압권이었다.
SBDP는 2017년, 타이페이시를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타이완의 안무가 LAI Hung-chung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Stray Birds, 철새들은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한 지역에서 짧은 시간 머무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SBDP는 많은 지역 안무가들의 self–realization, 스스로 인식해서 창조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들의 집합체가 되길 희망 한다“라고 플랫폼의 분명한 지향점을 밝혔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제휴하는 국제 무용 축제를 통해, 또 전 세계의 안무가들을 대상으로 한 공식적인 공모를 통해 우수 작품을 선별한다”라고 운용 방법을 털어놓았다.
공연 마지막 프로그램인 Award Ceremony 때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초청된 게스트들이 함께 작업할 안무가와 축제에서 공연할 작품을 선정해 발표했다. 가장 많은 콜을 받은 〈After the Party〉는 무려 다섯 군데의 축제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이 작품은 오는 7월 제주국제무용제를 통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SBDP의 예술감독인 LAI Hung-chung은 타이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가오슝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은 타이페이국립예술대학을 졸업했다. 자신이 만든 컴퍼니 Hung Dance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SBDP는 결국 댄스 컴퍼니가 운영 주체인 셈이다. 실제로 SBDP를 개최하면서 Hung Dance 의 안무가와 댄서들의 해외 공연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다.
예술감독인 LAI Hung-chung은 2024년에 4월에 대구시립무용단의 객원 안무가로 참여했고, 올해 ‘ODORU AKITA’에서도 신작을 발표했다. Hung Dance의 안무가 CHENG I-han은 SBDP에서 자신의 솔로 작품 〈Miss Shape〉를 발표, 2024년 1월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열린 공연과 올해 7월에 열리는 제3회 제주국제무용제에도 초청받았다.
시작한지 비록 6년 밖에 안 되었지만 향후 Stray Birds Dance Platform은 아시아에서 유럽 안무가들의 다양하고 질 높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장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