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비엔나 현지 취재] 2013 제30회 Impluls Tanz
컨템포러리 댄스, 어디까지 진화하나?
장광열

 유럽의 여름은 온통 예술 축제로 가득하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 서유럽은 물론이고 북유럽의 핀란드에서는 7월과 8월 두 달 사이에 16개의 예술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무용 축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비뇽 축제와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 무용 프로그램이 적지 않게 수용되는 종합 페스티벌 외에도 프랑스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 핀란드의 큐오피오 댄스 페스티벌과 풀문 댄스 페스티벌, 그리고 Impluls Tanz 등이 모두 6월 중순부터 8월에 걸쳐 열린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개최되는 Impuls Tanz(Vienna International Dance Festival)가 다른 국제적인 무용 축제와 차별화 되는 점은 축제 기간이 길다는 것(대부분의 무용 축제들은 열흘에서 2주 정도 열리는데 비해 Impuls Tanz는 5주 동안에 걸쳐 열린다)과 많은 워크숍이 개설된다는 점, 그리고 오로지 컨템포러리 댄스 만을 수용한다는 점이다. 곧 무용을 전공하는 전문 댄서들이 오전과 오후에는 다양한 클래스를 수강하고 저녁에는 최신 경향의 다채로운 컨템포러리 댄스 공연들을 전문가와 일반 관객들이 함께 즐기는 것이 이 축제의 메인 컨셉트이다.

 



 Impuls Tanz는 올해 30년째를 맞았다. 1984년에 태동한 이 축제는 30년을 거치는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컨템포러리 댄스 축제로 자리잡았다. 매년 1천여 명의 댄서들과 안무가들이 축제에 참여해, 5주 동안 컨템포러리 댄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연구하며, 컨템포러리 댄스 공연을 즐긴다.
 3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축제는 7월 9일 Museums Quartier의 야외무대에서 안무가 Trajal Harrell의 공연으로 개막, 8월 11일 이 축제의 공동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안무가 이즈마엘 이보(Ismael Ivo)와 GRUPO BIBLIOTECA DO CORPO의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 축제에는 제롬 벨, 아크람 칸, 마기 마랭, 마틸드 모니에, 마리 슈나이드, 안느 테레사 드 키어스메이커, 얀 파브르 등 안무가로서 명성을 쌓은 아티스트들 외에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미국과 유럽 안무가들의 작업이 대거 소개되었다. 동양인 안무가로는 Ko Murobushi, Akemi Takeya의 공연이 전부였다.

 



 워크숍 강사로는 즉흥 아티스트인 David Zambrano, "contact scientist" Nita Little, 안무가 Xavier Le Roy and Gaga luminary Maya Lipsker, Mathilde Monnier, 그리고 Trajal Harrell 등이 초청되었다.
 축제 기간 동안 119회 크고 작은 공연들과 218개의 워크숍 외에도 축제 참가자들을 위한 32회의 페스티벌 라운지 파티가 열렸다. 이밖에도 “컨템포러리 댄스 교육을 어떻게 시킬것인가?”라는 주제로 한 세미나와 리서치 프로젝트, 젊은 안무가들을 위한 안무 시리즈가 함께 마련되었다.
 미리 공지되지 않은 유명 컴퍼니들의 즉석 오디션 개최도 젊은 무용수들에게는 크나큰 선물이다. 올해도 니드 컴퍼니가 결원이 생긴 댄서를 보충하기 위한 오디션을 현지에서 사전 예고도 없이 시행했다. 올해 축제의 워크숍 프로그램에는 초보자에서부터 프로페셔널 댄서까지 1천여명의 댄서들이 참가했다.
 


주목할 만한 공연과 작품 경향

 필자는 축제의 중반을 넘어선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Impuls Tanz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공연은 자정을 넘어 끝났다. 많게는 하루 4개씩의 공연을 4개의 공연장을 옮겨 다니며 볼 수 있었다.
 워크숍에 참가한 댄서들과 안무가들 그리고 축제에 참가한 퍼포머들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프레젠터, 축제 감독 등이 격의없이 만나는 라운지 파티 현장도 다녀왔다. 이 곳에서는 워크숍의 내용과 강사에 대한 칭찬과 불평에서부터 공연에 대한 촌평 등 실질적인 정보들이 오간다. 많은 공연과 워크숍이 편성되어 있는 만큼 이곳에서의 생생한 정보는 그대로 공연과 클래스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런가하면 자신을 알리고 이미 만들어진 작품들의 초청 공연 등을 섭외하는, 무용 상품을 사고 파는 비즈니스의 장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고 네크워킹을 확장하는 ‘살아있는’ 현장인 셈이다.
 공연은 다채로웠다. 최근의 컨템포러리 댄스의 경향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다양성이 우선 눈에 띄었다.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의 작업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Disabled Theater>는 그와 취리히 Theater HORA의 11명의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장애를 가진 11명의 퍼포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 자신들이 표현할 수 있는 움직임들을 거침없이 무대 위에 표출한다. 잘 훈련된, 자유자재로 마음 먹은데로 신체를 움직이는 숙련된 댄서들의 그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어눌한, 어설픈 움직임은 그것 자체로 진솔하고 인간적이어서 공연은 가슴을 진동시킨다.

 



 주최측이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시도한 <East-West Meetins>프로젝트인 <Pichet Klunchun and Myself>은 제롬 벨이 직접 태국 댄서와 함께 출연한 작품이다. 제롬 벨은 태국의 고전 춤인 Kohn 댄서인 Pichet Klunchun과 함께 무려 2시간 30분이 넘도록 질문하고 대답하는 스타일로 공연을 펼쳐나간다. 많은 양의 질문과 답 속에서 왜 춤을 추어야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극장에서의 예술공연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두 개의 작품은 무용예술과 철학과의 접목을 통해 컨템포러리 댄스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제롬 벨의 안무 스타일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벨기에를 대표하는 컴퍼니 중 하나인 니드 컴퍼니의 <Mush-Room>에 대해서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오래 전 <이자벨의 방>에서 춤과 대사, 그리고 행위 사이에서 흥미로운 접점을 보여주었던 얀 로워셔의 파트너인 Grace Barkey가 안무한 이 작품은 강한 비주얼에 댄서들의 몸짓과 표정 연기, 그리고 퍼포머들이 내뱉는 현란한 텍스트가 무대를 장악했다.
 버섯을 거꾸로 메달아 놓은 듯한 10여개의 구조물을 무용수들이 직접 상하로 이동시키며 공간을 변화시키는 시도나 객석의 분위기를 돋우려 각기 다른 접근을 시도하는 퍼포머 개개인들의 역할 놀이가 볼거리를 선사한다.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한 이 작품은 이틀 공연 중 첫날은 늦은 시간에 공연한 탓인지 관객들로부터 들려온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으나 내가 본 둘째날 7시 공연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국인 무용수 허성임이 비중있는 역할로 열연하는 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파격적인 시도는 연일 이어졌다. 섹시 댄스를 표방한 Cecilia Bengolea & Francois Chaignaud의 <Altred Natives's say yes to another Excess-Twerk>란 긴 제목의 공연은 5명의 댄서들이 보여주는 행위나 움직임, 테크닉들이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뒤섞여 있다.
 작품 속에는 2명 라이브 DJ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음악에 힙합, 빠른 스핀의 춤, 아크로바틱한 동작 등이 혼합되어 있다. 현란한 의상과 분장, 엉덩이를 노골적으로 하늘로 치켜 세우고 보여주는 성적인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시도 등과 맞물려 기존 컨템포러리 댄스의 유형과는 확실히 다른 유형을 보여주었다.
 “Occupy the Museum” 은 제목에서 느끼듯 박물관의 전시공간을 무대로 펼쳐진다. 비엔나 Weltmuseum에 있는 아시아 전시관의 2층 전시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공연은 각기 다른 장식물의 내용과 진열대의 구조 등을 교묘하게 활용한 아이디어, 태국, 한국, 일본, 중국 등 고유한 특성을 살려낸 전시물의 내용이 공연과 매칭되면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했다.

 



 일본을 상징하는 전시물이 놓여있는 공간에서는 명상적인 분위기의 춤과 20여명의 댄서들이 일본의 기모노 풍 의상을 걸친 채 현대적인 느낌의 춤을 추는가 하면 타일랜드 전시 공간에서는 아예 장식장 안에 가면을 쓴 댄서가 들어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마치 살아있는, 움직이는 전시물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들게했다.
 사우스 아프리카의 아티스트인 William Kentridge가 창작한 <Refuse The Hour>는 멀티 미디어 오페라를 표방하고 있다. 댄서, 뮤지션, 싱어 등 13명 명의 퍼포머들은 다양한 악기를 들고나와 연주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컨템포러리 아츠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안무가 Jan Fabre와 Antony Rzzi의 <Drugs kept me Alive>에서는 얼굴에 뭔가를 잔뜩 붙인 Antony Rzzi가 “나는 춤추는 약국”이라고 내뱉는다. AIDS 환자인 얀 파브르를 기억하면 제목에서도 공연의 내용이 유추된다. 이 작품은 따뜻한 휴머니티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Impuls Tanz에 소개된 컨템포러리 댄스는 유형의 다양성 만큼이나 작품의 컨셉트 자체가 다양했다. 퓨전, 크로스오버는 물론이고, 안무가들은 수 많은 텍스트에 담긴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통해 메시지를 전했다. 댄서들은 더 이상 춤만 추는 것만이 아니라 연기와 노래 등을 수행하는 전천후 퍼포머들로 변신해 있었다.
 Impuls Tanz 2013은 컨템포러리 댄스가 어디로 진화될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오늘날의 춤 공연이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장광열
본 협회 공동대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대표, 춤비평

2013.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