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성용 신임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합리적 원칙과 단원 자부심으로 변화 모색할 것
김성용 대구는 예술감독이 새로 부임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질문이 있다. 대구시립은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 현대무용단체로서 지방에 소재하고 있지만 무용계에 끼친 영향과, 나름의 그 위상이 있(었)다. 이 단체를 맡게 되었는데, 소감을 듣고 싶다.
대구 출신으로 중 3때 무용을 시작, 경북예고를 졸업했다. 서울로 진학(한양대) 했으나 대구시립무용단 공연은 빠지지 않고 다 봐왔다. 무용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최고의 안무가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제일 큰 무대, 특히 ‘대구시립현대무용단’의 예술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꿈을 이룬 셈이다. 그것도 일찍.
그런 셈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을 만든 사람이 궁금했고, 그것을 만든 사람이 참 커보였다. 무용도 같은 맥락이었다.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무엇보다 춤을 만드는 안무가가 되고 싶었다.
꿈은 이뤘다. 무용단을 이끌고 나갈 앞으로의 계획은?
81년도부터 지속되어온 역사와 현재 30여명의 무용수들로 구성된 단체이나 그 명성이 예전과 같지 않다. 무용수들조차 자존심이 떨어져 있다. 회복한다기보다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예전의 명성을 찾아주고 싶다.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나?
복합적이지 않나 싶다.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뒤 극장 관계자들과 무용수들에게 ‘선진출 역귀환’이라는 생각을 밝히고 있다. 작품을 들고 해외나 서울로 먼저 진출하여 인정받으면 자부심 또한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서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 아닌가? 대구, 나아가서 한국 관객의 수준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좋은 작품은 어디에 내놓든, 누가 보든 좋은 작품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겠다는 것(평의 질 여부도 중요하다), 다분히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해외 페스티벌에 가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잘할 자신감이 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무엇을 배웠나? 대구와 다른 점은?
우선 해외를 많이 다녔다. 이유는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해외에서 작업을 하다가 서울에 돌아왔을 때 뭔가 다른, 어떤 지점이 있었다. 말하자면 ‘(아직) 서울이 이렇구나’ 는. 그것은 큰 차이인데. 작품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예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늘 느꼈다. 동시대에 살면서 좋은 작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랐다.
해외와 서울을 오가면서 느낀 점을 서울과 대구로 대입, 이해하면 되는가.
일단 대구를 어느 수준까지 올려놓고 싶다. ‘대구시립현대무용단’을 영어약자로 ‘DCDC’라고 한다, 'Daegu Contemporary Dance Company'. 하지만 나는 ‘Daegu City Dance Company'라고 풀어쓰고 싶다.
대구시립현대무용단을 맡으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가? 혹은 앞으로 중점적으로 해나가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용수들이 댄서로서 가지는 자부심, 단원들이 주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싶다. 그것은 작품의 질과 관련된다. 다행히 우려했던 것보다 무용수들이 자부심이 높고 적극적이고 책임감도 있다. (상처가) 봉합이 되고 있다.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된다.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맞지만, 우리가 나서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예산 하에서 움직여야 된다. 페스티벌은 돈이 없어도 된다. 주어진 예산에서 할 수 있다. 관장님이 일단 해보자는 마인드의 소유자시다.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모두 다 돈으로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작품으로 말하고 평가 받는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공공무용단 예술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랄까? 자질이랄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합리적인 원칙을 만들고 그 원칙을 지켜가는 것. 많은 문제점은 원칙하에 움직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 무용수들의 기량이 (기술적인 것 보다) 안무가와의 소통을 위한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 교육이 같이 이루어지는, 당위성에 따른 발전이 있어야 한다.
영향을 받은 인상적인 작품이 있는가?
‘이 작품’이라고 들 수 있는 작품은 없다. 단지 인상적인 장면(이미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어릴 때 본, 덩치 큰 남자무용수들이 여자무용수를 리프팅하는 장면이라든가 특히 예전에 미나 유 선생님이 대구시립현대무용단 객원 안무한 작품에서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무용수가 춤을 추는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파격적인 신이었다.
자신의 안무경향(이력)을 정리하자면?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24세부터 지금껏 해온 작품이 무려 130여 편이다. 해외작품을 포함하여 거의 일 년에 서너 작품씩 해왔다. 돌아보니 초창기에는 멋 부리는 작업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후 개념 있는 작품을 해오다가 (춤) 움직임이 없는 개념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최근에는 모든 것을 춤으로 표현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을 풀어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감독으로 취임하고 첫 공연이다.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폭력이라는 주제의 〈군중〉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키티 제노비스’라는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 작업으로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것을 지켜보는 방관자등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가진다. 〈군중〉을 통해 폭력을 지켜보는 방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듯, 방관자에 관한 이야기로 ‘세월호’와도 연관된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것 또한 가장 큰 폭력이라고 생각에서 출발했다.
사회성 있는 작품인데. 그동안 죽 해오던 작업의 형태인가?
그동안 사회현상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작품을 해온 것 같다. 다른 점이라면 이제껏 나는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가해자 입장에서 생각도 해보고, 방관자 입장에서 생각도 해보고, 다르게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원래 계획되어 있던 일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확장되어 갔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 〈군중〉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달라.
73회 정기공연이다. 무용단원 33명이 전원 출연하는, 장소 특정적인 연출을 시도한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1년간 극장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간다. 이번 공연 뒤로 이전의 극장은 더 이상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30여 년 동안 극장무대 바닥에 많이 남아있는 흔적들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공감하고 싶었다. 극장을 거쳐 간 모든 무용수, 관객들 모두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특별한 신을 넣었다.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데 성공적이었으면 좋겠다.
전 예술감독(홍승엽)이 댄서로서 무용수들의 몸을 잘 만들어 놓았다고 알고 있다. 무용수들에게 또 다르게 요구해야할 사항이 있다면?
자부심을 가지고 춤을 추자는 것,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용수가 안무자의 작품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위해서 즉흥을 많이 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장단점을 비교하고 무용수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에서 역량을 키워주고 있다. (감독이 의도한 방향이 흐려지지 않나?) 그렇다고 내 방향이 변하지는 않는다. 대체적으로 사고가 닫혀 있는 경향을 보이는데... 작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중이다.
공공단체에서는 어떤 작품을 해야 하나? 반드시 필요한 작품이 있다고 생각하나?
대구시립무용단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층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메시지에 따른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2014년도에 〈초인〉으로 무용제 대상을 받았다. 그 작업으로 상을 받으면서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예술작품을 통해서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위한 이상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만드는가?
이번에 작업하면서 신을 만들면서, 어떤 부분에서 욕심을 내보고 싶었으나, 전체관람이 안 된다는 이유로... 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조정하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작품성향이 어디에 치우쳐 있다고 생각하나? 작품에 확고한 어떤 정신적 기반이 있는가?
지금 43세다. 지금껏 내가 느낀 것들, 내가 이렇게 느끼고 있으면 다른 이들도 같이 그렇게 느끼지 않겠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특별히 독특하고 이상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않는다.
영향을 받은 안무가가 있는가?
전설적인 많은 분들한테 영향을 받았다. 처음에는 ‘피나 바우쉬’였고 옮겨 갔다가 다시 ‘피나’한테로 돌아왔다.
예전에 〈까페 밀러〉를 보고 울었었는데 나 자신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착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가슴으로 느꼈던 것 같다. (언제 봤나?) 27세 때, 해마다 프랑스에 갔었는데 그 때 그곳에서 영상으로 봤었다. 이후 감각적인 데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무용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라든가 인터뷰를 통해서 본 그녀의 철학에 공감하고 있다.
문화예술회관에서 요구했던 ‘소통’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지 않아도 지원 인터뷰 때 노사 간의 문제에 대해 물어왔다. 합의점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얘기했다. 나의 작품세계에 개입만 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는 합의점을 찾아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사람은 무용수와 감독이다. 무용수들이 훈련 않는 것, 안 된다. 단원들한테 원칙을 주입시켜야 한다. 해서 원칙을 만들어가고 있다. 부작용이 생긴다면 그 때 또 다시 만들어 가면 된다.
공공단체의 예술감독이기 전에 무용가로서 자신이 속한 지역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가의 여부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일 수 있다. 대구무용계의 문제점은?
(잠깐 틈) 인맥에 치우쳐져 있다. 좋게 생각하면 좋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인맥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예컨대 나는 내 고향이다 보니까 서울에서 내려와 대구무용계에 문제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힘든 점 또한 분명히 있다. 그런 점을 두고 인맥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안된다고 생각하면... 문제를 만들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잘하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실제로 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무용인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안하면서 혜택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3월에 무대에 오를 〈군중〉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기대하겠다. 인터뷰에 감사하다.
홍은주 신임 울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공사 분별과 기량 향상으로 시민에게 다가간다
권옥희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것 축하한다. 울산시립무용단은 타도시 시립무용단에 비해 재정과 규모가 크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홍은주 전통과 창작을 고루 하는 한국춤을 추는 단체로 2000년도에 만들어졌다. 남자무용수 5명, 여자무용수 32명으로, 무용수 37명과 국악단 11명 총48명 단원과 예술감독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용수들의 평균 연령대는 36세로, 비교적 젊은 편이다. 그리고 극장공연을 연 12회 반드시 해야 한다. 객석은 다 찬다고 들었다.
무용단을 맡게 되었는데, 소감 및 각오가 있다면?
2월에 부임해서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켜보니 단원들이 무용수로서 근성들이 좋다. 이런 무용수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중요하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단원들을 하나로 모으고, 프로로서의 마인드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정기공연 2회를 통해 모든 역량이 드러날 것이다. 관객과의 소통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그전에 리서치 작업이라든가,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작품으로 울산시민들과 만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조가 있는 무용단과 예술감독과의 마찰이 종종 언급되고 있다. 울산시립은 어떤가? 무용수들의 춤 기량이라든가 프로무용수로서의 자세는?
아직 파악중이다. 몸으로 일단 부딪히고 있다. 무용실에서 서로 춤으로 보는 것이 큰 부분이고 소통을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댄서와 예술감독으로 만나 작업하는 부분이 가장 크니까 잘 운용하려고 노력중이다.
한 해 공연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올 상반기 정기공연이 6월 29일, 하루 잡혀있다. 그리고 후반기 정기 공연과 수시로 외부공연 찾아가는 공연은 60~70회 정도, 공연 횟수가 좀 많다. 하지만 그에 따른 무용수들의 공연수당이 다 나와서 복지는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관장님께서 도움을 많이 주신다. 1년 공백이 있었던 만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열심히 해야 한다.
울산지역에 미치는 시립무용단의 위상은 어떤가? 노조가 꽤 세다고 알고 있는데.
무용단의 위상은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다. 노조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선택당한 입장에서 책임감과 긴장감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새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가?
리서치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을 한 것을 토대로 무용수들과 잘 교감하여 11월에 취임공연 겸 정기공연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울산이라는 도시에 내 예술철학을 잘 녹여, 울산이라는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올리고 싶다. 그전 상반기 공연에는 일단 물을 소재로 해서 작품을 풀어볼 생각이다. 태화강이라든가, 물의 이미지로 작품을 풀어볼 예정이다.
공공무용단 예술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과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사를 분명하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뒤에 무용단과 같이 가야한다. 시대에 맞는 작품을 하려면 나 자신이 편견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중이다. 그래야 변화가 있고, 발전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나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같이 움직이자는 생각으로 움직인다. 아직 닫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움직이고 마음으로 다가가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소통이 중요하다. 솔선수범할 예정이다. 오늘 연습을 하면서 희망을 봤다.
무용단을 맡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중점적으로 해나가고 싶은 일이 있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기공연 안무를 잘하는 일이다. 그리고 단원들 기량을 늘려야 하는 것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정기공연 작품 가제가 〈수작〉이다. 물 수(水)자를 쓰는. 창작작품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내후년 정도에 선생님(배정혜) 모시고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
춤을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무엇을 배웠나?
서울예술단 객원안무를 많이 했다. 그리고 ‘워커힐’ 예술감독으로 5년 근무를 하면서, 기업이다 보니까 순수한 예술적 작업보다 먼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부분을 우선 가치에 두고 작업을 해야 하는 점 등. 다양한 현장과 공연을 통해 무대예술인 춤의 상업적인 부분과 예술적인 가치에 대한 많은 공부를 했다.
그리고 연극계 있는분들이랑 작업도 많이 했다. 결국 춤은 춤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독일에 1년 정도 있었다. 2006년 독일 피나 바우쉬 공연이 내겐 춤 교과서 같았다. 감동이었다. 그 공간에서 참 행복했다.
공공단체에서 해야만 하는 작품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
아니다. 작품세계는 감독 재량이다. 작품세계는 누구의 간섭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춤 철학이 녹아 있는 작품을 해야 하고 난 그렇게 하고 싶다. ‘울산’을 주제로 하는 작품 또한 내가 선택하고 내 춤 철학이 녹아들 것이다.
자신의 안무경향에 대해 얘기해 달라.
한국 전통춤을 기반으로 한 컨템퍼러리 공연을 지향한다. 한국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시대성에 맞게 풀어나가는 호평을 받은 〈아제아제〉 등 ‘바라기 시리즈’를 확장시킨 작품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작품에 확고한 어떤 정신적 기반이 있는가?
99년도부터 지금껏 해온 작품이 40여 편 정도 된다. 성균관대 무용학과 1기생이다. 1학년 때부터 학생회장을 하면서 사회과학 쪽으로 관심을 두었고, 그러면서 ‘춤패 디딤새’를 만들어 활동했었다. 이후 ‘경기도립’과 ‘리을무용단’에 있으면서 사회의 문제점 등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아락허탈〉을 만든 2004년 즈음 돈, 신분, 허례의식에 대한 문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쏟아 놓으며 춤을 췄다. 탈을 쓰고 하기스 기저귀를 차고 그 안에 콜라병을 넣고 발레를 춘 적이 있다. 선생님들이 많이 놀랐다. 허위의식, 알량한 지식에 대해 비판의식이 있었던 때였다. 사회성 있는 작품으로는 〈기억의 침묵〉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난 뒤 전환점이 생겼다. 존재에 대한 성찰. 〈저 푸름〉이라는 작품을 통해 존재에 대한 성찰을 했었으나, 사회 안에서의 나의 존재라는 것에서 탈피할 수는 없었다. 독일 유학 뒤 우리 것을 바탕으로 작업을 했었다. 나만의 색을 가진 춤. 우리 춤을 더 연구하고. 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전통춤을 공부했다. 〈아제아제〉가 최근작이다. 예술인의 길. 구도의 길. 입막고, 귀막고, 들은 것 때문에 상처가 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그 길을 간다는 등의 내용으로, 좀 더 진해졌다.
예술감독이 말하는 소통은 무용단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행정가들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관에서 요구하는 ‘소통’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다행히 관장님이 굉장히 진취적이시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울산문화가 도약하고 발전하길 바라고 있으며 (예술가가)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원하는 대로 다 하라고 하신다.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예술감독 지원 인터뷰할 때, 인상적인 질문이 있었는가?
나는 객원안무한 작품으로 관객과 단원들의 평가를 거쳐서 올라왔다. 1년 동안 예술감독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런 만큼 관장님의 기대와 응원을 받고 있다. 염려는 단 하나, 홍은주의 재능만큼 해 달라. 천천히 가 달라고 했다. 고마운 일이다.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무용계의 문제점은?
우리 무용계가 훌륭한 무용수들은 많이 배출해왔다. 반면 훌륭한 안무가가 없다. 이유는 춤추는 데 모든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과 연결되어 있는 부분으로 사고가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과 직위를 가지면 이내 닫혀버리는 것이 한국사회다. 나는 예술감독이라는 자리에서 새롭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다.
인터뷰 때문에 대구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고 고마웠다. 감독의 철학이 잘 녹아든 정기공연 작품이 많이 궁금하다. 울산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감독으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 인터뷰 후기_권옥희
올해 새로 부임하여 임기를 시작한 대구시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김성용)과 울산시립무용단(예술감독 홍은주) 예술감독을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 현대무용(김성용)과 한국무용(홍은주)을 전공한 같은 세대(40대)의 안무가들은 흥미롭게도 같은 예술가(피나 바우쉬)의 예술세계를 흠모하고 있었다.
(창조적) 안무가는 춤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춤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냄으로써 관객(평론가)을 움찔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공공단체의 예술감독과의 인터뷰가 그들의 개인적 고민만을 엿듣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그들이 어떻게 춤의 세계로 들어왔으며 무엇을 고민하고, 좋은 춤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또한 문제점이 많은 우리 무용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나아가 극장의 관장, 무용단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에 대해서도 묻는다. 다만 단체의 예술감독으로서 어떤 고민과 어려움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미뤄두었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예술감독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행복하지 않아서 춤을 춘다거나 혹은 행복하기 위해서 춤을 춘다거나, 자신의 춤 창작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인간적이며 인상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작품을 통한 개인 예술세계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짐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창조적인) 안무가적 재능은 이후 무대에 오를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대구, 부산 공연을 많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