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패션동작 춤 · 급상승하는 팝 안무가 · 외디푸스 가문의 발레
김채현_춤비평가

[미국]

패션 동작을 공연예술로 이끈 화제작

패션쇼 장면을 삽입하는 춤을 간혹 보았다. 그런 춤을 보고 나서는 허전한 감이 들곤 했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겠는지. 아무튼, 보깅(voguing)은 패션쇼 모델들의 동작 가운데 잡지 보그에 등장한 포즈들을 응용해서 춤 동작으로 뿌리내린 것이다. 1970년대 뉴욕 맨해튼 할렘에서 성소수자들이 시작한 춤이다. 비백인 무용가 트래즐 해럴(Trajal Harrell)은 보깅을 포스트모던댄스와 접목한 춤으로 이름이 났었고 컨템퍼러리댄스 계열에서도 주목을 받아온 터다. 2019년부터 5년간 취리히의 샤우슈필하우스 감독을 역임한 후 취리히댄스앙상블을 창단하였다. 그런 그가 올 9월에 맨해튼 공연장 파크애비뉴아모리에서 보깅을 응용한 작품을 올렸다. 공연작은 〈Monkey Off My Back or the Cat's Meow〉(몽키; 원숭이가 내 등짝에서 떨어지거나 최고가 되거나). 3년 전 초연되었고, 다음은 매체들에 실린 공연 보도 내용이다.



몽키 무대 전경, 트래즐 해럴 ⓒ페이스북



춤전문 인터넷 매체 피요르드가 묘사한 무대 정경은 이러하다. 공연에는 댄서와 배우 17명이 출연하였다. “기다란 좌석들이 양쪽으로 배열된 중간에 직사각형 무대가 있다. 패션위크에서처럼 고급 패셔니스타들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을 모방한 광경도 연출된다. 바닥에는 60년대에 입 생 로랑의 패션 라인에 영감을 준 몽드리앙의 기하학적 무늬가 보인다. 길쭉한 가죽 섹셔널 소파들 옆에 높은 정사각형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아래에는 아이들이 짓고 꾸미는 요새를 연상시키는 특이한 물건들이 있다. 비닐 풍선 말 한 마리가 공기로 부풀려져 테이블 다리 하나에 묶여 서 있다.” 피요르드는 “무대 가장자리를 당당하게 누비는 출연자들의 행렬이 공연을 관통한다. 그들은 패션쇼 런웨이에서 봄 직한 엉덩이를 흔들며 높은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걷는다. 댄서들은 LGBTQ, 흑인, 남미계 볼룸 문화에서 유래하였고 유연한 어깨와 접힌 골반을 나긋나긋하게 하는 스타일인 보깅을 펼친다. 각 댄서들은 남미 연인들의 크로스드레싱의 솜씨, 절뚝대기, 태연을 가장한 우아함 등을 저마다의 형태로 표현한다”고 공연의 움직임을 소개하였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해럴의 작업은 자유분방하며 재미있되 가슴 아프며 정치적이다. 출연자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어떤 민속춤을 추는데, 이는 해럴이 아테네에서 동지 때 보았던 그리스 춤에서 영감을 받고 상상했음 직하다. 어느 장면에서는 미국 독립선언서가 낭송된다.”

공연에는 굳이 패션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 꼼데가르송이나 월마트에서 사 입을 만한 옷들이 등장한다. 해럴은 20년 전부터 몽드리앙 바닥의 이 작품을 만들 생각을 품었다 한다. 피요르드는 “공연에서 주목할 부분은 다양한 체크 무늬의 깅엄 드레스를 자랑하는 패셔니스타들이 소파에다 몸을 던지고선 핸드헬드 마이크를 쥐고 미국 독립선언서를 번갈아 낭송하는 장면이다. 이는 지금 시대의 언론 자유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언급으로 적절해 보이는 한편으로 해럴이 2024년 그간 감독으로 일한 극장을 떠나 독립 활동을 한 개인적 선언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트래즐 해럴, 그는 미국 할렘 출신이다 ⓒ유나이티드스테이츠아티스츠



뉴욕타임스는 해럴이 춤 안무에서 장기간 수많은 경계를 넘나들며 저명해진 한 사람이자 날카로운 지성과 공연 활력을 갖춘 예술가로 자리매김했고 이제 어느 기관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예술가로 돌아왔다고 하였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해럴은 “개념무용가들이 구식이라 여길 감정 표현에 있어 오히려 무궁무진한 방법이 있으며 요즘 사람들은 그걸 갈망한다”고 말한다. 현대의 일상적 화두가 된 패션을 소재로 관객과 교감하기 위하여 공연에서는 출연자들이 한 사람씩 나와 관객과 시선을 마주치며 각별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한다. 그럼으로써 해럴은 “이런 순간들이 우리들에게 살과 피, 근육, 영혼을 불어넣어서는 다음 날 아침 ‘그래, 내가 여기 있구나’라고 느끼도록 해 준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고 말한다.

기사 링크
https://fjordreview.com/blogs/all/house-of-trajal-harrell
https://www.nytimes.com/2025/09/06/arts/dance/trajal-harrell-armory-interview.html
해럴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fnl-sQzv8I
https://betatrajal.org/home.html
https://www.youtube.com/watch?v=C4bYI149q-8


뉴욕의 발전소, 가슴설레는 변신

덴마크 출신 안무가 메테 잉바르첸은 성행위에서 몸이 다뤄지는 방식을 자신의 벗은 몸을 등장시켜서 다룬 솔로 공연 〈69가지 자세〉에서 평등주의 및 몸 자세의 가변성을 환기한 바 있고 몇 해 전 국내 시댄스 행사에서도 초청 소개된 바 있다. 잉바르첸의 이런 일련의 작업은 몸이 사회정치적 각축장이라는 점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조명을 받아왔었다. 그런 그녀가 이번 9월 뉴욕에서 〈Skatepark〉(스케이트보드장)라는 공연을 해서 다소 엉뚱하며 그래서 춤과 움직임을 논제로 삼는 그간의 작업으로부터 급선회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짐작까지 들게 한다.

이 공연은 2023년 브뤼셀의 어느 옥외 스케이트보드장에서 초연된 작업을 이번에는 뉴욕의 옥내 공연장으로 옮긴 것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잉바르첸은 “경사로와 레일을 갖추어 재현된 스케이트보드장에서 스케이터들은 트릭을 시도하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질주로를 가로지르고, 하나가 되어 원을 그린다. 안무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고안되었고 스케이터들이 진행하는 동안 구조가 점차 드러나다시피 실제로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에서 잉바르첸은 “스케이트보딩은 공공장소에서 예의와 우선통행권이라는 규율을 기본으로 하고 바로 거기서 사회구성원 각자 자율적인 정치에 임하며 공동체, 즉 평등하며 유동적인 공동체를 일구어가는 존재 방식이 포착되었기에 그 이면의 즐거운 저항 에너지를 담고 싶었다”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예술발전소 그랜드홀 ⓒPowerhouse Arts



〈스케이트보드장〉은 2023년 브루클린에서 개장한 Powerhouse Arts(예술발전소) 공간에서 올려졌다. 가동이 정지된 발전소를 개조한 곳으로 개장하고부터 예술공방에 머물던 기능을 이번에 공연장으로 새 단장하였다고 한다. 핵심 공연장 구실을 하는 그랜드홀은 건평이 무려 600평으로 꽤 쓸 만한 공간으로 보이고 뉴욕의 유력한 공연장으로 발돋움하지 않을까 전망된다. 뉴욕 그리고 미국 전체에서 공연예술의 아성인 맨해튼 지역을 브루클린은 마주보고 있다. 새 단장을 계기로 올 12월까지 ‘파워하우스: 인터내셔널’ 축제가 열리는데, 잉바르첸이 개막작으로 테이프를 끊고 파리오페라발레단, 이스라엘의 호페쉬 셱터, 그리스의 크리스토스 파파도풀로스, 브라질의 캐롤리나 비앙키, 윌리엄 켄트리지, 아마리 마셜 등의 중량급 공연예술작이 올려질 예정이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9/15/arts/dance/powerhouse-festival-mette-ingvartsen-david-binder.html
https://www.nytimes.com/2025/06/25/arts/powerhouse-festival-gowanus.html
파워하우스: 인터내셔널 링크
https://festival.powerhousearts.org/


대중 지향의 발레 안무가 아르피노 100주년, 기념하는 이유

1990년대 중반까지 뉴욕은 물론, 아마도 미국의 3대 발레단이라면 뉴욕 시티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조프리 발레단이었을 것이고, 조프리발레단은 1995년 시카고로 이전하였다. 1956년 로버트 조프리와 발레단(조프리발레단)을 창단하고 상주 안무가가 된 제랄드 아르피노(1923~2008)는 50년 동안 약 50편의 발레를 만들었으며, 조프리발레단 레퍼토리에서 아르피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아르피노 100주년을 기념하여 2년 간의 준비 끝에 9월30일부터 2주간 뉴욕 조이스극장에서 아르피노댄스페스티벌이 열린다. 1962년부터 1986년까지 만든 7편의 작품을 2개 프로그램에 걸쳐 선보이는 행사다.



Light Rain, 제랄드 아르피노 ⓒWMPhotos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르피노는 인기와 생산성을 겸비했지만,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로부터 그다지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의 스타일이 매끄럽고, 키치하며, 경박하다고 여러 차례 비판받았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비평가 클라이브 반스는 그를 옹호하였고,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다재다능한 안무가 그룹에 속한다”고 결론지었다. 아르피노는, 다시 하는 말이지만, 대중적 인기와 생산력으로 관객을 즐겁게 하였다. 뉴욕타임스 비평가 안나 키셀고프는 “아르피노의 발레 방식이 발레 초심자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아르피노의 춤은 베트남전쟁, 대항문화, 영성, 로큰롤, 갈구하는 욕망 등 현대적 소재를 다루면서 에너지와 젊음이 넘쳤고 작품들은 발레 바깥의 세상을 지향하였다”고 하였다. 뉴욕타임스는 “젊은 시절 모던댄스를 공부한 아르피노는 무용수들이 고전발레의 제한을 넘어 바닥과 등, 엉덩이를 활용해서 실감나게 움직일 것을 격려했고, 다리 벌려 앉기 자세, 큰 점프, 그리고 하이 레그익스텐션을 좋아했다. 스튜디오에서 그는 무용수들에게 ‘자(zah)를 달라!’고 열심히 권했다는데, 그가 만들어낸 이 단어는 생동감, 상호 유대, 그리고 헌신의 조합을 의미하였다”고 그의 남다른 점을 소개하였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9/22/arts/dance/gerald-arpino-festival-joyce-theater.html


팝뮤직 안무가 로비 블루의 대반전

뉴욕타임스의 춤기사들 가운데 스트릿댄스나 뮤직비디오의 안무 비중이 높아가는 추세다. 단순 기사가 아니라 비평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기사들을 보면 미국 춤계의 생태계가 변동하고 있음이 뚜렷이 감지된다. 뉴욕타임스는 9월에 로비 블루가 에미상(뛰어난 안무 부문)과 엠티비 비디오뮤직어워드를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는 레이디 가가와 함께 〈Abracadabra〉(아브라카다브라: 수리수리마수리)를 추었고 랩아티스트 가수 도치의 곡들을 위해 안무하였다. 그는 올해 25살이고, 그간 블루는 위 두 사람을 비롯 FKA twigs, 테이트 맥레이 같은 뮤지션을 위해서도 안무하였다. 또한 머라이어 캐리, 테일러 스위프트, 올리비아 로드리고, 찰리 XCX 등 팝아티스트들과 춤추었다.

뉴욕타임스는 블루는 음악을 움직임으로 변환하는 데 있어 중심의 가수뿐만 아니라 그 가수를 둘러싼 댄서 그룹을 위해서도 초점을 맞추어 안무에 충만감이 있으며, 그의 세계에서는 누구든 댄스 스타라고 그의 강점을 소개한다. 그의 안무에서는 정교하면서도 꺾여진 몸들은 찬찬하게 지속되는 리듬과 엮인다. 또한 어색하며 곤란한 동작이라도 오히려 이국적 분위기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가 동원하는 디테일한 움직임들은 무궁무진해 보인다고 평한다. 뉴욕타임스는 “블루는 재즈춤 안무의 대가 밥 포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블루는 춤을 공부하는 어릴 적부터 안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이라고 배웠다고 한다. 그는 ‘동작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언가를 전달할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방법이다’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그는 댄서로 출발해서 팝아티스트들의 안무를 짜기 시작하면서 심한 압박감에 눌려 알콜 중독에 빠졌다. 그러다 재활, 알코올 중독 치료를 거친 후, 그는 집착을 포기하고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다. 집착을 끊을 그즈음 블루에게 갑자기 요청이 쏟아지고 말 그대로 반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9/10/arts/dance/robbie-blue-choreography-doechii.html
로비 블루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vBynw9Isr28
https://www.youtube.com/watch?v=7YcUskmAr7M&t=34s
https://www.youtube.com/watch?v=riCP9x31Kuk&list=RDriCP9x31Kuk&start_radio=1
https://www.youtube.com/watch?v=IwzF26o0AuU&list=RDIwzF26o0AuU&start_radio=1


일본 전통 고전춤과 발레의 크로스오버

1970년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할복(割腹) 자살을 감행하여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을 비롯 노년층에서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는 천황제를 지지하는 등으로 정치적으로는 극우적 성향을 띠어 경계를 요하는 인물로 분류된다. 그는 소설 〈금각사〉(金閣寺)로 대표되는 특히 아주 탐미주의적인 경향으로 뛰어난 문학 재능을 인정받았다. 심지어 우리나라 작가가 그의 작품을 표절했다 하여 10년 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미시마 유키오의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를 뉴욕의 재팬소사이어티가 9월부터 진행한다고 보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기념 행사는 미시마의 여러 작품들을 주로 무대화한 시리즈로 열린다. 개막작으로는 〈금각사〉가 1인극으로 올려졌다. 이어 올려진 〈비단 북〉은 미시마가 일본 고전 무용극 노(能)의 전문가로서 16세기의 작품을 현대판으로 개작한 것이다. 이번에 올려진 〈비단 북〉은 미시마의 노 버전에 현대성을 더해서 춤의 여지를 한층 강화한 버전으로 만들었다 한다. 클래식 발레를 전공한 여성 출연자가 안무를 맡은 이 공연은 노(能)의 전통적인 구성 원칙, 즉 느린 시작, 멈춤, 빠른 결말(서파급·序破急)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인무이다(16세기의 원래 〈비단 북〉도 이인무였고 줄거리도 이번과 유사하다). 공연에서 극장 청소부 노인이 어느 무용수의 연습을 지켜본다. 무용수가 노인을 유인하여 함께 춤추도록 하는데, 노인은 어리석게도 그녀의 춤을 따라 하려 하지만, 공연은 노인의 창피스러움보다는 노인이 그녀보다 마음은 더 젊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마지막에 노인은 걸레를 들고 춤추며 팝송에 몸을 맡긴다. 미시마의 〈비단 북〉은 말하자면 현대 버전의 노로서 공연되었다. 한국 독자로서는, 미시마 유키오의 행사보다는, 92살의 일본 전통춤 노배우와 50살 아래인 댄서가 춤에서 한 무대를 이루는 크로스오버, 즉 일본 고전춤과 발레의 결합이 낳는 효과에 더 관심이 끌린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5/09/01/arts/dance/japan-society-yukio-mishima-centennial.html


[영국]

춤 재활로 이어진 무용가의 교통사고

마크 브루는 호주 출신으로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레 무용수로 활동하던 중 만취 운전자의 트럭이 자신의 차를 들이받아 목의 척수가 손상되어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사고 당시 그는 20살이었고 지금은 48살이다. 그 당시 그는 죽음의 문턱을 수차 드나들었고 호주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재활원을 나온 후 뉴욕에서 발레 수업을 받으며 춤을 재발견하였고(무용가가 재발견하는 춤은 무엇일까?), 인피니티무용단, 액시스, 캔두코 무용단 등에서 춤과 안무를 펼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 폐막식전에 출연한 바 있다. 그는 벨기에 출신 안무가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와 협업하여 자신의 교통사고를 담은 프로젝트 〈An Accident / A Life〉(어느 사고/어느 인생)을 공연하였다. 브루 혼자만의 출연으로 진행되는 이 공연을 소개한 가디언의 기사를 요약한다.



An Accident, 마크 브루 - 시디 셰르카위 ⓒ새들러스웰스



〈어느 사고〉는 삶을 다시 찾는 이야기이다. 공연의 대부분 그는 바닥에 누워 상체로 형태를 만들고 팔을 이용해서 몸을 일으켜 무대를 돌아다니며, 마지막 5분 동안에만 휠체어를 사용한다. 브루는 "휠체어 도움 없이 장면에서 장면으로 이동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꽤 힘든 일"이라 한다. 그는 또한 장애인 예술가에 대한 관객의 인식에 도전하는 데 관심이 크다. "관객이 들어왔을 때, 저를 모르거나 이 이야기와 작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대에서 저를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여길지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덕분에 그는 더 창의적이고 적응력 있게 행동할 수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대로 될 필요는 없다." 브루는 단 한 번도 부정을 수긍한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남자아이니까 안 된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춤수업을 끝까지 들었다. 브루는 2008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자기 무용단 마크브루컴퍼니를 설립해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재활에 헌신하는 예술인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재활한 사례로 값져 보인다.

이번 〈어느 사고〉 공연을 협업 제작한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1976~ )는, 가디언에 의하면, 이번 가을만 해도 자기 작품 9편이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 벨기에 세드라베의 경연대회에서 보깅과 힙합 등을 섞은 솔로로 수상한 이래 여러 경연대회와 극장들에서 자기 작업을 보여왔었다. 지금은 세드라베의 안무가이기도 하다. 몇해 전 공연한 〈Vlaemsch(Chez Moi)〉(플라망언어: 나의 것)에서 그는 자신의 벨기에적 정체성을 탐문하면서, 가디언에 의하면, 벨기에의 실상을 솔직히 드러내는 면모를 보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우리는 식민 지배 세력이고 우리에게 매우 추악한 과거가 있다. 〈Vlaemsch〉에서 우리는 고통을 마주하였으면 한다. 무대는 어려운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25/sep/24/a-drunk-driver-hit-our-car-my-three-friends-died-and-i-began-a-fight-for-my-life-and-my-ballet-career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5/sep/16/sidi-larbi-cherkaoui-interview-vlaemsch-chez-moi-sadlers-wells
마크 브루 링크
https://www.marcbrew.com/


웨인 맥그리거 발레가 그려낸 외디푸스 일가의 비극

영국의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1970~ )가 2006년 30대 중반 나이에 영국 로열발레단의 상주 안무가로 임명되었을 때 당시 영국 춤계가 술렁였고 세계 발레계에서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발레를 수련했거나 안무한 경력이 전무하고 다만 현대무용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던 맥그리거에게 더욱이 로열발레단이 자청해서 그런 직책을 맡겼던 것은 로열발레단 내에서도 일종의 대모험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다음해에 맥그리거는 컨템퍼러리발레 〈크로마〉(색감)로 답하였고, 로열발레단에 새 피를 수혈하기를 의도했던 발레단 경연진의 용단(勇斷)에 일단 부응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그는 로열발레단의 상주 안무가로 있으면서 컨템퍼러리발레와 자기 작업을 병행해왔다. 유럽과 미국의 많은 발레단이 그에게 안무를 의뢰한 바 있다. 그는 신경과학, 컴테크놀로지, 경제학, 인류학 등을 기반으로 컨템퍼러리발레에 돌파구를 열은 것으로 회자되며, 공연 때마다 주목을 끌고 화제를 달고 다니는 편이다.



이오카스테의 혈연, 웨인 맥그리거 ⓒErik Berg



9월에 맥그리거는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을 위해 〈Jocasta’s Line〉(이오카스테의 혈연(血緣))을 안무 공연하였다(오슬로오페라하우스). 소포클레스의 희곡 〈외디푸스왕〉과 〈안티고네〉를 연결시켜서 오페라와 컨템퍼러리댄스 양식으로 풀어낸 안무작이다. 아다시피, 외디푸스는 자기도 모른 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혼인하여 테베의 왕이 된 기구한 인물이다. 안티고네는 외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서 아버지이자 오빠인 외디푸스가 한스럽게 퇴위한 이후를 보살폈고 외디푸스가 죽은 후에는 형제들이 권력 다툼으로 모두 자멸하자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테베왕 크레온의) 국법을 어기고 수습하였다가 끝내 이오카스테의 오빠이자 자신의 외삼촌인 테베의 왕 크레온에게 처형당하였다. 흔히 안티고네는 인륜을 위하여 국법의 부당한 명령에 맞선 여성으로 부각되곤 한다.

오페라와 발레가 결합된 〈이오카스테의 혈연〉에서 이오카스테(메조소프라노)와 외디푸스(테너) 역은 가수들이 맡았고 합창단이 가세하며 음악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오래전 지은 외디푸스 주제곡을 기반으로 후반부 안티고네 부분에서 새미 무사가 오케스트라 편곡을 가미하였다. 가디언의 비평은 〈이오카스테의 혈연〉이 전반적으로 감상적이지 않고 냉정하며 춤은 새롭게 표현되어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을 견지하였다고 평하였다. 공연에서 남성 합창단이 군인들의 집단 대형처럼 군림한 가운데 이오카스테는 매우 위엄 있는 모습을 보였고 외디푸스는 자신의 혼란과 분노, 괴로움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전달하였으며 안티고네 부분의 여성 합창은 촘촘하며 섬세한 화음으로 반짝였다고 한다.

공연의 마무리 초점으로 부각되기 마련인 안티고네 역할에 대해 가디언은 “그녀의 절제된 춤은 마치 각도기로 잰 듯이 아름다운 각도와 정밀한 선을 (웨인 매그리거가) 탐구한 결과이다. 안티고네의 성격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도 내면에 어떤 확신이 깊이 박힌 것이 보인다. 원작 희곡에서 안티고네는 자기 행동에서 감상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며 의무감에 이끌린다. 그 춤은 비탄의 춤이 아니라 의도를 따르는 춤이다. 오빠의 몸이 바닥에 엎어지고 안티고네가 약혼자와 죽는 장면들에서 비극을 관통하는 강렬한 감정이 강조된다”고 하였다. 〈외디푸스왕〉과 〈안티고네〉가 어느 가문의 일대기를 이루는 만큼 둘을 결합한 착상부터 설득력이 강하다. 발레뿐 아니라 서사 구성의 안무 면에서 참조할 만한 작업으로 보인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5/sep/19/wayne-mcgregor-dance-jocastas-line-oslo
https://bachtrack.com/dance-event/jocastas-line-norwegian-national-ballet-oslo-opera-house-main-stage-13-september-2025/426091


온라인 라이프 세태가 촉발하는 공연 구성의 변화

거리 공연은 도시의 공연 형태에서 필수 품목인가. 최근 런던의 도심 템즈강변에서 프랑스 단체 (라)오르드((La)Horde)의 공연이 있었다. 사우스뱅크센터 건물 안팎에서 3시간 동안 마르세유국립발레단 등 80명이 출연하는 영상 및 라이브 공연이 흥겹게 진행되었다. 가디언은 “기다란 검정 스트레치 리무진이 템스 강변에 주차되어 있다. 멍한 표정의 등장인물들이 보도 바닥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내일은 취소다’는 구호를 반복해서 칠하다가 닦아낸다. 여기서 연출된 폭동 영상은 사회적 불의와 계급차별을 비판하는 분위기를 전한다. 정치적 무력감을 암울한 필터로 드러낸 이 영상은 (라)오르드가 사우스뱅크 센터 전체를 점령하는 장면의 도입부다”고 소개한다. 이어서 가디언은 전반적으로 섬뜩한 단절, 기쁨 없는 섹스, 무관심, 슬픔이 깃든 분위기가 느껴지고 피날레에서 짜릿한 활력을 주는 원초적인 에너지가 폭발한다고 하였다.



사우스뱅크센터 공연, 라오르드 ⓒSouthbank Centre



가디언은 공연의 세부를 더 소개한다. “뒤틀린 베이스 저음이 예기치 못하게 프웽트 슈즈의 깨끗한 핑크 새틴과 결합된다. 출연자들은 테크노 린디 홉, 엄정한 비트에 맞춰 스윙 댄스를 한다. 그들은 춤의 한 맥락을 벗겨내고서는 간단하고 읽기 쉽지만 낯설며 강렬한 방식으로 다른 맥락을 부여한다. To Da Bone(뼛 속까지 시린) 대목에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공을 사용하여 축구 트릭을 하는 것처럼 춤추는 침실 아마추어들, ‘점프 스타일’ 댄서들을 유럽 전역에서 모아들였다. 이 대목은 아주 구체적이고 기술적이며 발레의 쁘띠 알레그로 투로 진지하게 처리된다. 또한 디지털 밈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아일랜드, 남아프리카, 시카고 등지의 스텝 댄스와 그러한 아이디어가 퍼지거나 개발되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공연에 대해 가디언은 오늘의 온라인 세태와 관련 (거리) 공연의 구성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셀카봉을 든 관광객처럼 휴대폰 40개가 달린 장비를 들고 다니는 남자도 있었고 볼거리가 많아 참여하기에는 산만하였으나 공연이 진행되면서 정치적인 성향은 또렷하였다. 그런데 짧은 작품들을 훑고 즐기는 이번 행사는 온라인 라이프를 반영한다. 이런 경우 그저 아티스트들이 제공해야 할 것이라면 맛있는 한 입, 새로운 경험, 그리고 센세이션뿐이다. 그 어떤 것이 너무 부담스럽거나 지루해지기 전에 관객은 자리에서 바로 떠나버릴 수 있다. 이런 세태가 얄팍하다고 말하겠지만, 이번 행사는 흥미진진하였으며, 이 행사는 진정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 (라)오르드는 2013년 프랑스에서 3인조 예술가 그룹으로 결성되어 2019년부터는 마르세유국립발레단의 공동 예술감독으로 있고, 신체 움직임과 안무, 영화, 비디오 설치, 영화, 패션, 클럽문화, 팝아트 등을 결합한 공연을 통해 계층 차등을 탈피한 사회적 메시지로써 예술적 연대를 추구해왔다. (라)오르드는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참가할 예정이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5/sep/04/we-should-have-never-walked-on-the-moon-review-southbank-centre-london-la-horde
(라)오르드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F1JuyRryjI
https://www.youtube.com/watch?v=UYUwHlqypVw


SNS가 춤에서도 강세인 흐름

가디언은 9월 중순 리세 야네케라는 남아프리카 안무가를 보도 소개하였다. 남아프리카가 영연방에 속하므로 가디언에 남아프리카 춤 동향은 종종 보도된다. 야네케는 남아프카 유명 가수 타일라의 비디오뮤직 안무를 맡아 엠티비 비디오뮤직어워드 후보에 오르는 등 비디오 뮤직을 중심으로 안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호 〈춤웹진〉 프롬어브로드에 로비 블루가 엠티비 비디오뮤직어워드를 수상한 사실이 소개되는 것과 함께 야네케가 소개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시대의 강한 흐름으로 인식되어야 하겠다. 이런 흐름이 세계 권위지들인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에 같은 시기에 동시에 보도되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디지털 매체나 틱톡 등 SNS를 통해 춤이 유통되는 현실을 춤의 미래와 연결시켜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디언에 의하면, 야네케는 할아버지가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가족 행사에서 춤을 추곤 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려 했으나 춤의 유혹을 따랐고 2011년 보깅과 와킹 스타일을 중심으로 남아프리카 최초 남성 댄스 크루 Vintage를 창설했으나 사회의 몰이해로 2015년 해체되었다. 이후 타일라를 만나 지난 6년 동안 비디오뮤직 안무를 지속한 것은 그에게 결정적인 일이 되었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5/sep/17/south-africa-dance-choreographer-lee-che-janecke-amapiano-afrobeats-tyla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5. 10.
사진제공_페이스북, 유나이티드스테이츠아티스츠, Powerhouse Arts, WMPhotos, 새들러스웰스, Erik Berg, Southbank Centre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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