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세컨드네이처 댄스 컴퍼니 예술감독 김성한
커뮤니티 춤 콘텐츠 개발에도 관심 갖겠다
장광열 컴퍼니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으로 11월 14-15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R U Ready?〉를 공연했습니다. "대답은 당신만 알고 있어요"란 부제가 붙어 있던데---, 어떤 내용의 작품이었나요?
김성한 그 동안 문학을 현대무용 몸짓으로 시각화한 작업을 꾸준히 해 왔습니다. 이번 공연은 이런 패턴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아유 레디?>는 경쟁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서로에게 치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획일화된 요구에 맞춰진 개인의 삶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진정한 나를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 주제입니다.
그러고보니 최근작인 <인간단테><이방인> 등이 모두 문학작품을 텍스트로 한 것이었네요.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대단했습니다. 빠른 템포의 비트가 강한 음악에 군무 위주로 전체를 배열한 것에 눈에 띄었습니다. 안무가로서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작업했는지요?
이번 작품에는 12명의 무용수들이 출연했는데 현대무용과 스트리트 댄스 무용수들이 함께 작업하였습니다. 비트가 강한 전자기타 음악을 군무 장면에 시용해 안무하였습니다. 무용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는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현대무용의 추상적인 움직임보다는 음악에 충실한 신나는 리듬에 중점을 두고 스트리트 댄스 요소와 현대무용의 조화를 시도했습니다.
순수무용과 대중무용을 접목시켜 뭔가 정형화 된 움직임에서 탈피해보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유럽의 안무가들에게서 보여 지는 새로운 흐름 중 하나였지요. 이번 공연에는 유난히 일반 관객들이 많아 보였고 그들 모두 신나는 음악과 빠른 템포의 춤에는 환호하며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더군요. 독립 안무가로 공연을 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던데 --- 창단 10년을 맞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 보입니다.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보면, 안무가의 길은 제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니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저한테 맞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별로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 창단한 세컨드네이처는 그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1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새로운 판을 짜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미래에 대해서 확신은 없지만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긍정적이게 생각하면서 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이번 신작에 <아유 레디? (R U Ready?)>라는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도 상주단체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옛날보다는 여건이 좀 나아진 것이지요? 지난 10년 동안 컴퍼니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경제적인 결핍과 그로 인한 상처입니다. 작품 할 때 제작비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큰 시련이었어요. 이는 한국에서 민간 개인무용단을 운영하는 모든 단체들이 겪는 공통점일 것입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방배동에서 연습실 겸 무용 스튜디오를 운영했었는데, 연습실 렌트비와 기본적인 유지비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무용수들 및 스태프들과의 관계유지에도 경제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는데, 그 동안 많은 무용수들과 스태프들과 헤어지게 되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버티는 힘이 생겼습니다. 안무가로서 이런 것도 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동안 세컨드네이처는 제가 키운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떤 이는 제대로 개런티를 못 받고 재능 기부하였고, 얼굴 붉히고 헤어진 사람도 있었고, 좋게 헤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세컨드네이처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안무가로서 스스로의 기대에 만족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킬 수 있는 시도인지 아닌지, 뭐가 나에게 맞는지를 찾는 게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100% 찾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80-90%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을 꼽겠습니까?
아무래도 강동예술센터의 상주예술단체로 선정되었을 때일 것입니다. 2014년 초에 발표가 되었는데, 현재 서울 상주예술단체에서 현대무용으로는 유일한 단체입니다. 그 동안 지원금 선정에서 많이 소외되었는데, 상주예술단체가 되고 나서 그 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느낌이었습니다. 10년 동안 안무가로 자존심 버티기처럼 유지해왔던 분신 같던 연습실을 처분하고 강동아트센터로 입주하였을 때 감회가 새롭더군요. 불안한 미래이지만 자신을 믿고 끝까지 노력하면 분명히 땀은 배신하지 않고 길을 열어준다고 믿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작품을 창작했는데 안무가로서 본인의 작품이 갖는 특징 또는 성향이라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작품을 할 때 임팩트가 있어야 하고 뭔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요한 것은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예술가가 그 시대에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연작시리즈로 문학을 현대무용화 한 작품 <구토>(2010), <보이체크>(2011), <이방인>(2013), <인간 단테>(2014) 등 명확한 주제를 가진 것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집중했었습니다. 무용에 다양한 예술분야를 융해한 다매체적인 특징으로 인간실존에 대한 주제로 작품에 무게감을 더했습니다. 올해 10주년 기념 공연인 <아유 레디?>는 그전에 해왔던 문학적 재해석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했고, 스트리트 댄스, 줄타기 등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세컨드네이처 공연을 보러 오시는 관객들이 일회성이 아니고 다음 작품을 또 기대할 수 있는 단체로 만들고 싶습니다. 빨리 달리지는 않지만 꾸준히 계속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컨드네이처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 작품 말고도 소품들도 여럿 있었지요. 그동안 만든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2013년 초연했던 <이방인>은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현대무용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섬세하고 감각적인 몸짓으로 부조리 문학을 현대무용화 한 작업이었습니다. 문학 트리오로 3부작의 완성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스스로 안무가로서의 성취감이나 작품에 대한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동아트센터 소극장에서 했었지요. 맨홀형식의 무대바닥을 뜯어내고 막을 전부 걷어내고 공간을 확장해 공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네 맞습니다. 2층 난간도 최대한 활용하였었지요. 연극적 행위와 비보잉 춤사위 등을 낯설지 않게 현대무용이 잘 받쳐주었고 음악, 조명, 의상, 소품 등을 적절히 자제하면서 <이방인>의 강렬한 인상과 세련된 함축을 동시에 실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이 가장 애착이 가고 기회가 되면 재연하고 싶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현재 강동아트센터의 상주단체로 활동하고 있는데 상주단체 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는가요?
강동아트센터 상주예술단체가 된 후, 오디션 시스템과 출연료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습시간 관리로 창작공연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효율적인 인력관리가 가능해졌습니다. 그전에는 공연이 있을 때만 단기간 모였다가 해산할 수밖에 없어서 장기적인 계획을 잡기에 좀 무리가 있었고, 무용수들의 스케줄을 조율하는데 꽤 힘들었는데 현재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연중 계획을 잡고 다양한 시도와 의도했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주단체로서 받는 지원금은 어느 정도 되는가요?
2014년 첫해는 7500만원을 지원받았고, 2015년에는 7800만원을 지원받았습니다. 지원금에서 20%는 강동아트센터에 지급되고, 나머지 지원금으로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초연 창작작업 시 극장에서 소정의 지원금이 지원되었습니다.
현재는 몇 명의 무용수들이 있고 어떤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는지요?
<아유 레디?>는 정규단원 8명과 오디션을 통해 뽑힌 4명 해서 총12명의 무용수로 작업하였습니다. 창작공연 이외에도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있는데, 청소년 커뮤니티, 찾아가는 공연, 강동 그린웨이, 극장 프로그램인 ‘엄마의 방’이라는 지역민 참여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동구에 대표적인 축제인 ‘강동선사축제’를 올 10월 초에 함께 참여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역구민과 함께 수행하였습니다.
얼마 전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로부터 특별한 상을 수상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의 상인가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예술경영컨퍼런스’를 주최했었습니다. 전문예술법인단체의 예술경영 사례를 발굴하는 '예술경영 우수사례'를 공모하였는데 90여개 단체 중 총9개의 단체가 예술경영 우수사례에 선정되었습니다.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는 오디션시스템과 출연료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여 효율적인 인력관리와 운영을 인정받아 ‘2015년 예술경영 우수사례’로 선정되었고 수림문화재단이사장 표창장과 상금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런 공모가 있는 줄도 몰랐었고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도 마음을 비우고 접수했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체계적인 문화재단들과 단체 법인이 많았기에 그냥 참여하고 경험하는 것에 만족하자는 생각이었지요. 그래도 준비는 열심히 하였고 컨퍼런스에서의 발표준비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무용단체로는 첫 시도였고 체계적인 시스템화를 실행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신 것 같습니다. 또한 무용단체로는 수상이 처음이라 의미가 있고, 이는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한 결과와 도전을 거듭해온 노력과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강동아트센터가 함께 이룩한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춤 단체 운영에서 경영적인 마인드를 도입해 이룬 성과란 점에서 의미가 있고 다른 단체에서도 참고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어떤 작업을 하고 싶고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요?
지역 커뮤니티 콘텐츠를 개발하고 싶습니다. 창작작업에 대한 연구와 노력은 계속 해나갈 생각이고,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참여를 위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술을 전해줄 수 있을까’에서 시작하여 청소년 참여 프로그램이나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에 대해 노력을 아끼지 않으려 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학교에 찾아가 중고생들에게 실행하였는데, 왜 춤을 추는지, 좋아하는 춤을 오래 추려면 기본적인 몸 푸는 법, 길거리에서의 춤과 무대공연에 대한 이해 등 춤에 대한 열정을 같이 나누고 공연까지 올려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진행이 잘 되었습니다. 일반 관객들이 어렵고 멀다고만 느끼는 무용을, 문턱이 높다고만 생각하는 극장을 어렵지 않고, 멀지 않고 가까운 극장으로 만들자는 계획입니다.
적지 않은 독립 안무가들이 제작 환경이 너무 힘들다 보니 상주단체 선정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상주단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요. 지원금에 비해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구요. 상주단체라고 하더라도 컴퍼니를 운영하면서 힘든 점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강동아트센터 상주예술단체로 있으면서 세컨드네이처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올해는 조금 더 시스템화되었고 포맷이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지금 무용단 단원들은 굉장히 성실하고 훌륭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세대차이라고 해야 할까... 젊은 세대들은 희생보다는 정당한 돈이나 대가를 바라고 이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상호 이해에서 정도의 차이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강요보다는 나의 예술작업에 대한 공감대와 인센티브 제도에 따른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통해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원구성이 순수무용과 실용무용 전공자들이 같이 있다 보니 그 경계에서 혼선이 오거나 조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예술경영 우수사례로 상을 받은 것처럼 더 이상 독립 개인무용단이 아니기에 시스템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덧붙여 주시지요.
저는 교육자의 길보다는 예술가로서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명감과 함께 앞으로도 예술가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그 동안 우리 무용계에 있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안무가들이나 무용수들이 사회성을 더 넓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무용하는 사람들만 만나지 말고 경영하는 사람도 만나보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용계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그리고 무용계의 리더들은 지금 현재 무용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제가 유학 갔을 때 문학, 철학, 음악, 미술, 건축, 요리, 패션, 영화 전공자 등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무용계는 상대적으로 다른 장르에 비해 소통의 정도나 네트워크가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