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LDP무용단이 LG아트센터와 손잡고 신작 ‘트리플 빌’을 9월 26-29일 선보인다. 내년 20주년을 맞는 LDP는 국내 무용계에서 자생력을 갖추고 매해 신작을 발표해온 무용단으로 LG아트센터와는 2015년 공연(신창호 안무 〈Graying〉, 김판선 안무 〈12MHz〉)에 이어 두 번째 공동기획 무대다. 일찍이 지난해 봄부터 준비해온 ‘트리플 빌’은 향후 레퍼토리로 발전시켜 긴 호흡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은 물론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다.
LDP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이번 공연을 위해 LDP 대표 김동규를 비롯해 정영두, 김설진 등 3명 안무가가 나섰다. 그동안 무용단 소속 안무가 또는 해외 안무가와 작업을 이어온 LDP에게 정영두, 김설진 같은 국내 객원 안무가와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동규 대표는 “객원 안무가의 개성을 담은 다양한 작품과 LDP가 자유롭게 만나길 원했다. 작품을 규정짓는 주제나 틀을 걷어내고 각 안무가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3편의 신작을 올리려 한다. 또한 기획 초기부터 유통과정의 편의를 고려해 무대세트와 제반 요소보다는 움직임 자체에 힘을 줄 수 있는 안무가를 모시고 싶었다”며 정영두, 김설진 안무가가 함께하는 이번 공연에 기대를 내비쳤다.
LDP무용단 신작 ‘트리플 빌’ 안무가 김동규, 김설진, 정영두 |
‘트리플 빌’은 안무가 3인의 색을 입힌 신작 3편으로 구성된다. LG아트센터에서 〈제7의 인간〉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 〈푸가〉를 발표한 바 있는 안무가 정영두는 작품〈새벽〉으로 다시 한 번 LG무대를 찾는다. LDP의 여섯 무용수(강혁, 김보람, 김수인, 정록이, 황창환, 윤승민)가 출연한다.
고요한 어둠속에서 서서히 빛이 차오르며 생기를 띠게 될 경계의 시간, 어제의 끄트머리와 오늘의 시작점이 교차하며 어느 때보다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시간으로 목격되는 새벽은 묘한 정서를 갖게 한다. 새벽의 분위기, 그 시간이 주는 여러 감정을 안무가의 춤 언어로 정제시켜 25분의 작업으로 담아낸다.
안무가는 “처음으로 LDP와 하는 작업이므로 이야기 시간이 길어지는 주제를 잡기 보다는 모두가 경험할 만한, 공감할 만한 새벽의 정서를 움직임과 구성적으로 빠르게 풀어내보자고 생각했다. 창작과정에서 단원들과 새벽에 느껴지는 구체적인 정서를 공유했지만 이를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새벽의 분위기가 감지되는 심플한 작품이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새벽〉의 움직임은 “흐름”에 집중한다. 동작절(phrase)을 잘게 쪼개지 않고, 악센트가 많지 않은 움직임을 긴 흐름으로 연결시킨다. 무용수들에게 ‘공기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흐름을 지속시키는 움직임’을 지시했다는 안무가의 말에서 잔잔하게 이완된 〈새벽〉의 시간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안무가 정영두는 ‘LDP에 누가 되면 안 되겠다’라며 몸을 낮췄다. “LDP 안에서 20여년간 함께 성장해온 훌륭한 안무가가 있음에도 외부에서 안무가를 선임한다 했을 때에는 수많은 의견을 조율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쳤을 거라고 짐작한다. 저 때문에 기회를 놓친 안무가 혹은 다른 안무가와 작업하고 싶은 단원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제가 얻은 기회를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고 있다”며 “창단부터 성장과정을 지켜봐왔던 터라 언젠가 LDP와 꼭 작업해보고 싶었다. 각자의 장점이 만나 좋은 작품이 탄생되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LDP 대표 김동규는 10명의 LDP 무용수(임샛별, 윤나라, 정건, 이홍, 정하늘, 한대교, 이정은, 박지희, 장회원, 함희원)와 〈MOMBURIM〉을 선보인다.
수많은 연습, 수차례 공연에서 움직여야만 하는 무용가는 때로 움직임의 본질이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맞닥뜨리고 어떻게 움직일지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춤을 추다보니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을 뒤집어 보는 것에서 〈MOMBURIM〉은 시작됐다.
안무가는 “움직일 수 없거나 혹은 신체 일부의 움직임을 제한하면 반대로 움직이고 싶은 본능에 충실하게 된다. 그 순간의 자연반응, ‘내면의 꿈틀거림’을 주시했다. 깜빡거리는 눈, 떨리는 손가락, 뒤뚱거리는 몸통과 같은 미세한 움직임을 메소드 삼아 작품을 확장시켰다”고 말했다. 신체의 ‘제약’으로부터 ‘자유’에의 의지를 확인했듯이 이유 없는 ‘몸부림’에서 움직임의 의미를 뜻밖에 포착할 수도 있다.
안무가와 단원들은 하루 세 시간씩 리서치와 트레이닝, 메모리의 과정으로 작품을 준비 중이다. 10명의 무용수가 펼치는 강렬하고 다이내믹한 군무 장면이 35분 작품 가운데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LDP의 강점을 살릴 것으로 기대된다.
안무가로 활약하며 대중적 활동의 지평을 넓혀온 김설진은 2013년 내한한 피핑톰무용단 〈반덴브란덴가 32번지〉 이후 오랜만에 LG아트센터와 만난다. 7명의 LDP 무용수(김성현, 김영채, 신호영, 이정민, 이주희, 장지호, 한윤주)와 공동창작으로 〈MARRAM〉을 선보인다.
작품은 기억의 오류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불안정한 기억, 그로 인해 생겨나는 관계와 오해를 몽타주 방식으로 작품에 녹여낸다. 안무가는 “어떤 일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편집되고 변질되어 기억으로 남게 되는지 궁금했다. 오류가 많은 기억을 움직임 이미지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안무가 특유의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이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독특하고 개성적인 움직임 언어가 〈MARRAM〉에서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몸의 표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런 몸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이번 작업에서 무용수 개개인의 몸의 표정을 읽어내고 있다. 끄집어낸 그것을 아이디어와 함께 확장시키거나 반대로 크리에이터(무용수)가 발전시킬 때도 있다”는 안무가는 LDP와의 공동창작에 만족과 고마움을 표했다.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