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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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19년 4월 28일(일) 오후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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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카페 두다트(서울 연남동)
30회 장기 공연에 관객 반응은 컸다
김채현: 김재덕씨는 최근 〈다크니스 품바〉를 장기 공연해서 화제를 일으켰다. 서울 청계천에 위치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CKL 스테이지에서 3월 28일 ~ 4월 21일 사이에 모두 30회 공연하였다. 월요일은 공연이 없었고 토, 일요일은 각 2회 공연했다. 무대 춤 공연이 하루 이틀로 단명하다시피 하고 레퍼토리 장기 공연이 없는 것이 춤계 관행이다시피 한 현실에서 30회 공연은 고무적이다. 우선 공연 경위와 소감부터 알고 싶다.
김재덕: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그 시기를 대상으로 아티스트에게 무료 대관하는 프로그램을 공모하였는데, 여러 단체가 응모한 가운데 저희 모던 테이블이 선정되었다. 민간 단체 기획 차원에서 무엇보다 수천만원의 극장 대관 경비 부담이 없다는 게 큰 힘이 되었다.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당연히 많았으면 한다. 관객은 평일날도 적어도 80석은 넘었고 모두 평균 170석 이상이었다. 나름 팬덤 조성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김채현: 극장 측은 어떤 반응인가?
김재덕: 극장 측은 응원해주었고, 중견 간부진들이 다음에 또 했으면 좋겠다고 들었다.
김채현: 공연이 막 끝난 현 시점에서 어떤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는가?
김재덕: 대중 관객들한테 어떻게 파들어가면 되는지 조금의 노하우를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만족감을 가졌던 것은 대중 관객들에게서 많은 리뷰를 피드백으로 얻었다는 것이다. 네이버에서 〈다크니스 품바〉를 검색하면 나오는데 거기서 인터파크나 예스24에서 구매한 사람들이 리뷰를 올렸다, 별을 몇 개씩 표시하면서. 거기 리뷰들은 칼 같다고 하더라. 말도 안 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쓰고 좋은 건 좋다고 쓴다 한다. 참여자가 백명이 넘는데, 그런 피드백이 너무 좋고 그걸 보고 온 사람도 있다. 뮤지컬계에서 말하는 ‘회전문’이라고 해서 한 번 보러 왔다가 두 번 세 번 보러 온 사람도 있다. 어떤 대중 팬은 우리 단원의 팬이 되어서 그 출연자만 보러오는 그런 식으로서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비춰진 점도 있다. 그러다 팬이 될 것이다.
김채현: 나로선 〈다크니스 품바〉를 하나의 중대한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춤계의 극히 짧은 공연 관행을 타개하는 데 자극이 될 것인지 하는 점이다. 팬덤 형성은 그런 새 단계로 가는 중요한 길목일 것이다.
김재덕: 팬덤 형성이 이번 공연의 큰 목표였다. 팬덤이 어느 정도는 형성되기 시작하던 중에 끝나 무척 아쉽다. 팬덤 형성의 조짐만 보이다 끝난 셈이다. 만일 두 달을 했더라면 그래도 팬덤 형성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정말 크다. 언젠가 팬덤이 제대로 형성될 것 같은 예감마저 든다.
〈다크니스 품바〉 ⓒ김채현 |
장기 재공연 궁리하는 중
김채현: 동감이다. 앞으로 재시도한다면 팬덤이 제대로 형성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언제쯤 다시 해볼 계획인가?
김재덕: 지금도 기회가 주어지면 당장 착수하고 싶고, 내년에 어떻든 해볼 생각이다. 이번에도 물심양면 후원이 컸는데, 일단 자력으로 할 생각이니 자금부터 모아야 하겠다. 말이 4천만 원이지 그런 생돈을 누군가 저에게 그저 주지 않는다. 처음이자 거의 마지막으로 지인들에게 부탁했는데, 그거 없이 하려면 자비가 필요할 것이다. 다시 한다면 이제는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김채현: 이번 공연에서 큰 힘이 된 것이 첫째는 콘텐츠진흥원의 무료 극장 대관이고 둘째는 지인들의 작지 않은 후원이라는 말인데, 지인들과는 어떤 사이인가?
김재덕: 제 친척 형이 사업가이고, 후원한 두 분은 친척 형과 함께 모두 술자리를 자주 한 형들이었다. 그 외에도 어떤 분들은 또 티켓을 다량 구매해주셨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김채현: 아무튼 지인들이 적극 나섰는데, 다음엔 어떤 차원으로 공연이 가능할까.
김재덕: 분명 자체 자금이 필요하다. 욕심 같아선 펀드 조성이 되어야 한다. 은행 대출은 다소 부담스럽고, 집이든 무엇을 팔아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음악해서 돈 벌고 음악 작곡해서 돈 벌고, 공연해서 돈 모으고 이런 식으로 돈을 모을 수밖에 없다.
김채현: 자금이 모여지기를 기대한다. 30회 공연은 춤으로는 국내에서 아마 최장기일 것 같다. 춤현장을 수십년 봐온 내 기억에 비추어 1980년대 말에 최데레사씨가 신촌 지역 소극장에서 열흘 남짓 장기 공연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30회라는 것은 춤계 동향에 비춰서 아마 최장이고 중요해 보인다. 이번 30회로 인해 그다지 어려운 지경에 처하지 않았고 인터넷에서의 피드백으로 보아 어떤 가능성이 엿보인다. 앞으로 50회, 100회 정도는 염두에 둘 수 있을 것이다. 목전의 과제로 삼기 바란다. 이번 출연진에 대해 알고 싶은 점이 많다. 재덕 씨는 물론 춤꾼과 소리꾼을 겸했는데, 춤꾼은 정원영, 이정인, 김래혁, 한태준, 이운기, 김한솔, 김남훈, 김효신, 조휘성이다.
〈다크니스 품바〉 ⓒ김채현 |
호흡 맞는 출연진들과 해외 페스티벌의 파격 호응
김재덕: 춤꾼이 10명이고 소리꾼이 2명, 밴드가 3명이었다. 춤꾼 4명은 풀로 뛰었고 소리꾼은 더블로 뛰었다. 개런티는 출연 횟수마다 똑같이 배정했다. 뮤지컬처럼 앙상블 하는 방식으로 춤꾼, 소리꾼, 밴드 모두 회당 책정하는 식으로 했다. 그래도 장기 공연이라 다들 그렇게 시간을 투자했다.
김채현: 밴드는 언제부터 함께 활동했는가?
김재덕: 오래했는데, 처음 〈다크니스 품바〉 시작했을 때와는 바뀌어 원래의 밴드 구성에 변경이 있었다. 이번에도 출연한 드러머 허성은 씨는 2010년부터 저와 계속해서 모든 부분에서 연주를 하면서 음악적 파트너가 되기 시작했다. 선교단에서 계속 함께 활동하는 등 허성은 씨와는 거의 10년 넘게 활동했다. 그 사이에 기타나 베이스가 바뀌었는데, 허성은 씨를 통해서 소개를 받았다. 워낙 허성은 씨는 저의 음악 색깔이나 모든 색깔을 안다. 그래서 시퀀스라 하는 마디를 할 때도, 제가 가진 악기가 허성은 씨 악기와 항상 동일하고 어떤 일이 생기면 제가 가진 프로젝트 파일을 허성은 씨한테 보내서 그 친구가 다듬어서 나중에 할 수 있는 식으로 호흡을 맞춰 공유하는 사이이다.
김채현: 호흡이 잘 맞고 그동안 서로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부대 경비가 절약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김재덕: 악기를 렌털하거나 구입할 때도 거래처를 새로 뚫을 필요 없고 허성은 씨가 음악인이라 더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
김채현: 밴드 멤버 허철주와 김형민 씨와는 몇 년간 해왔는가?
김재덕: 허철주 씨와는 2011년부터 함께 했고 김형민 씨와는 4년 정도 되었다. 해외 공연을 가면 금방 돈독해진다.
김채현: 해외 공연 갈 적에 밴드와 소리꾼이 다 가는가.
김재덕: 그렇다. 소리꾼 정승준 씨가 혼자 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에 이번에 소리꾼 조정규 씨가 가담하면서 더블이 되었다.
김채현: 소리꾼이 이전과는 달랐던 것 같다.
김재덕: 초반에는 윤석기 씨가 했었고, 정승준와는 2012년부터 했다.
김채현: 소리꾼과 밴드도 해외 함께 간다는데, 그럼 숙식과 개런티 모두 제공받는가?
김재덕: 해외 공연 같은 경우는 숙식과 퍼디엄(일비)은 기본적으로 나온다. 테크 계약에 무조건 들어가 있다.
김채현: 항공료는 제공받는가?
김재덕: 항공료를 지급하는 축제들은 정말 큰 축제이다. 러시아 ‘체홉 페스티벌’ 같은 경우는 항공료를 지급받았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거기서 작년에 〈맨 오브 스틸〉을 8회 했다. 말 그대로 8회라는 말은 횟수만큼 개런티를 줄 수 있는 정도의 페스티벌이며 경비까지 다 지급한다. 재작년엔 〈다크니스 품바〉로 초청됐다. ‘베이징 댄스 페스티벌’을 통해서 초청받았다. 찰리 채플린 손자 제임스 티어리도 함께 참가했다. 무용수 7명에다 아티스트가 4명 총 11명, 그리고 조명까지 12명, 컴퍼니 매니저가 함께 가면 13명이었다. 5일 체류에다 하루에 2회 공연했고 예상치 않게 주최 측에서 놀고 다니라고 하루 더 배려해 주었다. 〈다크니스 품바〉를 ‘체홉 페스티벌’에서 처음 할 때는 너무 굉장한 페스티벌인데 부담이 되고 자칫 협의가 무산될까봐 지레 경비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고 먼저 국내에서 팸스 교류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현지에 가서 ‘체홉 페스티벌’ 측에서 먼저 경비 얘기를 꺼내길래 우리가 미리 확보했다고 했더니 그 다음 해인 지난해에는 경비를 다 대어주더라.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이다.
〈다크니스 품바〉 ⓒ모던테이블 |
김채현: ‘체홉 페스티벌’이 규모가 크다 했는데, 자부심이 그만큼 있는 것 같은데 한 마디로 말하면 무엇이라 얘기하겠는가.
김재덕: 이 나이에 영광이다. ‘체홉 페스티벌’에서 제공하는 두꺼운 책 뒤에 역대 아티스트들이 소개된다. 로메오 카스텔루치부터 시작해서 로베르 르빠주, 이보 반 호프, 시디 라르비 등 쟁쟁한 연출가나 인물들이 있고 제가 갔을 때는 저랑 아크람 칸이랑 카를로스 아코스타가 춤 분야에 수록 소개된 인물이었다.
김채현: ‘체홉 페스티벌’에서 〈맨 오브 스틸〉은 몇 차례 공연 했는가?
김재덕: 작년부터 ‘체홉 페스티벌’이 아웃도어(옥외) 페스티벌을 병행했다. 작년이 첫 회였다. 〈맨 오브 스틸〉을 옥외에서 8회 했다. 엄청 크게 여는 페스티벌이다.
2006년 이후 계속 키운 〈다크니스 품바〉
김채현: 이야기 방향을 돌려서, 〈다크니스 품바〉에 대해 이야기를 진행하자. 처음 발표한 게 몇 년도이고 그 경위도 소개해보자.
김재덕: 2006년 12월 정동극장 ‘컬러 오브 댄스’ 프로그램이 계기였다. 그해 주제가 ‘블랙’이어서 검정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다크니스 품바〉라 했다. 그게 첫 공연인데, 25분 길이였다.
김채현: 그 당시엔 어떤 포맷이었는가?
김재덕: 처음의 15분 간이 없었고 밴드와 소리꾼이 있었고 제가 락하며 마지막으로 “품바가 잘도 돈다”하고 하모니카 불면서 끝났다. 그후에 ‘CJ 영 페스티벌’과 2008년 현대무용진흥회의 제1회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 25분 작품으로 나간 후에 거기서 외국을 나가게 되었다. 거기서 1등을 하진 못 했고, 아무튼 그래도 당시 받은 상은 있다. 돌아가신 세이지 타가야 선생님이 저한테 ‘심사위원상’을 주신 거다. 그 다음해에 그 분이 ‘도쿄 트리엔날레’로 초청해주셨다. ‘도쿄 트리엔날레’에서 무토 다에스케라는 평론가가 제 작품을 보고 ‘인도네시아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해줬다. 그 다음에 ‘인도네시아 댄스페스티벌’에 갔고 싱가포르 T.H.E. Dance Company가 같이 참여를 했는데, 거기 디텍터 퀵쉬분(KuikSweeBoon)이 제 작품을 보고 자기 무용단 안무를 의뢰해서 싱가포르로 갔다. 그 다음 해부터 레지던시 코레오그래퍼가 되어 줄 수 있냐, 매년 와서 작품해 줄 수 있냐 해서 싱가포르를 매번 가게 된다. 인도네시아 댄스페스티벌 이사가 아시아 나우의 최석규 대표님이었는데, 당시 ‘춘천마임페스티벌’ 디렉터였다. 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또 한국에 초청했다. 한국에 역수입된 셈이다. 그러면서 한국에 조금씩 알려졌다.
김채현: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서 할 적에 25분 길이라 했다. 언제 한 시간으로 늘였는가?
김재덕: 저는 한국에서 한 시간 공연이 아니면 안 한다고 했다. 제가 앙상블 컴퍼니 개념으로, 다 같이 출연하는 무용단을 만들려 했던 게 2014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크니스 품바〉가 알려지고 어느 정도 초청받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갈라로, 조연으로, 인기몰이에 그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면서 제 작품이 스스로는 천박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저만의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 작품이 혹시 자생력 있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앞에 15분, 뒤에 25분을 붙였다. 한 시간 짜리를 2014년도에 만들자마자 바로 브라질로 초청되었을 때 초연을 브라질에서 2015년에 했다. 남미 페스티벌의 마르셀로 자무라가 제 작품을 알고 있었고 제가 한 시간 짜리로 바꿔서 브라질로 가려고 할 때 초연을 브라질에서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브라질 시골 같은 곳에서 초연했다.
김채현: 브라질에서 며칠간 공연했는가?
김재덕: 3곳에서 3회 했다. 3회 동안 작품이 완전해지기 시작했다.
김채현: 지금 한 시간 버전이 2015년부터 공연되었다는 게 재미있게 들린다.
김재덕: 2014년엔 앞에 인트로를 붙여서 45분으로 만들었다. 그때 ‘부에노스 아이레스 댄스 페스티벌’ 초청 받아서 45분을 했고 다시 한국에 나머지를 덧붙이게 된다.
김채현: 나로선 여러 차례 보고 찍었는데, 그간 한국에서 몇 차례 공연을까?
김재덕: 한마디로 25분 했을 때는 여기저기 가서 더 자주 했었다. ‘신나는 예술여행’에서 몇 회 하고 ‘방방곡곡’ 프로그램에서도 몇 회 하고... 사실 2015년 즈음에 총 100회를 넘은 상태였다. 매니저한테 몇 회 했는지 세어 보라 했는데, 이미 100회가 넘었더라. 모두 150회 쯤 했을 것이다.
〈다크니스 품바〉 ⓒ김채현 |
익사이팅한 느낌에다 시적인 느낌으로 확장
김채현: 지난 30년간 한 레퍼토리를 그 정도 해낸 경우는 국내 춤계에서 없거나 희귀하다고 치자. 해외에서 한 시간 이상의 공연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떤 호감이나 반응을 보였던가?
김재덕: 마르셀로 자무라는 이미 25분 작품을 알고 있었다. 이미 2010년 서울의 교류 행사 ‘팸스 초이스’를 통해 콜롬비아와 브라질엘 갔었고. 그 당시에는 ‘익사이팅’했는데 지금은 ‘시적’(詩的)이라고 하더라. 막 강하게 하고 나서 조금 조용한 음악이 들어가면서 그 다음에는 젓가락 씬, 조금 은은하니깐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 있겠다. 그런 조화가 오히려 관객들에게 좋게 다가갔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작정 〈다크니스 품바〉 25분 작품처럼 마지막에 꽝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그 다음에 춤을 추니깐...
김채현: 특히 창을 활용하는데, 또 외국인들은 어떤 반응이던가?
김재덕: 엄청 좋아한다. 신비롭다고 한다. 창(唱)이 아프리카 음악 비슷하지만 창은 리듬이고 템포다. 템포가 가진 분명 한국 사람이 하는 희한한 꺾임과 벤딩의 시간차가 확실히 블루스와 아프리카 음악과 다른 점이 있고 이런 것들이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 거기에 락 음악이 나오면 본인들이 받아들이기 쉽다. 우리도 락을 좋아하지만 락을 좋아하는 나라일수록 더 좋아하니까...
김채현: 공연에서 표출하는 것은 대개들 느낄 수 있는 점으로서 그게 작품의 강점으로 보인다.
김재덕: 저는 한국에서 어려울 거라 지레 짐작했다. 한국이 〈다크니스 품바〉를 받아들이기에 오히려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에 보니깐 아니더라.
김채현: 왜 어렵다고 여겼던가.
김재덕: 어렸을 때 〈다크니스 품바〉를 했을 때 무용계 안에서 작품 평을 받아왔다. 알 수 없는 거나 더 심오하고 더 의미가 있고 더 가치 있는 동작을 하는 듯이 보여야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짐작했다. 하다못해 제 주변인들마저도 춤계에 들어오면 그런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바깥에 나와 정말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하고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팬 포커스가 생기더라. 한국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가장 오픈된 사고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계속 오고, 친구들과 함께 다시 오고...
〈다크니스 품바〉 ⓒ김채현 |
관객 욕구부터 겨냥하는 마인드 매우 중요
김채현: 30회로 아쉽게 끝난 게 아무튼 아쉬운 일이다. 한국에서 수용되기에 난점이 없다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전략을 잘 고려할 수 있겠는데, 한국 관객들은 이 작품에서 어떤 점을 인상 깊게 받아들였을까.
김재덕: 무용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건 말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몸으로 받길 원하고 정신적으로 관객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길 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열심히 주제와 내용을 쓴다. 안 그래도 그런 방식에 대해 고민이 있었고 어려운 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에 관객들이 마음을 풀어놓고 본 다음에 쓴 피드백을 보면 이런 글들이 많다.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너무 좋았어요, 왠지 좋았어요...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 봤던 만화를 다시 추억을 살려서 쓰면서 리뷰를 썼다더라. 그동안 무용인들이 그간 객석을 좀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어렵지만 난 이렇게 갈거야 라고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들... 적어도 나는 쉽게 여긴 것 같다. 알고 보니깐 〈다크니스 품바〉처럼 가도 더 잘 받아들이고 피드백을 쓰더라. 되게 신기했고 그냥 좋았다. 이런 글이 정말 나온다. 정말 어쨌든 몸을 하는 사람의 가치성이 그 사람들에게서 이렇게 드러났다고 본다.
〈다크니스 품바〉 ⓒ모던테이블 |
김채현: 〈다크니스 품바〉에 여러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창, 두 번째는 춤, 세 번째는 락이 있고, 젓가락이 있었고 불경의 음악이 있었고... 그게 주된 요소인데, 한국 사람들에게 정서적 측면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러면서 현대적 요소가 상당히 함께 흐른다.
김재덕: 알고 보면 참 올드한 것들이다. 창, 락, 얼마나 올드한가.
김채현: 첨단은 아니나 어떻게 보면 융합이 된 거다. 융합이 되니깐 신기했을 거고 참신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마음을 깊이 두드리는 그런 면들이 어우러진 게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가깝게 수용하는 그런 정서가 작품에 내포된 셈이다. 무대에서 객석을 볼 때 해외 관객 반응과 국내 관객 반응에서 차이 혹은 일치점이 보였는지.
김재덕: ‘관극’이라는 말을 들었다. 뮤지컬에서 관극 방법에 대해서 내용을 잘 적어 사람들이 편히 볼 수 있개 한다. 가이드 같은 것이다. 외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잘 되어 있다. 좋으면 좋은 건지 알고 신나면 신나는 건지 알고, 흥이 돋워지기도 하고 조용해지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훈련이 되어 있질 않다. 관극 같은 공연 보는 기본 자세가 오랜 관행으로 없었기 때문에... 요즘은 잘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너무 바르고 조용한 느낌이다. 결국엔 박수를 쳐야 할지 안 쳐야 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초반에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지만, 제 동생이 공연을 봤는데 그거를 가르쳐 줘야 몸을 자유롭게 돌릴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처음에 해설을 하니깐 그 다음엔 박수도 치고. 이 공연은 적어도 오픈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른 점들이 약간 있었다.
김채현: 공연 직전에 무대의 김재덕 안무자가 관객들에게 가이드성의 소개를 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는 뜻인가?
김재덕: 그렇다. 그래서 매일 했어야 했다. 제가 볼 때는 〈다크니스 품바〉 공연이 제가 늙을 때까지는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런 해설을 하고 대표로서 인사를 하는 게 관객을 풀어놓기 좋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보는 방법을 쉽게 말해주면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해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처음에 말해주니깐 마음 놓고 동작 보면서 즐길 수 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절대로 유치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을 안 하고 이것을 꼭 해줘야 한다고 판단한다.
김채현: 공연 안내로서 팜플렛이 해설본으로서 중요하다. 안 그러면 A4 용지에다가 알기 쉽게 핵심만 적어 소개해도 된다. 관객이 3분 정도 읽고 공연에 몰입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 외국인들한테는 가이드가 없었는데 반응은 어땠는가?
김재덕: 대개는 좋았다는 기억들이다. 특이하다고나 할까, 일본에선 공연 끝날 때까지 아주 조용하다. 끝나고 나서 반응이 온다. 일본 아키타(靑田)시에서는 엄청 큰 극장에서 기립 박수가 나왔는데, 그곳 춤 공연으로는 처음으로 기립 박수가 나왔다 한다. ‘도쿄 트리엔날레’에 갔을 때도 아주 가만히 관람했었는데 끝나고 와서는 잘 봤다고 박수하고 그러던데, 거긴 원래 그런 식이라고 한다.
김채현: 인터뷰가 길어진다. 그래도 들어볼 점은 많아 보인다. 이젠 〈다크니스 품바〉의 해외 순회 공연뿐 아니라 품바 소재를 택하게 된 동기나 보완할 점, 그리고 김재덕 씨가 감독하는 모던 테이블 단체의 창작 방식, 음악적 소양을 쌓게 된 내력 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계속)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