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몇몇 메이저 발레단에서는 종신단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경우 10년 이상 연속 오디션을 통과한 무용수 중 지속적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 무용수와 종신단원 계약을 하나 그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10년 연속 오디션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어떤 경지에 도달한 예술성을 공인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현역 종신 단원은 강수진이 유일하다.
핀란드국립발레단의 하은지도 종신단원이다. 외국의 직업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무용수로는 강수진에 이어 두 번째로 종신단원이 되었다. 하은지는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 양쪽의 레퍼토리 모두를 뛰어난 예술성으로 소화해내는 무용수로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그 특별한 예술적 감각이 그녀를 종신단원으로 선임하게 한 이유이다.
필자가 무대에서 하은지를 처음 본 것은 2008년 여름 세종문화회관대극장에서였다. 중앙일보사 주최로 열린 발레 갈라공연에서 그녀는 <그랑 파 클래식 Grand Pas Classic>과 지리 킬리안이 안무한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 〈Petite Mort〉를 춤추었다.
당시 미국의 네바다 발레단을 거쳐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하다 핀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옮긴지 일 년이 지난 경력의 젊은 무용수는 기본기가 잘 다져져 있었고, 안무가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줄 수 있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었다.
하은지의 춤을 다시 본 것은 5년이 지난 2012년 겨울 헬싱키에서였다. 핀란드 국립발레단 창단 90주년을 기념해 새로이 제작한 <눈의 여왕>(The Snow Queeen). 예술감독 케네스 그레브(Kenneth Greve)의 안무로 세계 초연을 한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본 이 작품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공연 내내 무대는 온통 눈으로 가득 찼다. 실제로 내리는 눈, 눈 덮인 풍광, 커다란 고드름, 때론 눈의 여왕이 추는 신비스런 솔로춤과 그의 수하들이 추는 순백의 군무는 관객들의 시선을 무대 위로 쉼 없이 빨아들였었다.
작품 전편을 끌어가는 주인공은 Kerttu와 Kai, 그리고 눈의 여왕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주인공인 Kerttu는 놀랍게도 우리나라 무용수 하은지였다. 그녀의 상대 역인 Kai역에는 핀란드 출신의 Poutane Samuli, 그리고 눈의 여왕은 일본인 무용수 Komori Mai가 맡았다. 하은지가 이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지는 알았지만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사실은 알지 못했었다. 헬싱키에서 열린 노르딕(nordic) 댄스플랫폼인 ICEHOT에 참여하면서 짬을 내어 감상한 이 공연에서 놀랍도록 성장한 한국인 무용수의 활약은 한마디로 눈이 부셨다.
하은지는 그녀의 명성답게 뛰어난 기량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안정되게 드라마를 이끌어 갔다. 전편에 걸쳐 적지 않은 장면에 줄곧 출연한 그녀는 중요한 배역을 통해 리드 댄서로서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었다.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 모두에 재능을 가진 무용수로 성장할 것이란 예견을 이 새로운 전막발레 공연 작품을 통해 확인한 순간이었다.
“3명의 무용수가 교대로 주인공인 Kerttu 역할을 맡아 하고 있어요. 워낙 많은 분량의 춤과 연기를 소화해야 해서 공연을 마치면 거의 녹초가 되어요. 솔직히 첫 공연 전만 하더라도 단원들 모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공연 일정이 추가되어 있어요.“ 당시 공연 후 만난 하은지는 세계 초연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공연 일정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었다.
2007년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할 때 뉴욕 국제발레콩쿨에 출전, 금상을 수상한 그녀는 이를 계기로 외국의 몇 군데 발레단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고 그중 핀란드 국립발레단을 택했다.
“클래식 발레 외에도 모던한 감각의 작품과 유명 안무가들의 레퍼토리를 춤출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었지요.” 이후 하은지는 두드러진 활약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았고, 그 사이 헬싱키 시민들 누구나가 아는 발레단의 간판스타가 되어 있었다. 헬싱키 국립오페라하우스 로비에 있는 기프트 샵에는 하은지의 사진과 그녀가 싸인한 토슈즈, 그리고 그녀의 캐릭터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오는 7월 10일과 11일 열리는 제12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하은지의 춤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7년 만에 고국에서 갖는 금의환향의 무대이다. 그 사이 놀랍도록 성장한 하은지의 새로운 예술세계와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과 발레 마니아들의 기대가 크다. 유럽에 체류 중인 하은지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장광열 2008년 갈라 공연 이후 7년 만에 귀국공연이다. 어떤 작품들을 공연했고 컨디션은 어떤가?
하은지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이번 시즌에 <오네긴> <호두까기 인형> <돈키호테>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한 여름밤의 꿈>과 갈라 공연을 끝으로 핀란드국립발레단 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최근에는 Filip Barankiewicz가 주최한 체코국립발레단에서 열린 DANCE GALA에 초청 받아 <세헤라자데>와 <더블 이블>을 공연하였다.
클래식과 컨템포러리 발레, 그리고 드라마 발레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화해 내는 무용수란 평가가 공연한 레퍼토리에서도 읽혀진다. 7년 만에 고국의 팬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
무척 설렌다. 오랜만에 모국에서 갖게 된 공연이라 기쁘기도 하고 동시에 좋은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가득하다. 지난해 서울에서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을 보았었는데 관객들의 열기도 그렇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수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에 뿌듯함을 느꼈었기에 더욱 기다려진다.
모국의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을 선보이게 될는지 궁금하다.
클래식과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을 공연한다. 발레 갈라 공연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돈키호테>와 〈Double Evil〉을 골랐다. Jormal Elo가 안무한 〈Double Evil〉은 클래식 발레와 현대무용의 움직임 언어를 결합한 작품이다.
클래식과 컨템포러리 발레 모두에서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무용수 하은지의 성장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출연할 무용수가 누구인지도 궁금해진다.
핀란드국립발레단의 주역 무용수인 Michal Krcmar이다. 그는 2011년에 컴퍼니의 주역 무용수가 되었다.
아직도 2012년 겨울 헬싱키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본 핀란드국립발레단의 〈The Snow Queeen〉에서 주인공 Kerttu 역으로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던 하은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의 여왕>은 어린이들과 어른들 모두 발레의 매력-다양한 춤과 환상의 세계에서 만나는 새로운 캐릭터들, 그리고 스토리-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가 많은 것이 성공의 요인인 것 같다. <호두까기인형>을 대신할 송년 공연 레퍼토리로 핀란드의 정서를 반영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탄생한 것이 이 작품이다.
최근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발레단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이다. 안정적인 재정 지원과 유명 안무가들의 명작들을 고정 레퍼토리로 확보하고 있고, 뛰어난 무용수들이 속속 북유럽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만큼 발레단 내에서의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신단원이 되었다는 것은 서유럽의 발레단과는 다소 다른 시스템이긴 하지만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9년에 종신 단원이 되었다.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발레단과 문제가 있을 경우 유니온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여름휴가 보너스라든지 약간의 금전적인 해택도 있다. 그리고 발레단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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