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사스무용단의 한국인 단원 윤수연
뒤바뀐 전공, 창의적 아티스트를 꿈꾼다





김인아
지난 5월 7일부터 13일까지 LG아트센터와 대전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로사스무용단의 내한공연에서 깊은 인상을 안겨주었습니다. 벨기에를 넘어 세계 무용계의 주요한 컴퍼니 중 하나인 로사스무용단에서 유일한 동양인 단원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요. <춤웹진> 독자들을 위해 우선 자신의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윤수연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습니다. 전부터 발레와 현대무용을 부전공으로 꾸준히 배워왔고 좋아했지만 한국무용을 오래했던 터라 전공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러던 차에 대학 3학년 때 해외 초빙교수님의 현대무용 수업을 듣고 작품에 참여하면서 춤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여러 스타일의 춤에 대해 매우 흥미로워졌어요. 현대무용과 발레 클래스 수강을 점차 늘려나갔죠. 국립무용단 단원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이 진짜 내가 원하는 목표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현대무용으로 전향하게 된 것 같아요. 춤은 계속 추고 싶었고 해외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졸업 후 유럽으로 건너가 여러 클래스를 들었는데 정말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됐어요. 언어 문제도 있어서 더욱 힘들었죠. 그러다 2003년에 네덜란드 로테르담 댄스 아카데미 오디션을 보았고 운 좋게도 게스트 스튜던트 자격으로 4학년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로테르담은 클래식 발레에 집중된 클래스가 많아서 제가 원했던 컨템포러리 댄스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듬해 로테르담을 마치고 로사스무용단장인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가 브뤼셀에 세운 P.A.R.T.S 무용학교에 다시 입학했어요. 처음부터 3-4학년 과정으로 들어가서 현대무용과 컨템포러리, 발레 테크닉을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2년 동안 다니면서 훌륭한 선생님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영감도 많이 얻었어요. 무엇보다 배우는 것이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한국무용에서 현대무용으로 전향하신 이력이 독특하네요. 그 과정이 힘들었을 법도 하지만 폭넓은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었을 듯합니다. 케이르스마커가 운영하는 학교에 진학했다면 이와 연계해 로사스무용단에 입단하게 된 건가요? 입단 과정이 궁금합니다.

유럽에서는 졸업단계에 있는 학생들이 관심 있는 무용단에서 무용단생활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어요. 저의 경우엔 학교 옆에 로사스무용단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로사스무용단에 항상 관심이 많았죠. 무용단의 허가로 2주 동안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무용단생활을 해볼 수 있었어요. 졸업 즈음에 단장님께서 다음해 신작에 참여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고 2007년에 입단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벨기에는 얀 파브르, 빔 반데케이부스, 알랑 플라텔, 시디 라르비 세르카위 등 유수의 현대무용가가 많은데요. 로사스무용단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는 다른 무용단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입단 이후에 로사스 활동을 오래 하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춤이 제일 좋아요. 다른 무용단은 움직임에 연극적인 요소를 더 많이 부여한다거나, 움직임 대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개념을 중시하는 경향도 있잖아요.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이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움직임을 중시하는 로사스의 취지와 생각이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요.

무용단의 작업방식은 어떤가요?
물론 단장님께서 최종 결정을 내리시지만, 창작 과정에서는 단원들의 제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단원들은 좋은 움직임을 제안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이 과정이 훌륭한 공부가 됩니다. 저는 입단은 수월한 편이었지만 단원 초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어요. 입단하자마자 신작 크리에이션이 있었는데 ‘스티브 라이히 이브닝’이라고 이번에 공연한 <드러밍>을 포함해 5개 레퍼토리 갈라 공연을 준비했고 그중 신작 한 가지를 창작하는 것이었어요. 기간이 5주 정도로 짧은데다 경험이 부족해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죠. 단지 짜여진 작품을 습득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어요.
이후엔 창작에 참여해서 단장님과 단원들이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신작을 만들 때에는 단장님께서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로사스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인 음악과 내러티브를 배제한 수학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작업이 진행됩니다. 영감을 얻을만한 다큐멘터리나 영화 등 창작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여러 차례 미팅이 이뤄지죠. 스튜디오에서 실제로 움직임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단장님과 단원의 관계가 안무자, 무용수의 위계를 뛰어넘어 굉장히 수평적이에요.





이번에 공연한 <로사스 댄스 로사스>는 무려 1시간 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점차 강렬해지는 반복 움직임으로 세련된 여성성을 보여주었고, <드러밍> 역시 잠깐의 휴지도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리듬을 따라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무용수들의 탁월한 기량은 고도로 훈련된 몸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용단에서 따로 훈련하는 클래스는 없어요. 개인적으로 부상방지 차원에서 요가나 필라테스, 태극권 등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요. 보통 무용단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트레이닝을 하고 있죠. 로사스무용단이 매해 신작을 하다 보니 작품에 맞게 자연스럽게 훈련과 연습이 되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면서 전문무용수로서의 역할을 배우고 기량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로사스 댄스 로사스>에서 특히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춤웹진> 리뷰에서도 “윤수연의 고혹적인 표정 연기는 눈에 띄었다”는 호평이 있었고요.
평소에 연극적인 표현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특별히 표현을 위해 연습하는 것은 없어요. 그저 작품에 몰입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로사스무용단 입단 후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했지만 한국 무대는 이번이 처음 이었는데요. 체감했던 관객 반응은 어땠나요?
굉장히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로사스 댄스 로사스>의 경우엔 공연이 끝났지만 아직 여운이 남아있는 느낌이랄까요. 첫 파트가 무음으로 이어지고 굉장히 반복적이기 때문에 관객 분들이 지루해하시진 않을까 우려했는데, 걱정과 달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드러밍>은 리드미컬한 음악에 화려한 편이라 보기에는 좀더 편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대전 공연도 1층은 꽉 찼고, 2층은 약간의 빈자리가 있었지만 호응이 좋았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대만과 일본에서도 공연했었는데 그때도 반응이 뜨거웠어요. 특히 대만에서는 무용단원 중에 동양인이 저뿐이라 주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기자 분들이 단독으로 사진도 찍어주고, 인터뷰도 하게 됐고요. (웃음) 3-4년 전에 일본 오사카의 소극장에서 3일간 공연했었을 때에는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어요. 공연 둘째날 아침 일찍 공연장을 갔는데 사람들이 책을 보면서 길게 줄을 서있었죠. 알고보니 저희 공연을 보기위해 아침부터 대기하는 분들이셨어요.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서울 공연에서 <드러밍>은 이틀이었던데 반해 <로사스 댄스 로사스>는 하루공연이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무대셋업 때문인지 아니면 무용수의 체력안배를 위해서였나요?
컴퍼니와 주최측인 LG아트센터의 조율로 결정된 것이었어요. 무용단에서는 공연횟수가 많기를 원했었는데, 주최측에서는 아무래도 관람율이나 여러 제반요소를 모두 고려해야하니까요. 현대무용은 어렵다는 인식이 많잖아요. 어쩌면 모험이었을 것 같기도 해요.
3회 공연이 확정된 상태에서 어떤 작품을 무대에 올릴지 의견이 나뉜 적도 있었다고 해요. 기획 단계에서 <로사스 댄스 로사스>를 제외하고 <드러밍>만 공연하는 것으로 변경되기도 했었죠.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로사스 댄스 로사스>예요. 대학교 때 서양무용사 강의에서 이 작품의 비디오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었어요. 로사스무용단에 입단해서 드디어 동경하던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작품으로 한국무대에 오를 수 있었는데 제외된다니 아쉬운 마음 뿐이었죠. 다행히 <로사스 댄스 로사스>도 함께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밖에 로사스무용단 레퍼토리 중에 어떤 작품에 애착을 갖고 있나요?
<바르톡(Bartók)>이라는 작품도 좋아합니다. 음악과 움직임이 뮤지컬처럼 들어맞는 작품으로 리드미컬하고 코믹해요. <로사스 댄스 로사스>처럼 여자 네 명이 등장해요. 캉캉춤을 연상시키듯 스커트를 올리고 내리는 장면이 인상적이고요. 이 작품 외에도 로사스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여자 무용수들의 무브먼트가 강렬하죠. 레퍼토리하면서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연습이 되는 것 같아요

 



국내의 많은 무용수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싶어 합니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줄만한 조언이 있다면?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이 국내에서도 가능하다면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될 거에요. 요즘은 인터넷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잖아요. 흥미롭고 관심 있는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열정,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뤄나가려는 패기와 도전정신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때로 어렵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요. 덧붙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표한 바를 열심히 하는 장점이 있는데요. 그에 못지않게 창조적인 역량도 중요해 보입니다.

향후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로사스무용단에서 계속 활동할 계획입니다. 무용수로서 많은 레퍼토리에 참여하고 같은 패턴을 반복하다보면 획일화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그것을 뛰어넘어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른 분야와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좋을 것 같고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먼 훗날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았지만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려 합니다.

2015.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