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 일 시
- 2020년 6월 24일 오전
-
- 장 소
- 아카데미아인
“독일이나 프랑스 일간지에서 춤 비평은 거의 없다. 일간지의 인터넷판에서도 독자 늘리기가 주관심사다. 오늘날 유럽 일간지 신문들은 현대적 공연물의 비평에는 별 관심이 없다.” 춤비평가 토마스 한은 지금 유럽에서 춤비평이 놓인 상황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춤웹진〉은 프랑스에 체재하는 무용가 이선아씨와 부부 사이인 토마스 한(Thomas Hahn)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선아씨는 지난달 27, 28일 있은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공연에 신작 〈Uncover〉를 선보였다. 부인의 이번 공연 여행을 함께 한 토마스 한은 독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춤비평가이다. 1990년부터 파리에서 생활하며 프랑스 춤계와 관계를 맺어온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번 인터뷰에는 시댄스 예술감독으로서 전부터 토마스 한과 만남이 있었던 이종호 한국춤비평가협회 상임운영위원장과 이선아씨도 함께 자리하였다. 그가 평론가로서 걸어온 길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왼쪽부터) 김채현, 이종호, 토마스 한, 이선아 ⓒ춤웹진 |
토마스 한은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프랑스 어문학을 전공하고 현대 유럽 문화를 공부하였다. 독일과 프랑스가 인접 국가이므로 두 나라를 오가는 경력이나 활동은 유럽연합 이후 더 보편적이어서 주목할 일도 아닌 세상이다. 그래도 두 나라 가운데 자기 출신국을 떠나 외국에서, 그것도 매우 드문 춤비평가로 활동하는 그의 색다른 이력에 눈길이 갔다. 인터뷰 자리에서 그를 만나자마자 그가 태어난 곳부터 묻자 신분증부터 보여주며 출생지 지명을 알려주었다. 올해 50대 중반인 그는 2차대전 이후 세대로서 태어난 곳은 서독의 델멘호스트인데, 이곳은 지금도 인구가 7만 정도인 소읍 규모의 도시이다. 1989년 통일 이전에는 동독 지역에 인접한 이곳은 말하자면 동서독 분단 현실이 생생했던 지역으로 한의 성장기에 “군인들이 망원경으로 동서 경계 지역을 경계하던 모습은 일상적이었다.”
델멘호스트가 브레멘이나 함부르크와 가까워 그는 함부르크대학에 진학하였다.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고, 함부르크 시내 캄프나겔공연예술센터에서 컨템퍼러리댄스도 보았다. 벨기에의 드케이르스마커, 프랑스의 레스키스무용단을 비롯해 80년대 당시 컨템퍼러리댄스 스타와 그 단체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조셉 나즈의 〈북경 오리〉도 그때 보았다.” 〈북경 오리〉(1987년 초연)는 프랑스 춤계가 나즈를 주목하도록 만든 문제작이었고, 당시 드케이르스마커는 80년대 중반에 창단한 로사스무용단으로 한창 활동하던 때였다. 유럽에서 컨템퍼러리댄스가 분출하던 시기에 한은 그 춤들을 접하고 “즉각 이해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드케이르스마커의 반항적 경향, 레스키스의 감각적 에너지가 인상적이었고, 나즈는 충격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장면으로 잊을 수가 없었다. 군 입대를 면제받고 7년 동안이나 학부생으로 재학하면서 계속 공연물들을 보았고 동아리 활동도 지속했다.”
1990년 대학을 마치고 한은 파리로 갔다. “프랑스 문화에 흐르는 자유, 프랑스의 삶 속에서 호흡하는 예술이 좋았고, 프랑스 영화, 연극, 샹송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로마문명권의 남부 유럽 계열 문학과 언어를 공부했으므로 프랑스 대학에 1년쯤 연수를 가고 싶었다.” 그때 친구가 거처를 주선해주어 그는 파리3대학에서 공부하였다. “파리에서 연극을 집중적으로 보면서 춤과 움직임의 무대에도 서서히 빠져들었다.”
파리로 간 지 2년 후 그는 작은 라디오 방송에 연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 연극 관람 기회가 많아지고 인터뷰에도 자주 참여하였으며 자기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하여 지금도 이 작업을 진행한다. “라디오에서 연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자유로운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그러다 이를 소재로 독일의 권위 일간지 〈디벨트〉 〈쥐드도이체차이퉁〉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기고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만난 연극들이 괜찮았지만, 사실 무대에서는 말하는 작업보다 더 많은 것이 가능하다. 나는 움직임과 결합된 공연예술을 즐기기 시작했고, 춤은 더욱 나를 끌어들였다.” 20세기 후반에 급속히 확산된 포스트드라마 시대 연극의 흐름이 그의 말에서도 감지되며, 연극을 축으로 한 그의 무대 관심이 춤으로 넓혀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움직임과 밀착된 연극을 통해 춤에 본격적으로 다가간 셈이다. 춤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으나 몇 해 더 춤 공연을 관찰하고 조망하였다. 그리하여 미모스(MIMOS) 행사에 심사위원으로 뽑혀 활동하였다.” 미모스는 1980년대 초에 창설된 마임과 컨템퍼러리 무대 공연의 페스티벌로서 인구 2만 정도의 산골 소읍 페리괴에서 매년 열린다. 페리괴는 보르도에서 가깝다. “며칠간의 미모스에는 세계적 단체들이 왔고, 거기서 나는 일본 부토의 오노 가즈오나 마임 대가 마르셀 마르소를 처음 만났다.”
그는 1995년에 독일의 춤 전문지 〈발레인터내셔널〉(뒤에 발레탄츠, 탄츠로 개칭)에 비평을 기고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첫 기사는 조셉 나즈를 다루었다. 그리고 그는 미모스 행사에 나즈를 추천하였고, 그후 미모스는 나즈를 여러 차례 초청하였다. 헝가리 태생의 나즈는 부다페스트에서 음악, 마임, 인체극을 수학하고 파리로 이주한 인물이다. 프랑스에서도 그는 마르셀 마르소에게서 마임을 수학하고 곧장 컨템퍼러리댄스 세계로 진입하였다. 마임, 인체극의 기법이 두드러지는 나즈의 작품들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특성이 뚜렷하며 보는 이에 따라서는 몽환의 느낌마저 갖도록 한다. 이번 인터뷰에서 토마스 한은 자신이 유럽에서 “힙합에 안무 예술의 지위를 부여한 글을 길게 작성한 최초의 비평가로 자임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나와 가까웠던 동료 비평가나 필진 가운데 힙합을 안무 예술로 인정한 사람이 당시엔 아무도 없었다.”
90년대 후반에 그는 프랑스 춤 전문지 〈레세종드라당스〉(Les Saisons de la Danse)의 필진으로 활동하였는데, 2001년 폐간되어 이제 발간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전문지 〈당세〉(Danser)에 2003년부터 기고를 시작하여 고정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당세〉는 인터넷판(당세카날이스토리크)으로 전환하여 지금 프랑스에서 가장 활발한 춤 전문지가 되었다.
당세카날이스토리크(Danser Canel Historique) 홈페이지 화면 ⓒdansercanalhistorique.fr |
비평 작업 이외에도 그는 프랑스와 독일의 여러 춤 행사와 공공 극장들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글을 제공하는 작업을 활발하게 지속해왔다. 파리시립극장(테아트르 드 라 빌), 프렐조카즈국립안무센터 등이 대표적이고, 파리의 샤틀레극장이나 파리 필하모니에도 기고 작업에 응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에서 발간하는 프랑스어판 〈한국 문화〉의 필진으로 2016년부터 활동해왔다. 6월 30일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열은 ‘유럽의 춤비평 문화’ 토크 강연에서 그는 비평가와 저널리스트의 두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두 활동 사이에 우열은 없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무대 기술에도 전문성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자리에 그는 월간지 〈뷔넨테크니셰룬트샤우〉의 최신호를 갖고 와서 자기가 기고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우리말로는 그 제목이 무대기술동향 쯤 되는 이 잡지 발행기를 보니 1907년에 창간되었다 한다. 이미 100년도 넘게 그런 전문지가 있은 것은 뜻밖이고, 당시는 유럽 공연예술계에서 모더니스트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고, 그런 잡지가 지금도 발간된다. 이외에 그는 무대 연출과 기술 관련 다른 전문지들에도 기고한다. 이런 활동의 연장선에서 그는 이번 여행 길에 서울 국립중앙극장 등 여러 대형 극장과 공연장에서 무대 자문에 응하기 위해 잡은 방문 일정을 잠시 소개하였다.
인터뷰 도중 한은 자신의 개인적 경력 하나를 소개하였다. “지난 15년 동안 나는 두 전선에서 활동해왔다. 춤 기고 활동으로 나의 반경을 넓혀갈 동안 수입을 확보하려고 춤과는 매우 이질적인 석유산업에도 관계하였다. 중부 유럽에서 석유산업을 분석하는 미국계 에너지 회사에서 중견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회사에서 내가 그 분야의 열정이 식어가는 줄로 알았는지 2009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지자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로 춤 분야에 전념하게 되었다.”
한은 유럽에서 컨템퍼러리 공연 활동에 할애되는 일간지 지면들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밝혔다. “독일의 권위있는 일간지들에서 예술 비평은 살아 있긴 하다. 그러나 정통 공연 장르의 비평이 그렇다는 것이고, 나머지 장르는 배제되는 추세다. 재정 사정이 겹쳐 신문사들의 관심이 급격히 줄고 있다. 유럽의 전반적인 사정으로서, 그들의 인터넷 신문에는 종이 신문의 배경을 이루는 기사들이 배열된다. 프랑스에서는 사정이 좀 나아서 컨템퍼러리댄스나 무대 동향을 알리는 기사가 종종 실린다. 영국 일간지에서도 컨템퍼러리댄스에서 지명도가 높은 인물은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말을 듣고 보면 지금은 언론으로서 일간지와 전문지 간의 역할이 재편성되는 시기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20세기말까지 길게는 2백년 동안 예술이 일간지에 의존해온 관성을 벗어나 특히 전문 비평은 전문지에서 갈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에서 한은 자신이 조셉 나즈에 대해 갖는 비평적 시각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나즈는 타협이 필요하지 않은 무용가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게 그의 개성이다. 그의 예술적 언어는 매우 래디컬하고 솔직하며 깊이가 넘쳐서 우리들의 일상적인 몸 저변과 내면을 잘 반영한다. 이런 내면 세계를 무대에 올려 놓으면서 그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성(正常性, normality)에 대해 강한 질문을 던진다.” 다원화가 가속화하는 컨템퍼러리 시대는 비평가를 더욱 개방적이도록 한다. 컨템퍼러리 시대가 아니더라도 비평가의 기본 마인드는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런 중에서도 비평가의 시각은 요구되며 시각이 결여된 비평은 맹목적이기 쉽다. 처음 본 조셉 나즈를 잊을 수 없었고 수십년이 흐르는 중에서도 인체와 움직임이 비중 높은 무대들을 중시하고 지금도 나즈를 강조하는 것이 토마스 한의 일면이겠으나, 이 사례는 한의 비평적 시각이 견고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토마스 한에게 자신이 유럽 현장에서 주목하는 다른 무용가가 있는지 묻자 한은 이렇게 답하였다. “주목하는 무용가 리스트를 길게 제시할 수는 있다. 많은 무용가가 유명하고, 또 어떤 무용가는 좀 긴 설명을 요한다. 그러나 몸과 오늘의 문명을 새롭게 보는 방식을 제공하는 무용가를 볼 기회는 드물다. 파패와누(Dimitris Papaioannou)가 그런 것을 제공한다. 그는 말하자면 새로운 조셉 나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