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아키타 현지취재
10주년 기념 국제 무용축제 ‘ODORU-AKITA’

부토의 창시자인 히지카타 타츠미와 최승희의 스승이었던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가 태어난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 아키타. 2016년 이 지역 출신의 Santa Yamakawa가 시작한 ‘춤추는 아키타’(Odoru Akita)가 1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를 1월 31일부터 2월 6일까지 개최됐다. 1회 때부터 축제를 지켜본 무용가 남정호와 춤비평가 장광열을 통해 축제의 이모저모와 지역 축제가 국제무용 교류에 기여해 온 성과를 진단한다. -


편집자 ‘ODORU-AKITA’ 10주년 소회(所瀤)


역사는 사람이 만든다


남정호_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한국과 일본의 무용계는 유사한 면도 있지만 다른 점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교육과 축제를 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올해로 10년째 일본의 동북부 지역 아키타에서 열리는 ‘오도루 아키타’(ODORU AKITA)는 특별하고 귀한 존재라고 생각된다. 아키타는 일본 현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石井漠)와 부토의 창시자 히지카타 타츠미 (土方巽)가 태어난 곳이다.

역사는 사람이 만든다.

‘오도루 아키타’는 이 축제의 예술감독인 산타 야마카와(山川三太)씨의 열정과 땀의 결실이다. 산타 야마카와는 예명, 본명은 스즈끼 아끼라(鈴木明), 1953년 아키타에서 태어났다. 명문인 아키타 고교를 다녔으나 고교분쟁으로 중퇴하고 상경하여 ‘가라 주로(唐十郞) 상황극장’의 공연을 보고 언더그라운드 연극에 매료된다. 참고로 이 극단의 간판 배우 이려선(李麗仙)은 재일동포 3세. 72년에 배우양성소에 입소하여 75년도에 졸업 후 본인의 극단 ‘은색 텐트’를 설립하고 극작가, 연출가, 배우로서 활동한다. 86년도에 극단을 해산시키고 연극평론, 인재 육성 등의 일을 해 왔다. 아마존 네트에서는 〈백조의 호수 전설- 고마키 마사히데(小牧 正英)와 발레의 시대 1995〉 〈문화 인류학 통이 되는 책 1998〉의 저자로도 등장한다. 히지카타 타츠미의 〈전설〉을 보고 떠나온 고향 아키타의 풍경을 재인식했다고.

그리하여 2015년 아키타를 세계 문화의 교차점으로 만든다는 취지를 가지고 사단법인 회사 PAL(Performing Art Labaratory)을 설립하여 무용축제 ‘오도루 아키타’를 탄생시킨다.



남정호와 산타 야마카와 예술감독 ⓒ장광열



야마카와씨와는 2015년 가을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리셉션 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서투른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며 언어 이전에 깔려 있는 공통적인 가치관을 느꼈다. 소위 이야기가 통했다고 할까.

그리고 얼마 후에 아주 특별한 제안을 받게 되었다. 2016년 여름에 후지사토마치(藤里町)협동예능 보존회 멤버와 KNUA Choreography Troop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을 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 반세기 동안 무용가로 있으면서 국내외와 일본 무용계와도 몇 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하였지만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고? 재미있었으니까.^^

오래 전에 기타가미(北上) 지방의 오니 겐바이(鬼劍舞)를 본 이후 일본 민속무용에 대한 호기심을 계속 갖고 있었지만, 현대무용가인 나에게는 민속춤과는 좀처럼 접촉할 계기가 없었지. 이 작업은 한국- 일본, 프로-아마추어, 현대춤- 민속춤 등의 섞이기 힘든 요소들을 한데 모아 녹여내어 작품을 만들어 공연의 형식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준비 과정에서 낯선 환경에 떨어졌을 때 나오는 잠재력을 믿으며 시도한 것들이 실현화되는 것을 매 순간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몇 개월이 걸려야 나오는 결과이다. 순발력 있고 창의적인 4명의 한예종 창작과 출신 무용수들(손영민, 김영란, 정윤정, 김경민)의 헌신적인 기여도 물론이지만 동시에 시청 직원, 우체국 직원, 그리고 목수 등의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이 마을 춤꾼들의 성실하고 진지한 그리고 열정적인 참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은 첫날 이들이 보여준 민속춤을 보면서 감지할 수 있었던 덕목이었고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마을 여관에 머무르면서 아침부터 푸짐한 일본 가정식 밥을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었고 연습 장소로 이동하면서 마주친 마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도 정겨웠다.

공연의 완성은 관객이 한다. 오페라극장의 잘난 체하는 관객에 질려있던 지라 이날에 공연장으로 몰려든 마을 관객들의 솔직한 반응에 감동할 수밖에. 그리고 그 후에 미카나기 토모꼬(御巫朋子)씨의 뛰어난 영상이 덤으로 남아 있어 이 프로젝트의 여운을 가질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동경 오쿠보에 있는 야마카와씨의 저택에 몇 번인가 초대받아 직접 요리한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아키타로 이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동경에서 살면서 아키타에서 축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였고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마음 깊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야마카와씨는 행동파이다. 곧 아키타 시의 오로시마치에 거주하는 집을 짓고, 이어서 그 옆에 예술가 레지던시를 하는 AIR HOUSE와 AIR STUDIO를 2022년에 건축하더니 2024년에는 공연에 수반되는 제반 시설이 잘 갖추어진 ‘아트박스 오로시마치’리는 타이틀을 가진 공연장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2025년부터 가을에 하던 축제가 눈 오는 2월로 옮겨졌다. 외지에서 오는 이들에게 눈 쌓인 아키타를 보여주고 싶다나.

또 야마카와씨는 부지런하다. 지난 10년간 세계 곳곳의 무용 축제에 참여하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대춤에 관한 정의를 밝히면서 본인의 철학을 투여하고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해마다 영어 실력도 늘고 있다! 부럽도록 놀라운 에너지이다.



게이샤의 춤을 볼 수 있는 아키타의 레스토랑에서



헤이젤 곤잘레스와 산타 야마카아와 함께



그러고 보니 오도루 아키타를 통하여 많은 이들을 만났다.

2017년에는 ‘제1회 히지카타 타츠미 기념상 컴피티션’의 해외 게스트로 참가하여 거기서 발견한 젊은 재능 있는 안무가가 시모지마 레이사(下島禮紗)이다.

어린아이의 기저귀를 걸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다가 돌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넘어지거나 구르는 동작을 하는 그녀를 보며 감탄하였다. 어린아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성인보다 덜 다치는 이유는 아이는 성인이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긴장을 갖지 않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모지마는 아이의 기저귀를 찰뿐만 아니라 아이가 갖는 무방비적인 신체능력마저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자신을 아이의 몸으로 환원하여 아이가 되어 어른을 웃기는 척하다가 꾸짖는다. 오래된 라디오 방송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차용하면서 기발하고 저돌적이고 독특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모지마는 전 세계를 통털어 보기드믄 무용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있은 기간인 2020년 2월부터 2023년 3월은 코비드19와 함께 씨름한 기간이었다. 많은 계획이 무산되고 수정되는 중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성사가 된 프로젝트에 시모지마를 초청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할까.

한국과 일본 그리고 싱가포르의 안무가에게 "가족"이라는 주제를 주고 안무를 위촉하였는데 일본 측에서 온 시모지마는 탁월한 기교와 표현력을 갖춘 두 명의 한국 무용수들(이경구, 배효섭)과 함께 아주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시모지마는 광주 아시아 전당과의 다른 프로젝트도 연결되었고 아마 그녀의 행보는 계속 나아가리라 믿는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만남은 코스타리카에서 온 헤이젤 곤잘레스(Hazel Gonzalez). 연거푸 두 해를 만나면서 친해져서 함께 아키타 골목을 기웃거리며 농담하는 자매애도 나누었는데 2018년 제2회 ‘Parentesis’ 축제에 초청을 받았다. 코스타리카국립대학 소속인 프로무용단 ‘Danza U’에게 일주일 워크숍을 하고 축제의 마지막 날 솔로를 추었는데 첫해에 쿠바의 전설적인 발레리나 Alicia Alonso에게 바친 영광스런 칭호를 받게 되어 황송하기 짝이 없었다. 멀리 동경에서 산호세까지 야마카와씨가 와주어서 감개무량.

사람만이 아니다. 십여 년을 드나들며 정을 붙인 곳으로 아키타 현립미술관을 들 수 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빛과 물과 노출콘크리트의 매력을 잘 드러내는 장소이다. 그곳 카페에 앉아서 가벼운 나무로 만든 잔으로 커피를 마시며 커다란 창 바로 앞의 물을 통하여 센슈 공원을 보는 맛이 일품이다.

이 미술관의 상설관에는 파리에 사는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레오나르드 후지타가 그린 ‘아키타의 행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20미터나 되는 벽화가 버티고 있다. 일본 이름은 후지타 쯔구하루(藤田嗣), 프랑스에서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고 결혼을 5번이나 했다고. 여성의 피부를 우윳빛으로, 얼굴을 고양이처럼 보이게 그리면서 어딘가 일본화의 흔적을 드러낸다. 그가 그린 전쟁화의 반향으로 ‘내가 일본을 버린 것이 아니라 일본이 나를 밀어내었다’라고 말하며 파리로 돌아가서 프랑스 국적을 획득하고 한 번도 고국 일본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인생사를 듣고 최승희를 떠 올렸다. 고국을 떠난 예술가들의 그 이후 인생에 호기심을 가진 터다. 살면서 그런 기회가 왜 없겠나. 어쩌면 파리서 살면서 예술가로서는 더 성공하였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불우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매번 같은 그림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시민시장’을 빼놓을 수 없지. 동경의 슈퍼마켓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낯익은 서민적인 풍경이 있다. 파는 이가 손수 잘 다듬었을 채소와 과일들 그리고 다양한 해산물들을 보면 여권을 반납하고 여기서 시장을 보며 살고 싶은 순간적인 유혹도 생길 정도이다.

매번 묵는 호텔의 온천목욕장까지 말하면 아키타 홍보대사로 임명받을 것 같아 그만 마쳐야겠다.



2024년에 손수 만든 소극장 입구에 설치된 10주년 기념 배너 앞에서 ⓒ장광열




인터뷰_ 예술감독 Santa Yamakawa


아키타를 세계와 연결하는 문화적 교차로로 만들겠다


장광열_춤비평가



장광열: 제10회 기념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산타 야마카와: 올해 페스티벌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우선 페스티벌을 ‘시어터 위크, Theater Week’와 ‘댄스 위크, Dance Week’로 나누어 2주 동안 개최했습니다. ‘시어터 위크’는 관람객 수가 적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공연을 본 분들은 매우 큰 감동을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댄스 위크’에서는 수준 높은 14편의 작품이 공연되었고, 그중 12편이 해외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지난 10년간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어터 위크’에서도 같은 성과를 이루고 싶지만, 또다시 10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면 솔직히 막막합니다. 제가 올해 73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후계자를 찾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고 느끼며,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페스티벌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18세에 아키타를 떠나 도쿄로 갔습니다. 그때 도쿄의 또래 친구들이 어린 시절부터 연극, 무용, 가부키, 노 공연을 접해왔고, 그것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열등감도 느꼈습니다. 아키타에서는 그런 공연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키타의 다음 세대가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아키타에서도 수준 높은 공연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이 페스티벌을 시작한 계기입니다.”

저는 1회 때부터 두어 번을 제외하고 매해 이 축제를 지켜보았습니다. 산타 감독께서 희망했던 것들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해마다 확인하게 됩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 페스티벌에서 초청되어 공연 된 작품은 모두 몇 편이나 되나요?
총 102편입니다. 일본의 부토 그룹인 Dairakudakan과 한국의 Modern Table 같은 대형 무용단부터 솔로 작품까지 다양합니다. 또한 워크숍, 무용 강좌,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았을 때 ‘ODORU-AKITA’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14편 중 12편이 해외 페스티벌에 초청된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큰 성과일 것입니다. ‘ODORU-AKITA’에 참여함으로써 예술가들이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키타를 세계와 연결되는 문화적 교차로로 만들겠다는 목표 중 하나를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무용 국제교류에 기여했다는 것은 여기서 공연된 작품들이 아시아의 다른 축제에 초청되어 공연되고 아시아의 국제 무용축제에서 공연된 작품들이 아키타에서 바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페스티벌에 참여한 예술가들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아티스트가 있나요?
네. 먼저 시모지마 레이사입니다. 그녀는 ‘ODORU-AKITA’ 참여를 계기로 국제 무대에 진출했으며, 현재도 전 세계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서 자신이 안무·연출한 작품을 공연 중입니다. 또 한 사람을 꼽자면 한국의 서정빈입니다. 그녀의 강인하고 아름다운 신체와 뛰어난 집중력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부토 무용가인 Akaji Maro, 무용평론가 이시이 타츠로, 그리고 저를 포함한 세 명의 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제2회 히지카타 타츠미 기념상을 수여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현재 ‘ODORU-AKITA’의 공식 제휴(associate) 아티스트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공연을 꼽자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두 작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Akaji Maro가 이끄는 무용단의 〈죄와 벌〉입니다. 이 작품은 도쿄의 New National Theatre Tokyo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극장은 대형 회전무대를 갖추고 있어 작품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지만, 아키타에는 회전무대가 있는 극장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초청을 포기할 뻔했지만, 시행착오 끝에 모터쇼에서 사용하는 대형 턴테이블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대형 버스를 올려 회전시킬 수 있는 규모의 장비를 아키타로 운송해 공연을 실현했습니다. 그 결과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타났고, 도쿄 공연을 본 관객들로부터 “이전보다 더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문라이트 모바일 시어터의 〈Peeping Garden/re:creation〉입니다. 2021년 초연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공연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셜 디스턴스 시어터’라는 임시 극장을 설치해 공연을 성사시켰습니다. 32개의 문이 설치된 원형 무대를 관객이 문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형식이었습니다. 관객은 각각 칸막이로 분리되어 안전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이 공연 방식은 완벽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현했으며, 집단 감염을 우려하던 아키타 현과 아키타 시도 공연 중단을 요청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또한 관객이 서로를 볼 수 없다는 점은 공연 감상이 타인의 반응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무용수들이 공연 중 구멍을 응시하는 순간에는 관객이 오히려 ‘보여지는 존재’가 되는 전례 없는 경험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매우 도전적이고 자극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매해 10명 안팎의 게스트들을 초청하는 등 국제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데는 상당한 예산이 필요한데, 그리고 2024년에는 ‘Art Box Oroshimachi’라고 이름 붙인 소극장도 개관했지요. 그동안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나요?
설립 초기에는 아키타현과 아키타시가 실행위원회에 참여하며 재정 지원을 했습니다. 이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7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2022년 말, 현과 시가 실행위원회에서 탈퇴하면서 지원이 중단되었습니다. 이후에는 문화청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해 왔으며, 2024년에는 지원을 받지 못해 제 개인 자금을 투입해 페스티벌을 개최했습니다. 올해부터는 다시 아키타현의 소규모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Festival’이란 명칭을 병행해 사용하더군요. 앞으로 페스티벌을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인가요?
이는 10주년을 맞으며 쓴 제 소감과 같습니다. 초기에는 여러 극장을 옮겨 다니며 개최했지만, 현재는 극장과 스튜디오, 레지던스 숙소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많은 무용수와 극단이 아키타에 와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진행하고, 그곳에서 창작한 작품을 Art Box Oroshimachi에서 세계 초연한 뒤 월드 투어로 나아가는 흐름이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Art Box Oroshimachi가 아키타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극장이 되기를 원합니다. 공연예술축제로 명칭을 마꾼 것도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아키타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달에는 어린이를 위한 힙합 댄스 워크숍과 고등학생들의 합동 연극 공연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항상 젊은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ODORU-AKITA’에 참가한 예술가들 모두 Santa 감독이 운전하는 봉고차에 탑승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축제를 운영하는 데 있어 운전, 보도자료 작성, 관객 모객 등 해마다 다방면에 걸쳐 그의 눈길과 손길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그만큼 그는 축제에 관한 한 언제나 열과 성을 다한다. 축제 초창기에 이곳저곳 공연장을 옮겨 다니더니 2022년에는 무용 스튜디오와 레지던시 작업자를 위한 숙소를, 그리고 2024년에는 100석 규모의 소극장을 연달아 개관했다. 대단한 추진력이다.

유명 무용가가 태어난 곳에서 시작된 국제 무용축제의 존재 가치는 무용의 불모지인 아키타 시의 도시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것 외에도 다른 무엇보다 아키다 시의 시민들이 조금씩 무용예술에 눈을 떠가고 있고, 무용 공연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2026. 3.
사진제공_장광열, ODORU-AKITA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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