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방희망 안녕하십니까. 재임기간 마지막으로 추진하신 작품, 재독 안무가 허용순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마침내 광주에서 국내 초연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춤웹진〉에서도 이 작품이 지난 2014년 아우크스부르크발레단 초청으로 재안무되어 공연되었을 때 현지취재기사로 다룬 바 있습니다. 그간 안무가 허용순의 짧은 작품들은 국내에 몇 가지 소개된 적이 있지만, 그녀의 첫 번째 전막 발레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광주시립발레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동기획으로 선보인다는 것은 나름 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 공연이 어떻게 추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신순주 작년에 〈봄의 제전 G.〉를 올릴 때 김주원씨와 이야기하는 도중 내년에도 시립발레단 공연을 정말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여기는 너무 레퍼토리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걱정하니 김주원씨가 허용순 선생님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안했어요. 유니버설발레단 연수 지도 차 오신 허용순 선생님을 만나 뵙고, 국립발레단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고, 유니버설발레단도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지만 허용순 선생님의 작품이 좋으니까, 우리나라에서 하더라도 프로와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허선생님이 일단 무용수들의 수준이 중요하니까 가서 보겠다고 하시더군요. 광주에 와서 단원들을 보시고 가능성이 있겠다고 하셔서 계획을 세우게 되었지요. 12월에 저희 공연이 끝나는 대로 바로 오셔서 3주간 세팅해주시겠다고.
그 전에 예산을 짜는데 세트 때문에 대략 3억 정도 들 것으로 예상되니 그게 문제였어요. 그래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같이 진행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서 김희정 공연사업본부장님을 찾아갔는데, 올해 마침 셰익스피어 작품을 테마로 잡아놓으셨던 거예요. 그때 제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고 가니 딱 맞아떨어졌던 거지요. 하지만 중간에서 김희정 본부장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왜 시립발레단만 지원해주느냐고, 시에서도 지원받는데 국립에서도 지원을 해주어야 하냐고 반대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작품을 해야 한다고 밀어붙여 주셔서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설날 전까지 리허설도 마치고 허선생님께서 단원들이 정말 열심히 하면서 잘 따라준다고, 가능성이 있겠다고 굉장히 뿌듯해하셨어요. 4월 공연이 무리가 없겠다 싶었는데 그 와중에 제가 연임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지요.
아닌 게 아니라 그 문제 때문에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불발될 뻔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사실 신순주 전 예술감독님에 대해 임산부 단원을 나가라고 했다든지, 〈봄의 제전 G.〉 광저우 공연을 추진하면서 예산집행을 무리하게 했다든지 하는 지역신문 기사들이 있어서, 오늘 인터뷰에서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작년 〈봄의 제전 G.〉를 관람하러 갔을 때 예상보다 높은 관객반응에 놀랐기도 했지만 취임 이후 정식명칭이 시립발레단으로 바뀌기도 하고 짧은 시간 안에 공연의 성과 등이 화제에 올랐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연임되지 않은 것은 그런 구설수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었거든요.
전체 단원들과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연차가 오래되고 제대로 춤추기가 힘든 단원들도 있는데 저는 어떻게든 그 단원들까지 같이 이끌고 가려고 하지만 어려운 작품도 가져오고 트레이너 선생님도 모시면서 연습도 빡빡하게 시키니 아마 힘들었겠지요. 그것을 노조에 자꾸 안 좋게 전달하니 마치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번진 듯합니다.
혹시 이렇게 되리라고 짐작하셨는지요?
솔직히 저는 연임이 안 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광주광역시문화예술회관 산하 예술단마다 공연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관객 동원력, 티켓 판매율, 관객 만족도 등을 보았을 때 발레단 역사상 가장 점수가 좋았거든요. 저도 열심히 했고 작품 수준이 올라간 것은 관객들로부터 인정도 받았으니 이런 요소들로 평가를 받을 거라고 믿었지 내부적인 일로 평가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거예요. 어느 조직에서나 문제가 있는 단원은 있고 그와 제가 마찰을 빚는 것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물론 2년이라는 시간 안에 이 모든 것이 다 바뀌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좋은 선생님을 모셔와 좋은 작품을 올리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시민들이 수준 높은 작품을 보고 행복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저의 첫 번째 임무라 책임을 다하려고 한 것입니다. 내부적인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게는 춤출 수 있는 단원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총 40여명의 단원이지만 그 중에 20명 정도는 제대로 춤을 출 수 없는 단원들입니다. 여기는 프로인데, 기득권이 있는 단원들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요. 하루아침에 푸시를 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1분을 출연하던 두 시간을 출연하던 받는 출연료가 똑같으니 경쟁력이 없지요.
제가 임산부 단원을 나가라고 했다는 기사가 났었습니다. 그 단원은 아예 춤이 되질 않는 단원인데다 발레를 위해 적합하게 몸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데 둘째를 임신했다고 저보고 봐달라는 겁니다. 개인 대 개인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지만 내가 따로 봐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나는 발레단을 위해 한 명의 단원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설득했어요. 지금까지 그 단원도 할 만큼 했고 더구나 둘째까지 낳고 와서 다시 춤을 추도록 만들려면 몸이 많이 힘들 것이기 때문에 예술감독의 입장에서 후배가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노조에 가서 그만두라 했다고 얘기한 거예요. 그 후 상황에서도 계속 제 기분을 상하도록 만든 다음 그것을 녹음하고 노조에 가서 보고한 것이 기사에 난 것입니다.
예술감독의 임무 중에는 단원들을 관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술감독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에 걸릴 것도 없어서 언론에 낼 거면 내라고 했어요. 춤을 추는 단원들은 가만히 있지만 대부분 춤을 추지 않는 단원들이 나가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언론에 나왔다는 것 때문에 시장님 귀에 들어갔던 것 같고, 시에서는 그렇게 문제가 많은 예술감독이면 떨어뜨리고 다시 뽑으라고 결정된 것이지요. 저를 평가했던 평가지를 모 의원님이 보셨다는데, 서울쪽 자문위원 세 분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항목별로 평가를 한 것이 아니고 O,X 로만 되어있더래요. 그걸 보시고 떨어뜨리기 위해 한 것이구나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이번에 〈로미오와 줄리엣〉도 하마터면 올리지 못할 뻔 했어요. 조례가 바뀌지 않는 한, 매번 좋은 작품을 가져오기 위해 제 자신이 이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것은 허용순 선생님과 저와의 신뢰 관계고 이미 1월에 세팅이 다 끝났는데 이제 와서 연임이 안 되었다는 이유로 안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제가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고 추진을 한 거에요.
시에서는 감독 즉 책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 공연을 안 한다고 했지만 제가 의원님들을 쫓아다니면서 제가 연임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좋은 작품을 꼭 해야 시립발레단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발레단 수준이 올라가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것을 깨면 다시는 같이 일을 할 수가 없게 된다고 설득했어요. 그리고 광주의 매체에 있는 모 기자님께도 아무래도 작품을 안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니 기사를 내 달라고 부탁했지요. 밤늦게 기사를 요청해서 다음날 기사가 나가니, 결국 시에서는 결정을 바꿔서 공연을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은 후에 올라가게 된 공연이네요. 걱정하셨던 예산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신 건가요?
김희정 본부장님이 이 공연을 꼭 올리고 싶은 건지 제 의지를 확인하시더라구요. 제가 연임이 안 되었다는 이유로, 책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빠져버리면 여러 입장에서 모두 곤란해집니다. 이번 공연은 광주문예회관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반씩 부담하여 이루어졌고 원래 올린 예산안이 3억 정도였지만 2억 4천만원 선에서 진행된 것으로 압니다. 예산안에서 기본으로 안무비나 세트비가 정해져 있고 그걸 넘으면 입찰을 해야 하니 여기서 안무가 선생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원하시는 만큼의 반도 되지 않아요. 제가 후원을 받아오고 사비를 털어서라도 후원을 하겠다고 해서 올리게 된 건데 행정 쪽에서는 제가 사비를 댔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셨군요. 부임하시기 전에는 시립발레단의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셨나요?
시스템 자체는 몰랐지요. 들어오기 전에는 좋은 마스터와 안무가를 모시고 어떻게든 추진하면 바뀔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원들 분위기라던가 공연에 대한 평가 이런 것들은 바뀌어도 시스템이 바뀌질 않으니까 너무 힘듭니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노조입니다. 지금 저희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국립발레단 밖에 없잖아요. 국립발레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고 나서 지금은 수준이 아주 높아졌습니다. 예술단은 재단으로 독립하고 후원을 받아 운영을 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면 힘듭니다. 기존에 있는 단원들은 만약 재단으로 바뀌게 되면 평가를 잔인하게 받아야 하고 떨어질 사람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 두렵겠지요. 정년이 60세인데, 음악하는 사람은 가능하겠지만 춤추는 사람은 40세만 되어도 힘든데 똑같은 조례를 적용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행정에서는 발레단 따로 조례를 적용시킨다는 그런 일은 절대 하지 않거든요.
국립발레단은 인기가 있기 때문에 후원을 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만, 광주시립발레단의 경우에도 후원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할까요?
저는 여기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서울이 기업체가 많으니 후원받을 곳도 많겠지만, 여기는 여기대로 예를 들어 한전, 신세계, 삼성 등의 기업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또 제가 실전에서 뛰어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재단이 되어야만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문예회관 산하 7개 단체 중에 저희 발레단이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사실 저희가 정기공연은 2회밖에 안했었지만 작년 마지막 공연인 〈호두까기 인형〉은 인기가 많으니까 4회로 늘렸는데 전석 매진이 된 거에요.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이 생긴 이래 관객이 제일 많이 온 겁니다. 광주에서 발레가 오래된 역사가 있고 본거지이기 때문에 특별합니다. 발레를 좋아하는 관객층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국립발레단보다 더 좋은 작품으로 관객도 불러 모을 자신이 충분히 있었어요. 국립발레단은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수익사업을 할 수 있어서 지방공연을 다니는 것도 가능하지만 시립발레단은 초청을 받는 것이 아니면 다른 지역에 가서 공연을 할 수가 없다는 것도 애로사항입니다. 초청의 경우도 저희가 가서 전혀 돈을 쓰지 않고 출연해주고 오는 것이라야만 가능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경우도 한 번만 올리고 끝내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광주시립발레단이 다른 지역에서도 공연할 기회가 생기면 좋을 텐데요. 그리고 원래 작년 하반기에 신진안무가 유회웅씨와 〈팔리아치〉 작업이 예정되어 있던 것으로 아는데 공연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으셨는지요?
예산이 없어서 못한 것입니다. 〈봄의 제전 G.〉를 할 때 추경예산까지 올려서 진행을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공연예산이 작품마다 배정된 것이 아니고 1년 동안의 예산을 조정해서 쓰는데, 〈봄의 제전 G.〉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유회웅씨에게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이 아니라도 연임을 했더라면 꼭 같이 작업을 할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유회웅씨 작품이 재미있고 관객과 소통이 될 수 있더라구요. 신진안무가 입장에서도 이런 직업발레단과 작업을 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되고, 발레단 입장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아요.
재임의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인가요? 예전에 한국춤비평가상 시상식에 참석하러 오셨을 때도 나누었던 이야기입니다만, 구자범 지휘자 재임당시 광주시향에 관해 풍문으로 들었던 얘기도 그렇고 광주의 지역 정서가 배타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있으니 앞으로 외부와 협업으로 작품을 진행할 기회가 생길 텐데 우려됩니다.
재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설령 공모를 통해 재임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지원하지 않겠지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문화 광주"라고 하지만 예술 행정을 하는 공무원들의 마인드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고, 일이 복잡해지는 것을 싫어하니 변화를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지요.
재작년부터 공공무용단 예술감독님들끼리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참여해보니 어떠셨는지, 가장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었던 주제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도립, 시립 등 공공무용단들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몇 번 모였지요.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더군요. 처음에는 문제점을 얘기하고 개선시켜볼 기대를 갖고 갔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고 온 상황이 많았습니다. 단체별로 예산도 너무 적고 열악한 상황인데 저희보다 더 힘든 곳도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좀 낫네요.” 이렇게 위로를 받고 돌아오곤 했어요.
짧다면 짧은 2년 임기 동안 상당히 의욕적으로 활동하셨고 괄목할 만한 성과도 이루었는데 그것을 지속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무척 안타깝습니다. 서울에서부터 많은 무용계 인사와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러 광주에 온 것을 보니 허용순 안무가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한국에서 볼 수 있게 된 이번 기회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공연 직전 바쁜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