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열 예전무용단 창단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3월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20년이 되었군요. 우리나라 춤 단체들의 대부분이 창작 작업을 주로 하는데 비해 궁중정재와 민속춤을 위주로 한 전통춤 전문 단체로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무용단은 특별한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주년을 맞는 소감이 있을텐데요.
손경순 졸업 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떠도는 재능 있는 무용수들이 안 스러워 우리 전통춤을 배우고 수련하는 기회를 주고 싶어 시작했는데 --- 아이들이 마음 놓고 춤출 수 있는 여건을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20년 동안 힘든 가운데서도 곁에 있는 제자들과 그리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예전무용단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어떤 작품들이 공연되는지도 궁금합니다.
공연은 3월 17-1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있습니다. 그 동안 무대에 올려 졌던 작품들 중에서 정재의 원형 재현과 전통춤의 멋과 품격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들을 골라 보았습니다. <학연화대합처용무합설>로 막을 열고 <태평무>를 솔로춤과 7인무로 각각 다르게 공연하고 <승무>와 제가 <살풀이춤>을 춥니다. 마지막에는 20여명의 모든 출연진들이 모두 4개의 장 흥(興)-소고춤, 고(高)-설장고춤, 지(地)-진도북춤, 락(樂)-북의 대합주로 짜여진 <흥고지락>(興高地樂)을 선보입니다. 중간에 예전무용단이 걸어온 20년을 영상으로 보는 순서도 넣었습니다.
궁중정재에서부터 우리 전통춤을 대표하는 홀춤, 그리고 역동적인 타악이 어우러진 작품까지 전통춤 전문 단체로 예전무용단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이 두루 망라되었네요. 기대가 됩니다. 무용계에서는 선생님이 작고하신 명무 한영숙 선생님의 춤들을 오롯이 보존, 전승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민속춤 외에도 궁중정재인 <학연화대합처용무합설>의 전수조교이기도 하지요. 국립국악원이 아니면 제대로 연희될 수 없는 작품들을 공연하기 위해서는 의상이나 장신구, 소품 등을 보유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그것들을 공부하고 전승시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요.
하나의 작품이라도 제대로 준비해서 공연해야겠다는 것은 출발 때부터 가졌던 생각입니다. 그래서 족두리 하나에서부터 의물, 의상이나 소품도 제대로 된 것들을 갖추려다 보니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더군요. 궁중정재 의상은 다른 춤의 의상보다도 무척 비쌉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매월 받았던 봉급은 집에 가져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조선대학교를 거쳐 숭의여자전문대학(후에 숭의예술대학) 무용과에서 오래 동안 후진들을 양성했었지요. 예전무용단은 숭의예대를 졸업한 선생님의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있지요?
단원들이 한 40여명 되는데 출산 등의 이유로 쉬는 단원도 있어 정기적으로 연습에 참여하고 있는 단원은 30여명 정도 됩니다. 숭의예대 무용과는 교육부의 전문대학 예술학과 폐지 정책으로 인해 얼마 전에 모든 것이 정리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척 허전하더군요. 무용 연습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땀 흘리던 흔적이 사라진 여파가 아주 오래 가네요.
30여년이란 시간도 시간이지만 교육과 창작의 산실이 없어져 버렸으니 그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심경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 (침묵)
문화예술을 국가 정책적으로 이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예술단체를 해외에 파견하는 공연을 통해 현지 관객들에게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외교통상부나 문화부 등을 통해 해외에 전통예술을 소개하는 경우가 빈번하지요. 주무부처의 입장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것이 어떤 단체를 내보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고려의 대상이 되는 요건은 공연의 수준과 다양한 작품 보유, 그리고 임기응변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을 겸비한 단체의 전문성입니다. 이런 점에서 관련 공공 기관에서 가장 선호하는 무용단 중 하나가 바로 예전무용단이란 얘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지금 듣고 보니 꼼꼼한 작품 준비에 기인한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렇습니까? (웃음) 아무래도 여러 스타일의 공연 작품들을 두루 보유하고 있는 것도 그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궁중무용에서부터 민속무용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에다 이를 토대로 새롭게 구성된 레퍼토리까지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의 수는 적지 않습니다.
디자인과 재질 그리고 마름질에 이르기까지 양질의 수백 벌에 이르는 고가의 의상과 장신구, 소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단체의 전문성을 가늠케 하는 척도가 될 수 있지요. 춤, 음악, 의상 등에서 최고의 질을 담보로 한 예전무용단의 해외공연은 현지 관객들에게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함께 예술공연으로서의 감동을 선사할 확률도 그만큼 높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년간 예전무용단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기여한 것 중 하나가 훌륭한 전통춤의 자산을 무대에 올린 것 외에도 바로 해외에 우리나라의 전통무용을 꾸준하게, 제대로 소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남는 해외 공연이 있나요?
2005년 모스크바, 2006년 리비아 공연 때에는 다채로운 작품 외에도 현지 언어로 된 팜플렛과 영상자료 등을 자체 제작해 배포함으로써 대한민국에 대한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시도 했었습니다. 공연 외에 워크숍 등을 함께 준비한 공연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단순히 공연만 하고 오는 것보다 현지인들에게 공연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한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다른 프로그램들이 병행해 시행된다면 더욱 문화외교적인 성과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전무용단이 지난 20년 동안 무용계에 기여한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바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유능한 지도급 전통무용가들을 다수 배출시킨 것이라 할 수 있을텐데요.
아직도 일주일에 하루는 정기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에 가 있는 제자들도 더러 참여를 합니다. 제자들이 국립국악원과 시 도립무용단 등에서 안무가로, 수석급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과 전문예술학교에서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우리춤은 오래 전부터 도제식으로 교육되어지는 큰 흐름을 갖고 있었지요. 때문에 무용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스승과 제자의 연이 남다를 수밖에 없지요. 전통춤을 전승하고 지도하면서 평소 제자들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나요?
오늘, 최선을 다해서 하라고 가르칩니다.
언제가 선생님의 제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 선생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춤 기량이 무디어졌다고 느낄 때, 예술가로서의 정신이 흐트러졌다고 느낄 때, 지도자로서의 의무감이 엷어졌다고 느낄 때면 자연스럽게 연습 실을 찾는다”고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신뢰와 존경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일이 음력으로 10월인데 남편이 “당신 생일은 올해도 어김없이 한 달이 넘게 계속 된다“고 푸념을 하곤 해요. 제자들이 음력으로 생일을 기억하다 보니 해가 바뀔 때마다 각기 다른 날에 축하인사를 전해오곤 해요. 저는 오래 전부터 편지을 많이 쓰는데 언제부터인가 제자들도 자신들의 속마음을 편지를 통해 털어놓곤 해요. 지금도 제자들이 보내는 마음의 편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나라 무용계에 선생님께서 기여한 것 중 하나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통무용의 꾸준한 보급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백화점 등을 중심으로 한 문화센터의 전통무용이 지금의 인기 강좌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된 토대를 마련한 주인공이 바로 선생님이지요.
중앙일보문화센터에서 한국무용 강좌를 처음 시작한 이래 여러 곳에 무수히 많은 강좌를 새로 개설하고 운영하고 자문했어요. 지금도 20년이 넘은 당시 수강생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어요. 생활 속에서 그들이 전통춤을 추고 전통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무용계로서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갖고 있는 거지요. 전통춤 공연장에 적지 않은 관객들이 있다면 그것 역시 이 같은 애호가들의 힘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의 무용계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면서 무용단 운영에서도 특화의 필요성, 전문 인력에 대한 중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전무용단은 공연 제작과 운영체계, 레퍼토리 축적과 국내외 공연 및 교육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에 의한 전문단체의 역할을 이미 오래전부터 현장에서 실행하고 있지요. 어렵지만 전통춤 전문단체로서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합니다. 공연 준비로 바쁘실 텐데 오늘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7년인가 예전무용단의 공연 팜플렛에 나는 예술감독 손경순의 전통춤에 대한 고집과 그 정신에 대해 이렇게 적었었다.
“손경순의 시선은 산만하게 다른 곳을 향해 있지 않다. 대학교수에다 이제는 중진으로 들어선 나이이지만 그는 무슨 협회니 하는 이익 혹은 친목단체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다. 스승, 선배, 후배들로부터 숱하게 큰 직책도 제안 받지만 가르치고 배우고 춤추는 일만도 버겁다고 한사코 거절한다.”
손경순예전무용단의 20년 이후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것은 바로 ‘정도’(正道)와 ‘예술’의 향기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력을 갖추고, 인간적이고, 정직함. 이것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무용계에서 예술가로서 손경순이 홀로 설 수 있었던 비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