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용 30년 기념공연 가진 장정윤
춤작업에서 학문적 접근과 심미적 가치의 중요성

인터뷰_권옥희 춤비평가


 가을, 비가 내렸다. 이른 추석연휴가 막 시작되기 전인 9월3일, ‘장정윤 무용 30년’(부산문화회관 중극장) 공연이 있었다. 극장 로비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무대가 궁금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가 있는가?’
 <절영도>에서 장정윤(동아대교수)의 춤을 보면서 한 메모중의 한 문장이다. <현현>에서 춤을 추는 장정윤을 보면서 어느 관객은 “눈물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주관적 정서의 개입으로 작품의 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서적 논증력은 논쟁을 가로 막는 것으로, 따지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날 장정윤의 춤은 ‘어디에 가 있는 것 같아’ 보인 것이 아니라 ‘어디에 가 있었고’, 어떤 이를 ‘눈물 나게’ 했다.
 ‘장정윤 무용 30년’은 유사한 것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먼 곳, 그리고 슬퍼 보였던 것이 사실인 것처럼 이미 논증된 사실이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 논쟁을 기다리고 야기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다르게 인상적인, 어떤 식으로든 기록이 남아야 할 무대였다. 장정윤의 춤에 대해 말하는 것, 어렵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후학을 가르치고 춤을 추어온 무대의 이력과 춤의 철학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한정된 지면에 모두 옮기는 것,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장정윤과의 인터뷰가 이를 대신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권옥희 춤에 대한 열정을 짐작할 수 있는 공연으로 매우 인상적이었다. ‘장정윤 무용 30년 기념공연’에서의 ‘30년’의 첫 해는 언제인가?
장장윤 첫 개인 공연을 1984년에 했다. ‘30년’의 첫 해가 되는 1984년 개인공연은 교내에서, 1985년 공간사랑에서 <공간발레의 밤>, 그리고 1986년 ‘바탕골 예술관’에서 주관하는 ‘바탕골 현대무용’ 기획공연에 <장정윤의 춤 “魂鈴”>을 발표했다.

이후 ‘30년’ 동안 동아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작품 발표를 꾸준히 해왔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 중, 어떤 춤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나? 작품에 대해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대무용 창작품 <승무 2013>이다. 전통무용 승무를 현대창작품으로 해석한 것인데 전통 승무 춤사위에서 20개 정도의 움직임모티프를 발굴해서 일일이 변형(manipulation)하고 통합하는 육체적으로 고된 안무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 <승무><절영도><현현> 세 작품을 올렸다. 세 작품 모두에 출연, 직접 춤을 추었다. 외국무용 전공자들은 보통 40대에 접어들면서 안무작업만 하는 이들이 많다. 춤추는 몸의 훈련됨이 상당함을 이번 무대에서 확인했다. 안무하고 직접 무대에서 춤을 추는 이유가 따로 있는지?
춤을 추는 것과 만드는 것은 별 개의 일이다. 생활세계에서는 누구나가 주어진 시간에 무슨 일이든 선택을 할 수 있지만 나에게 춤을 추고 만드는 일은 본분이다.

 



<절영도>와 <현현> 두 작품은 전공인 현대무용 작품인 반면 전통무용 <승무>를 직접 춘 것은 의외였다. 그것도 완판으로. 어떤 의도의 작업이었는지?

국내에서 일반인들이 무용을 접하고 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자극적이다. 전문인으로서의 나로 하여금 전공영역은 아니지만 폭넓은 무용에 대한 도전의 계기를 준 것은 그들이다. ‘승무’의 마스터가 끝이 아닌 전문적 경지에 한 발 다가가려는 의도였다. 앞으로 ‘승무’를 현대무용 창작품으로 또 다르게 해석하기 위해 전통을 우선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애잔하고 정직한 춤이라는 인상을 <승무>에서 받았다. 성실하고 끊임없이 꾸준하게 춤 작업하는 장정윤만의 춤 철학이 어느 정도 녹아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전통춤 중에서 ‘승무’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승무’는 연습을 할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자유정신의 세계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부산 영도의 옛 이름이 절영도라고 알고 있다. 작품 <절영도>에서 춤을 춘 두 명의 남자무용수의 움직임이 마치 무예를 연마하는 듯했다. <절영도>의 작업의도는?
부산을 알리는 것이었다. 부산의 자연과 기질이 역동적인 데서 창작된 춤동작들이다.


마지막 작품이 시작되기 전 어렸을 때 사진부터 시작, 60년의 삶의 궤적을 담은 사진영상을 보여주었다. 단편적이나마 장정윤의 춤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상으로 뭐랄까... 뽐내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춤의 이력을 수줍게 내어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영상과 연관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이해되는 <현현>작품이 좋았다. <현현>에서 선생의 정직한 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쾌적한 장식으로서의 움직임을 넘어서는 춤이랄까. 멋을 부리지 않아 춤이 아름다웠다. <현현>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세대가 서로 다른 두 무용수가 감각을 공유하면서 춤으로 현재하는 경험을 나누는 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해되지 못하는 정서적 이질감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 이 두 가지의 topic을 발전시켜 놓은 작품이다.

춤의 움직임이나 춤의 서정에 대한 개념의 차이가 반드시 세대별로 경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젊은 무용수들이라고 해서 춤에 대해 같은 견해와 같은 방법을 가진 것도 아니다. 전통과 시대의 갈등은 젊은 세대 내에서 더 클 수도 있다. 같이 호흡을 맞춘 강용기와의 작업은 어땠나?
서로 다른 세대의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를 구체적인 표현방법으로 창작할 계획이었다. 작품의 비전이 뚜렷한 경우와는 다르게 과정에 비중을 두었고 처음의 작품의도와는 다른 결과로 유연성 있게 이끌어간 작품이다. 젊은 세대가 감각적인 형상을 중요시 한다면, 나는 작품초기에 끌어들여온 그 감각들의 현상을 구조화하는 일에 더 비중을 두고 진행했다.

 



선생의 열정에 비해 관객의 숫자가 턱없이 적었다. 앞으로도 관객이나 작업환경 등에 구애받지 않고 무대작업을 계속할 계획인가?

프로시니움 아치의 극장 무대는 단독으로는 관객의 한계를 감당할 수밖에 없으나 어느 정도 해결의 방안이 없지 않다. 스스로 찾는 관객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고려할 것이다. 무대공연의 지속적인 계획과 관객의 숫자를 결부지어 본 적은 없다.

춤 이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 걸로 안다. 특히 춤추는 ‘몸의 현상학’에 대한 연구는 특이할 만하다. 이론연구가 실제 춤을 만들고 추는데 미치는 영향이랄까, 장정윤만의 춤의 철학이 있다면?
객관적으로 춤을 파악할 수 있는 틀이 형성되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의 하나인데 이론이 아니더라도 경험이 축적되면 알 수 있다. 춤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나 자신이 믿고 있는 춤 자체에 대한 확신과 신뢰를 갖게 한 것 같다.

부산 동아대에 재직하면서 보낸 30년에 대한 짧은 소회를 부탁한다.
학문과 예술의 균형을 잃지 않는 무용교육자로서 꾸준히 힘써왔다고 생각한다.

지방대학 무용학과가 폐과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소회가 있다면?
예술분야가 대학교육에서 소외된다면 젊은이들은 앞으로 무슨 생각을 담아 이 세상을 자신들의 세계와 언어로 채워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용이 존재하고 의미를 가지는 방식의 폭을 넓혀 무용의 학문적 성장과 심미적 가치가 존속되어야 한다는 앞으로의 숙제가 실감된다. 전국적으로 대학의 현실은 비슷하다. 변화의 속도를 보면 지방의 대학이 더 민감하다. 변화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든 통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권옥희 앞으로 또 다른 작품을 무대에서 보길 희망한다. 명료한 답변에 감사드린다.

 

2014.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