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립무용단의 신작 <시간의 나이(SHIGANÈ NAÏ)>가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국립극장과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의 공동 제작으로 3월 23-27일 첫 선을 보인다.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의 상임안무가 조세 몽탈보가 안무로 참여한 이번 작업은 한국무용을 새로운 시각으로 끌어내며 전통과 현대의 성숙한 접점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작품은 한국에서 열리는 ‘프랑스의 해’ 개막주간을 장식하며, 6월 16-24일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의 시즌 마지막 무대를 통해 프랑스 관객과 만난다.
국립무용단과 작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번 국립무용단과의 협업 프로젝트는 한국 국립극장 안호상 극장장 및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의 디디에 데샹(Didier Deschamps) 극장장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013년 샤요국립극장 관계자가 한국 방문 시 국립무용단에 대한 관심으로 연습실을 찾았던 적이 있는데, 이때부터 협업에 대한 얘기가 오갔습니다. 양 기관 실무자들 간에 몇 번의 회의를 거치다, 2014년 한국 국립극장과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이 ‘공동제작’을 결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공동제작에 앞서 저는 지난 2014년 11월 일주일 동안 한국을 방문해 국립무용단을 처음 만나봤습니다.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이 타악기를 연주하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국립무용단의 단원들은 태고의 뛰어난 신체적, 음악적 테크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신체적 테크닉이었고, 무용수 각자의 개성도 무척 강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시간적 순서가 무의미해지고, 여러 세기에 걸쳐 존재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기억’을 직접 만나서 오늘날의 작품을 위한 영감을 받고 싶어졌습니다. 국립극장 안호상 극장장과의 열띤 대화 후, 저는 엄청난 열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극도로 전통적이면서도 극도로 현대적인 무용작품을 만들 야심이 생겨난 거죠.
이 작품에서 ‘전통’과 ‘현대’는 서로 상충하는 정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고 섞이고 공존함으로써 안무적 창작에 최대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태도들을 의미합니다.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한국 내 프랑스의 해’의 개막작이자 ‘프랑스 내 한국의 해’의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는데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립무용단과 작업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요?
열린 마음, 유연한 생각, 관대함을 풍부하게 보유한 국립무용단의 무용수들과 협업하게 되어서 참 행운이라는 것이 제 첫 소감입니다. 제게 있어서 이 창작 프로젝트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멋진 예술적 모험입니다. 한편, 이것은 인간적 모험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모험을 잊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제목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둠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는 제목을 좋아합니다. 제목이 생각을 조종해서는 안 되며, 각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시간의 나이>라는 제목을 통해 멕시코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1928-2012, 안무자가 큰 영감을 받아온 소설가로, 자신의 작업을 ‘시간의 나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했다)에 대한 오마주를 멀리서나마 표현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창작자들에게 과거를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내다보라고 권하곤 했습니다.
작품의 콘셉트는 무엇입니까?
과거의 전통적 몸짓을 살펴보고, 그 몸짓을 통해 현재의 몸짓을 상상하고자 합니다. 애정과 상상력을 가지고 한국무용 언어의 방향을 바꾸고, 한국의 기억을 통해 신체적 상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영감 받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이러한 응용의 시학은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관용과 창작 의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통적인 국립무용단 춤의 기억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통적 형태를 형성 및 해체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이러한 태고의 테크닉이 오늘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완전히 현대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창작 행위는 전통유산으로 되돌아간다고 확신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제시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 미션을 완수하고 싶었습니다. ‘신체적 기억의 해체와 재건’ 이것이 이번 안무 작품의 키워드입니다.
한국 전통 움직임을 토대로 어떤 방식의 새로운 무용을 구상 중인가요?
한국의 신체적 유산을 받아서, 이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안무는 세 개의 작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장에서는 무용수들의 기억에서 온 무용의 일부들에 따른 다양한 안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전 레퍼토리들의 조각들에 대한 스타일 실험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무 언어의 요소들을 재해석하며 원래의 작품을 완전히 탈바꿈시킵니다. 그러면 원래의 모델에서 멀어지고 새로운 조각이 만들어지죠. 저의 방식대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겁니다. 반면, 무척 특별한 한국무용의 테크닉이 가진 풍성함은 그대로 유지합니다. 이 작품의 개념은 무용 위에 무용을 겹쳐놓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예술 위에 예술을 겹치고, 기존의 것을 인용하고, 많이 달라진 새로운 버전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두 번째 장은 ‘레디 메이드’적인 몸짓, 즉 이제 현대무용역사 속에 자리 잡은 일상의 몸짓으로 구성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몸짓은 춤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장에 대해 간략히 말씀 드리자면, 이 부분은 저의 조안무들과 함께 만들어서 무용수들에게 알려주었고, 무용수들은 각자 상상력의 불(火)과 숨결로 이 부분을 조금씩 변형해나갔습니다.
음악(볼레로, 국악 타악 등) 활용 계획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이 작품은 세 개의 음악 파트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파트는 고전적 음악문화와 대중문화의 분류를 통해 분명히 구분되며 서로 융합되거나 혼동되지 않습니다. 이 세 부분을 의도적으로 이질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때로 그러하듯 말이죠.
예를 들어, 같은 날이라도 아침에는 바로크 음악을 듣고 오후에는 일렉트로닉 팝 음악을 듣고, 저녁에는 외출해서 클래식 음악 또는 현대음악 콘서트를 찾아 음악을 해석하며 급작스러운 변화를 줄 수 있죠. 순서를 바꿀 수도 있고요. 이러한 음악 장르의 혼합은 우리의 일상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혼합을 이 작품에서 재발견하고자 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첫 번째 파트에서 프랑스 출신의 DJ 로랑 가르니에(Laurent Garnier) 작품을 사용할 계획입니다. 또한 두 번째 파트에서는 모차르트(Mozart)와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의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고, 세 번째 파트에서는 국악 타악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악 타악으로 시작해서 라벨(Ravel)의 ‘볼레로(Bolero)’로 이어지며 작품이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이 모든 것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현재의 작업지침일 뿐입니다. 모든 창작은 예기치 못한 부분, 모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내포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죠.
영상(무용수 촬영 영상, 베르트랑의 작품 활용 등) 활용 계획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현재로서는) 작품 자체가 시각적, 안무적 시(詩)의 연속으로 구상되어 있습니다. 세 부분을 다시 부분집합으로 나눔으로써, 마치 꿈처럼 연결성이 없는 논리를 작품에 부여합니다. 오늘날, 디지털 영상은 우리의 일상에 침투해 있으며, 오래 전부터 영상을 공연예술을 위해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영상을 잘 활용하면 무대장치 및 예기치 못한 의미를 만들 수 있습니다(이러한 영상의 효과는 물론 관객 분들이 직접 평가해주셔야 하겠죠).
이번 작품의 경우, 뛰어난 영화인,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과 협업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베르트랑은 본인만의 작품 세계가 뚜렷한 영화인으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잔인성을 표현합니다.
작품의 주요 구성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첫 번째 파트는 특히 안무적이며, 전통유산과 창작 간의 관계를 너무 장황하지는 않게 살펴보게 됩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우리의 인간적 조건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파트에서는 무용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적 경험의 한 부분을 다룹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리듬을 통해 삶과 욕구의 축제를 벌입니다.
하지만 예술작품을 접했을 때 느껴야 하는 미학적 충격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더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작업계획은 내일 뒤엎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 조세 몽탈보(José Montalvo)
스페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프랑스로 이주한 조세 몽탈보는 미술사와 시각예술을 전공했으며, 미국 안무가 제롬 앤드루스와 표현주의 안무가 잔 바이트를 추종했던 프랑수아 드퓌, 도미니크 드퓌와 함께 무용을 시작했다. 프랑수아와 도미니크 드퓌가 설립했던 파리현대무용단(Les Ballets Modernes de Paris, BMP)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카롤린 칼송, 루신다 차일드, 얼윈 니콜라이, 머스 커닝엄의 워크숍에 참여하며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짧지만 강한 이미지를 주면서도 유희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1986년 스위스 니옹, 1987년 프랑스 파리, 1988년 이탈리아 칼리아리에서 열리는 무용콩쿠르에서 수상했고, 1988년 도미니크 에르비유와 함께 몽탈보 에르비유 컴퍼니(Montalvo-Hervieu Company)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또한 1993년부터 비디오 아티스트인 미셸 코스트와 함께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 역시 호평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Hollaka Hollala〉(1994), 〈La Gloire de Jérôme A.〉, 〈Pilhaou Thibaou〉, 〈Les Surprises de Mnémosyne〉(1996), 〈La Mitrailleuse en état de grâce〉, 〈Paradis〉(1997), 〈Le Jardin Io Io Ito Ito〉(1999), 〈Babelle heureuse〉(2002) 등이 있다.
다양한 작품에서 함께 작업해 온 연출가 조세 몽탈보와 안무가 도미니크 에르비유 두 사람은 1998년 크레테이와 발드마른의 국립안무가센터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됐으며, 동시에 2000년 샤요국립극장의 무용감독으로 임명됐다. 2001년 〈Le Jardin Io Io Ito Ito〉로 로런스 올리비에 최고무용수를 수상했고, 2004년 연출 및 안무한 장 필리프 라모의 오페라 〈레 팔라댕(Les Paladins)〉은 프랑스 현지는 물론 세계 각국의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2005년 올리비에 어워드 최우수 신작 오페라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 조세 몽탈보와 도미니크 에르비유는 샤요국립극장의 공동극장장으로 선임되어 작품 활동을 해오다가, 2010년 〈Lalala Gershwin〉을 끝으로 개별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후 조세 몽탈보는 샤요국립극장의 상임 안무가로만 활동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작으로는 〈트로카데로의 돈키호테(Don Quichotte du Trocadéro)〉(2013), 청소년을 위한 〈아사 니시 마사(Asa Nisi Masa)〉(2014), 2015년 신작 〈이 올레(Y Olé)〉(2015)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