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발레의 전설 타계(러시아)·전쟁트라우마 극복하는 춤(미국)
김채현_춤비평가

[러시아]

20세기 발레의 전설 유리 그리가로비치 타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안무가 가운데 한 사람인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98세를 일기로 5월 19일 타계하였다고 볼쇼이발레단이 밝혔다. 그가 임종을 맞은 지역이나 사인은 발표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하였다. 그리가로비치의 대표작은 〈스파르타쿠스〉가 꼽히며 그는 20세기 발레의 전설, 소비에트 발레 발전사에서 획을 그은 안무가로 회자되기도 한다. 소비에트 발레는 1917년 10월 혁명 이후 1991년까지 러시아를 지배한 소비에트(소련)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발레를 지칭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가디언 등 주요 언론들은 그의 타계 소식을 장문의 기사로 보도하였다.

기사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5/23/arts/dance/yuri-grigorivich-dead.html
   ​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5/may/19/yuri-grigorovich-obituary



유리 그리가로비치 ⓒMariinsky Theatre



유리 그리가로비치(1927~2025)는 1946년 레닌그라드안무학교를 졸업한 즉시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 1950년대에 안무의 재질을 보여 1964년 볼쇼이발레단 수석안무가로 초빙 임명된 이래 1995년까지 예술감독으로 재임하였다. 마린스키발레단 시절 그는 〈석화〉(石花), 〈사랑의 전설〉에서 참신한 춤 구성과 다양한 무드의 표출로 성공을 거두고 이를 발판으로 볼쇼이발레단의 초빙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볼쇼이발레단에서 그는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자신의 버전으로 다듬은 바 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모두 그의 부음 소식에서 〈스파르타쿠스〉를 맨먼저 자세히 소개하는 시각을 보였다. 〈스파르타쿠스〉가 그의 창작과 삶에서 결정적이었다는 말이다. 가디언은 “그리가로비치의 초기 안무작들을 소련의 비평가들은 클래식 테크닉을 잘 활용하지 않고 캐릭터댄스를 강조하는 낡은 드라마발레(1920년대부터 소비에트 이데올로기를 구현한 발레)와 결별하는 것으로 환영하였다. 그런 안무의 전형이 1968년 초연작 〈스파르타쿠스〉였다. 주역들은 춤으로써 독백을 끌어가는 등 내용이 풍부한 독무를 시전하였다. 스파르타쿠스 역을 맡은 블라디미르 바실리에프, 그의 처 프리기아 역의 에카테리나 막시모바가 출연한 공연은 볼쇼이의 간판 작품이 되었다. 이런 출연자를 확보할 수 있은 것은 그리가로비치에게 행운이었고, 로마 군단 지휘관으로서 악한 역을 맡은 마리스 리에파 역시 바실리에프에 못지않은 번뜩임을 펼쳤다. 이후 두 사람을 능가할 출연진은 나오지 않았다”고 소개하였다. 뉴욕타임스는 “〈스파르타쿠스〉는 소비에트 발레의 전환점이었고, 60년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춤 작품 중 하나였다. 이 작품의 가장 현저한 차별성으로는 춤추는 스타일이었으며, 그 스타일은 장대하며 대담하였고 스케일과 정서는 또한 서사적이었다”고 평하였다.



스파르타쿠스 ⓒmelmoth



그리가로비치는 1995년까지 장장 31년간 재임할 동안 소련 발레에 일대 전환을 이루었다. 가디언에 의하면 “그의 마지막 창작 작업은 “〈황금시대〉로서 원래 대본을 포기하고 소비에트 이데올로기를 구현한 대본을 택해서 그의 부인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와 이렉 무하메도프가 주역을 맡도록 하였다. 공연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러시아 국내외에서 공연되었다. 하지만 이 무렵 볼쇼이발레단 내의 기강은 기력을 잃었으며 마야 플리세츠카야, 바실리에프, 리에파 같은 중견 단원들이 그리가로비치의 방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뉴욕타임스 또한 엇비슷하게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에 볼쇼이 내부에서 갖가지 권력 투쟁이 벌어지던 와중에서 그리가로비치는 창작력이 고갈되었을 뿐더러 볼쇼이발레단에 다른 안무가를 용납하지 않는 거만하며 완고한 독재자라는 비난에 직면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후 수년간 당시 소련이 붕괴해서 러시아로 재탄생하는 시기에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볼쇼이의 경연진과 충돌하였고 1995년 볼쇼이극장의 예술감독으로 바실리에프가 임명되자 볼쇼이발레단을 사임하였다. 당시 그의 사임은 20세기 발레의 전설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어서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의 충격은 상당한 바 있었다. 가디언은 “그리가로비치는 2008년에 볼쇼이의 초청으로 복귀하였고 2025년까지 안무 작업을 지속하였다”고 전한다. 한편 그와 25년 동안 볼쇼이발레단에 함께 적을 두었던 명발레리나 마야 플리세츠카야는 자신의 육필 자서전에서 볼쇼이발레단에서 그리가로비치가 보였던 오류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관심을 모으기도 하였다. 그렇더라도 뉴욕타임스가 이번 기사에서 그를 미하일 포킨 이래 가장 유능한 러시아 안무가라 평한 점은 흔들리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전쟁 트라우마 극복에 춤이 나서다


뉴욕 맨해튼의 허드슨강변에 박물관으로 변신해 정박해 있는 인트레피드 항공모함에서 춤치유 작업이 한창이다. 이 항공모함은 2차대전에서 활약하다 퇴역했고, 항공모함에서의 작업이니만치 참전 군인 및 그 가족들을 치유 대상으로 한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에서 미국 해병대원으로 근무한 로먼 바카가 제대후 부인과 함께 Exit12무용단을 결성해서 지금까지 활동해왔다고 보도하였다. 군 복무에서의 경험을 공연하는 이 무용단은 처음에 바카 자신의 전쟁 트라우마를 춤으로 다루는 방편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다른 퇴역 군인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것을 돕는 활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사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5/19/arts/dance/boot-camp-ballet-roman-baca.html



로먼 바카 ⓒbiggayhudsonvalley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최근 몇 주 퇴역군인들과 그 가족들은 항공모함에서 나이와 신체 능력을 불문하고 곧 있을 공연에 대비하여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공연에서는 여러 가지 즉흥 실습들이 활용될 예정이다. 공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준비 과정이다. 바카는 워크숍을 군사훈련에서 받은 상처를 교정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어떤 명령들에 즉각 반응해서 폭력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군사 훈련은 병사들의 정체성을 바꿔놓는다. 군사훈련은 옷이나 머리 모양처럼 어떤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모조리 벗겨버린 다음 신체 단련과 반복 동작, 두뇌-몸의 기민한 접속을 통해 병사들을 바꿔놓는다.”

바카는 17살 때 춤을 시작하여 힙합, 재즈, 발레를 섭렵하고 코네티컷의 발레 컨서버토리에서 장학금을 받고 졸업 후 여러 군소 발레단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남성 무용수에 대해 갖는 부정적 인식을 바꾸리라 믿고 2000년도에 미 해병대에 입대하였다. 훈련소는 거칠었고 미 국내에서 예비역으로 복무하다 소속 부대와 함께 2001년에는 아프가니스탄, 2005년에는 이라크에 배치되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현지에서는 초현실주의 같은 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부대 철장 안에서는 스테이크 아이스크림 세탁 서비스가 제공되고 철장 바깥에서는 즉석 폭발 장치, 방아쇠를 당겨야 할지 어쩔지 하는 순간적인 결심, 그리고 동료들의 폭파 같은 무질서와 테러가 난무하였다. 이라크 통역관이 이라크 춤 비디오를 갖다주었고 어느 통역관은 브레이크 댄서였다. 재미나고 근사한 일이긴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전쟁터였다.

제대 당시 그는 풀이 죽었고 화가 가득했으며 정서는 꽉 막혀있었다. 그래도 자신을 책임지려고 애썼다. 해병대에서의 일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무용단을 결성했으며, 그것이 그가 자신을 찾는 길이었다. 자기 소대의 해병대원이 자살한 2011년에 춤워크숍을 시작하였다. 아웃리치 예술을 공부하고 국무성 후원으로 이라크에서 춤 워크숍을 진행한 적도 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이 전쟁터에서는 해병대였다가 이제는 멀쩡한 인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전쟁터에서의 경험을 깨우치려고 애쓴다.

바카의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 베트남전(1975년에 끝난 전쟁)에 참전한 어느 퇴역군인은 군대 관련 일을 수십년 동안 회피하려고 애썼다. 전쟁터의 죄책감과 수치심이 엄청나서 자신을 퇴역군인으로 여기지 않은 그는 베트남에서 자신을 상실했다고 하였다. 그는 40년 동안 약물을 복용했고 자살을 시도했으며 그때 일을 거두어버리려고 했다. 또한 정신분열적 과대망상 진단을 내린 정신과의사는 치유될 수 없는 미치광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에 퇴역군인들을 위한 심신 건강 센터인 은신처에 입소하고서부터 전시의 체험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글로 적었으며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하였다. 병사 작가들이라는 글쓰기 프로그램 직후 그는 Exit12의 워크숍을 만났다.

바카는 신병훈련소에서와 같이 온갖 동작을 동원해서 참가자들에게 “죽여라”고 고함을 지를 것을 명령하고 군사 훈련 순서를 안무한다. 참가자들은 총검으로 찌르기와 베기 같은 동사에 재빠르게 반응하는데, 오래 사용하지 않았던 훈련 결과는 근육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워크숍에서 실습은 쉬운 편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던 동작을 즉흥 기법으로 춤으로 전환시키며, 어느 실습에서는 여러 가지 놀이가 등장한다. 참가자들이 자기 이름에 어울리는 춤을 만들어보고 동물인 척하며 리더가 하는 대로 자기 사연을 펼치는 대장놀이를 지도한다. 어느 세션에서는 참가자들이 각자의 사연을 펼치며 몸으로 지어보도록 지시한다. 그러자 전쟁터로 되돌아가서 몸동작이 그동안 파묻혔던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Exit12무용단 공연 ⓒstackup



베트남전의 그 퇴역 군인은 “내가 그 현장에 있다고 느끼며 비명을 지르며 넋을 잃는다. 그러나 1969년 그때 전쟁터가 아니며 나는 안전하며 실제 위험도 없고 집에 가서 악몽을 꾸지 않고 잠잘 수 있었다. 워크숍은 참가자를 전선의 경험으로부터 스스로 분리시켜서 그 경험을 직시하게 하는데, 그것이 큰 도음이 되었다”고 말한다. 바카는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가 제시한 서사적 정체성의 대화를 통해 나의 정체성과 내 사연을 들려주기 시작하고 상대방에게서도 똑같은 것을 경청한다. 신뢰를 쌓는 최선의 길은 놀이, 웃음, 기쁨이다”고 소개한다.

Exit12는 인트레피드 항공모함에서 2012년에 처음 공연하였고 첫 워크숍은 2023년에 열었다. 해병대에 7년간 복무하다 아프가니스탄에도 파병되었던 어느 퇴역 여군 참가자는 “나는 내가 느끼는 치유를 오랫동안 말해왔지만 말하는 것이 곧 치유는 못 된다. 내 몸이 무엇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춤은 두렵다. 그러나 춤은 내가 나 자신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라크에 2년간 파병되고 8년간 복무한 어느 여성 참가자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워크숍에 참가할 때 실수가 잦았고 근심과 침울, 편두통을 앓았다. 내 동작들은 나를 닮아서 날카로웠다. 이것이 나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실습은 자기 확신과 동시에 트라우마를 배출해주었다. 춤추는 방법을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느끼는 대로 춤추고 자신 내면의 것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내버려두어라. 나는 퇴역군인이며 퇴역군인들은 나를 이해할 것이다. 서로들 춤을 모아들이는 것은 임무를 함께 완성하는 것과 같으며 춤을 행한다는 것은 우리 사연들을 세상과 함께 나누는 일이다.”


트럼프의 압력이 가중되는 미국 문화예술계

지난 3월호에 〈춤웹진〉 프롬어브로드란에 다음의 기사가 소개된 바 있다. “국내 보도로 더러 알려졌듯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는 즉시 워싱턴 DC(백악관이 위치한 곳!)에 소재한 케네디센터(Kennedy Center)의 이사장으로 자신을 추천하고 취임하였다. 현직 대통령이 그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전례는 없었다. 지난 10년간 재임한 센터의 이사장을 해임하고서 취한 조치이다.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이사회 의장과 이사진도 모조리 해임하고 현직 백악관 수석 스탭, 밴스부통령 부인 등 트럼프 행정부 지지자들로 다시 채웠고 임직원들까지 물갈이하였다.”



케네디센터, 포토맥강변 ⓒWikipedia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5월 중순 케네디센터의 새 의장이 센터의 지연되는 운영과 결손이 범죄 수준이라며 연방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것임을 밝혔다고 보도하였다. 보도는 이사장인 트럼프 및 이사진들이 백악관에서 가진 만찬 자리에서 새 의장이 지난 2년간 센터의 예산에서 2600만 달러 규모의 가짜 유령 수입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지난 2월 트럼프가 해임한 전임 의장은 자신이 떠날 때 “케네디센터 재정은 건전했고 수지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자유로운 표현을 위한 등대로서 그리고 누구든지 속할 수 있는 장소로서 봉사해 왔다. 적자를 보전하는 기금으로 1천만 달러가 유보액으로 남겨져 있었다. 케네디센터 운영과 관련한 그릇된 주장으로 매우 성가시다”고 하였다.

기사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5/19/theater/trump-kennedy-center-season.html

뉴욕타임스는 “케네디센터 같은 비영리 예술기관들은 자선 기금과 입장권 판매에 의존하며 계획이 못 미치면 적자가 나곤 한다. 10여년 전에 메트로폴리탄오페라도 200만 달러의 적자를 낸 바 있다”고 덧붙였다. 보도는 또한 케네디센터의 이번 댄스 시즌에 NYCB, ABT, 시투트가르트발레단, 마사그레이엄무용단, 트리샤 브라운 등이 공연할 예정인 데 반해 앨빈에일리무용단은 제외되었다고 전한다. 앨빈에일리무용단은 최정상의 흑인 무용단으로서 역사도 깊다. 최근 몇 해 동안 여기서 계속 공연해온 앨빈에일리무용단이 제외된 것은 트럼프의 인종 차별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우려를 낳고 있다.

한편, 미국 국립예술기금(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의 중견 직원들이 5월 들어 집단적으로 사표를 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하였다. 5월 초 트럼프가 공개한 2026 예산안에서는 국방과 국토안보 예산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의 지출을 22%(1,630억 달러)나 삭감했는데 여기에 이 기관들의 폐쇄가 포함됐다. 2017년도에도 트럼프는 취임하는 즉시 NEA와 NEH(국립인문기금)를 폐쇄하려 하였으나 의회가 저지한 바 있다. 두 기관의 집단 사표는 앞으로 더 이어질 전망이고 미국 전역에서 공공 예술기관들은 연방 기금 없이 운영할 방도를 짜내기에 고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 혹자는 21세기 미국에 암흑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사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5/05/arts/national-endowment-for-the-arts-resignations.html



NEA, ConstitutionCenter ⓒAmerican Theatre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5. 6.
사진제공_Mariinsky Theatre, melmoth, biggayhudsonvalley, stackup, Wikipedia, American Theatre *춤웹진

select count(*) as count from breed_connected where ip = '216.73.216.120'


Table './dance/breed_connected' is marked as crashed and should be repa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