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심층 공개 인터뷰: 배정혜
한국무용가 배정혜 심층 공개 인터뷰 2
  • 일    시
    2024. 11. 26.(수) 13:30 ~ 16:00
  • 장    소
    예술가의집(서울 대학로)

 인터뷰이│ 배정혜        

인터뷰어│ 김채현·채희완·김영희 

후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세 작품: 〈Soul 해바라기〉


김채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계실 적에 〈Soul 해바라기〉를 발표하셨지요. 일단 그 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협연한 악단 살타첼로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요?
 

배정혜: 어떤 인연이냐면 살타첼로와는 작품 전에 만나서 작품이 시작된 게 아니에요. 〈Soul 해바라기〉는 한국의 모던춤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세계 시장에 창작무용, 창작춤이라 소개하면 안 되고 모던춤이라 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거든요. 창작이 아닌 게 어디 있어요? 전통도 처음에는 다 창작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창작춤이라는 명칭은 평론에서부터 없어져야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여하튼 그때만 해도 ‘우리가 잘 통하는 창작춤, 그런 한국 창작춤이 세계적으로 수용되느냐 안되느냐’고 하는 그런 질문이 가로놓여 있었거든요. 시중말로는 세계 시장에서 잘 먹혀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세계 시장에 이 창작춤이 먹히려면 무엇으로 해결해야 할까’ 생각하니 우리 춤으로만 찾으려면 너무 힘든 거에요.
그래서 세계적인 음악을 선택해가지고, 그 음악에다가 한국 창작무용을 집어넣어 보자.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는 지금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지만 그 당시만 해도 코리아 하면 모르는 데가 많았었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코리아를, 코리아의 춤을 러시아 발레단이나 뉴욕시티발레단보다 더 행복한 춤으로 만들 수 있나 그런 것을 고민했어요. 그래서 ‘재즈는 전 세계가 다 아는 거니까 재즈 음악에다가 한국춤을 넣어보자’고 생각해서 사표를 안 쓰고 거기에 이제 집중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재즈를 어떻게 찾아야 될지 참 막연했어요.
너무 막연한 가운데 “선생님, 살타첼로라는 악단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합니다” 이러는 거야. “어? 살타첼로가 뭐 하는 단체인데, 첼로만 하는 단체냐?” 그랬더니 “독일의 재즈 단체예요” 그래요. 그래서 재즈인데 5명이 재즈하는 악단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가서 보면서 ‘내가 구상하는 〈Soul 해바라기〉의 장면을 저 음악에다가 그 장면 하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막 떠올랐지요. 거의 3분의 2는 음악 공연을 보면서 채취한 거에요. 그러니까 신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고민하니까 신이 내려주신 거에요. 그런 고민을 1년 동안 했었거든요. 어떻게 하면 세계 무대에 한국 창작무용을 보일 수 있나, 어떻게 하면 되나. 무슨 재즈를 구할지 막연했거든요. 그런데 단원이 살타첼로를 가서 보자고 그랬던 것이지요. 가서 보니까 내가 원하는 장면이 팍팍팍 연상되어서 전부 그 장면들을 위해서 작곡한 줄 알 정도였어요. 그래서 음악이 있으니까 한 달 동안 안무가 끝났어요. 그 페터 쉰들러라는 매스터를 독일에서 초빙해서 음악이 더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 “여기 3분만 작곡해달라” “여기 2분 작곡해달라” 이렇게 해서 한 서너 군데만 작곡하고, 나머지는 다 있는 곡으로 안무했어요. 이 살타첼로를 좋아해서 40번 본 사람도 있다고 해요. 독일에서 공연할 때 리허설 보고 공연 보고 20번을 보고 한국까지 보러 온 독일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Soul 해바라기〉를 제 원대로 풀고 왔어요. 그래서 내 자랑 같은데 자랑을 안 할 수가 없군요.





배정혜 〈Soul 해바라기〉 ⓒ배정혜



김채현: 〈Soul 해바라기〉에서 어떤 점이 선생님한테 가장 마음에 듭니까?

배정혜: 마음에 드는 장면은 없고 마음에 안 드는 장면은 확실히 있어요. 말하자면 아박춤 같은 거 남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더 잘 춰야 됐는데 좀 못 췄어요.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지막에 엄마하고 아들의 듀엣 장면인데, 그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그 듀엣 장면하고 1막에서 또 다른 듀엣 장면, 그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김채현: 그래도 지금 이 작품에서 마음에 안 드시는 그 장면을 한 군데 지적을 하셨단 말이죠. 방금 아박춤을 응용한 그 부분이 이제 조금 마음에 걸린다 이런 뜻 아닙니까? 그 외에는 없단 말이죠. 그 외에는 다 마음에 든단 말이죠?

배정혜: 다 마음에 든다는 얘기는 아니고…

김채현: 제 개인적 느낌은 살타첼로 악단과 〈Soul 해바라기〉 말고 그 후속 작업이 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까?

배정혜: 제 임기가 끝났었죠.



배정혜 〈Soul 해바라기〉 ⓒ배정혜



김영희: 〈Soul 해바라기〉 할 때, 전통춤에서 살풀이춤을 활용해서 어떻게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전통춤의 어떤 측면들을 이용하셨는지요.

배정혜: 1막은 전통춤의 살풀이 정신을 풀어서 안무했어요, 그리움. 외국 순회 공연을 할 때, 입양아들이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고 자기 원 부모를 그리워하는 그런 그리움보다도 더 절실한 그리움은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내 첫사랑의 그리움도 들어가요.

김영희: 그럼 전통춤의 정조, 방금 말씀하신 그리움 이런 것 말고 움직임 측면에서 이용하신다거나 가져오신다거나 하는 그런 측면은 없었어요?

배정혜: 동작을 찾아낼 때 어떤 동작을 놓고 변형하는 단계를 저는 신전통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완전한 모든 춤의 동작은 의미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찾는 거지, 어떤 전통 동작을 응용하는 정도는 아닌 게 모든 춤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김영희: 작품 창작에서 전통이든 아니든 그런 거는 크게 구애받지 않으신다는 거군요?

배정혜: 네, 구애받지 않아요.

김영희: 예, 거기에서의 어떤 정신이나 정서라든가 이런 걸 중심으로 하신다는 건가요?

배정혜: 음악과 그 내용에 충실하게 동작을 찾는 거죠. 엄마가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슬픔만큼, 그리움만큼 더 그리운 거는 없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 장면이거든요. 혼과 만나는 장면. 근데 이 장면은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그 예술가적 감정이 극치에 달한 사람이 이 표현이 가능하지 그냥 사람이 하면 이 표현이 안 나와요. 이런 춤은 쉬운 춤이에요. 이거는 돌려짚기가 안 들어간 춤…

김채현: 이제 영상을 보며 코멘트하는 순서는 끝났습니다. 그러면 채희완 선생님이나 김영희 선생님 질문이 있으시면 짤막하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배정혜 〈Soul 해바라기〉 ⓒ배정혜



더 하고 싶은 춤
 

채희완: 저로서는 제일 듣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선 남들과는 달리 아주 어릴 때부터 춤에 천부적인 소질을 받고 태어나신 그런 분으로서 선생님이 춤 생활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은 후에 ‘정말 이런 춤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것이 있습니까?

배정혜: 네, 많죠.

채희완: 전통춤이어도 좋고 새롭게 만든 선생님의 예술 작업으로서 말하고 싶었던 어떤 주제나 내용이나 뭐가 있었는지, 그것은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건지, 동기부여는 또 어떤 것인지 그런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결국은 선생님의 예술 세계에, 그 창작 과정에 담긴 우여곡절이 잘 드러나 있지 않은 비밀스러운 어떤 부분들이 궁금한 것이지요.

배정혜: 단원들을 데리고 작품을 만드는 거는 원 없이 했지요. 리을무용단에서부터, 국악원 무용단에서부터, 시립무용단 10년, 국악원 무용단 5년, 또 국립무용단 10년, 리을무용단 거의 10년, 또 선화중고등학생 데리고 매년 발표하는데 또 10년, 15년 또 리틀앤젤스 꼬마들 데리고 안무도 5년을 했어요. 그래서 내 평생 군무는 그냥 원 없이 해본 것 같아요. 근데 내가 해보고 싶었던 솔로를 못하고 죽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못할 것 같은데, 진짜 싹 벗고 알몸으로 살풀이를 추고 싶었어요, 살풀이나 아니면 산조. 기가 막힌 연주의 산조를 가지고 의상 걸치지 않고 그냥 내가 젊었을 때 몸이라면, 또 내가 키도 크고 또 더 이쁘고 그랬다면, 아니 안 이뻐도 좋아요. 지금 이대로도 좋아요. 내가 벗고 진짜 내가 거울 속에서 한번 쳐봤거든. 근데 너무 멋있어요. 그거 못하고 죽는 게 조금 아쉽습니다.

채희완: 알몸을 말씀하시는 것의 연장선인데요. 아마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쯤 될 것 같은데요. 거기서 그야말로 상체를 거의 다 벗은 채로 피부에 금빛 칠을 하고 보살춤을…

배정혜: 〈타고 남은 재 2〉에서 한번 벗어 보았죠.

채희완: 그 무대에는 화덕이 있었고 그 불꽃들이 비치는데 그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저는 선생님의 상체를 될수록 바짝 앞에서 유심히 봤거든요. 평생을 춤으로 추신 분의 그 육체 안에 육체에 배어 있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저는 춤의 실체가 아니겠나 싶어서였어요. 선생님의 상체에서 보여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메시지로 ‘춤은 이런 것이야. 난 이렇게 추어왔다오’라고 하는 그런 것이 고스란히 오는 감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불행히도 금빛으로 다 피부에 옷을 입혀서 그것은 아니었는데 아마 마치 금빛 보살상이 던지는 후광과 전광이 같이 있는, 그 뒷면과 앞면의 총체적인 그런 세계, 보살상을 봤을 때 우리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깊이를 감지하게끔 만들어주는 바로 그 육체같이 느껴졌습니다.



배정혜 〈타고 남은 재〉 ⓒ배정혜



배정혜: 그것은 인생을 한스럽게 살고 타오를 때 그 인간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그런 것을 그린 것이거든요. 근데 즉흥으로 춰서…

채희완: 즉흥으로 다시 한번 무대를 만드시면 어떠신가요?

배정혜: 그때 제 나이가 62이었거든요. 근데 60이 넘어서 벗는다고 사람들이 흉봤어요. 그래서 ‘난 괜찮다 그냥 벗는다.’ 그래 가지고 뭘 발랐는데 나가서 막 이렇게 하니까 다 떨어져 나갔어요.

김영희: 그렇게 나신으로 춤추고 싶으셨는데, 왜 살풀이춤이나 산조를 떠올리셨는지 궁금해요.

배정혜: 살풀이 음악이나 산조 음악에 한국인의 그 애환과 흥과 멋이 다 들어있다고 저는 생각이 되거든요. 그래서 그 음악 속에서는 모든 걸 다 표현해도 가능하다고 그렇게 생각되었어요.

김채현: 선생님이 알몸으로 춤추고 싶으시다고 방금 말씀하셨습니다.

배정혜: 안무는 원 없이 해봤어요.

김채현: 예, 그래서 솔로로 추고 싶으시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하여 춤에서 흔히 이런 말이 있거든요. 알몸이라 하더라도 그 알몸이라는 게 세상에서 말하는 알몸이 아니다. 무용가에게 있어, 춤꾼과 댄서에게 있어서는 바로 피부 자체, 몸의 거죽 자체가 의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춤의 어떤 지론에 의하면 우리 살갗 속에 있는 어떤 호흡의 흐름, 기의 흐름이 춤의 알맹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살갗 자체가 옷이다’는 생각을 혹시 해보신 적은 있으신지 모르겠어요.

배정혜: 살보다도 뼈. 뼈가 살풀이나 산조 속에 막 녹아나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인간의 뼈가 그 음악에 따라 변하는 게 옷을 안 입으면 다 보여요. 비치는 옷 입으면 비치는 옷 실루엣 때문에 그 몸이 덜 보여지거든요. 그러니까 실루엣 없이 알몸으로 막 하고 싶었는데, 아직은 아무도 그러는 사람이 없어요. 앞으로는 나올 것 같아요. 내가 다시 젊다면 그것 하고 죽고 싶어요. 근데 한국춤만이, 한국 전통은 발레에서의 그 아름다움 이상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기본이 모두 몸으로 들어가서 전통을 추면 기가 막히다고요. 그러니까 아쟁 연주자가 수만 명 되지만 진짜 음을 내는 사람은 몇 명밖에 없잖아요. 그 아쟁을 마냥 지이익 그으면 한국 악기를 못 살리는 거잖아요. 그 악기를 살리는 연주자는 몇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듯이 ‘우리 몸을 살리는 무용가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러니까 ‘바기본을 여러분들이 익히면 그런 무용가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합니다.

김영희: 선생님이 지금 말씀하신 그런 극치의 춤을 위해서 바기본 수련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을 하셨고, 또 수련해야 할 다른 덕목이 있다면 어떤 것이 들어질까요?

배정혜: 바기본만 충실하게 하면… 그러니까 바를 잡고 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아령을 들고 센터에서 그냥 하면 되거든요. 근데 바기본만 12가지, 하체, 상체를 24가지를 다 하고 나면 어떤 체육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김영희: 그러니까 마음의 수련 같은 것도 필요할가요?

배정혜: 마음의 수련이 같이 되면서 몸의 수련도 같이 되고 그렇게 해서 음악을 듣는 수준이 굉장히 높아진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같은 음악을 듣는데 사람마다 어떻게 듣느냐가 다르잖아요. 근데 몸의 24가지 호흡을 익히다 보면 그 음악의 수준이 쫙 높이 들어온다고 저는 강조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음악을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데 알알이 그게 들어온다는 게 무용가나 무용수한테는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음악을 어떻게 듣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김영희: 네, 알겠습니다.

김채현: 이것은 그다지 심각하게 답하실 건 아닙니다만, 바기본이라고 하는데, 바를 안 쓴단 말이죠. 굳이 바기본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는지요.

배정혜: 왜 바기본이냐 하면 발레에서 바를 잡고 몸을 풀고 센터로 가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의미에요. 몸을 풀고 춤을 들어간다 해서 바기본이지 바를 잡기 때문에 바기본인 것은 아니에요. 배정혜 메소드라고 하면 정확한 말이겠죠.

김채현: 알겠습니다. 이 바기본에서 ‘바’라는 것은 그냥 은유적인, 상징적인 의미라는 거죠?


겹춤

채희완: 방금 정작 한번 본격적이고 마지막으로 추고 싶은 것이 산조, 나의 살풀이춤이다,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그것으로 저는 이제 이렇게 짐작해봅니다. 우리 춤의 세계는 살풀이가 지향하는 그 삶의 이야기와 정서 그것이라고 선생님이 몸으로 확신하시는 것 같은데 살풀이적 삶, 그것을 어떤 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미적 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배정혜: 제가 말재주가 없어서…





배정혜 〈유리도시〉 ⓒ배정혜



채희완: 보통 한국춤은 흥과 멋의 세계에서 누린다 이렇게 하지만은 그것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현시대의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애당초 〈타고 남은 재〉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아주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그것처럼 흥과 한과 멋의 세계와 함께 있는 그 또 무엇이라고 명명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배정혜: 그게 서양 음악에는 없는 우리 한국 음악에만 있는데요. 한을 얘기하면서 멋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또 멋스러우면서도 슬픔과 한이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겹친다고 그래야 되나? 그러니까 심플하게 하나만 얘기하고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합쳐져가지고 우리 한국 음식의 비빔밥 같이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는 멋스러운, 그러니까 얼씨구 하면서 또 슬픈 그것, 한국춤만이 가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채희완: 그러니까 좀 더 명쾌하게 얘기하실 것이 틀림없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냥 다른 분 얘기를 약간 빌린다면은 소리에 그늘이 없는 소리는 노랑목이라고 해가지고 아주 얕은 단계일 것으로 보고, 온갖 신산고초에 다 삭히고 삭혀서 쪄들어서 나와서 그것이 이 빛의 세계로 넘어가는 그 고결한 순간의 어떤 명칭을 시인 김지하 시인은 ‘흰그늘의 세계’라 이렇게 얘기하셨거든요. 흰그늘, 굉장히 아주 의미 깊은, 우리 춤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인의 심성의 바탕에 있는, 민족적인 정서뿐만 아니라 여러 축적된 것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용어인 듯해서 그런 식으로 선생님 나름대로 한번 얘기를 하신다면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김채현: 금방 말씀하신 대로 한국춤에는 어떤 한 가지 정서 내지는 느낌으로 딱히 정할 수 없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내재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선생님 말씀은 한과 흥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선생님의 『배정혜 7일간 춤여행』이라는 책에 어떤 표현이 나오냐 하면 ‘홀춤은 깊이가 얕은 춤이다’ 그러시면서 그 상대적인 개념으로 ‘겹춤’이라는 말씀을 했었어요. 저는 채희완 선생님 말씀 내지는 질문에 ‘배정혜 선생님의 개념으로서 겹춤이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배정혜: 한마디로 말한다면 겹춤이죠. 그러니까 지금 모던댄스 그러니까 모던을 나는 한국춤을 기반으로 해서 모던된 거를 춤이라 하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던댄스를 그냥 댄스라고 하고 싶거든요. 그냥 모던댄스하고 모던춤하고 다른 점은 ‘겹이 없다 또는 있다’라는 거에요. 지금 김채현 선생님 말씀이나 또 채희완 선생님 말씀도 다 같은 뜻인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꿍 드는 게 아니라 꿍이 웅하고 같이, 돌려짚기랑 같이 들어가는 거예요.

김채현: 지금 편의상 말씀을 드리면, 『배정혜 7일간 춤여행』 제1권 49페이지에 ‘한국춤이 갖고 있어야 하는 핵심은 바로 겹춤이다’고 하시니까 이 다음에 더 논의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같아요. 이는 김지하 시인의 흰그늘 개념도 신산고초를 겪은 삶에 내재한 그늘을 일컫는 개념과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신전통춤
 

김영희: 선생님, 근래에 신전통춤이라는 타이틀로 더러 공연을 하시잖아요. 조금 전의 모던댄스, 모던춤하고도 연관이 되는 얘기일 것입니다. 신전통춤이라는 타이틀로 하실 때 이제 여러 가지 전통춤도 있고 신무용 작품도 있고 신전통춤을 약간 개작한 춤들도 있고 그런데 선생님은 신전통춤이라는 개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배정혜: 지금 시대만 신전통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한성준 시대도 전통을 가지고 한성준 선생님이 신전통으로 만든 게 전통이 된 거지 처음부터 전통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전통이 언제 내려왔는지 천년, 2천년 전부터 내려왔는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이 생성하면서 예술이 발생했지요. 원래부터 전통이 있은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그냥 창작, 만든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수천 년 역사가 흐르며 전통이 있는데, 그걸 지금 ‘창작했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그러니까 ‘전통을 사용할 때는, 그 전통 사위를 사용할 때는 신전통이라고 해야지’라고 나는 생각해요. 신무용은 이시이 바쿠가 외국에서 들여온 모던댄스를 자기화해가지고 새롭게 한다 해서 신무용이라는 단어가 당시 신문 지상에 나온 거를 최승희나 조택원 선생이 그대로 신무용이라는 말을 써서 춤으로 말하자면 신전통이었지요. 최승희도 그 전통을 응용해서 무당춤도 만들고 부채춤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다 만드는 게 신전통이란 말이에요. 그걸 신무용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대학에서 명칭 정리가 빨리 돼야 해요. 그러니까 신무용은 석정막, 최승희 시대에서 끝나야지 되는데, 자꾸 신무용을 하니까 이게 무슨 모던인지 어떻게 창작이 된 건지 막 어려워한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최승희, 조택원 선생이 그때 당시 석정막의 본을 따라 신무용이라 사용한 것에서 끝나야 된다고 나는 생각해요. 지금 우리는 몇십 년 동안 무용과에서 배출하는데, 전통을 배우고 창작을 배우잖아요. 그러면 지금부터 창작에서도 창작무용이라는 명칭을 빼야 돼요. 외국에서 바로 수입하는 그런 외국 모던댄스를 ‘모던댄스’라고 하고 한국 전통춤을 가지고 환원시켜가지고 막 이렇게 창작한 것을 ‘모던춤’이라고 하자는 제안이거든요. 전통 무용 사위를 〈Soul 해바라기〉에서 썼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안 썼어요. 그 사위를 쓴 창작은 말하자면 신전통이라고 하자는 얘기죠. 신전통이 10년, 20년 살아서 50년 동안 어떤 작품이 살아 있어서 그것을 전통으로 누가 받아주면 전통이 되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김채현: 네, 신전통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배정혜: 내가 공연 명칭을 신전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신전통을 한 20작품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신전통 공연이라고 하는 겁니다.

김영희: 그러니까 신전통춤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포괄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이지요?

배정혜: 네.


바기본

김채현: 바기본의 효용성과 관련하여 제가 자료를 관찰해 보니까 선생님은 근육과 호흡에 굉장히 중점을 두시더라고요. 근육 단련, 그 다음에 단련된 근육으로 몸 전체에 춤의 호흡이 관통 내지는 지탱, 강화되도록 하는 그것에 굉장히 중점을 두시던데요. 그러니까 바기본하고 직결되는 어떤 용어라고 한다면 ‘근육과 호흡이 아니겠느냐’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바기본을 가지고 그렇게 하면 한국춤의 어떤 소재, 내지는 원재료를 자기 몸에 충분히 간직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 다음에 그걸 기초로 해서 다른 춤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또 역량이 또 나와야 되는 것이고요. 창작이라 할까 그렇죠. 창작자로서 안무자로서 역량이 또 나와야 된다.

배정혜: 그러니까 바기본이 꼭 한국 무용에만 필요한 건 아니에요. 한국무용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모든 움직임에 다 필요해요. 예를 들어서 연주자한테도 필요한 요소가 되죠. 나는 모든 예술에 다 필요하다고 넓게 생각해요.

김채현: 지금도 바기본 메소드 매일 연습하십니까?

배정혜: 거의 매일 해요.

김채현: 시간은 어느 정도 하십니까?

배정혜: 컨디션에 따라서 달라져요.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한 20분, 30분 하지만 그저 그럴 때는 5분도 하고…

김채현: 그럼 오늘 아침에도 하고 오셨던 거예요?

배정혜: 오늘은 할 시간이 없었어요.



배정혜 〈유리도시〉 ⓒ배정혜



세 사람, 한 무대

김채현: 저녁에 가서 또 바기본을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 다른 질문입니디만, 우리 패널분들하고 여쭤보기로 한 사항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김매자 선생님, 국수호 선생님 그리고 배정혜 선생님 세 분이 함께 출연하신 무대가 몇 차례 있었죠. 왜 그렇게 하셨는지요?

배정혜: 그 의미가 뚜렷해요. 이제 젊었을 때는 라이벌 의식이 있어서 서로 그렇잖아요. 근데 이제 60, 70이 되니까 라이벌 의식은 없어지고 자기 갈 길이 다 정해져 있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이해가 되고요. 그리고 셋이서 합친 이유는 후배들이 우리 선배들이 이렇게 화목하게 서로 상대방의 예술을 존중하고 서로 갈 길을 더 돈독하게 하고 인간의 우애라고 해야 되나? 인간의 사랑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을 해요.

김채현: 사랑이 없으면 우선 삭막해서 인간다움이 떨어지겠죠.

배정혜: 그래서 셋이 사랑을 한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서로 헐뜯지 않고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걸 후배들한테 보이기 위함이 1차 목적이에요.

김채현: 그래도 그 연배되시는 한국 무용가분들이 그 두 분뿐만 아니란 말이죠. 여러 분들이 계신데 가만히 보면 세 분이 자주 조금…

배정혜: 아니 여러명 안 계셔요요. 이 나이까지 계속한 사람 찾아보면 그다지 없는 듯해요. 또 전통만 한 사람은 있지만은 창작도 하고 전통도 하고 이렇게 한 사람들은 더러 중간에서 그만두었지요. 그래서 그렇게 셋이 뭉친 거지요.

김채현: 네, 알겠습니다.

배정혜: 셋이서 〈면벽〉이라는 작품을 하기로 했는데 내가 아픈 바람에 이번에 못 했어요. 가을에 하기로 했는데 그 행사는 제가 빠지고 했어요. 또 〈면벽 2〉를 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못했고요.



지난 11월 26일 오후에 있은 춤작가 배정혜 초빙 비평시각 심층 공개 인터뷰, 예술가의집, 서울 대학로, 한국춤비평가협회 주최 ⓒ춤웹진



김채현: 마지막 남은 시간에 객석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선생님 앞으로 하시고 싶은 작업이 있으신지요? 창작 안무라든가 아니면 교육적인 거라든가…

배정혜: 제가 아직 치유중이라. 하느님이 이제 몇 년을, 10년을 더 살게 해준다면 감사하게도 내가 뭘 해야 되나 곰곰이 생각했거든요. 분명히 할 게 많아요. 김수악 〈교방굿거리〉 춤을 제가 어린애로 돌아가서 춰보고 싶고, 또 국수호의 〈입춤〉 〈남무〉, 여러 가지 있는데 두어 가지 택해서 국수호 선생님 춤도 내가 좀 춰보고 싶고, 황무봉 선생님의 산조를 저번에 추었지요. 다른 선생님 춤을 한 5개, 7개 배워 90살까지 발표한다는 마음도 있고요. 다만 그때는 벗고는 못 춰요, 입고 춰야지.

김채현: 선생님의 90세 맞이 발표를 새롭게 기대하면서 오늘 심층 공개 인터뷰를 마치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춤에 입문하여 한국춤의 나아길을 한평생 고심하신 노고를 한층 기억하는 시간이 된 듯합니다. 계속 춤의 의욕을 무대에서 꽃피우시는 날들을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기탄 없는 말씀 그리고 끝까지 경청하셔서 감사드립니다.

2025. 2.
사진제공_배정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