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광열 무용단 창단 20년을 맞아 3월 26일부터 27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올린 기념공연에는 거의 빈자리가 보이지 않아 깜짝 놀랐습니다. 적지 않은 규모의 공연장인데--- 창단공연 작품이 <색동너머>였지요?
김명숙 <색동너머>는 1996년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가 기획한 "무용과 의상의 만남"에 초청받아 제작한 작품입니다. 당시 빌티 존스, 줄리 켄트 등 유명한 외국 무용수들이 대거 참여하는 행사여서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고민하던 중 김정희 작가의 색동을 테마로 한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착안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색동을 소재로 한 의상을 보면서 해외무대에서 공연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내용을 담았었나요?
5명의 무용수가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으로 동서남북 오방을 설정하여 여성의 삶을 표현한 작품인데요, 우리의 전통적 통과의례가 갖는 환희와 고통을 색동 이미지에 함축적으로 내포하여 강인한 여성을 주제로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필라델피아 2000 FEET' 국제 무용제와 '세계춤 2000 서울', 네덜란드 헤이그 등에서 공연해 국내외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늘휘무용단의 첫 작품인 만큼 애정을 갖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후 늘휘무용단은 조각가 유영교, 작곡가 황병기 선생님과의 작업 등 인접 예술 분야 아티스트들과 상당히 적극적으로 협업을 해 온 특징이 있습니다. 황병기 선생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어떤 작업들을 했는지요?
황병기 선생님과의 인연은 대학원 시절 선생님의 강의를 수강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인품과 학식, 그리고 무엇보다 정제되면서도 폭발적인, 한국적이면서도 모던한 작업세계를 존경하게 되었고, 선생님의 가야금 곡에서 작품의 영감도 많이 받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작업한 작품음악의 대부분은 선생님의 조언으로 이루어졌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상.상>입니다.
<상.상>은 황병기선생님의 가야금 산조 70분곡에 한국의 사계를 고스란히 담아 춤으로 표현한 작품인데요, 70분의 산조곡이라 10여년을 두고 완성을 계획하였으나 5년 만에 완성된 대작입니다. 이 작품은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에 초청받았고, 헤이그, 파리 등 해외에서 한국적 미를 선보이며 각광받았습니다. 선생님과의 대표적인 작업은 2001년 <샘>, 2003년 <나비연가>와 2013년 <미궁> 등이 있으며 그 외 많은 작품에서 음악감독을 맡아 주셨습니다.
황병기선생님의 음악이 선생님이 추구하는 무용세계와 특별히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황 선생님의 음악에는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정갈하고 담백하다고 느끼는 순간 흐트러져 흩날려버리지요. 동양적 사상과 현대적 모던함, 그리고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선생님의 음악적 사유방식은 내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또한 작업과정에서 끊임없는 자극을 주시며 새로운 방향으로 유도해 주시기도 하시지요.
유영교 조각가와는 어떻게 작업을 하게 되었나요?
1999년 <버들음>이라는 작품을 구상인 중일 때 우연히 뉴스를 통해 유영교 선생님의 작품을 접하고 무작정 전시회에 가서 선생님과 조우하게 되었지요. <버들음>이라는 작품과 교묘하게 의미가 상통했고 유영교 선생님이 선뜻 작품을 무대에 내어 주셨습니다. 무용수와 무대에서 호흡하는 살아있는 조각에 큰 의미를 가지셨고 2006년 타계하시기 전까지 <샘> 시리즈, <나비연가><알수없어요> 등 주옥같은 작품에서 선생님의 조각이 무대를 생동감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순수한 예술혼을 담으셨던 유영교 선생님은 창작 작업을 할 때마다 많이 생각이 납니다.
의상은 김정희 교수와 작업을 많이 했었지요?
김정희 작가는 제 오랜 친구입니다.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고 의미하는지 금방 알 수 있지요. 작업을 하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고 뜻하는 방향성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그런 점에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첫 작업은 <색동너머>이고, 그 이후 <신공무도하가> <상상> <헌무다례> 등의 대표적인 작품에서 김정희 작가가 의상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부각시킬 수 있는 의상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늘휘는 순수한 우리말이지요? 어떤 뜻이고 늘휘란 이름을 사용하게 된 연유도 궁금합니다.
늘휘는 회오리의 절정을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 단어입니다. 창단 당시 한국무용단체이므로 순수 한국어에서 고민하게 되었고 10년, 20년 이후 춤의 회오리의 절정을 이루고 싶어서 ‘늘휘’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잠깐 언급은 해주셨는데 지난 20년 동안 외국에서는 어디서 늘휘무용단의 작품이 소개되었는지, 그리고 특별하게 의미를 두었던 공연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1999년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와 필라델피아 무용연맹 초청공연으로 <색동너머>를 공연했구요. 2002년 파리 가나보브르 초청공연 <샘>, 2005년 뉴욕대학교 초청공연 〈Taintless Spring〉, 2007년 동아일보 주최, 이준 열사 순국 100주기 기념 네덜란드 헤이그 초청공연 <송시> 등이 있습니다. 특히 2009년에는 <상.상> 작품으로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로부터 한국 무용단체로는 유일하게 두 번째로 초청을 받아 의미가 깊었습니다. 또한 2012년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의 초청공연 <상.상>을 선보여 한국춤의 정수를 선보였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한국춤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음으로써 자부심과 동시에 더욱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번 기념 공연은 엘지아트센터라는 대극장에서 이틀 사이에 다른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어려운 도전을 했습니다.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2016년 올해는 늘휘무용단이 창단된 해로부터 정확히 20년이 된 해입니다. 그동안 한국의 전통춤과 창작춤 그리고 늘휘무용단의 신진작가 양성을 위한 기획공연 등 많은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해 왔습니다. 이번 공연은 20주년을 맞이하여 늘휘무용단의 지난 행적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무대 위에 춤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틀 공연 중 첫날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레퍼토리인 <상.상>과 작품 <미궁>과 <하늘의 미소>중 일부를, 다음날은 신작을 공연했는데 늘휘무용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시간을 한 공간에서 다채롭게 선보이고자 구상했습니다.
신작인 <모래•그림>은 영상과 움직이는 무대미술이 곁들여진 70분 길이의 장편이었습니다.
<모래•그림>은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 행사에 관객 입장으로 관람하면서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해외 작가의 작품들에 담겨진 동양적 색채를 발견하고 많이 놀라고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번 작품은 몇 년 간 작업해온 철학적 사유의 연장선으로 동양적 사상을 깊이 있게 작품에 담아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신작인 만큼 많은 공을 들였을 텐데요?
모래•그림>은 음양오행, 삼재론, 만다라의 사상을 움직임에 응축시켜 작게는 늘휘무용단의 지난 행적을, 크게는 우주의 생멸을 담아 상징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이번 무대를 위해 무용수들과 4개월간 하루 6-7시간씩은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엘지아트센터는 무용수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무서운 무대이기 때문에 무용수의 신체와 움직임 훈련에 집중했습니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하여 2시간가량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동작을 훈련하였고 군무인 듯 하나 무용수 개인의 기량이 보이는 솔로의 느낌을 내어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무용수들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충분한 소통과 장면마다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늘휘무용단을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로 하여금 ‘격조있고 정제된 무용수들’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안무자에게는 훌륭하게 성장한 무용수들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지요.
무대미술을 마치 소품처럼 다채롭게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돋보였습니다. 3장에서의 의상도 특히 디자인 면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이번 <모래•그림>의 의상은 두 명의 의상디자이너가 참여를 하였는데 기본적인 구상은 제가 작년부터 콘셉트를 미리 잡아 발전시킨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느 관객이 보더라도 한국적인 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고, 무용수의 조각과 같이 몸이 잘 드러나게 함으로써 움직임이 세련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특히 두 달 동안 무용수의 개개인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체크하며 이미지에 맞는 색깔을 선택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이러한 노력이 무대에서 빛을 발한 것 같습니다.
늘휘무용단이 추구하는 작품의 색깔을 한마디로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은 작품을 제작할 경우 다른 예술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표현영역을 확대하여 관객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창단 20년을 맞이한 지금, 앞으로의 늘휘의 행보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적 정서를 갖춘 소재에 미니멀한 표현을 가미해 한국적 모던미를 갖추고자 합니다.
늘휘무용단이 지난 20년 동안 거둔 성과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무용단 창단 10주년, 15주년, 20주년 기념공연을 모두 LG아트센터에서 했습니다. 이를 통해 공연티켓 판매현황 및 당일 관객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매번 공연을 관람하러오는 중복된 인물, 즉 일반 마니아층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공연의 경우에도 첫날은 공연 3일전에 티켓이 매진되었습니다. 나름의 해석을 하자면 일반 관객이 공연을 접하였을 때 편안하면서도 격조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되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무용관객층을 확대했다는 점을 성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작품들을 공연했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요?
70여분에 이르는 길이의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곡에 한국의 사계를 빗대어 만든 작품 <상.상>(想.想)을 꼽고 싶네요. 그 이유는 상상의 춤의 근본이 순수히 김명숙의 춤사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출 예정입니다. 이 외에 다른 작품을 꼽자면 故 유영교선생님과 함께 작업했던 <샘> <알수없어요> 그리고 3년 전에 작업하였던 작품 <미궁>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20년을 넘긴 무용단의 앞으로의 활동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요?
크게 두 가지로 잡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까지의 작업이 김명숙 본인을 중심으로 한 작업이 많았다면, 앞으로는 가능성을 지닌 제자들을 중심으로 작업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두 번째로는 한국춤을 세계화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기존의 작업 및 앞으로 할 작업을 해외에서 선보일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시지요? 학회 논문의 질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교육과 창작활동을 병행하는 게 어렵지 않은가요?
한국무용예술학회의 회장을 맡은 지 올해로 3년째입니다. 사실 교육과 창작을 병행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저는 교육활동과 창작활동을 시기별로 나누어 진행하는 방향으로 절충하였습니다. 주로 공연은 방학을 통해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는 3월, 9월에 하였고, 교육은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에 늘 신경을 쓰는 방향으로 진행하였지요. 학회라는 것은 질이 높은 논문집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제가 학회장에 취임한 이후 논문집발간, 학술대회 개최에 매진하였으며 그 외적인 일은 벌이지 않았습니다. 4월 16일에는 제 21차 학술대회 ‘춤에 관한 학문적 담론’이 개최될 예정입니다. 미국 무용교육학의 거장 Barbara Bashaw 교수와 국내외의 저명한 발제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춤에 관한 담론의 장을 펼치고자 하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한국 무용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한국무용계에는 젊은 인재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한국 창작무용이 외국에 나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사례가 미흡한데, 이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한국무용계 전반에 걸쳐 젊은 인재들의 작품이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길 바랍니다.
무용단을 통해 적지 않은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그들 중 몇 명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1996년 무용단 창단 작품인 <색동너머>에 참여하였던 4명의 무용수들을 먼저 소개하고 싶습니다. 안시향은 일무이수자로 정재연구회에서 궁중정재 복원에 앞장서고 있으며, 남수정은 현재 용인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유미희는 경인교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애덕은 미국 시카고에서 시카고 무용단을 결성하여 매년 공연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해 <신공무도하가>에 출연하였던 이미영 역시 국민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제자들이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이번 공연을 위해 뉴욕에서 온 박경은, 플로리다에서 온 김정래,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배진일, 이은정, 최시원 등 많은 제자들이 열심히 한국무용계를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