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네덜란드 공연 프리젠터 에밀 바렌젠
인터넷에서 검색 가능한 영문자료를 만들어라

 

오래 동안 아시아의 전통예술과 춤 작품 등을 네덜란드에 소개해 온 공연 프리젠터 에밀 바렌젠이 내한, 서울에 체류하며 한국의 공연예술 작품을 둘러보았다. 중국의 경극을 새롭게 각색해 유럽에 소개하기도 한 그는 국립무용단의 <토너먼트>를 보고 “성공하지 못한 실험”이라고 말했으며, 한국의 단체들이 국제무대를 위해 준비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았다. <춤웹진>이 마련한 즉석 인터뷰에는 SIDance의 이종호 예술감독도 함께 자리해 국제교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편집자 주)




 

김혜라(이하 김) :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Emiel Barendsen(이하 Emiel) : 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왔고, 1979년부터 공연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첫 10여년은 임프레사리오와 프로모터로 일했고, 최근 10여년은 암스테르담 트로펜테아터(Tropentheater) 프로그램 감독으로 일했습니다.

: 트로펜테아터는 어떤 곳입니까?


Emiel : 트로펜테아터는 트로펜 박물관, 도서관과 함께 왕립 열대연구소의 일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외무부의 예산이 삭감되어 트로펜테아터와 도서관은 2013년에 문을 닫았고, 박물관은 다른 박물관과 합병되었습니다. 저는 트로펜테아터에서 비서구 공연, 특히 음악, 무용 그리고 음악극을 전문적으로 코디네이팅 했습니다. 매년 평균 300여 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고 박물관과 극장에서 유·무형의 현대문화와 전통문화를 알려 왔습니다.
그동안 대만의 구광오페라단(GuoGuang Opera Company), 댄스포럼 타이페이(Dance Forum Taipei), 중국의 후베이 차임벨 오케스트라(Hubei Chime Bells Orchestra), 그리고 인도네시아 Garin Nugrono 감독의 〈Opera Java〉 등 아시아 작품들도 많이 올렸습니다. 한국 음악도 많이 했지요.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연주를 다도 공연과 함께 올렸고, 거문고 연주도 아주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신 동기가 무엇인지요? 체류하면서 본 춤 공연 중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는지요?

Emiel : 몇 년간 유럽과 아시아의 각종 행사에서 만났던 이종호 감독님의 추천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유럽시장에 진출시킬만한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몇 년간 한국의 현대무용을 보아 왔는데, 특히 박순호, 이인수씨 등의 작품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또한 안나 테레사 데 케에르스매커 무용단(Anna Teresa de Keersemaeker‘s Rosas)에서 훌륭한 한국 무용수를 보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제 기억으로는 윤수연이고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하선혜의 작품 〈Infinita〉는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종호(이하 이) : 한국의 현대무용은 최근 몇 년 사이 괄목할 만큼 국제무대에서 비중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가 진행하는 〈Kore-A-Moves〉는 이제 한국의 현대무용을 유럽에 알리는 정기행사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권역별 진출과 교류를 선호하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는 금년 한 해 동안 17-18개 단체를 유럽과 아프리카, 러시아, 북미에 진출시켰습니다. 또 바로 얼마 전 탄츠메세(Tanz Messe)에도 한국 안무가 5개 팀 전원이 열렬한 호응을 받았고, 이후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음악 쪽도 성과가 좋습니다. 비빙이나 공명 외에도 요즘은 잠비나이가 여기저기 초청 받아 나가고 있습니다. 좀전 마로니에 공원 무대에서 우리가 함께 관람한 ‘2014 대한민국 가을예술축제’ 개막식에서 연주한 들소리도 초창기보다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들소리가 세계 각지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도 예술적으로는 다소 아쉽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오늘 공연을 보고 예술성 측면에서도 그동안 커다란 성장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miel : 맞습니다. 최근에 저는 암스테르담 근처 할렘(Haarlem)에서 잠비나이의 훌륭한 공연을 보았습니다. 잠비나이의 연주는 포스트 락의 일종으로 한국 전통악기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의 조화는 매우 좋았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자유로운 축제를 느꼈고 모든 연령대의 관객에게 그 공연은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잠비나이가 서구 관객들에게 '한계를 넘는' 감동을 주리라 봅니다. 전망이 아주 밝습니다.
 그리고 오늘 공연한 들소리는 제가 우연히 처음 WOMEX(World Music EXpo)에서 본 이후로 계속 만나게 되는 단체입니다. WOMEX는 세계 음악산업에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장 큰 교역장이고 쇼케이스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저는 그들이 단조롭기만 할 뿐 미묘함이 전혀 없는 그저 정열적인 단체로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많은 시간동안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을 보았고 더욱 정제되고 조절되어 오늘의 연주는 심도가 더해진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잠비나이와 들소리처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공연물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Emiel : 제가 본 바로는 1980년대에 많은 한국 등 아시아 안무가들이 피나 바우쉬와 머스 커닝험을 모방하고 접목한 방식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발전에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것들은 이미 바우쉬와 커닝험에 익숙한 서구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같은 케이크 조각이 약간 변장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신들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그런 이들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공부하였고 그들의 주체성을 찾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연구의 결과로 그들은 그들의 색깔을 발전시켰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아시아인이고 그것이 자랑스럽다는 것이죠. 나는 내 역사, 유산, 문화를 요소로 사용하고 나를 강조하여 차별성 있는 예술가가 된 것이죠. 일부는 움직임 같은 예술의 소재를 활용하였고 일부는 원칙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을 활용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영감과 관련된 요소(예를 들어 소수민족의 전통춤이나 음악에서)를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흥미로운 과정은 상대적으로 새로웠고 범아시안 운동의 특출하고 명확한 결과를 서양 관객들에게 이끌어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만의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이나 댄스포럼 타이페이 같은 경우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 그렇죠. 가령 클라우드 게이트는 이른바 아시아성이라는 걸 가지고 서구 무대를 장악한 경우에 해당하지요. 그런데 저는 클라우드 게이트나 셴웨이, 혹은 일본의 부토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구인들과 아시아인들이 다르다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물론 그들의 작품이 훌륭한 건 맞지만 아시아인들은 서구인들에 비해 그들의 작업을 다소 범상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는 말씀이지요. 좀 심하게 말하면 우리가 다 아는 건데 각색을 잘했구먼...하는 식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덕션과 매니지먼트만 잘 받쳐줄 수 있다면 무용가 김매자가 클라우드 게이트보다 낮게 인정받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아시아의 작품들이 구미에 진출하는 데에는 본질적인 미학적 수준의 문제도 있지만 여러 가지 포장과 전략도 불가피한 게 현실 아닐까요? 지금 서울에 와 있는 프랑스 안무가 카린 사포르타도 서구의 영향과 무관하게 세계적 수준의 현대무용 장르를 구축한 유일한 사례로 부토를 언급하던데, 글쎄요, 여기에도 동서의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이와 관련해서 경극을 트로펜테아터에서 재각색해서 공연했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Emiel : 우리는 잘 알려진 경극의 전통예술 형태를 어떻게 젊은 관객들에게 에센스를 잃지 않으면서 어필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논의를 예술 스태프들이 이것을 어떻게 다루는가에서 시작하려 했습니다. 이들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미션에 보다 보수적인 이들이었습니다. 문제에 대한 답은 경극을 광범위한 파급력을 가진 작품으로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경극의 필수적인 기본 형태를 개조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경극은 스토리와 캐릭터를 가지고 있기에 원형을 유지하면서 작품의 기본 형태를 벗기는 과정에 의해, 그리고 구성형태에까지 이르는 부분을 시작으로 우리는 새로운 형태와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자유롭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게임산업, 전자산업에서 음악과 음성영상분야 등을 접목해서요. 예술제작팀은 산을 넘어야 할 뿐 아니라 엄청난 예술적 자유로움이 현대 버전을 창조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광 오페라 컴퍼니가 보여준 이러한 현대 버전이 유럽과 대만 등에서 극찬을 받았습니다.

: 말씀을 정리해 보면,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서 비롯된 요소를 동시대적 언어로 접근해야 서구권에서 유통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아시아 그 나라만의 전통적인 무형적 자산과 컨템포러리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그들만의 가치가 보여야 한다는 건 당연한 말씀이지만 하나의 결과물로 만드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낮에 함께 관람한 국립무용단의 <토너먼트>도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실험과 접근을 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단체들이 국제무대 진출을 위해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할 것들

 

Emiel : 제가 받은 인상을 말씀드리자면, 국립무용단의 <토너먼트>는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진 못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 작품은 관객 집중을 더 유도할 수 있는 다음 스타디움(later stadium)에서 수행되었어야 합니다. 두 안무가가 한 작품에서 작업했는데, 이는 좋은 실험이었으나 한 배에 선장이 두 명이라는 위험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작품의 목표는 두 명이 성공적으로 한 목소리로 얘기했어야 하는데 제 의견으로는 이 점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두 안무가가 서로 협조하고 융합하지 못한 형태로 큰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은 분리된 내용이 이어져 분리된 결론을 냄으로써 한 언어로 만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쉽게도, 이런 점이 우수한 요소와 환상적인 의상의 빛을 잃게 하였습니다. 더욱이 국립무용단은 무용수들의 훈련을 기술적인 면에서 더 수행했어야 한다고 보입니다. 시간적, 프레이징적인 측면에서 너무 많은 다름이 그 사이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부분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평가합니다.

: 그렇습니다. 윤성주 감독의 실험적인 도전과 추진력, 그리고 안성수 안무가의 미니멀한 형태구도와 세련되고 정제된 움직임들이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에 동의합니다. 오히려 정민선씨의 의상만 부각되었고, 그 안에 담지된 각 춤꾼들의 캐릭터가 보이질 않았고 오히려 판타지한 이미지들이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의미 있는 일이기에 앞으로 수정해가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국립무용단을 비롯한 한국 단체들의 작품이 국제무대에서 좀더 높이 평가받으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겠습니까?

Emiel : 그 문제는 이 선생님이 전문가이시면서(웃음)....저는 이번에 서울에서 있은 어떤 무용단의 공연을 보기 전에 그 안무가와 단체에 대해 알아보고자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오직 문서로 된 자료만 볼 수 있었는데, 이 문서를 누가 작성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이게 혹시 공연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거나 홍보자료의 일부는 아닌지, 내부 사람들에만 집중된 의미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많은 문서가 시작에서부터 너무 학문적이고 거리감이 느껴져 홍보든 부각을 위한 것이든 모든 면에서 의문을 갖게 하였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이렇게 팬시(fancy)한 단어를 쓰는 것은 뭔가 없는 것을 과장하려는 시도로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소통은 반드시 명확하고 투명하게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국제적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영문으로 된 소개말, 배경, 그리고 사람들에게 ‘왜’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인터넷에서 검색되고 자료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부터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소통에 있어서는 환상적인 것보다는 작품에서 무엇, 어떻게, 왜 그 메시지를 보내지는지가 중요합니다. 전통과 동시대 작품을 동시에 조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은 세계 여러 곳에서 우리가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무형의 자산의 가치가 새로운 관객을 사로잡게 하는 것이 대치되는 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흥미롭고 가치 있는 과정이며 가끔은 사람들이 성공을 거두기도 또 그렇지 못하기도 한 부분입니다. 그것이 과정의 정점일 것입니다.

: 맞습니다. 춤 단체에서도 영문 홈페이지 구성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 팸플릿에서 현학적인 작품 설명을 접할 때,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는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용물과 헷갈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아시아 쪽 작품은 무엇이었습니까?

Emiel : 홍콩 아트 페스티벌에서 본 대만 U-Theatre의 〈Beyond Time〉이었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은 최근 들어 국제무대 진출에 더욱 정열을 쏟고 있는 많은 예술가, 기획자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사실 오랫동안 구미 중심으로 발전해온 세계 예술계에서 아시아를 비롯한 비서구 예술가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지난 수 십 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학문적, 이념적, 현장적 고민을 해왔지만 쉽사리 결론이 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음 번에는 많은 예술가, 기획자들과 함께 선생님을 모시고 이 문제에 관해 좀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4. 10.
*춤웹진